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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의 의미를 묻다

2016년 8월 19일 — 0

맥주를 만드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 자신만의 방식으로 맥주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최초의 수제 맥주 양조장 —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마시고 싶지 않은 맥주는 마시지 않는다.”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왼쪽부터 물류 담당 구정모, 생산관리 이용범, 브루어 강남규, 사무 관리 신혜린, 물류 담당 심두천 씨.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다. 왼쪽부터 물류 담당 구정모, 생산관리 이용범, 브루어 강남규, 사무 관리 신혜린, 물류 담당 심두천 씨.

수제 맥주의 선풍적 인기로 전국에 크고 작은 맥주 양조장이 생겨났고 저마다 차별화된 정체성을 내세우며 이전과 다른 다양한 맥주를 선보이고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제 맥주 양조장인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Korea Craft Brewery다. 음성 산업단지에 위치한 이 양조장은 뾰족한 지붕과 빨간 벽돌의 외관이 멀리서도 눈에 띄었는데 맥주 공장보다는 별장이나 미술관처럼 보였다. 2014년 11월에 문을 연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는 부엉이 맥주로 유명한 히타치노 네스트를 만드는 기우치 브루어리Kiuchi Brewery의 한국 생산 공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최은석 대표는 음성 양조장은 한국 자본과 세계의 기술력을 결합한 공간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100% 우리나라 자본으로 설립한 곳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탄탄한 기술력을 갖추고 창의적인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제조 과정에서는 최고의 기술력을 구현하고자 애썼고 인테리어는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손길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음성 양조장에는 브루마스터를 비롯해 3명의 브루어, 운송, 생산, 사무 담당 등 총 8명의 직원들이 바삐 움직인다. 건물은 2층 구조로 크게 손님을 맞는 공간과 양조하는 공간으로 나뉜다. 검은색 철제 정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로비는 이 두 공간을 잇는 장소로 커다란 유리창 너머 양조 설비가 한눈에 들어온다. 1층은 맥주를 즐길 수 있는 탭룸Tap Room과 당화 공정에서 효소의 작용을 용이하게 하도록 맥아를 분쇄하는 드라이존Dry Zone, 맥즙을 추출해 홉 등을 넣어 맥주를 만드는 핫존Hot Zone, 발효와 숙성을 담당하는 콜드존Cold Zone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은 사무실과 이스트 연구실이 있으며 사무 공간과 공장이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다. 방문객 동선에 맞춰 양조장 곳곳에 재미 요소를 만들었는데 오크 통 문과 맥주 거품을 형상화한 샹들리에가 대표적이다. 또 지반 공사를 할 때 나온 돌을 입구에 두고 건물 내에 빛의 변화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크고 작은 창을 만들어 시간과 자연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는 단순히 기술을 전수받아 기우치 브루어리의 맥주를 생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체 브랜드 맥주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2015년 봄, 벨지안 화이트 에일과 인디아 페일 에일 2가지 제품으로 첫 번째 셀렉션을 선보인 아크 비어Ark Beer가 그 주인공이다. 국내 최초의 병입 크래프트 맥주인 아크는 ‘노아의 방주’라는 뜻으로 커다란 방주가 새로운 세계를 이끌었듯 아크가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벨지안 화이트 에일인 허그미Hug Me는 가벼우면서 감미로운 과일 향을 지닌 맥주이고 인디아 페일 에일인 비하이Be High는 홉의 쌉싸래한 향이 인상적이다. 이후 자몽 향의 코스믹댄서Cosmic Dancer, 초콜릿 맛의 썸앤썸Some&Some 등의 에디션을 차례로 출시했다.

다른 소규모 양조장과 차별되는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의 특징은 ‘재료’ ‘브루마스터’ ‘소통’의 3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는 생산자와 직거래를 통해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맥주를 제조한다. 맥아와 홉은 미국과 유럽의 제조사로부터 직접 수입하며 냉장 상태로 운송해 양조장의 냉장 창고에 가장 신선한 상태로 보관한다. 더불어 음성 복숭아, 제주 감귤, 고흥 유자 등 우리나라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맥주 레시피를 개발 중이다. 최은석 대표는 양조장 부지로 음성을 선택한 이유는 좋은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의 여러 곳을 떠올렸는데 맥주의 기본이 되는 물의 질이 좋은 음성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음성은 복숭아, 고추, 생강 등의 특산물이 유명한데 허그미는 음성에서 나는 생강을 사용해 제조하고 있습니다.”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를 이야기할 때 미국에서 온 브루마스터 마크 헤이먼Mark Hamon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MIT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애플에서 컴퓨터를 개발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세계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브루어리 셋업 및 브루잉 관련 컨설팅을 담당했다. 히타치노의 소개로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에 합류한 마크는 현재 24시간 양조장에 상주하며 브루잉을 총괄하고 레시피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가 작은 브루펍Brew Pub을 열고 싶다는 마크에게 맥주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맥주는 물보다 영양분이 높고, 알코올 함량이 낮아 안전한 술입니다. 수세기 동안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친구 역할을 해왔으며 부담 없이 동료들과 함께 어울릴 때 맥주만큼 적합한 술은 없습니다.” 이곳은 맥주 공장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맥주 애호가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만 오픈하는 탭룸에서는 다채로운 맛의 아크 비어를 즐길 수 있으며 시판 전인 신제품 맥주도 시음할 수 있다. 또 맥주를 넣은 도우로 만든 피자와 2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티켓을 판매한다. 뿐만 아니라 맥주 양조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속적으로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사진 전시회, 콘서트, 버스킹, 단체 워크숍 등의 다채로운 이벤트도 열고 있다. 최은석 대표는 앞으로 투어 프로그램 및 브류어리의 콘텐츠를 더욱 다양하게 구성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로비 벽에 새겨진 ‘We Don’t Brew That We Don’t Want To Drink(우리는 마시고 싶지 않은 맥주는 만들지 않는다)”라는 문구에서 양조장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장인정신과 그들이 만드는 맥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맥주 마니아 — 이태경 셰프

“맥주는 위안과 휴식을 준다”

‘쉐프’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맥주 마니아 이태경 셰프. 맥주에 빠진 지는 겨우 2년 남짓 되었지만 열정만큼은 남다르다.
‘쉐프’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맥주 마니아 이태경 셰프. 맥주에 빠진 지는 겨우 2년 남짓 되었지만 열정만큼은 남다르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간절했던 어느 여름날, 소문난 맥주 마니아 이태경 셰프의 집을 찾았다. 그는 자신의 일터인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는 셰프로, 그리고 블로그에서는 ‘쉐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맥주 마니아다. 맥주 맛은 다 똑같다고 생각했던 이태경 셰프가 그 맛에 눈뜨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우연히 세계 맥주를 접하면서부터였다. 편의점에서 외국 맥주 4캔을 만원에 판매하길래 호기심에 구입했는데 그 이후 새로운 맥주 맛의 지평이 열렸다. “맥덕(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맥주에 빠지는 일반적인 루트가 있어요. 처음엔 국산 맥주가 전부인 줄 알다가 향긋한 밀맥주에 빠지고, 그다음은 호피하면서도 맛이 강한 IPA로 넘어가죠. IPA가 슬슬 지겨워지면 더 맛이 강한 스타우트나 포터 쪽으로 넘어가고요. 저 역시 이 과정을 거쳤어요.” 가장 교과서적인 과정을 한번 거치며 진정한 ‘맥덕’으로 거듭난 그는 이젠 날씨나 컨디션에 따라 마시고 싶은 맥주를 그날그날 골라서 마신다. 특히 요즘같이 날씨가 더운 날엔 필스너 같은 라거 계열을 즐긴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비약처럼 늘 구매해놓는 맥주는 따로 있다. 트위스티드 만자니타 케이오틱 더블 IPA로 맛이 훌륭한 것은 물론 집 근처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3병에 만원이라는 착한 가격도 무시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보통 1일 1맥을 실천하는데 어지간하면 2~3병 이상은 마시지 않으려고 한다. 3병을 넘기면 혀가 무뎌져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힘들기 때문. 맥주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을 땐 마시기 3~5시간 전부터 공복 상태를 유지한다. 심지어 물조차 마시지 않는다. 온몸의 세포가 수분을 갈망하고, 입안에 아무런 맛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맥주를 마시면, 갈증이 해소되는 순간의 쾌감이 배가 되고 미각 또한 예민해진 상태라 아주 세심한 맛까지 알아챌 수 있다고. 그리고 맥주의 종류에 따라 적정 온도는 다 다르지만 시원하게 마시는 걸 좋아해 냉장고에서 갓 꺼낸 걸로 마신다. 안주 또한 먹지 않는다. 가끔 먹으면 좋아하는 치즈나 맛이 강하지 않은 크래커를 곁들여 먹는 정도. 마치 의식이라도 치르듯 맥주를 마시는 그는 맥주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 “맥주는 정말 맛과 향이 다양해요. 그리고 종류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요. 쌉싸름한 맛을 원할 땐 IPA를, 진한 커피 향을 느끼고 싶을 땐 스타우트를 마셔요. 다양한 후각과 미각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죠. 또 맛있게 취할 수 있어서 좋아요. 사실 요즘 유행하는 과일소주 열풍도 맛있게 취해서잖아요. 맥주는 인위적인 첨가물 없이 본연의 맛 자체로도 충분합니다.” 그는 맥주를 마실 때 온전히 맥주와 자신만 남아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오직 맥주의 맛에만 집중하며 사회생활 속 느끼는 초조함과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어 자신에게는 정신적 위안이자 휴식이라고.

이태경 셰프는 맥주에 빠지기 전에도 레고나 피겨 등 늘 무언가를 모아온 수집가다. 맥주에 빠지며 관련 용품들을 모으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 마셔본 맥주의 병은 무조건 모은다. 뚜껑도 함께 모으는데 그가 딴 뚜껑들은 전혀 찌그러지지 않고 매끈하다. 워낙 좋아하다 보니 뚜껑이 찌그러지는 것조차 마음이 아파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방법을 터득했단다. 코스터는 일부러 모으는 건 아니지만 펍에서 눈에 띄면 두세 장씩 챙겨둔다. 그렇게 모은 보틀이 200~250병, 잔과 코스터는 100여 개, 뚜껑은 셀 수 없다. 심지어 병은 이사하며 어쩔 수 없이 100여 병 넘게 버리기도 했다. 계속해서 새로운 맥주를 마실 테고 집에 들여놓을 병의 수도 점점 늘 텐데 공간이 충분하냐고 물었다. “병은 아무래도 부피가 크니까 어떤 맥덕들은 병의 라벨만 떼어서 수집하기도 해요. 그러나 저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닌 이상 온전한 병으로 모으고 싶어요.” 이미 집에는 공간이 부족해 일부를 박스에 차곡차곡 넣어 테이핑한 후 아파트 복도 선반에 보관 중이란다. 왜 이렇게까지 맥주용품을 수집하는 걸까? “아무래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소유욕이 가장 주된 이유예요. 또 나중에 내 집이나 가게가 생기면 지금 모은 용품들로 인테리어를 꾸미고도 싶고요. 그리고 이렇게 모은 물건들 하나하나는 제 기억의 일부이기도 하잖아요. 수집품들을 보면 이 맥주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분, 누구랑 마셨는지 등 관련 기억들이 떠올라요.” 그의 말을 듣고 수집품과 냉장고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캔맥주는 거의 없다는 게 눈에 띄었다.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병맥주의 맛이 캔맥주보다 훨씬 낫고 아무래도 소규모 양조장에서는 캔 제품이 잘 안 나와 선택의 여지 없이 병맥주를 마셔야 한단다. 또 수집을 좋아하기에 소모품인 캔맥주보단 병맥주가 훨씬 매력적이기도 하고. 병맥주를 바로 마실 수도 있겠지만 그는 맥주의 종류에 맞는 잔에 따라 마신다. 그래야 그 맥주가 지닌 맛과 향을 극대화해 마실 수 있기 때문. 그래서 다양한 브랜드의 잔을 모은다. 마셔보지 못한 맥주 중 가장 마셔보고 싶은 맥주는 무엇일까. 베스트블레테렌 12라는 다소 생소한 맥주를 꼽았다. 그는 평소 마실 맥주를 고를 때 전 세계 맥덕들이 모이는 사이트 레이트비어RateBeer에서 전체적인 순위나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꼼꼼히 살핀다. 꽤 오랜 시간 다양한 맥덕들의 의견을 종합해본 결과 베스트블레테렌 12가 어쩌면 맥주계의 최고봉이 아닐까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마시지 않을 거란다. “게임도 모든 퀘스트를 해결하고 최종 보스를 물리치면 허무함만 남잖아요. 제가 다신 맥주를 마시지 않겠다 결심했을 때 마지막 잔으로 마실 거 같아요.” 수긍 가는 대답이었다. “아주 먼 미래가 되겠지만 언젠가 펍을 운영하고 싶어요. 확실히 지금 국내에 괜찮은 펍들은 특정 지역에 모여 있어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구리시는 고향이기도 한데, 이곳에 정말 맛있는 맥주와 푸드 페어링을 내는 펍을 열고 싶어요. 그동안 모은 병들을 진열하고, 코스터로 벽면을 장식하고, 병뚜껑으로 만든 테이블을 이용해 공간을 꾸미고 싶어요.” 아마 그는 베스트블레테렌 12를 끝내 마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10년 후쯤, 그의 동네엔 주인의 맥주 사랑이 공간 곳곳에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펍이 오픈할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 — 크리스 셸턴·강대인

“우리에게 맥주는 도전이자 삶의 즐거움이다.”

크래프트 맥주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크리스와 강대인 씨.
크래프트 맥주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크리스와 강대인 씨.

판교의 대로변을 살짝 벗어난 한적한 골목에는 한국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인 더부스의 마이크로브루어리가 있다. 판교 주민도 잘 알지 못할 만큼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맥주 공장은 절대 조용하지 않은 3명의 브루어 크리스, 강대인, 김주미 씨에 의해 돌아간다. 그 누구보다 맥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세 사람이 만났으니 조용할 리가 있나.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어느 날 브루어리에 들어서니 바깥보다 후끈한 습기와 익숙한 향이 코를 자극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식혜를 만들어주실 때마다 맡던 구수하면서 달달한 향기. 맥주 양조의 첫 과정이자 효모의 먹이가 될 맥즙을 만드는 과정이 한창이었다. 거대한 구릿빛 당화솥 안에서는 곱게 분쇄된 맥아가 끓여지면서 발생하는 증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을 이끄는 브루마스터는 크리스Chris다. 마케팅 일을 했던 그는 20년 동안 집에서 작게 홈브루잉을 하다가 적성에 맞아 본격적인 양조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브루어리 토플링골리앗Toppling Goliath은 미국 맥주 전문 커뮤니티인 레이트비어RateBeer에서 세계 2위 브루어리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맥주로부터 얻는 명예나 돈보다 맥주를 직접 만드는 과정 자체가 좋았던 그는 2년 전 아내를 따라 한국에 오게 되었고 지난해 부터 더부스 브루잉에 합류했다. 맛있는 맥주를 위해서라면 어떤 좋은 재료라도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이곳에서 그는 미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을 느낀다.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한국 사람들로부터 얻는 에너지 덕에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고.

강대인 씨는 처음부터 브루어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과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맛있는 맥주에 대한 눈을 떴다. 다양한 맥주를 맛보고 본격적인 양조를 하면서부터 취미인 맥주 만들기가 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평소 직접 맥주를 만들면서도 전문적인 브루어가 되려면 미각과 후각이 선천적으로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각이나 후각은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얼마 전에는 한국에 7명밖에 없는 맥주 소믈리에 공인 자격증인 시서론Cicerone도 땄다. 미국에서만 칠 수 있는 시험이었는데 금년에 처음으로 한국에서도 시험이 치러졌다.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꼭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심히 노력해 성과를 내고 그것으로 보람을 느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막상 브루어가 되고 나니 생각보다 잘하는 것 같기도 해요. 맥주도 음료 테이스팅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기본적으로 5가지를 평가하는데 외관, 아로마, 맛, 바디감, 탄산 레벨을 평가하고 총평을 내는 식이죠. 보통 맥주 스타일마다 정해진 범위의 평가 기준이 있어요. 그 기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를 보고 그 기준 안에서 다른 맥주들과 차별되는 특성이 있는지를 파악하죠. 그 특성이 얼마나 비범한지에 따라 월드 클래스 맥주가 되는 것이에요.”

이야기하는 내내 그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체크하고 적는다. 공정, 온도, 시간, 발효 정도 등등 맥주의 상태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하는 브루시트다. 브루시트에는 지금까지 만든 맥주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는데 그대로 보고 만들어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단다. 특히 여름은 온도와 습도의 변화 때문에 다른 계절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요즘에는 가수 장기하와 새롭게 컬래버레이션한 ‘ㅋIPA’를 주로 만든다. 감귤, 망고 등 열대과일의 향이 섞인 것이 특징이다. 맥주에도 유행에 따라 트렌드가 있다. 요즘 크래프트 신에서 가장 핫한 맥주는 IPA. 부재료를 가미해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맥주다. 과거에 색이 진하고 도수가 높으면서 송진 향이 물씬 나는 거친 IPA를 최고로 쳤다면 지금은 색이 밝으면서 화사하고 주시하게 맛을 뽑아낸 가벼운 IPA가 유행이다. 그래서 과거에 최고로 평가받던 맥주가 지금은 찬밥 신세가 되기도 한다. 최고의 맥주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지금까지 버린 맥주만 해도 만만치 않다. 컨디셔닝 과정에서 원치 않는 냄새가 나면 증상에 따라 회생을 시키기도 하는데 지금은 많이 자리를 잡아 버리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매달 새로운 맥주가 나오는데 보통 크리스가 뼈대를 잡아오면 서로 토의를 해서 다음 달에 출시할 맥주를 결정한다. “주미 씨는 기본 맥주에 개성이 강한 부재료를 듬뿍 넣는 것을 좋아해요. 저는 기본 스타일에 충실한 맥주가 좋아 부재료를 거의 넣지 않고요. 크리스는 그 중간이에요. 양쪽을 어우르면서 조언을 해주죠. 아직까진 파일럿 양조로만 제가 짠 레시피의 맥주를 마실 수 있어요. 아직도 배울 게 많죠. 최근에는 쌀국수를 먹다가 홍후추를 넣은 벨기에 세종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작게 양조를 했어요. 아직 숙성 중인데 기대가 돼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한국 맥주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대기업에서 만드는 맥주는 페일 라거가 대부분으로 그 맥주들은 청량감 있게 마시는 종류라 맛이 풍부하지 않은 게 정상이에요. 보통 사람이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맛의 정도인 거죠. 대중가요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대중들이 그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거든요. 맥주도 같아요. 맥주에서 더 좋은 맛을 찾는 사람들이 더 나아가서 크래프트 맥주를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꼭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IPA나 라거처럼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한국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고 싶어요.”

크리스에게 어떤 맥주를 만들고 싶냐 묻자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사람들이 한 번 맛보면 환호성을 지르는 맥주를 만들고 싶어요.” 실제로 그가 IPA에 라임즙과 레몬즙을 넣고 복숭아 시럽을 더해 만든 맥주 칵테일을 마시고 감탄이 새어 나왔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오늘 만든 맥즙에 홉을 넣기 시작했다. 더부스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는 어두운 탱크 속에서 3주라는 긴 시간 동안 숙성과 탄산화 과정을 거친 뒤 이태원과 강남, 건대 등 7개의 더부스 매장으로 옮겨져 또 다른 누군가의 환호성을 부를 것이다.

edit 이미주, 양혜연, 김민지 — photograph 김연제,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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