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Trend

즉석조리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2016년 9월 12일 — 0

‘제대로 된 한 끼 식사’를 강조하면서 최근 즉석조리식품의 수요가 늘고 있다. 우선 간편해서 좋다. 맛과 영양은 어떨까.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아본다.

text 정재훈 — edit 전보라 — photograph 박재현

0916-instant1

의심이 필요 없는 집밥
“1시간 넘게 끓였는데도 아삭함을 잃지 않는 김치의 속살은 파도를 꿋꿋하게 버텨낸 크루들의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김치 국물이 스며든 삶은 돼지고기의 맛은 이윽고 잔잔해진 바다와 따스한 햇살의 평온함이고 데운 청주는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 아내가 해준 김치찜에 감동한 남편의 외침이다. 커다란 파도가 배를 뒤흔들듯 강렬한 김치찜을 맛보며 그는 스트레스에 찌든 삶에서 탈출한 듯한 해방감을 맛본다. 그런데 만화 <식객>에 등장한 이 김치찜이 아내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면, 마트에서 사온 즉석조리 김치찜을 데워서 올린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주인공은 실망했겠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식객> 24권에 소개된 김치찜은 애초에 집에서 만든 음식이 아니다. 서울 서대문의 한옥집 김치찜을 모델로 한 것이다. 만화 속의 김치찜을 맛보러 멀리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마트에서 한옥집 김치찜과 김치찌개를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마저 귀찮은 사람은 인터넷 주문도 가능하다. 집에서 직접 김치와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준비하고 육수를 부어 김치찜을 준비하는 데는 1시간 반 이상의 시간이 걸리지만, <식객>의 원전 맛집 이름으로 출시된 김치찜을 조리하는 데는 끓는 물에 6분, 전자레인지에 5분, 또는 냄비에 4분이면 충분하다. 이토록 짧은 가열 시간을 조리시간이라고 불러야 하는가는 의문이지만, 제품 뒷면에는 위의 3가지 데우는 법을 분명히 ‘조리’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다.

김치찌개에 담긴 과학
즉석조리 김치찌개를 짧은 시간 가열하는 것만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사전에 충분히 조리된 음식이기 때문이다. 사실 5분 내외의 조리시간으로는 김치를 제대로 익히는 것도 불가능하다. 생배추와 달리 묵은 김치는 신맛의 산 성분으로 인해 조리를 해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채소의 아삭한 질감은 식물 세포가 비교적 단단한 세포벽 속에 다량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 세포벽은 마치 철근 콘크리트와 비슷한 구조로 비유하자면 셀룰로오스 뼈대에 펙틴과 헤미셀룰로오스라는 시멘트가 채워져 있는 형상이다. 생채소를 가열하면 숨이 죽으며 흐물흐물해지는 것은 펙틴과 헤미셀룰로오스 성분이 물에 녹아서 조직이 느슨해지고 쉽게 분리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산성에서는 헤미셀룰로오스가 물에 잘 녹지 않는다. 김치의 숙성 과정에서 펙틴이 분해되어 생겨나는 펙틴산이라는 성분과 천일염에 들어 있는 칼슘, 마그네슘도 세포벽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배춧국의 생배추가 쉽게 물러지는 것과 달리 김치찌개 속의 배추가 상당 시간 아삭함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과학이 숨어 있다(물론 김치 숙성 과정에서는 배추를 무르게 만드는 다른 요소들이 함께 작용하므로, 김치가 묵을수록 연하고 무르게 되는 것을 아주 피할 수는 없다).
계속 열이 가해지면 김치는 점점 더 무르게 변한다. 반대로 돼지고기는 퍽퍽해진다. 고기의 단백질이 열 변성으로 오그라들며 육즙이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물속에서 익힌 고기인데도 수분이 모자라다. 근육 세포 속에 있어야 할 수분이 바깥으로 옮겨간 결과다. 김치는 아삭하면서 돼지고기는 부드럽게 씹히도록 익히려면 온도와 시간의 조절이 중요하다. 김치의 숙성 과정에서부터 찌개의 조리 과정까지 다양한 변수를 어떻게 관리하고 조절하느냐가 요리의 풍미와 질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관건이다.

가공식품으로 맛보는 김치찌개
마트에서 판매하는 김치찌개의 맛은 어떨까? 비교를 위해 한 회사에서 만든 3가지 김치찌개를 먹어보기로 했다. 한옥집 김치찌개, 집밥연구소 참치 묵은지 김치찌개, 우리집 묵은지 김치찌개. 제품의 유형은 모두 즉석조리식품이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같은 찌개인데도 2가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우리집 묵은지 김치찌개와 집밥연구소 참치 묵은지 김치찌개는 집밥의 맛을 강조하고, 한옥집 김치찌개는 밖에서 사먹어야만 맛볼 수 있는 식당 음식의 맛에 방점을 찍는다. 한옥집 김치찌개는 돼지고기 앞다리살, 우리집 묵은지 김치찌개에는 삼겹살이 들어 있고, 고기 양은 한옥집 김치찌개가 조금 더 많다(정확한 함량 비교를 할 수는 없으나, 영양 성분 분석을 보면 그렇다). 김치의 흐물흐물함, 돼지고기의 퍽퍽함은 두 제품이 비슷하다. 즉석조리식품의 제조 과정에서는 제품의 살균이 중요하므로, 재료가 과잉으로 익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특히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긴 식품은 통조림과 같은 열처리와 고온, 고압 살균 공정을 거쳐야 한다. 맛집의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맛집과 동일한 맛을 낼 수는 없는 이유다. 참치 묵은지 김치찌개의 경우에도 그 점은 비슷했는데, 집에서 참치를 넣고 김치찌개를 여러 번 끓였다가 식혔다가 한 뒤에 남은 찌개를 먹을 때와 비슷하게 참치에서 금속성의 맛이 났다.
레토르트 파우치에 담긴 즉석조리식품은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재료 속으로 국물 맛이 깊이 배는 문제가 있다. 두부는 특히 그렇다. 한 번 먹고 남은 찌개를 다시 끓였을 때의 두부처럼 제품 속의 두부는 하나같이 짭짤한 국물로 절여져 있었다. 국물 맛은 세 제품이 모두 비슷한 패턴으로 신 김치의 맛에 약간의 설탕과 조미료가 더해진 맛이었다. 국내산 천일염이 들어가서 요리의 참맛을 냈다는 우리집 묵은지 김치찌개의 자랑은 이해할 수 없다. 고기를 찍어 먹을 때처럼 직접 입안에 소금을 넣고 맛볼 때는 천일염과 정제염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국물 요리에 천일염을 넣었을 때 맛의 차이를 느끼기는 어렵다. 이미 국물에 녹아버렸는데 무슨 차이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잘못된 마케팅이다.
세 제품 모두,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맛있지는 않지만 먹을 만했다. 셋 중 둘이 집밥을 강조했지만 셋 다 집에서 끓인 찌개의 맛보다는 바깥에서 사먹는 찌개의 맛에 가까웠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다. 한옥집 김치찌개가 덜 짰다. 실제 이 제품의 나트륨 함량은 다른 제품보다 30% 적은 수준이었다.

즉석조리식품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
최근 가정식을 대신하는 간편식 HMR(Home Meal Replacement)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집에서 만든 동태전, 잡채, 소곱창볶음, 육개장, 시금치된장국, 냉이된장찌개와 다른 누군가가 만든 즉석조리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같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 즉석김치찌개도 김치찌개이므로, 넣을 수 있는 설탕과 소금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너무 짜거나 너무 달면 당연히 소비자의 선택에서 멀어진다. 맛본 세 제품 가운데 둘의 나트륨 함량은 대한민국 외식 영양 성분 자료집의 김치찌개와 거의 비슷한 정도의 비율로 나트륨이 들어 있다. 문제는 먹는 양이다. 1~2인분으로 애매하게 표시된 김치찌개 한 봉지를 한 번에 혼자서 다 먹으면, 바깥에서 사먹는 김치찌개보다 25%나 더 많은 나트륨을 섭취하게 되지만, 둘이 나눠 먹으면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을 때보다 나트륨 섭취가 38% 더 적어진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3g 이하의 소금을 먹는 지역에서는 고혈압이 드물다. 고혈압은 하루 5.8g 이상의 소금(나트륨으로 2.3g)을 먹는 지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나트륨은 건강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미네랄이지만 다른 모든 영양 성분과 마찬가지로 과하면 해를 줄 수 있다. 어느 정도로 제한하는 게 건강에 최적이냐를 두고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너무 짜게 먹는 게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초점은 당연히 양에 맞춰져야 한다. 즉석김치찌개의 나트륨 함량도 중요하지만 제품 1~2인분을 1인분으로 간주하느냐 2인분으로 간주하느냐, 국물을 다 먹느냐 일부만 맛보느냐에 따른 차이가 더 큰 셈이다.
집에서 모든 음식을 조리해 먹든 반조리된 식품을 사다가 데워 먹든 우리의 건강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다양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것은 양이다. 즉석조리식품과 건강에 대한 초점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얼마나 먹느냐에 달려 있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찌개 맛집 추운 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뜨끈한 찌개 한 술은 마치 보약처럼 느껴진다. 매일 방문하고 싶을 만큼 맛있는 곳들을 추천받았다. edit 권민지 통술집 — 김유선(중앙일보 미디어 플러스 디자이너) ...
미식의 의미 @이해림 다수결에 순응하지 않는 것, 때로 실패하겠지만 마침내 나의 취향을 찾는 것. 그것이 미식으로 가는 길이다. text 이해림 지난해부터 <수요미식회>에 자문을 하고 있다. 원망을 많이 받는...
일일 一日 일일은 호젓한 누하동 길 건물 2층에 있는 술집이다. 재즈 넘버와 낮은 조도 아래서 창 너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 계절마다 변화하는 조용한 길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있다. 벚꽃 피는 4월에는 창 너머 풍경이 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