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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샥슈카 @임수진(가을방학)

2016년 7월 15일 — 0

여자는 샥슈카를 먹으며 깊은 허기를 달랬다. 어린 시절 들었던 그 소리를 애타게 그리워하면서.

text 임수진 — illustration 박요셉

© 박요셉
© 박요셉

여자는 어릴 때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느냐만 여자에게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희소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희소했지만, 쓸모는 없는 능력이었다. 여자는 소리를 들었다. 우주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우우우웅 하는 소리를 언제나 또렷하게 들었다. 등굣길에도, 화장실에서도, 수업을 들을 때에도. 익숙해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런 소리일 법한, 낮게 울려 퍼지는 소리. 이상하고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드러운 소리.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소용없으리라는 점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혼란스러울 때면 방문을 닫고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서 눈을 감고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면 소리가 더 커졌다. 소리는 색깔로 변하고 색깔은 늘 처음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색을 보여주었다. 천사의 피가 있다면 그런 붉은색이리라. 그 향기만으로도 지층이 흔들리는 듯한 라일락이 있다면 그런 보라색이리라. 엄마가 부르는 목소리에 어질어질한 머리로 책상 밑에서 나오면 식탁에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그럴 때 음식은 정말이지 맛있었다. 혀에 모든 피가 몰리고 여자는 마치 음식과 사랑을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랑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나이에도 여자는 사랑이 탐닉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침과 음식이 뒤섞이고, 혀의 가장 둥그런 부분 위로 음식이 구르고 미끄러지고 입천장을 부드럽게 밀어댔다. 그럴 때면 맛이 폭죽처럼 머리를 울렸다. 부모가 이혼한 열네 살 때부터 여자는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엄마가 묶어주던, 어깨까지 오던 단발머리를 등까지 길게 길렀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여자가 외로움을 피해 잠이 드는 점심 시간이면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주었다.

여자는 자라서 여러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다. 남자들은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좋아했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흰 귓불은 더 좋아했다. 남자들은 여자가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냄새라도 맡은 것처럼 굴었다. 여자는 기회가 많았고 어린 정신과 젊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니 내킬 때마다 자연의 부르심에 헌신했다. 그래도 자기 앞에 있는 남자들이 여자의 어깨가 앞으로 굽고 발목이 굵어지기 시작할 나이가 되면 자신을 떠날 부류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여자의 귓 속에 늘 이어지던 소리는 몸을 섞기 위한 장소의 문을 열자마자 희미해지곤 했다. 남자가 옆에 누워 숨을 몰아쉴 때쯤이면 어쩐지 여자는 허전해졌다. 그 허전함 때문에 여자는 남자에게 무척이나 차갑게 굴 때가 많았지만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어떤 남자들은 그런 여자의 태도에 개의치 않았으나 어떤 남자들은 무표정 뒤로 상처를 감당했으며 다시는 여자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여자에게 소리는 잘 들리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자취방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여자는 가끔씩 소리를 떠올리려고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어느 날 여자는 눈매가 부드럽고 얼굴이 갸름한 남자를 만났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여자는 이전까지 아무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는 사랑 속으로 무너져 들어갔으며 여자가 떼는 걸음 하나하나가 춤이었다. 사뿐사뿐 스텝을 밟으며 남자와 온갖 음식을 먹으러 다녔다. 흘러내리는 육즙의 스테이크며 거품이 두터운 이국적인 이름의 맥주, 입 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치즈와 탐욕스럽게 얹힌 생크림, 그 위의 붉은 체리. 그리고 이어지는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 여자는 모든 것을 즐겼고 매일이 축제와 같았다. 밤을 샌 대화의 끝에 동이 터오면 여자는 나른하게 남자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 탐닉, 바로 그것이었다. 여자는 이제는 들리지 않는 소리에 대해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소리를 듣는 능력은 탐닉으로 이어졌으나 탐닉이 다시 소리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소리를 밀어냈지만 여자는 깊이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저 소리였을 뿐인데 뭐, 여자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스스로의 축제에 몰두했다. 그러나 여자의 축제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서 끝이 났다. 마음에 깊은 자상을 입은 여자에게 남자는 부담스러웠다는 것을 변명으로 들었다. 남자가 말했다. 너는 내가 친구 만나는 것도 싫어하잖아.

그때부터 여자의 남자관계는 갸름한 얼굴의 남자를 만나기 이전의 담백한 관계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환상과도 같은 초기의 몇 달이 지나면 여자가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상대는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럴수록 여자는 남자를 붙들기 위해 애를 썼다. 여자가 울 때 남자는 화를 냈다.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자신의 눈물이 수치스러웠고 눈물은 얼어붙었다. 여자는 멈춘 눈물만큼의 화를 냈으며 관계는 더욱 악화되어갔다. 여자는 화를 냈다가 헌신했다 하는 것을 시계추처럼 반복했으며 그럴수록 머릿속은 몽롱해져갔고 업무 능력도 떨어져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여자가 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허우적거릴수록 여자는 더 모래 속으로 빠질 뿐이었다. 심지어 남자가 여자에게 빌린 돈이 여자의 1년 치 월급을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자는 다른 곳을 보았다. 여자는 치정살인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으나 그럴 때면 스스로가 무서워졌다. 여자는 더 이상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었다. 여자는 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헤어졌어도 출근은 해야 했다. 정신없이 일을 하니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퇴근길에서 여자는 지하철 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예전에 그렇게 두려워하던, 어깨가 앞으로 굽고 발목이 굵어지는 나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여자는 새삼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했다. 남자는 없었다. 디자인을 전공해 웹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니 전공을 살린 일이기는 했지만 대학 시절 꿈꾸던 건 이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말 그대로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반복되는 일보다도 여자를 정말 피로하게 하는 것은 남자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자신의 소망이었다.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여자를 피로하게 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해받지 못하면 스스로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랑받았다는 것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허락이기라도 한 것처럼, 상대에게 그럴 권력과 자격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뼛속까지 무력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가 아니라, 헛된 남자들에게 헛된 기대를 품었던 스스로가 제일 미웠다. 기대를 품는 것이 헛되지 않은 남자가 있는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여자는 지하철에서 내려 자취방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지 않았다. 걷고 싶었다. 걷다가 주택가 한가운데에 문을 연 식당 한 곳을 발견했다. 야외에 세워진 메뉴판에 처음 보는 음식 이름이 쓰여 있었다. 샥슈카. 남자에게 빌려준 돈 때문에 주머니가 빠듯해 잠시 망설였지만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음식을 주문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는 자기밖에 없었다. 샥슈카는 달걀 반숙을 넣은 토마토스튜였다. 맛있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더. 꿀꺽 넘기는 순간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자는 문득 소리가 그리워졌다. 열네 살 때의 그 소리가 듣고 싶다고, 그 색이 보고 싶다고 절실하게 바랐다. 그러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아무도 필요 없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필요 없어지면, 그래서 남에게 비굴한 줄도 모른 채 비굴하게 굴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 누군가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까. 아니 사랑도 필요 없고, 그냥 이 가슴을 칭칭 옭아매는 것 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식당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부끄러워 얼른 눈물을 닦았다. 목이 메었지만 여자는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세상에 화내듯 야채를 씹고, 투정 부리듯 올리브유를 찍은 빵을 삼켰다. 깊은 허기가 잠시나마 사라질 때까지.

배가 부른 채 식당을 나오니 조금 마음이 풀어진 것만 같았다. 여자는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여자의 옆으로 아이들이 뭔가 저희들끼리 장난을 치며 지나갔다. 여름 저녁, 바람이 시원했다. 집에 가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오늘은 어쩐지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임수진은 밴드 가을방학의 보컬리스트 계피로 이름을 알렸다. 브로콜리 너마저, 우쿨렐레 피크닉의 멤버로도 활동했으며 특유의 맑은 목소리가 매력적인 보컬리스트다. 지난 9월 에세이집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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