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Dining

오믈렛 @윤고은

2016년 8월 11일 — 0

처음 만나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남녀 사이, 오믈렛은 그 애매한 공간에 툭 하고 떨어졌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움직이는 것은 오믈렛뿐이었다.

text 윤고은 – illustration 박요셉

0811-conte1

케이와 나는 삼겹살이 올려진 드럼통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었다. 드럼통을 약간 개조해 만든 그 불판 위에서는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꼭 케이와 내가 단둘이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테지만 정확히 드럼통 하나에 아홉 명의 사람들이 있었고, 드럼통은 모두 열 개였다. 꽤 유명한 동호회 두 곳이 합심해서 꾸린 1박 2일 ‘스윙댄스의 밤’이었다. 내게는 케이만 보였다. 케이는 내게서 시계 방향으로 다섯 사람을 건너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고기를 먹을 때는 케이의 반대 방향 쪽으로 몸을 틀었고, 술을 마실 때는 케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아차렸다.

“우리 동호회는 결혼 성사가 잘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9년 동안 모두 여덟 커플이 결혼을 했어요. 춤을 추다 보면 사랑도 싹튼답니다. 여러분, 춤추세요.”

우리 동호회 회장이 앞으로 나가더니 그렇게 말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은 시점이었다. 9년 동안 여덟 커플이 결혼을 했다면 9년 동안 깨진 커플은 얼마나 될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무신론자였던 나는 서른셋을 넘기면서부터 난데없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교회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청년층의 비율이 ‘남:여=2:8’이라는 걸 확인하고도 그만두지 못했다. 가끔 교회에서 만나 괜찮게 결혼했다던 커플들 때문이었다. 다만 워낙 성비가 맞지 않다 보니 동호회 활동으로도 발을 넓혔을 뿐이다. 스윙 동호회는 남녀 성비가 꽤 맞는 편이었지만, 내 소외감은 더 커졌다.

사랑이 싹트는 동호회라지만 2년이 넘도록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 주변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와 사귀고 고백하고 차이고 헤어지고 다시 사귀고 재결합했다가 결혼하고 파혼하고. 그러나 나는 무탈했다. 그게 무탈한 건지 무료한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내 무료함이 남들 눈에는 쿨하게 보였는지, 사람들은 내가 정말 춤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냥 춤 좋아하는 언니 또는 누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주 오랜만에 저기 저만치 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생긴 것이다. 이름이 케이라고 했나. 그는 나와 다른 동호회에서 춤을 추는 사람이었다.

반으로 갈린 채 옆으로 누운 드럼통은 온몸의 열기로 삼겹살이며 옥수수며 가지며 이것저것 올려진 것들을 데우고 있었지만, 자정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서서히 열기가 식어갔다. 누군가가 라면을 끓여 먹자고 했고, 몇 사람이 라면 냄비를 들고 설쳤다. 라면을 먹는 사람이 있었고, 이미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든 사람도 있었고, 둘 혹은 셋씩 서로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야흐로 여름밤이 아니냐는 듯, 저기 평상 위에 대자로 뻗어 누운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드럼통에 묶인 소라도 된 것처럼 그 주변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중 하나가 나였고, 또 하나가 케이였다. 우리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불 꺼진 드럼통 하나를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이젠 내게서 시계 방향이든 그 반대든 어떻게 헤아려도 바로 옆이 케이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드럼통 쪽으로 젓가락을 뻗었다가 그만두었다. 남은 고기 몇 점은 거의 고생대의 삼엽충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나 정말 화석처럼 굳어 있는 건 나였다.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아니면 자리를 파하고 일어나야 할지, 어느 편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모두 각자의 술기운과 흥을 소화하느라 바빠서 여기 드럼통 앞에 남은 두 사람을 신경 쓸 틈이 없어 보였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 그건 해장법에 관한 거였다. 무난한 주제였다. 케이는 해장에는 쌀국수가 최고라고 했고, 나는 의외로 피자처럼 기름기 있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기름기로 위를 한번 코팅하는 원리죠. 게워냈을 때는 더 좋죠.”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신선한 과일 주스 같은 것도 있을 텐데, 왜 하필.

“오믈렛 같은 건 어때요?”
“오믈렛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순간 오믈렛이란 좀 생뚱맞긴 했다. 중학교 졸업앨범에서 재확인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동창의 이름 같았다고 해야 할까. 간혹 여행 중에 아침으로 오믈렛을 받아먹은 적은 있지만, 그건 내가 스스로 해먹는 그런 음식은 아니었다. 일단 너무 정교해 보였다. 술 마신 다음 날엔 달걀프라이 하나도 버겁지 않은가. 내가 이런 말을 했더니 케이가 오믈렛의 어원에 대해 얘기를 했다. 여러 설이 있지만 그중의 하나는 ‘정말 빠른 남자’라는 감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허기진 왕에게 재빨리 달걀 요리를 만들어 대접한 남자가 있었고, 그를 보며 왕이 감탄을 했다는 거였다.

“다른 말들도 있지만, 전 그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만큼 간단하게 빨리 만들 수 있는 음식인 거죠.”
“자주 만들어 드세요?”

내 질문에 케이가 이렇게 되물었다.

“햄? 버섯? 오믈렛에 어떤 게 들어가는 걸 좋아해요?”
“글쎄요. 보통 전 여행지 호텔 같은 데서는 다 넣어달라고 해요. 햄, 치즈, 버섯, 파프리카, 뭐 다. 사실 들어가는 것보다는 오믈렛 모양이 중요하죠. 전 애벌레처럼 빈약한 건 싫어요.”
“애벌레!”
“네, 통통한 게 좋아요. 완벽하게 그, 무슨 공이죠? 오믈렛 모양.”
“럭비공이요?”
“네. 럭비공 모양 완벽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통통하다는 인상을 줬으면 좋겠어요. 오믈렛이. 아아, 갑자기 확 땡기네요. 전 잘 못 만들거든요.”

그 순간 케이가 벌떡 일어섰기 때문에 나는 깜짝 놀랐다. 케이는 우리 두 동호회가 엉망으로 점거하고 있는 그 펜션을 가리키며 저쪽에 부엌이 있다고 말했다. 새벽 두 시였다. 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케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우리가 그 부엌으로 들어가는 동안 케이는 ‘18cm 팬이 딱 좋은데’라든지, ‘파프리카는 아까 봤는데, 햄이나 치즈는 없을 거예요’ 따위의 말을 했다. 나는 ‘사실 뭐 더 안 넣고 달걀만으로 한 게 제일 맛있죠’라고 대꾸했다. 공동 부엌은 펜션 1층에 있었다. 케이는 달그락거리며 뭔가를 찾아댔고, 마음에 드는 프라이팬을 고른 것 같았다.

“오, 달걀이 딱 세 개 남았어요. 딱이네.”

곧이어 케이는 능숙하게 달걀 세 개를 깨뜨렸고, 그것을 리드미컬하게 풀었다.

“전 뭘 할까요?”
“그냥 있어요. 이따가 접시만 준비해줘요. 포크랑.”

나는 새벽 두 시에 나를 위해 요리하는 남자를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오믈렛의 적당히 통통한 곡선, 그리고 따뜻한 온도 같은 것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우리는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오믈렛의 자태와 색감, 식감에 대해 계속 탁구 치듯 얘기했는데, 그러는 동안 나는 오믈렛이 생각보다 섹시한 음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가 에로틱한 무드가 있는, 은유가 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케이는 정말 금세 오믈렛을 만들었다. 향이 좋았다. 모양도 완벽했다. 사실 그가 뭘 만들었든, 설사 애벌레처럼 빈약한 모양이었다 해도 나는 만족했을 테지만. 이제 내가 애쓸 차례였다. 나는 오믈렛을 옮겨 담을 접시를 꺼냈다. 그냥 케이에게 접시를 전달해도 되었을 것을, 이상하게 우리는 두 사람이 합심해서 오믈렛 요리를 마무리하려고 했다. 내가 접시를 들고 케이 옆에 다가간 그 순간, 케이와 나 사이의 거리가 몹시 가까워졌다.

내가 접시를 프라이팬에 뚜껑처럼 덮었다. 그리고 케이가 프라이팬을 뒤집는 순간, 오믈렛은 떨어졌다. 접시 위가 아니라 프라이팬과 접시 사이의 그 애매한 공백 사이로 툭 떨어져버렸다. 통통하고 탄력적인 오믈렛이 제 몸뚱이를 저 아래 타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예기치 못한 결말이었다. 케이와 나 모두 오믈렛의 추락을 망연자실 쳐다보고만 있었다. 시간이 완전히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 민망하고 어색하고 모든 수가 다 틀어져버렸다고 생각되던 그 순간, 움직이는 건 오믈렛뿐이었다. 오믈렛은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꿈틀거리며 제 몸을 추스르고는, 그 타일 바닥 위에서 몸을 발딱 일으켜 세우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원 ‘정말 빠른 남자’처럼, 재빨리 이 민망한 상황을 탈출했다. 리드미컬하게, 춤추듯, 나 몰라라. 그렇게 말이다.

윤고은은 한국 문학계에서 주목하는 젊은 소설가 중 한 명이다. 2004년 소설 <피어씽>으로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장했다. 그 외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1인용 식탁> <알로하> 등이 있다. 지난 5월, 2년의 공백을 깨고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를 출간했다.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다카기 가즈오 JW메리어트호텔 ‘컬리너리아트@JW’에 참여한 다카기 가즈오 셰프를 만났다. 그는 먹거리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edit 문은정 / cooperate JW메리어트호텔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
캠핑 머그컵&보온병 쌀쌀한 가을 캠핑장을 따뜻하게 덥혀줄 머그컵과 보온병을 소개한다. edit 이지희 — photograph 박재현 ©박재현 1. 써모스 JNL-502K 용량 대비 가벼운 무게(0.21kg)와 한 손...
캐주얼한 디너 레스토랑 새롭게 단장한 세 곳의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바, 채식 뷔페 레스토랑, 연어 레스토랑 등 다채로운 레스토랑의 가감 없는 리뷰를 전한다. text 샬럿 모건(Charlotte Morgan) / photogr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