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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프렌치토스트 @은희경

2016년 9월 9일 — 0

남자는 여덟 조각으로 쪼개진 사과에 눈을 반짝이는 그녀를 보고 진정한 사랑을 시작할 상대라 생각했다.

text 은희경 — illustration 박요셉

illustration 박요셉

미안합니다. 나는 당신을 조금 알고 있어요. 당신을 몰래 관찰했거든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물론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전혀 모릅니다. 어쩌면 한번쯤 시선이 내 얼굴을 스쳐갔을 수는 있겠지요. 당신과 마주친 쇼핑몰은 이 도시의 중심가에 있고 윌리엄 소노마Williams Sonoma는 늘 사람이 많은 매장이니까요. 특히 그날처럼 요리 클래스가 있는 날 조리대 앞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더욱 좁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나를 보았다 해도 당신의 눈에 나는 그 거리의 수많은 백인 남자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나 역시 처음에는 당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요. 이 도시 어디에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동양 여성 여행객이려니 했겠지요. 그때까지 당신과 나는 서로에게 73억 지구인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의 이름을 알기 전까지는요. 요리 클래스의 진행자는 먼저 인터넷 신청자의 명단을 들고 이름을 부르며 출석 체크를 했습니다. 그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어요. 나는 사무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안내 포스터를 보았고, 그날의 요리 클래스에 프렌치토스트가 있다는 걸 알자 충동적으로 발길을 옮겼거든요. 출석 체크까지 할 줄은 몰랐던 나는 그냥 그 자리를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그 순간 진행자가 킴Kim이라는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그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어색하게 손을 드는 당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때부터 옆눈으로 당신을 살피기 시작했어요. 이 나라에서 킴은 여자의 이름이지만 한국 사람에게는 매우 흔한 성이라는 사실도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영어에 서툰지 진행자의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어요. 진행자의 농담에 모두 웃음을 터뜨리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시식 타임이 되어 줄을 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당황한 모습이었지요. 그것이 무척 좋았습니다. 어쩌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라도 서로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나를 안심시켰어요. 두터운 외투를 입은 채로 서로를 껴안고 또 장갑을 낀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는 겨울 연인 같다고나 할까요. 나의 아내였던 킴과는 정반대로 말이죠. 아내는 화려하고 아름다웠고, 한낮의 빛과 그림자처럼 언제나 명암이 뚜렷했어요. 자신이 태어난 남부의 여름과 같은 여자였지요. 그녀는 자신이 프렌치토스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원하는데도 한 번도 만들어주지 않더군요. 그녀의 말대로라면 프렌치토스트는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라고 합니다. 프렌치토스트를 가리키는 프랑스어 ‘팽 페르뒤’는 버려진 빵Lost Bread이라는 뜻이라나요. 딱딱하게 굳어버린 오래된 빵을 버리기 아까워서 우유와 달걀에 담가 부드럽게 만들어 재활용한 음식. 아내의 말이 맞겠죠. 그녀는 미식가인 데다 이따금 잡지에 음식 칼럼을 쓰기도 했으니까요. 실은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아침 식사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곤 했는데, 아내의 말마따나 우리 집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밤새 우유에 빵을 담가놓는 이유가, 할인매장에서 번들로 사온 빵이 오래되어 제맛을 잃었기 때문이란 걸 그때는 알지 못했어요. 프렌치토스트에도 종류가 많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노릇노릇 폭신해 보이는 빵 위에 얇게 썬 딸기와 하얗고 부드러운 휘핑크림을 얹기도 하고, 부순 피칸에다 메이플 시럽을 끼얹어 고소함에 달콤한 향을 더하기도 합니다. 그날의 클래스에서는 흑설탕과 와인으로 조린 사과를 얹은 프렌치토스트였어요. 셰프는 미리 우유와 설탕에 담가두어 충분히 부드러워진 두툼한 빵을 꺼낸 다음 사과를 조리기 시작했죠. 먼저 프라이팬을 달군 뒤 버터를 녹이고 버터가 상앗빛으로 흐르면서 고소한 버터 향이 번져갈 즈음 흑설탕과 화이트 와인을 넣고 저어주었지요. 거기에다 조각 낸 사과를 떨어뜨립니다. 셰프가 싱크 아래 선반에서 사과 커터를 꺼냈을 때, 나는 당신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나를 처음 만난 날 아내의 눈빛처럼 낯선 대상에 대한 감탄이 깃들어 있었어요.

주방용품 전문점 윌리엄 소노마가 매장에서 요리 클래스를 운영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요리에 사용되는 조리기구, 즉 상품의 홍보가 분명 큰 비중을 차지하겠죠. 사람들은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편리하거나 아름다운 조리기구의 매력에 빠지게 마련이니까요. 사과 커터는 딱 사과 크기만 한 원 모양의 칼날로,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었어요. 한가운데에는 사과 심만 한 작은 원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을 중심으로 햇살이 뻗치듯 칼날이 8개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지요.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작은 원을 사과의 중심에 맞춘 뒤 탁, 하고 한 번 내리치면 사과가 여덟 방향으로 조각나 갈라집니다. 마치 여덟 개의 꽃잎을 가진 꽃이 순간적으로 활짝 피어나듯 말이죠. 나의 어머니는 부엌칼로 사과를 둘로 쪼갠 다음 다시 세 번의 칼질로 8등분하곤 했지만 쪼개진 사과의 모양은 똑같았습니다. 맞아요. 내가 어머니의 프렌치토스트를 좋아한 것은 사과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사과 농장 일꾼이었고 어머니의 프렌치토스트에는 항상 그 단단한 사과로 만든 달콤한 조림이 얹혀 있었거든요. 나는 아내와 함께 자주 브런치를 먹으러 다녔어요. 아내는 여러 식당을 돌아가며 그곳의 주메뉴를 골고루 즐기는 편이었지요. 나는 언제나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했어요. 어머니가 만든 것과 같은 프렌치토스트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운 좋게 사과를 만나더라도 거의 언제나 마멀레이드처럼 잘게 다지거나 아니면 얇게 슬라이스해서 둥글게 돌려 모양을 낸 거였죠. 분명 말하건대, 그런 사과조림은 진정한 프렌치토스트를 위한 사과조림이라고 할 수 없어요. 사과는 여덟 조각으로 두툼하고 달콤하고 아삭해야 합니다. 너무 물러도 퍼석해도 안 되고, 그리고 시나몬 가루 따위를 뿌려서도 안 돼요. 나는 언제나 기대와 달랐던 프렌치토스트를 조금밖에 먹지 않았고 대신 브런치 칵테일인 미모사를 취하도록 마셔 아내를 화나게 했죠. 마침내 셰프가 도마의 사과 위에 커터를 올려놓았습니다. 탁, 하고 내리치는 순간 사과는 꽃처럼 쪼개지고 내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킴, 당신의 얼굴에도. 나는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미안합니다. 그 순간 나는 당신이 나의 연인이 되는 상상을 하고 말았어요. 아마 우리는 겨울 외투와 방한화와 어쩌면 고글로 무장하고 세상의 강추위에 맞서가며 서로를 사랑할 것입니다. 영원히 서로의 맨얼굴과 알몸에 가닿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정한 거리 밖에서 충분히 오래 사랑할 수 있을 거예요. 여름처럼 뜨거웠던 아내와 나는 완충 지대가 없었기에 결국은 부딪쳐 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가장 가깝게 닿을 수 있어 사랑했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상대를 안다는 것은 타인을 자기 식대로 해석한다는 뜻이고 오해의 시작일 뿐이었어요. 아내와 나는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품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지는 도구로 삼은 건 아닐까요. 음식이 아니라 조리기구에 매혹되는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킴, 우리는 여덟 조각으로 쪼개진 사과를 보고 동시에 눈을 빛내는 사람들이잖아요. 우리는 서로의 말을 모르니 도구도 개입되지 않을 것이며 끝내 통하지 않을 거예요. 요리 클래스가 끝나는 것과 함께 나는 상상에서 깨어나야 했습니다. 당신은 어딘가를 두리번거리고 있었지요.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 이름을 불러보려 했지만 당신은 마치 급한 볼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곤 했어요. 붐비는 매장 안에서 나는 땀이 나기 시작했지요. 당신은 빨랐고 그대로 영영 놓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마침내 당신을 찾아낸 곳은 프라이팬과 냄비 너머 자잘한 도구 코너였어요. 당신은 웃음을 지으며 선반 고리에서 사과 커터기를 꺼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표정은 여행객과 요리 클래스 수강생의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쇼핑에 성공한 당신의 흐뭇한 표정은 마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플러를 벗어버린 듯 조금은 세속적이었고, 이제 외투부터 시작해서 당신이 입고 있던 옷을 한 겹씩 벗어가며 유창한 영어로 자기소개를 할 것만 같았지요. 방한 외투를 껴입고 바라보기만 하는 겨울 연인이란 처음부터 꿈꿀 수 없는 존재였을까요. 내 곁을 떠난 해에 썼던 아내의 칼럼은 이렇게 시작되었죠.

프렌치토스트에는 여러 이름이 있다. 한때 버려진 빵이라고 불렸지만 이제 프렌치토스트는 더 이상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신선하고 두툼한 빵을 버터로 구워 노릇노릇해진 모양을 본떠 팽 도레, 즉 골든 브레드(황금의 빵)로 불리게 되었다.

킴, 아내가 프렌치토스트에 대해 쓴 건 그때뿐이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이니, 그렇다면 단 한 번인 것이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은희경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로 등단했으며 같은 해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로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다. 동서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마이너리그>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등이 있다. 최근에는 여섯 번째 소설집 <중국식 룰렛>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