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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유지상

2016년 9월 2일 — 0

미식이란 너와 나, 우리만 좋은 걸 먹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몫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굶주리는 이가 없게 모두가 함께 나눠 먹는 것이다.

text 유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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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정확히 12년 전에 처음으로 맛집 책을 냈다. 빨간 표지의 <잘나가는 그들은 여기서 먹는다>란 제목의 책이다.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이 고르는 맛집의 기준이 뭐요?’ 맛집 기자 6년 동안 가장 많이 받아온 질문입니다. 소주잔을 따르던 선배가 느닷없이 묻기도 하고, 어쩌다 밥상을 마주한 음식점 주인도 넌지시 캐물어옵니다. 이 물음에 항상 얼굴이 벌겋게 변했습니다. 왜냐하면 명확한 잣대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곤 이렇게 풀었다. ‘맛은 대단히 주관적이라 음식을 대하기 전부터 종업원의 행동 하나로 맛(기분)이 좌우될 정도로 객관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상대가 반찬이다란 식으로 본인이 미리미리 잘 챙겨야 한다.’ 이렇게 주절거리다가 ‘다시 먹고 싶은 음식, 다시 오고 싶은 음식점’으로 결론을 냈다. 첫 책에서 이야기하는 맛있는 음식, 즉 미식의 중심은 ‘나’였다.

5년이 지난 2009년 7월. 두 번째 책을 냈다. 제목은 <비즈니스 성공 맛집>. 전작에 수록된 음식점 가운데 주인이 바뀌거나 문 닫은 집은 빼고 새로 발견한 곳을 추가했다. 그러면서 목차와 구성을 상황별로 구분하는 작업을 했다. 책 이름은 달랐지만 5년의 취재 경력을 플러스해 대폭 보완한 개정판 성격의 책이다. 두 번째 책의 서문은 이렇다.

“맛있는 음식은 사랑입니다. 변변한 주방도 없는 시골 할머니댁. 아궁이에 가마솥을 걸고 밥을 짓습니다. 음식 재료라곤 울타리 옆 텃밭의 푸성귀가 고작입니다. 그래도 할머니의 손을 거친 음식은 참 맛납니다. ‘조물조물 마법의 손놀림’ 속에 가득한 사랑 때문이지요.”

그러고는 앞의 글처럼 구체적인 예를 더해가며, 맛있는 음식은 ‘추억이다, 공감이다, 배려다, 소통이다’를 나열했다. 미식에 대한 개념이 머릿속에 콕콕 박히는 한 단어의 명사로 다양하게 표현했지만, 어딘지 정리되지 않은 혼란스러움이 읽힌다. 그래도 두 번째 책의 미식 범주가 첫 책의 ‘나’를 벗어나 ‘너’에게까지 넓혀진 모양새다. 5년 취재 경력이 더해진 힘을 작게라도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7년이 흐른 2016년 8월 현재, 그사이에 중앙일보 음식 기자를 그만뒀다. 글쓰기는 다소 멀리하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음식과 미식에 관련된 일을 하며 지낸다. 후속 책 발간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여전히 ‘맛이란 무엇인가’란 화두로 글이 만들어진다. 얼마 전 이런 글 조각들을 모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음식점 창업을 꿈꾸고 있는 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이었는데, ‘맛있는 음식’이란 주제로 강의를 했다.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창업 열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이야기의 첫 단추를 요즘 신조어인 ‘혼밥’ ‘혼술’로 풀었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마시는 술이란 뜻의 두 단어. 거기엔 ‘내 입’만 있어요. 내 입의 달콤함, 내 배의 포만감만 있는 거죠. 단어 자체부터 ‘다른 이가 굶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느낌이 있어요. 개인으로 보나, 사회로 보나 무척 안타까운 일입니다. 1인 가구 증가로 인한 식문화의 변화라고 변명 가능하지만, 혼밥과 혼술 안에서 미식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건 사치와 오만입니다.” 이렇게 말하곤 ‘콩 한 쪽도 나눠 먹어라’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며 강의를 이어갔다.

2015년에 발표한 영국의 자원행동 프로그램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사람들이 먹지도 않고 버리는 음식물을 돈으로 환산하면 1년에 4000억 달러(약 438조원)어치에 이른다. 이렇게 지구촌 여기저기서 음식물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선 기아에 허덕이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연합(UN) 식량농업기구(FAO)의 ‘2013 세계 식량 불안 상황’ 보고서에선 전 세계 기아 인구가 8억4200만 명(2011~2013년)이라고 밝혔다. 8명당 1명꼴(세계 총인구의 12%)인 셈이다. 이런 현실을 상기시키며 ‘맛있는 맛은 나눔’이란 문장으로 강의를 끝냈다.

나눔이란 단어 속에는 ‘내’가 있고, ‘네’가 있으며, 그래서 ‘우리’가 있다. 맛있는 음식이 나눔이라는 건 너와 나만 좋은 걸 먹는 게 미식이 아니란 말이다. 주린 배로 끼니를 연명해야 하는 그(타인)가 있다면, 미식을 논할 자격조차 없다. 각자 조금 부족함을 느끼더라도, 함께 나눠 모두가 행복해진다면 그것이 미식의 참뜻이 아닐까.

음식은 살아 있다. 살아 있는 건 움직인다. 움직이는 건 변한다. 미식도 살아 있다. 그래서 미식의 개념과 가치도 변한다. 지난 20여 년간 세 차례에 걸쳐 달라진 나의 미식관.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엔 또 어떻게 변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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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상은 1985년 고려대 식품공학과 졸업 후 해태제과에서 일했다. 일본에서 제빵을 배워 2년간 베이커 생활도 했다. 1990년 중앙일보에 입사했으며 1999년부터 ‘유지상의 맛집 풍경’이란 맛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심도 있는 맛 칼럼을 위해 한국궁중음식연구소,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등에서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현재 음식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엔 청년외식창업 인큐베이팅 프로젝트를 기획해 외식 성공 창업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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