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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은 남자, 조정치의 술집

2015년 3월 27일 — 0

“첫 문장은 꼭 ‘나는 오늘 천사를 보았다’로 시작해주세요.” 가는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수줍게 말하는 조정치. 그날 우리는 나나하치에서 진탕 마셨다.

에디터: 문은정 / 사진: 심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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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치의 단골집 기준은 꽤 명확하다. 혼자 술 마시는걸 좋아하는 그에게 다찌는 필수 요건. © 심윤석

연희동의 숨겨진 맛집 나나하치에서 조정치를 만났다. 그는 어깨를 구부정하게 구부린 채 작은 테이블에 앉아 수줍게 말했다. “여기는 ‘서른 즈음에’를 만든 강승원 형이 데려온 곳이에요. <스케치북> 녹화를 마친 날이었죠. 정인이랑 셋이 앉아서 한라산 소주를 얼음물에 탄 미즈와 리에 성게알, 일본식 계란말이를 시켜 먹었어요. 맛있더라고요. 그 뒤로 단골집이 됐어요.”

조정치의 단골집 기준은 꽤 명확하다. 혼자 술 마시는걸 좋아하는 그에게 다찌는 필수 요건. 분위기는 약간 어두컴컴하고 주인이 78년생(?)이어야 한단다. “하하, 농담이고요. 주인이 편한 곳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조정치 역시 78년생, 나나하치의 정대훈 셰프도 78년생, 나나하치의 뜻도 ‘78’이다. 우연치고는 꽤 재미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해요.” 참고로 그는 운전면허가 없고, 나나하치는 그의 집에서 빠른 걸음으로 15분쯤 걸린다.

그가 주문한 민물보리새우튀김과 한우숙주볶음이 나왔다. 무겁지 않은 안주를 좋아한다며 가는 손으로 새우를 집어 먹더니 가쿠빈 하이볼을 홀짝이기 시작한다. “제가 생선을 잘 못 먹어요. 비린 맛을 싫어해서 진짜 신선한 것 아니면 입도 못 대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먹었어요. 그것도 자주.” 추가 주문한 사시미를 한 점 맛보았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맛이다. 이런 맛집을 혼자만 알고 있던 그가 얄밉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인터넷과 SNS라는 수단을 피해 숨겨진 맛집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손님들에게 블로그 포스팅을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그런걸 싫어하거든요. 뭐 요즘은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어서 굳이 말리지는 않지만….”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정대훈 셰프가 답한다. “흠, 앞으로도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열심히 먹고 마시던 조정치가 중얼대듯 끼어든다. 아마 그뿐 아니라 모든 단골들의 바람일 거다.


식생활에 관한 짧은 Q&A

어떤 맛을 좋아하나
라면처럼 자극적인 맛도 좋지만 식품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신선한 맛을 즐긴다.

주량은 어느 정도
소주 2병. 사실 소주보다 위스키를 좋아한다. 소주는 얼마 전부터 마시기 시작한 ‘한라산’을 좋아한다.

부인인 정인도 술을 즐기나
나는 마셔도 정인은 안 마셨으면 좋겠다.(웃음)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보수적인 남자다.

집에서 어떤 식사를 하는지
정인이가 해주는 밥, 국, 반찬을 먹는다. 최근에 정인이가 건강식에 관심이 많아 현미김치를 만들었다. 현미 껍질을 발효·건조시켜 가루처럼 먹는 건데 이름과 달리 김치는 아니다.

나나하치 외에 자주가는 단골집은 어디
뮤지션들의 성지인 ‘모과나무위’, 내 이름을 딴 메뉴가 있는 ‘밥스바비’, 하이볼이 맛있는 ‘옥타’, 한 끼 식사로 좋은 국수를 파는 ‘소이연남’, 서교동에 있는 태국 음식점 ‘똠얌꿍’.

나나하치
연희동에 위치한 이자카야. 주인장이 매일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직접 사온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매일 메뉴가 조금씩 바뀌는데, 생물 재료가 소진되면 문을 닫는다. 빨간 날은 모두 휴무.
›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 153 
› 오후 6시~재료 소진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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