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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담양 2박 3일 미식 여행

2016년 7월 8일 — 0

담양에서는 시선 닿는 곳 어디든 초록이 만연하다. 음식, 경치, 사람까지 담양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꾸밈이 없다. 그래서 더 머물고 싶어지는 곳이다.

edit 권민지 — photograph 양우성

죽녹원에는 바람 따라 댓잎이 부딪히며 온통 서걱거린다. © 양우성
죽녹원에는 바람 따라 댓잎이 부딪히며 온통 서걱거린다. © 양우성
FIRST DAY

LUNCH 댓잎 향 가득한 국수

담양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떡갈비, 죽순, 대통밥, 창평국밥… 기껏해야 이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담양에는 영산강을 따라 국수거리가 조성되어 있을 정도로 국수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담양에서의 첫 끼를 위해 국수거리로 향했다. 줄지어 늘어선 가게들 중 미소댓잎국수는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더 많이 찾는 곳이다. 물국수와 함께 계절 메뉴인 검정콩물국수를 주문하고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곳 국수의 특징은 댓잎으로 만든 생면을 사용한 다는 것. 댓잎을 덖어서 그늘에 말리고 12번 정도 제분 과정을 거쳐야 댓잎 가루가 나오는데, 그 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최소 2시간을 반죽한다. 오랜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만든 면을 후루룩 입에 넣었다. 쫄깃한 면발과 함께 그윽한 댓잎 향이 입안에 가득했다. 물국수는 면을 세번 토렴해 뜨끈하게 즐길 수 있는 메뉴다. 토렴과정에서 면이 육수를 제대로 빨아들여서인지 한결 쫀득한 느낌이 들었다. 얼음이 따로 제공된 검정콩물국수도 인상적이었다. 기호에 따라 얼음을 더할 수 있어 물에 희석되지 않은, 진한 콩물 맛이 좋았다. 죽순과 우렁이 듬뿍 들어간 죽순비빔국수도 새콤달콤한 맛과 식감이 좋아 단골들이 많이 찾는다.

미소댓잎국수의 물국수는 면을 세 번 토렴해 밍밍하지 않은, 진한 국물 맛이 난다. © 양우성
미소댓잎국수의 물국수는 면을 세 번 토렴해 밍밍하지 않은, 진한 국물 맛이 난다. © 양우성

식사를 마친 후 근처 메타세쿼이아길을 따라 천천히 거닐었다. 길게 뻗은 숲길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풍경처럼 울려 퍼졌다. 길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자전거길이 조성된 관방제림으로 건너갔다.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 등 나무 구경을 하다보니 잠시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왼편에 영산강을 끼고 계속 걸으면 길 끝에 담빛예술창고가 보인다. 정부에서 운영하던 남송창고를 카페 겸 전시 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라 외관이 독특했다. 카페 내부 한가운데에 웅장한 크기의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이 놓여 있어 주말에는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카페와 전시공간이 연결되어 작품 구경도 가능하다. 통유리창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커피와 함께 쿠키를 맛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한 맛도 아닌데 참 맛있게 먹었다. 색다른 공간이 주는 즐거움 때문인 듯싶다.

담빛예술창고에서 음료와 함께 쿠키 또는 머핀을 먹으며 늦은 오후의 허기를 달랬다. © 양우성
담빛예술창고에서 음료와 함께 쿠키 또는 머핀을 먹으며 늦은 오후의 허기를 달랬다. © 양우성
정부가로수시범사업으로 조성된 메타세쿼이아길. ‘전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정부가로수시범사업으로 조성된 메타세쿼이아길. ‘전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꼽히기도 했다.

대나무 숲이 우거진 죽녹원에서의 산책은 담양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죽녹원 입구에는 간식을 파는 상점들이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맛보지 않으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김순옥댓잎찹쌀도너츠에서 도넛 한 세트를 구입했다. 찹쌀도너츠와 못난이 도너츠가 반반 섞여 있었는데, 댓잎 설탕이 뿌려진 찹쌀도너츠가 좀 더 달달했다. 많이 먹기에는 살짝 느끼해서 남은 건 허기질 때 먹기로 하고 죽녹원으로 들어섰다. 죽녹원 안에는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 길, 사색의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등 8개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 위로 곧게 뻗은 대나무 끝을 바라보며 걷다가, 숨이 차면 길 곳곳에 마련된 쉼터에 앉아 쉬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시원한 대나무 향이 온몸을 휘감았고 그때마다 눈을 감고 오롯이 자연을 만끽했다.

DINNER 갈비로만 만든 진짜 떡갈비

전통 조리법을 이어온다는 건 어떨 땐 맛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덕인관은 담양의 수많은 떡갈비집 중에서 60년 넘게 조선시대 전통 방식으로 떡갈비를 만드는 유일한 곳이다. “100% 갈비만 사용하는 곳은 전국에서 우리 집밖에 없어요. 갈비랑 다른 고기를 섞어 만들면서 떡갈비라고 팔면 안 되지. 그건 햄버거 패티나 다름없지.” 장막래 할머니의 뒤를 이어 이곳을 운영하는 박규완 대표가 말했다. 조선 말기에 편찬된 조리서 <시의전서>에는 가리구이(갈비구이) 조리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덕인관은 바로 이 조리법을 고수한다. 또 조선간장을 사용한 떡갈비 양념까지 옛 방식 그대로 만든다.

잘 구워진 떡갈비를 야무지게 손으로 뜯었다. 투박하게 씹히는 고기의 식감과 육즙이 어우러져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풍미가 올라왔다. 따뜻한 대통밥을 한술 뜨고 떡갈비 한 점을 올려 먹으니 담양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꿀맛이었다. 새콤하게 무친 죽순회는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대잎술 한 병을 주문해서 주거니 받거니 따르며 식사에 곁들였다. 술을 들이켤 때,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술에 취한 건지 온종일 맡은 댓잎 향에 취한 건지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먹기 좋게 직화로 구워져 나오는 덕인관의 떡갈비. 자리에서 한 번 더 따뜻하게 구워 먹으면 된다. © 양우성
먹기 좋게 직화로 구워져 나오는 덕인관의 떡갈비. 자리에서 한 번 더 따뜻하게 구워 먹으면 된다. © 양우성

SECOND DAY

BREAKFAST 죽로차로 마음 비우기

담양의 오일장은 옛날 전통 시장 풍경을 간직한 몇 안되는 곳이다. 때마침 장이 서는 날이라 구경할 겸 시장 근처 소바집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담양에서 소바라니, 조금 낯설기는 했지만 먹어보니 익숙한 맛이었다. 멸치, 파, 다시마, 가쓰오부시 등을 넣고 우린 육수에 면을 조금씩 담가 맛 보았다. 메밀 제면기로 뽑은 면이어서 점성이 느껴졌고 육수의 간도 적당했다. 한입 크기의 유부초밥도 인기 메뉴다. 메밀 메뉴는 모두 푸짐한 편이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면 유부초밥을 주문해 함께 맛보는 것도 좋다. 가게 선반에 놓인 피규어들은 주인장이 모으는 컬렉션으로 구입도 가능하다.

요즘 시장들이 세련된 모습을 점점 갖춰가는 반면, 담양시장은 담양천을 따라 좌판이 길에 늘어서 있어 오히려 멋스럽다. 줄줄이 엮은 굴비는 무심한 듯 매달려 있고, 색색의 대야가 넓게 깔려 시장 풍경에 재미를 더해 주었다. 수수로 만든 빗자루, 한각구, 우슬, 골담초 등 낯선 이름의 약초, 대야에 한가득 담긴 죽순… 시장 구경만큼 재밌는 게 또 있을까. 걷는 내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구경하느라 바빴다. 잔뜩 쌓인 보리수 열매를 한참 쳐다보자, 상인이 맛보라며 보리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뭇가지 하나를 건넸다. 까슬까슬한 껍질과 함께 통째로 먹으니 시큼하면서도 달고 떫은 맛이 나서, 짧은 시간에 다양한 맛을 경험했다. 장을 따라 걸어갈 때마다 풍경과 함께 냄새도 달라졌다.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란 찻잎으로 만든 차를 죽로차라고 한다. 1년 중 죽로차를 채엽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20일이다. 게다가 재배 지역도 대나무 숲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량이 적어 귀한 차 중 하나다. 명가혜에 방문하면 이곳을 운영하는 김가혜 대표가 직접 만든 죽로차를 내려준다. “여기 주변 차밭을 옛날에는 생금生金밭이라고 불렀어요. 땅심이 좋고 대나무의 은은한 향이 찻잎에 배어 차의 향미가 뛰어나거든요.” 김가혜 대표의 말을 듣고 다원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숨을 고른 후 죽로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딴생각 하지 않고 차 맛에만 집중했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복잡했던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는 카페에서 수다 떨며 마시는 커피보다 대나무 숲에서의 차 한잔이 도움 될듯 하다. 이곳에서는 죽신황금차도 맛봐야 한다. 죽순 속 껍질로 만든 차로 김가혜 대표가 처음 만들었다고.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도 마실 수 있어 인기가 좋다. 향은 구수하고 달달한데, 맛도 그대로다. 둥굴레차나 우엉차와 비슷한 맛으로, 삶은 고구마의 풍미가 느껴질 정도로 고소하다. 평소 즐겨 먹는 홍차와 블렌딩하면 구수한 맛이 더해져 색다르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바쁜 일상 속 쉼표가 필요할 때, 명가혜에서 마신 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날 것만 같다. © 양우성
바쁜 일상 속 쉼표가 필요할 때, 명가혜에서 마신 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날 것만 같다. © 양우성

LUNCH 다섯 가지 생선이 차려진 한 상

아침에 시장에서 보았던 줄줄이 엮인 굴비며, 얼음 위에 차곡차곡 쌓인 온갖 생선들을 보며 점심 메뉴는 생선구이로 마음을 굳혔다. 시장에서 본 것만큼은 아니지만, 한상에 다섯 가지 생선을 맛볼 수 있다는 대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곳에서는 생선을 굽기 전에 반드시 숙성 과정을 거친다. 천일염, 댓잎 가루, 매실즙 등 7가지 재료를 더해 하루 동안 숙성시키는데, 이때 생선에 자연스럽게 간이 배고 감칠맛이 올라온다. 식탁에 오른 생선은 고등어, 삼치, 꽁치, 조기, 갈치. 한 점씩 떼어 맛보니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간이 세지 않고 삼삼해서 장아찌와 함께 밥에 얹어 먹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삼삼한 생선구이는 돌솥밥과 함께 따뜻하게 먹을 때 더욱 맛있다. 반찬도 정갈해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양우성
삼삼한 생선구이는 돌솥밥과 함께 따뜻하게 먹을 때 더욱 맛있다. 반찬도 정갈해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양우성

담양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쁘기로 손꼽히는 정원이 있다. 바로 소쇄원이다. 1530년경 조영된 별서別墅 정원인 소쇄원은 무엇 하나 인위적인 게 없다. 가지런한 돌계단을 보면 곱다는 말이 절로 나오고 물줄기를 흘려 보내기 위해 이은 나무통에서는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소쇄원은 또박또박 발음해도 입안에서 바람이 샌다. 마치 소쇄원을 둘러싼 숲 사이사이 불어오는 바람과 닮아 산책하며 읊조렸다. 이곳에 혼자 온 사람은 없었다. 좋은 건 좋은 사람과 보고 싶기 때문에서일까.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사진 찍는 셔터 소리가 듬성듬성 정원의 빈 공간을 채웠다. 소쇄원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식영정에도 들렀다. 식영정은 전라남도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곳으로 고아한 멋이 느껴지는 정자다. 그림자도 쉬어갈 정도로 아름다워 이름 붙은 식영정은 예로부터 산수가 빼어난 곳으로 유명했다. 이곳에서 정철의 <성산별곡>이 태어났다. 당시 정철이 식영정에서 바라본 노자암, 방초주, 서석대 등이 어우러졌던 경치는 현재 광주호 속에 잠겨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쇄원. 정자에 앉아 바람소리,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를 듣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 양우성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쇄원. 정자에 앉아 바람소리,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를 듣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 양우성

DINNER 담양식 돼지갈비와 다방 커피

이곳저곳 다니며 시간을 보냈더니 슬슬 배가 고팠다. 아무리 훌륭한 경치도 허기를 채워줄 수는 없었던 것. 저녁으로 담양식 돼지갈비를 먹기 위해 쌍교숯불갈비를 방문했다. 테이블에서 굽지 않고 주방에서 미리 구워 나오는 게 담양식 돼지갈비다. 이틀 동안 숙성된 돼지갈비는 참숯에서 초벌한 뒤 양념을 발라가며 한 번 더 구워야 돼지갈비 깊숙이 양념이 배어든다. 기본 메뉴인 돼지갈비와 매운돼지갈비는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불 위에 올려졌다. 참숯향이 은은하게 돌고 육질이 쫄깃했다. 매운돼지갈비는 밥과 함께 먹으니 생각보다 맵지 않았고 단맛도 살짝 느껴졌다. 직원의 추천에 따라 김에 돼지갈비 한 점과 버섯장아찌를 넣고 싸먹었다. 새콤달콤한 장아찌가 돼지갈비의 매운맛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이곳에서는 들깨수제비를 함께 먹을 것을 추천한다. 수제비의 감자 함량이 높아 탱탱하고 쫄 깃하기 때문. 고소한 들깨 국물은 돼지갈비와도 궁합이 좋았다. 어떤 술을 곁들일지 고민 끝에 죽향 생막걸리를 골랐다. 시원한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니 다시 식사 하기 전으로 돌아간 듯 입안이 개운해졌다. 물론 배는 불렀다.

미리 구워져 나오는 쌍교숯불갈비의 돼지갈비. 버섯장아찌, 코다리구이, 샐러드 등 반찬도 다양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건너편에 귀여운 외관의 쌍교다방이 눈에 들어왔다. 아담한 크기의 카페인데, 밖에도 자리가 꽤 있어 사람들로 가득찼다. 가장 인기 많은 과일 음료에는 고서멜론, 와우딸기 등 품질 좋기로 소문난 담양의 과일 특산품만을 사용한다. 게다가 양도 푸짐하다. 새로 생긴 메뉴인 쌍교마차는 안동 생마와 바나나를 갈아 만든 시원한 주스로 마 특유의 끈적임이 덜하다. 가벼운 식사로도 좋을 만큼 든든했다. 쌍교다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커피도 있다. 달달구리커피는 진한 헤이즐넛 향이 특징으로 미리 배합해 커피를 만든 후 냉장 숙성해 판매한다. 2000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가성비도 훌륭하다. 담양 여행 중 달달한 다방 커피가 생각난다면 여기서 즐기는 것도 좋을 듯싶다.

인스타그램에서 담양 카페를 검색하면 쌍교다방의 사진이 가장 눈에 띈다. 계절마다 바뀌는 과일 음료는 항상 인기다.
인스타그램에서 담양 카페를 검색하면 쌍교다방의 사진이 가장 눈에 띈다. 계절마다 바뀌는 과일 음료는 항상 인기다.

THIRD DAY

BREAKFAST 시장 골목에서 맛본 원조 창평 국밥

전날 마신 막걸리 탓인지 여름인데도 아침부터 뜨끈한 국밥이 당겼다. 창평시장에는 속을 달래줄 국밥집이 수두룩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창평 근처에는 도축장이 있었다. 때문에 국밥에 사용할 돼지 부속물을 신선하게 받아볼 수 있었고 자연스레 이곳에 국밥 골목이 조성되었다. 그 시작은 원조창평시장국밥이었다. 가장 먼저 터를 잡은 이곳은 원조답게, 장이 서는 날이면 사람들로 붐빈다. 다행히 이른 아침에 방문해 식당 안은 한적했다. 내장국밥 한 그릇을 주문하고 국밥 뜨는 모습을 구경했다. 국자로 국물을 뜰 때마다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주방 안을 누비고 다녔다. 국밥에는 뽀얀 국물에 고운 빛깔의 내장들이 듬뿍 담겨 있었다. 국밥에 얹어진 양념을 휘휘 저어가며 떠먹었다. 칼칼한 매운맛이 시원했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아 뒷맛이 깔끔했다. 한 그릇을 깨끗이 다 비운 후 창평시장을 무작정 걸어 다녔다. 상점들이 길 양옆으로 깨끔하게 이어져 담양시장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사탕 대신 한과 봉지가 높게 쌓여진 모습도 재밌었다. 담양에서도 특히 창평은 예로부터 훌륭한 곡창지대였다. 그래서인지 창평 쌀로 만든 한과는 담양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꼽힌다. 시장 한과도 좋지만, 좀 더 제대로 한과를 맛보기 위해 담양 한과로 향했다. 1997년에 대한민국 식품명인인 박순애 명인이 문을 연 담양한과는 견과류와 같은 수입산을 제외하고는 전부 국내산으로만 한과를 만든다. 유과에 색을 낼 때도 마찬가지다. 붉은색은 백년초 가루를, 노란색은 단호박을 사용한다. 유과는 만드는 과정이 한과 중 제일 까다롭다. 우선 찹쌀을 발효해 떡을 만들고 꽈리치기를 한 후, 얕게 펴 자른다. 그 다음 건조, 선별, 숙성과정을 거쳐 기름에 튀긴 후 조청과 튀밥가루를 묻히면 완성이다. 한 번 만드는 데 최소 세 달은 기본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긴 과정을 거친 유과인데, 입안에서는 아까울 만큼 사르르 녹았다. 정과, 깨강정, 매작과 등을 하나씩 담아 소반에 올리니 소담한 한 상이 완성됐다. 보기에 예쁘니 더 맛있게 느껴졌다.

맑은 국물과 개운한 맛이 매력인 원조창평시장국밥의 내장국밥. 쫄깃한 식감의 내장이 듬뿍 들어가 더욱 푸짐하다.
맑은 국물과 개운한 맛이 매력인 원조창평시장국밥의 내장국밥. 쫄깃한 식감의 내장이 듬뿍 들어가 더욱 푸짐하다.

LUNCH 창평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슬로시티약초밥상에서는 36가지의 장아찌를 뷔페식으로 즐길 수 있다. 비빔밥과 함께 쌀밥도 먹을만큼 떠서 맛 볼 수 있다.
슬로시티약초밥상에서는 36가지의 장아찌를 뷔페식으로 즐길 수 있다. 비빔밥과 함께 쌀밥도 먹을만큼 떠서 맛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은 창평까지 모두 11곳이다. 전통을 잇고 자연과 어우러져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삼지내마을에서는 모두가 그 어려운 걸 해낸다. 바삐 사는 도시인들에게 이곳은 어쩌면 불편한 곳일 수도 있다. ‘빠르게’가 먹히지 않는 곳이기 때문. 마음을 비우고 마을을 느릿느릿 걸어보았다. 마을 전체는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낮은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옛 돌담 사이사이 핀 꽃을 구경했다. 마른 흙을 밟을 때 나는 발소리와 자전거 바퀴소리가 마을의 가장 큰 울림일 정도로 고요했다. 그러나 쓸쓸한 고요함이 아닌 평화로움이었다. 점심이 다가올 때쯤, 슬로시티약초밥상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36가지 약초장아찌를 뷔페식으로 맛볼 수 있다. 연잎줄기, 돼지감자, 초석잠, 죽순, 자소, 엄나무 잎…. 전부 맛보고 싶었지만 우선 먹을 만큼만 조금씩 그릇에 담았다. 발아현미밥에 열무, 백야초장아찌, 방풍나물 등을 넣고 다래고추장으로 비빈 비빔밥도 맛보았다. 견과 가루가 듬뿍 들어가 고소한 맛이 좋았고 밥의 찰기와 재료의 간이 섞여 향긋한 약밥같이 느껴졌다. 장아찌들은 염장하지 않아 전부 짜지 않았다. 쌀밥에 장아찌를 조금씩 얹어 하나하나 탐구하듯 먹었다. 건강식 진수성찬을 제대로 즐긴 셈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마음을 가라앉힐 겸 연화차를 마셨다. 꽃봉오리에 뜨거운 물을 부을 때마다 꽃잎이 하나씩 곱게도 피어났다. 그러고는 이내 은은한 연꽃 향이 퍼지며 기분이 맑아졌다. 차의 효능은 차를 대하는 태도와 그 과정에서도 빛을 발한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의 삼지내마을은 삼지천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자연과 어우러져 삶을 꾸리는 마을이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창평의 삼지내마을은 삼지천마을이라고도 불린다. 자연과 어우러져 삶을 꾸리는 마을이다.

DINNER 여름에는 따뜻한 꽃차

점심 식사 후 마신 연화차는 어여쁜 자태를 눈으로도 즐길 수 있어서 마음을 뺏겼다. 이참에 다양한 꽃차를 경험하고 싶었다. 담양에는 꽃차마을이 있을 정도로 꽃을 가까이 두고 산다. 머루랑 다래랑은 문 연 지 20년 가까이 된 찻집으로 온갖 종류의 야생꽃차가 있다. 찻집 안에는 볕이 드는 창가 테이블에 꽃이 담긴 소쿠리들이 놓여 있었다. 꽃은 시들어 말린 후에도 여전히 예뻤다. 직원의 추천을 받아 꽃차를 주문하고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평일에 방문해서인지 한적했다. 주문한 꽃차들이 유리 티포트에 담겨 나왔다. 시들었던 꽃이 물에서 다시 피어올라 온몸으로 향을 냈다. 특히 목련꽃차의 향이 그윽했고 푸른빛의 팬지꽃차는 맛이 고소했다. 더위를 식힐겸, 얼음이 동동 떠있는 오미자차도 마셨다. 얼음 안에 아카시아꽃이 있어 얼음이 녹을 때마다 꽃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카시아꽃차를 시원하게 마실 때는 천일염을 아주 약간 넣어요. 아카시아의 달콤한 향미도 진해지고, 갈증 해소에도 그만이거든요.” 머루랑 다래랑의 송희자 대표는 꽃들을 살피며 말을 이어나갔다. “꽃차도 제철이 있어요. 여름에는 따뜻한 성질의 꽃이 많아요. 날이 더우면 차가운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속을 따뜻하게 해야 돼요. 목련이나 당귀, 장미는 따뜻한 성질의 꽃이라 요즘에 먹기 좋아요.” 꽃은 차로 만드는 과정이 특히 중요하다. 꽃에는 독소가 있는데, 조리 과정에 서 독소가 영양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덖고 찌고 데치는 등 각각의 꽃에 맞는 조리법으로 차를 만든다. 남은 꽃차는 하나하나 꽃말을 되뇌며 마셨다. 기분 탓인지 꽃차의 맛이 꽃말을 닮은 듯했다.

머루랑 다래랑은 꽃마다 다른 조리법으로 차를 만든다. 꽃도 저마다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머루랑 다래랑은 꽃마다 다른 조리법으로 차를 만든다. 꽃도 저마다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담양을 떠나기 전, 제대로 된 담양식 한 상 차림을 즐기고 싶었다. 전통 남도한정식으로 유명한 전통식당은 퓨전이 아닌 전통 한정식을 선보이는 곳으로, 30년이 넘도록 직접 담근 간장, 고추장, 된장으로 음식 맛을 낸다. 들어서니 장독대들이 놓인 마당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오래된 가옥이 멋스러웠다. 방 안에는 방석만 깔려 있었다. 상차림 그대로 내주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상이 들어왔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건 이런 상차림을 보고 말하는 게 분명하다. 반찬은 가짓 수도 워낙 많아 한 바퀴만 돌아도 밥 한 공기가 모자랄 것만 같았다. 자고로 맛집이라면 밥맛이 좋아야 한다. 부드럽게 부푼 흰쌀밥을 한 숟갈 크게 떠먹었다. 밥의 적당한 찰기와 구수한 맛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맛집이 분명했다. 고소하고 쫀쫀한 맛의 보리굴비도 훌륭했다. 뜨끈한 쌀밥에 갈치속젓을 얹어 머위 잎으로 싸서 먹으니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마지막으로 산양산삼 한 뿌리를 꿀에 찍고는 꼭꼭 씹어 먹었다. 음식이 보약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저녁이었다.

전통 남도한정식을 선보이는 전통식당의 한정식 상차림. 보리굴비, 홍어찜, 삼합, 떡갈비, 민물새우젓 등 30가지가 넘는 요리와 반찬이 함께 차려져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전통 남도한정식을 선보이는 전통식당의 한정식 상차림. 보리굴비, 홍어찜, 삼합, 떡갈비, 민물새우젓 등 30가지가 넘는 요리와 반찬이 함께 차려져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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