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Trend

냉면이 감춰왔던 이야기

2016년 8월 16일 — 0

무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고자 시원한 냉면을 후루룩 먹어치운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기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먹어왔던 냉면에 혹시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text 정재훈 — edit 전보라 — photograph 박재현

0816-noodle1

마트 냉면의 실체
여름이면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평양냉면 전문점의 순위를 매기고, 전통의 평양냉면 명가와 신흥 강호를 비교하고, 사진을 보고 어느 집의 냉면인지 맞히려는 사람들로 들썩거린다. 하지만 마트의 대세는 함흥 냉면이다. 심지어 평양냉면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제품도 실제로 먹어보면 함흥식이다. 밀가루에 전분과 소다를 넣어 탄력을 준 면발에는 소량의 메밀가루가 존재감 없이 뒤섞여 있다. 뚝뚝 끊어지는 순면, 심심한 육수의 맛을 마트 냉면에서 찾아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면의 메밀 함량이 35.2%라는 막국수는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 입안에서 잘도 끊어진다. 제조사의 선택은 결국 소비자다. 마트 냉면의 주류가 함흥식이란 것은 대중의 취향이 쫄깃한 면발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냉면의 위험한 과거
과거에도 대세는 늘 쫄깃한 면발이었다. 1930년대 신문 기사를 보면 당시 냉면의 면발을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냉면 중독에 대한 기사들이다. 여기서 중독은 냉면 맛에 중독되는 게 아니다. 냉면으로 인한 식중독을 말한다. 1933년 한 해 동안 보도된 냉면 중독자의 수만 해도 6월 신의주에서 15명, 7월 평양에서 50명, 9월 경기도 장단에서 10여 명, 평양에서 20명에 이를 정도였다. 당시 냉면으로 인한 식중독의 원인은 크게 보아 둘 중 하나였는데, 썩은 소고기를 사용했거나 냉면에 가성苛性 소다를 첨가했기 때문이었다. 부패한 소고기야 냉장 시설이 부족했던 탓이겠지만, 냉면 반죽에 가성 소다를 넣은 이유는 뭐였을까? 메밀가루만 가지고는 응결력이 부족하여 쉽게 끊어지고 풀리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반죽을 알칼리로 처리하면 면발이 잘 끊어지지 않고 삶을 때 풀리는 문제도 해결된다. 알칼리로 처리한 면발은 입에 넣으면 비눗물을 칠한 것처럼 미끄러진다. 거친 메밀면의 특성을 소다가 잡아주는 것이다. 문제는 식용 소다(탄산나트륨) 대신 부식성이 강한 가성 소다(수산화나트륨)를 넣었던 데 있다. 냉면집 주인이 값싼 가성 소다를 반죽에 넣다가 농도 조절에 실패라도 했다 치면 강알칼리성의 가성 소다가 사람들의 위에 가혹하게 화상을 입혔고 이로 인해 일부는 사망에 이르고 말았다.
기록은 기억과 다르다. 신문 기사를 통해 냉면의 과거를 되돌아보면, 맛보다 자주 등장하는 것은 위생 문제다. 여름철 상하기 쉬운 재료와 소다의 문제와 더불어 냉면에 사용되는 얼음에도 종종 결함이 있었다. 천연빙을 사용한 것이다. “천연빙은 보건에 위험하다”는 1957년 5월 11일 자 <경향신문>의 기사를 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다방의 냉커피와 냉면에 사용되던 얼음의 상당수가 한강 중류에서 겨울 동안에 떠놓은 얼음, 즉 천연빙이었다. 강물이 그대로 얼어붙은 것이니 당연히 병균이 득실거렸고 그로 인해 배탈을 일으키기 십상이었다. 천연빙과 인조빙을 구분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나서서 인공적으로 만든 얼음에 노란 물감을 들일 정도였다. 노란색으로 물들인 얼음이 식용으로 안전한 ‘인조빙’이라는 표시니 노란색 얼음을 먹으라는 것이었다.

냉면과 현재주의
이쯤 되면 어떻게 계속해서 냉면을 먹어왔는지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여름철 냉면 중독으로 생명을 잃은 이가 비일비재했는데도 왜 사람들은 냉면 먹기를 중단하지 않은 걸까? 기록을 보면, 사건이 터진 직후에는 냉면을 꺼리는 사람이 많았다. 면옥에는 적막이 흘렀고, 폐업하거나 휴업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지만 다음 해 여름이 되면 도돌이표가 붙은 악보처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사람들은 다시 냉면집을 찾았고 이내 식중독 사고가 터졌다. 1937년 한 해에만 508명이 냉면 중독으로 집계되었고 3명이 사망했지만, 바로 다음 해인 1938년 여름이 되자 여지없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현재주의 때문이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Daniel Gilbert)는 우리가 현재 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과거와 미래의 일에 대해 상상할 때도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시간, 장소, 상황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덥고 습한 날, 냉면을 앞에 놓고 지난해 여름에 냉면을 잘못 먹고 수백 명이 식중독으로 고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는 사람은 드물다. 대니얼 길버트는 현재주의에 휘둘리는 사람의 심리를 한탄하며 심리학자인 자기 자신도 추수감사절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과식한 후 다시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시 칠면조 고기를 먹어치웠다고 털어 놓는다.
음식 맛을 상상할 때도 현재주의가 작동한다. 1929년 12월 1일 자 <별건곤>이란 잡지에 실린 필명 김소저라는 사람의 글을 보자. “살얼음이 뜬 진장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 먹고 우루루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 이요! 상상이 어떻소?” 에어컨 고장으로 나흘째 더위에 시달린 나로서는 시원할 것만 같다. 살얼음이 뜬 동치미 국물에 타래 지은 냉면 한 대접을 후루룩 들이켜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잘못된 상상이다. 김소저가 글을 쓴 때는 차디찬 1929년의 겨울이다. 이가 떨리는 추운 겨울에 차가운 냉면을 들이켤 수는 없다. 한두 젓가락만 먹고도 우루루 떨려서 아랫목에서 잠시 몸을 녹이고서야 가까스로 다음 젓가락을 집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차가워진 몸을 녹이고, 다시 한 젓가락 들고 몸을 녹이면서 천천히 냉면을 맛보면 냉면 맛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 겨울 냉면의 맛이 반드시 여름 냉면 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추운 날 천천히 조금씩 먹는 겨울 냉면은 먹는 방법 자체가 미식이다.

여유가 주는 미식
식중독을 두려워하며 냉면을 먹던 시대는 지났다. 신흥 강호와 전통 명가가 겨루는 평양냉면의 맛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해서 먹는 마트 냉면조차 과거 일부 대중음식점에서 먹던 누린내 나는 냉면보다는 더 맛있고 위생적이다(간혹 집에서 먹는 마트 냉면과 대중음식점의 냉면이 동일한 제품인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먹고 소비하는 방법이다. 냉면에는 딱 두 종류, 배고플 때 먹는 냉면과 배부를 때 먹는 냉면이 있다. 배고픈 사람은 배부른 상태를 상상할 수가 없다. 허기진 상태라고 감각이 더 예민해지지 않음에도 배고픈 사람은 음식 맛을 더 높이 평가한다. 미식을 제대로 즐기려면 우선 배가 적당히 부른 상태여야 한다. 독일의 미식 저술가 하이드룬 메르클레(Heidrun Merkle)가 자신의 책 <식탁 위의 쾌락>에서 쓴 것처럼 “우리는 더 이상 배고프지 않을 때 전혀 다른 눈으로 음식을 관찰하고, 전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더 이상 배를 부르게 하는 일에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고 탐욕에서 벗어나 진정한 맛을 즐기게 한다.” 냉면으로 치면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불고기든 닭무침이든 편육이든 만두든 간에 먼저 약간의 안주와 술로 배고픔을 잊은 상태라야 진정한 냉면의 맛을 느낄 수 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중에 뭐가 더 맛있느냐, 요즘 냉면집 가운데 가장 맛있는 곳이 어디냐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음식은 이미 훌륭하다. 푸드 칼럼니스트 박정배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으며 “최상의 재료를 이용해 최적의 환경에서 전문 요리사들이 만들어내는 미식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즐기는 자의 여유가 없다면 미식을 말하기 어렵다.
마트 냉면의 맛이 전보다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다. 특히 면에 갈색을 내기 위해 흑미 가루나 오징어 먹물을 넣은 것은 실망스럽다(막국수 제품 중에는 면에 코코아 파우더를 넣은 것도 있다). 하지만 더 큰 한숨이 나오는 건 좀처럼 여유를 찾기 힘든 삶 때문이다. 삶은 달걀과 오이를 넣어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는 조리법 안내문을 뒤로하고 50초 동안 끓인 면을 얼른 건져 물에 씻고 육수에 말아 먹기 바쁘다. 그 와중에 미식은 점점 더 멀어져간다. 1929년 김소저의 냉면보다 그의 삶이 부럽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베지테리언의 장바구니 건강하게 길러지고 만들어진 먹거리를 깐깐하게 골라 담은 베지테리언의 장바구니를 공개한다. edit 권민지 — photograph 심윤석 — product 에잇컬러스(070-8654-3637) 이윤서(insta...
아웃도어 쿠킹을 즐기는 사람들 숲과 공원, 옥상으로 나가보자. 음식 맛이 달라진다. 노상이 좋은 계절, 아웃도어 쿠킹을 즐기는 4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한다. edit 문은정, 권민지, 박경화 / photograph 심윤석, 박재현, 양성...
집밥 마니아의 장바구니 집밥 백선생 못지않은 열정으로 밥과 반찬을 손수 만들어 먹는 집밥 마니아의 장바구니를 엿보았다. edit 권민지 — photograph 박재현 1. 오송민 온라인 의류 쇼핑몰 원파운드의 대표. 마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