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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브루 커피의 매력

2016년 10월 14일 — 0

‘차가운 물에 우려낸다’는 뜻을 가진 콜드브루Cold Brew. 더치커피로 커피 전문점에서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커피 전문점은 물론 마트, 편의점 등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다. 갑자기 콜드브루 커피가 주목받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text 정재훈 — edit 전보라 — photograph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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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는 콜드브루 커피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 대세는 콜드브루 커피였다. 카페에서 더치커피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집 앞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쉽게 콜드브루 커피를 찾을 수 있다. 물 또는 우유에 희석해서 마시는 100% 원액부터, 그대로 마실 수 있도록 미리 적당한 양의 물을 타놓은 제품까지 선택의 폭도 다양하다. 마트, 편의점, 백화점 슈퍼마켓을 돌며 시음할 커피를 골랐다. 핸디움 예가체프 콜드브루 커피 원액, 노브랜드 콜드브루 커피 아메리카노, 콜드브루 커피 by 바빈스키 아메리카노, 맥심 T.O.P. 콜드브루 커피, 바리스타룰스 블랙만델링. 5가지 커피에 담긴 카페인의 총량은 1770mg. 한번에 전부 마셨다가는 불면과 불안, 근육 경련으로 시달릴 가능성이 높은 양이었다.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시고도 83세까지 장수했다는 볼테르에 대한 기록을 믿거나 말거나, 일전에 더치커피에 카페인 함량이 낮다는 지인의 말을 믿고 원액 그대로 한 병을 마셨다가 고통 속에 뜬눈으로 밤을 새운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시음 전에 얼마만큼 마실 것인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불행히도 물을 타 희석해서 마셔야 한다는 말은 다음날에야 들었다. 이미 밤을 새운 뒤였다).

콜드브루 커피, 더 나은 커피일까
음식에 대한 속설은 부분적으로는 사실이지만, 따져보면 틀린 말이 될 때가 많다. 콜드브루 커피에 카페인 함량이 낮다는 말의 경우도 그렇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믿을 만한 근거도 있다. 커피 원두 속의 카페인은 물의 온도가 높을수록 잘 녹는다. 같은 양의 커피 원두를 동일한 굵기로 갈아서 동일한 시간 동안 추출한다면 당연히 차가운 물로 우려낸 커피에는 뜨거운 커피보다 적은 양의 카페인이 들어 있게 된다. 하지만 콜드브루 커피와 뜨겁게 추출한 커피의 실제 카페인 함량에는 별 차이가 없다. 커피 원두 속 풍미 물질이 잘 녹아나지 않는 콜드브루 커피의 단점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원두를 넣고 더 오랜 시간 추출하기 때문이다. 최종 제품의 카페인 함량은 원액에 물을 얼마만큼 넣어 희석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 결과 콜드브루 커피에 일반 커피보다 더 많은 카페인이 들어 있는 경우도 생긴다. 예를 들어, 맥심 T.O.P. 더 블랙 아메리카노의 카페인 함량은 94mg, 콜드브루 커피 아메리카노는 126mg이다. 카페인을 더 적게 섭취하는 게 목적이라면 커피 종류를 따지기보다 커피를 적게 마시는 게 낫다.
고온고압으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방식보다 찬물로 추출하는 콜드브루 커피의 맛이 커피 본래의 맛을 더 잘 살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에스프레소는 커피 원두의 다양한 맛을 죽이지만, 저온으로 커피를 추출하면 원두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풍미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커피는 원두가 아니다. 우리가 즐기는 것은 원두 자체가 아니라 원두 속에서 물에 녹아 나오는 성분 가운데 20% 내외가 주는 맛과 향이다. 나머지 80% 성분까지 모두 녹여서 먹으면 더 맛있는 커피가 되는 게 아니라 쓰고 텁텁해서 사람이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커피가 된다. 커피 원두의 본연의 맛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생두를 볶는 과정에서 이미 사라진 맛일 것이다. 에스프레소 추출에 사용되는 물의 온도는 90℃를 조금 넘지만 생두를 볶으면서 향기 성분을 만들어내려면 섭씨 170~230℃의 고온에서 로스팅해주어야 하며 이때 원두 내부의 압력은 25기압까지 높아진다(에스프레소 추출에 사용되는 것보다 2.7배가 더 큰 압력이다). 캐러멜 반응, 마이야르 반응, 지방 분해 등을 거치면, 생두 속의 300가지 휘발성 물질 가운데 100가지는 사라지고, 650가지가 새로 추가된다. 브루잉은 이들 성분 가운데 어떤 것들을 선택적으로 추출해 맛과 향이 풍부한 커피를 만들어내느냐의 문제다.

커피 브루잉의 과학
커피 속의 향기 성분은 대체로 물보다 기름을 좋아하는 소수성 성분이다. 저온보다 고온일 때 물에 더 잘 녹는다. 차가운 물로 14시간 추출해서 만드는 커피와 뜨거운 물에 대기압의 9~10배에 이르는 압력을 가해 추출한 커피의 맛이 확실히 다른 이유는 온도와 압력에 따라 원두에서 끌어낼 수 있는 성분들의 종류와 구성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콜드브루 커피와 핫브루 커피의 맛이 다르고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의 맛이 다르다. 하나가 맞으면 다른 하나가 틀린 답이 된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콜드브루 커피가 핫브루 커피보다 낫다’ ‘핸드드립이 에스프레소보다 제대로다’라는 식으로 정답을 찾기에 바쁘지만, 커피 맛에 정답은 없다. 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다양한 맛이 있을 뿐이다. 커피 브루잉에서 온도는 중요한 변수지만, 다양한 변수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 분쇄한 입자의 크기가 큰지 작은지, 입자가 얼마나 균일한지, 가루로 분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열로 인한 성분의 변화가 얼마나 있었는지에 따라 커피의 향미가 달라진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98%는 물로 되어 있으니 당연히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커피 맛이 달라진다. 물속에 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 성분이 많이 녹아 있으면 쓴맛이 강해지기도 하고, 물이 알칼리성이냐 산성이냐에 따라 커피의 추출 속도가 영향을 받기도 한다. 휘발성 향기 물질은 원두를 로스팅한 뒤에 공기 중으로 날아가거나 산화로 인해 변질되기도 하니, 언제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에스프레소 맛은 다 똑같다고 푸념하는 사람도 있지만, 뜨거운 에스프레소의 맛을 구분하기가 콜드브루 커피보다 쉽다. 12시간 이상 서서히 추출하는 콜드브루 커피에 비하면 짧은 시간에 강한 압력으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의 경우 원두의 양, 물의 온도, 추출 압력, 추출 시간 등의 조건을 조금만 다르게 해도 맛이 크게 달라진다. 다양한 변수를 바리스타가 의도된 계산에 따라 조절하는 능력이 기술의 차이이자 커피 맛의 차이다. 양산된 콜드브루 커피 맛의 차이는 에스프레소만큼 크지는 않았다. 여러 제품을 동시에 비교 시음하지 않으면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묘했고, 핫브루 커피 와 비교하면 쓴맛이 덜하면서 부드럽게 혀에 휘감기는 질감이 정도 차이는 있었지만, 시음한 제품들 모두에서 느껴졌다. 노브랜드는 다른 콜드브루보다 약간의 산미가 느껴졌고, 원액을 물에 일대일로 희석해서 마신 핸디움 예가체프는 다른 콜드브루 커피보다 진한 풍미였으며, 바리스타룰스 블랙만델링은 씁쓸하지만 뒷맛이 깨끗했다. 단, 맥심은 예외였다. 다른 콜드브루 커피에 비하면 맥심 콜드브루 커피는 일반 캔커피의 맛에 가까웠다. 캔커피 특유의 금속성 냄새가 강했고, 콜드브루 커피 특유의 점도나 부드러운 단맛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바리스타룰스에는 산화 방지를 위해 첨가한 탄산수소나트륨과 비타민 C가 첨가된 반면, 맥심에는 탄산칼륨과 비타민 C에 더해 약간의 유화제가 사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보존 기간은 비교 시음한 제품들 중 제일 길어졌지만 맛에는 악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싶다(이에 더해 원두의 배합과 사용된 원두 자체의 품질 차이도 배제할 수 없다). 맥심은 그렇다치고 눈을 감고 나머지 커피들을 맛본다면 내가 가려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것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카페에 가서 바리스타에게 배울 기회가 있다면 모를까.

커피는 음식인가 약인가
음식은 약과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 그 경계는 명확하다. 약은 적은 양으로도 효과가 날카롭게 나타나지만 음식은 효과가 비교적 완만하게 나타나며 그만큼 안전하다. 밥을 한 공기 더 먹거나 햄버거에 패티 한 장을 더 넣어서 먹는다고 해서 큰일이 벌어지진 않는다. 그런데 ‘기호’라는 말이 붙으면 음식과 약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커피가 그렇고 술이 그렇다). 커피 한 잔과 두 잔의 차이는 크다. 콜드브루 커피 한 병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양은 120~130mg, 진통제 한 알에 들어 있는 카페인의 양은 50mg이다. 내 경우, 원고 마감에 몰릴 때가 되면 하루 서너 잔은 쉽게 마시게 되니 알약으로 치면 7~10알을 복용하는 셈이다. 카페인만 놓고 보면 커피는 약이다. 하지만 카페인이 커피의 전부는 아니다. 커피에는 카페인 외에도 1000종이 넘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다. 미국인들은 커피에서 가장 많은 항산화 물질을 섭취한다고 한다. 커피는 약이면서 동시에 복잡한 음식이다. 그런 독특한 이중성 때문일까? 핫브루 커피든 콜드브루 커피든 모든 커피가 매력적이다(맞다. 모든 술도 그렇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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