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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지역 음식의 재발견, 지리산 중기마을

2016년 7월 26일 — 0

지리산 국립공원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중기마을에는 농부이자 셰프인 양재중 씨가 운영하는 농원이 있다. 그가 만드는 장, 어란과 같은 전통 식품은 다른 곳에선 흔히 맛보기 힘든 오랜 연구의 결과물이다.

‘찬해원’의 장맛에는 햇살과 바람, 지리산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찬해원’의 장맛에는 햇살과 바람, 지리산의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지리산 산내면 중기마을

지리산 국립공원 북쪽에 자리 잡은 전라북도 산내면山內面(면적 103.4km2)은 이름 그대로 사방이 병풍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인구 2000명을 겨우 웃도는 작은 면面이다. 산내면 18개 마을 중 하나인 중기中基마을은 우리말로 바꾸면 ‘가운데 동네’라고 불리는 곳이다. 정체성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이름처럼 중기마을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있고, 앞쪽으로 지리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아침에 해가 뜰 때부터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햇살이 비추어 일조량이 많으며, 사계절 바람이 부는 곳이라 장 담그기에 최적의 장소다. 중기마을 건너편에는 이 지역 명소인 실상사가 있다. 예로부터 양씨들의 집성촌인 지리산 중기마을은 풍광이 빼어난 덕에 몇 년 전부터 귀촌하는 사람들로 마을 주민 숫자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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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 셰프 양재중
농부이자 셰프인 양재중
농부이자 셰프인 양재중

중기마을은 유명 일식 셰프에서 농부 셰프로 변신한 양재중 셰프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특급 호텔 주방에서 일식 요리를 배우던 그는 1997년 일본으로 건너가 8년 동안 도쿄와 오사카에서 주방 청소부터 다시 시작하는 혹독한 기본기 수련을 거쳐 일식 요리에서만큼은 나름대로의 실력과 명성을 쌓았다.

“일식은 무엇보다 재료를 중요시하는데, 재료 특성을 파악해 재료 본연의 맛이 최고로 발현되도록 하는 조리법이 매력적입니다.”

그는 2005년 귀국 후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일식당의 최고 책임자로 잘나가는 일식 셰프의 길을 걸었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실상사의 주방 살림 총 책임자로 사찰음식과 저장 음식을 만들던 전문가인 덕분이다.

매년 된장, 고추장을 담그는 일과, 각종 장아찌를 만드는 모습에 익숙한 터라, 자연스레 음식 만드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요리의 출발은 ‘신선한 재료에서부터’라는 생각을 그의 요리 DNA로 삼았다. 최고의 일식 요리사라는 성취를 바탕으로 바쁘게 생활하던 그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어머니를 돌보는 일과 평생 해오신 장 담그고 저장 음식 만드는 비법秘法을 이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22년 만에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2013년에 지리산으로 내려온 그는 직접 농사를 지으며 찬해원이라는 농원을 만들었다. 자연에서 키우고 채취한 재료들로 저염·저온숙성 된장, 고추장, 장아찌들을 만들어 ‘지리산 바람골 장醬 이야기’라는 브랜드로 판매하며 농부·식품 제조·셰프 서비스를 함께하는 6차산업 창조자의 길을 걷고 있다. 이와 함께 일식 요리사 시절부터 틈틈이 만들어 오던 어란을 본격적으로 만들어 상품으로 출시했다. 그가 만든 양재중 어란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지역 특산물인 영암어란마저 판매량이 늘고 있다. 자칫 명맥이 끊길 뻔했던 어란을 되살려낸 것은 양재중 셰프의 공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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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와 농부의 삶

일식 셰프의 가장 중요한 일은 좋은 재료를 직접 확인하고, 찾는 일이다. “주방 책임자로 일할 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 수산시장을 찾았죠.”

새벽시장에서 장을 본 다음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 점심 준비를 했던 셰프 시절보다 농부의 삶은 더욱 노력해야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는데 그때부터 해질 때까지 잠시도 쉴틈이 없다.

온실에서는 아스파라거스, 홋카이도 멜론들을 키우고, 밭에서는 상추, 아욱, 주키니, 빨간 열무, 흑무, 삼채, 삼나물, 마이크로 토마토, 참깨, 곰취, 초피, 일본 깻잎, 루콜라, 두릅, 참나리, 양하, 들깨, 다래, 명이, 더덕, 엄나무 등을 재배한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세 사람이 짓는 농사의 면적이 넓고(밭농사 5000평 + 논농사 3000평), 재배하는 채소와 과일의 종류가 너무 많지만 좋은 재료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그 숫자는 매년 늘어간다.
지식인의 삶의 자세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신이 성취한 영역 밖에서 공동체를 위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보면 양재중의 삶이 그러하다. 특급 호텔에서, 일본에서, 대기업에서, 그때마다 이루었던 성취를 내려놓고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양재중의 꿈은 소박하고 진취적이다. 지식인 농부로 대학에서 강의하며 부모님을 위해 멜론을 심고 아내와 두 아이를 위해서는 어란을 만들고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는 늘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가 요즘 개발 중인 신제품은 유자, 된장, 호두를 혼합 발효시킨 ‘유자 장정과’이다. 연구 중인 시제품에서는 유자의 상큼함, 발효 된장의 감칠맛, 호두의 고소함 이 함께 증폭되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의 세계로 이끈다.

치즈를 능가하는 새로운 맛의 가능성을 탐구 중인 발효 ‘유자 장정과’
치즈를 능가하는 새로운 맛의 가능성을 탐구 중인 발효 ‘유자 장정과’
지리산의 브라Bras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 가장 대표적인 미식 도시로 리옹을 꼽을 수 있다. 리옹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한적한 시골 마을 라귀올Laguiole에 있는 브라는 미슐랭 3스타의 세계적인 레스토랑. 이곳에서 태어난 미셸 브라Michel Bras는 집 뒤의 텃밭에서 200종이 넘는 허브와 채소를 직접 키우고, 그 작물들을 자신의 요리에 사용한다. 자신의 요리에 지역의 햇살과 풍광, 바람과 토지의 힘과 아름다움까지 담는다는 생각으로 꽃과 채소의 요리 ‘시그너처 가르구유Gargouillou’라는 독톡한 요리 장르를 개척하여 브라 레스토랑과 고향 마을 라귀올을 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었다. 중기마을 찬해원(햇살이 꽉 찬다는 뜻)은 종일토록 햇살이 눈부신 곳 이다. 농장 앞에는 지리산 노고단부터 천황봉까지의 능선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 땅은 농부 셰프 양재중의 조상님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자신의 이름 재중在中처럼 이곳은 그가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는 숙명적인 곳이다. 이 터에서 그가 만들어가는 내일이—지리산 중기 마을이 프랑스의 라귀올처럼—전국에서 찾아오는 명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꽃이 피기 전 수술을 제거한 나리꽃은 요리 재료로도 쓸 수 있다.
꽃이 피기 전 수술을 제거한 나리꽃은 요리 재료로도 쓸 수 있다.

text 김옥철 — photograph 김경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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