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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냉면 @백영옥

2016년 6월 18일 — 0

좋아하는 것이 다른 남녀가 만났다. 그들의 연애는 냉면 한 그릇과 함께 시작됐다.

text 백영옥 — illustration 박요셉

© 박요셉
© 박요셉

그들이 처음 만난 건 여의도 벚꽃 축제에서였다. 여자는 한껏 들뜬 얼굴이었고, 남자는 몹시 짜증스러운 얼굴이었다. 여자는 출근 중이었고, 남자는 퇴근 중이었다.

여자는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다. 서울 생활 11년 차. 직장 생활 6년 차. 직급은 대리. 자신의 개그가 ‘아재 개그’인 걸 모르는 팀장(기러기 아빠다)과 늙은 막내(자신보다 한 살 나이가 많다) 사이에 끼여 있는 샌드위치 직장인. 허둥대다 못 찾을까봐, 노트북 바탕화면에 ‘사표양식’을 넣어둔 지 오래. 그런 그녀의 유일한 낙은 벚꽃 축제와 불꽃 축제다.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벚꽃처럼 아름답게 피어나고,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불꽃처럼 화려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편의점에 새 삼각김밥과 도시락이 출시되면 가장 먼저 알아채는 종류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한 걸까. 여자는 이것이 지금 3일째 야근 중인 자신을 가장 정확히 정의하는 표현 같아서 조금 서글펐다. 네일 숍에서 매니큐어한 손톱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는데도, 아직 지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1년 기한인 네일 숍 쿠폰을 다 쓰지 못해 거금 8만원이 그냥 사라져버린 건 더더욱.

남자는 여의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는 여의도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 직장마저 여의도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여의도에 있는 모 방송국 7년차 PD인 남자는 요즘 ‘책 프로’를 교양 아닌 예능으로 만드느라 스트레스가 하늘에 닿을 지경이다. 이 남자가 가장 싫어하는 건 단연 벚꽃과 불꽃. 여의도에서 살았던 남자에게 벚꽃과 불꽃 축제는 교통 지옥, 사람 지옥, 소음 지옥, 쓰레기 지옥으로 정의됐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피는 그 계절이 이 남자에겐 알레르기성 비염, 천식, 재채기, 편두통을 의미했다. 벚꽃이든 불꽃이든 너무 빨리지고, 너무 빨리 사라지는 게 싫었다. 길고 가늘게~ 그것이 이 남자의 신조였다. 다음 개편 때 프로그램이 잘리지 않는 것 이상의 행복을 남자는 ‘아직’ 알지 못했다.

벚꽃이라면 환장하는 여자와, 벚꽃이라면 질색인 남자가 만나 연애란 걸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걸까? 과연 연애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벚꽃 열광자와 벚꽃 혐오자는 여의도 벚꽃 축제가 한창이던 여의도공원 안 편의점에서 우연히 부딪쳤다. 여자는 ‘출근하며’ 새로 출시된 삼각김밥을 샀고, 남자는 ‘퇴근하며’ 맥주를 종류별로 샀다. 이들의 눈이 마주친 건, 텅텅 빈 즉석 음식 코너에 딱 하나 남은 마지막 도시락을 붙잡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축제에 온 사람들 때문에 편의점은 노상강도라도 만난 듯 텅텅 비어 있었다. 그것이 유일하게 그곳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던 셈이었다. “편의점에서 냉면을 팔면 사먹을 텐데….”
여자는 속엣말처럼 조용히 중얼거렸다. 마지막 남은 도시락을 빼앗겨버린 자의 비애가 그 목소리에는 가득 차 있었다.

“드실래요?”
남자가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던 도시락을 내밀며 여자를 바라봤다. 밤샘 촬영으로 얼굴 여기저기가 덥수룩 해진 남자의 얼굴에는 표정이랄 게 없었다.
“냉면 좋아하세요?”
남자가 물었다.
그렇게 된 것이다. 이들이 연애를 시작하게 된 건….

“그거 알아?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무려 82%라는 거. 그러니까 10명 중 8명 이상이 헤어졌다가도 다시 만난다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잘되는 사람들은 3%밖에 안 된대. 나머지 97%는 다시 헤어진대. 처음에 헤어졌던 이유랑 똑같은 이유로!” 세 번째 만났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믿거나 말거나 벚꽃 혐오자와 벚꽃 열광자의 연애는 5년이나 이어졌다. 이들은 5년 동안 두 번 헤어졌고 세 번 만났다. 처음 헤어졌을 때, 이들은 여의도 벚꽃 축제 속에 있었다. 두 번째 헤어졌을 때, 남자는 방송국 옥상에서, 여자는 63빌딩의 가장 좋은 테이블에서 각각 불꽃을 바라보았다. 똑같은 이유로 다시 헤어진 커플들처럼 이들이 세 번째 헤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 보였다. 이들은 다시 위기를 맞이했다. 헤어지는 마당에 배도 고픈데 마지막으로 밥이나 같이 먹자는 남자의 말이 이상 하지 않을 정도로, 이들에게 이별은 낯설지 않았다.
“냉면 먹을래?”
헤어지기 직전,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맛있는 데 알아?”
여자가 말했다.
“응. 끝내줘.”
“너나 먹어.”

남자는 여자의 ‘반어법’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여자와 함께 유명한 냉면집에 왔다.
“아줌마! 여기 물냉면이랑 비빔냉면이오! 빈 그릇도 하나 갖다주세요.”
남자가 주문했다.
냉면을 기다리는 동안, 이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봤다. 남자는 자신의 이메일을 체크했고, 여자는 자신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만약 페이스 북에 ‘싫어요’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남자가 올린 모든 글에 ‘싫어요’를 누르고 싶었다.

“냉면 나왔습니다!”
냉면이 나오자 두 사람은 비로소 눈을 맞추고 마주 앉았다. 여자는 자신의 물냉면 그릇 안에 있던 달걀과 오이를 남자의 냉면 그릇에 넣었다. 여자는 물냉면의 1⁄3을 빈대접에 담아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는 자신 앞에 있던 식초와 겨자를 여자의 냉면 그릇에 넣었다. 식초 두 스푼. 겨자 한 스푼. 그것이 여자가 좋아하는 정확한 냉면의 맛이었다. 남자는 앞에 있던 가위로 여자의 냉면을 세 번에 걸쳐 잘라 주었다. 그들이 5년 동안, 아니 5년에 걸쳐 반복해온,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달걀흰자 먹을래?”
남자가 말했다.
“그래.”
여자가 말했다.
“수육 먹을래?”
여자가 물었다.
“그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늘 달걀흰자만 먹었다. 남자는 수육을 좋아했다. 여자는 오이를 싫어했고, 남자는 좋아했다. 김밥 속의 당근만 골라내는 남자였다면, 김밥 속 당근을 좋아한 여자였다. 여자가 싫어한 걸 남자가 좋아했고, 남자가 싫어한 걸 여자가 좋아했다. 취향도, 성격도, 가치관도 조금씩 모두 달랐지만 그들에게 유일하게 잘 맞는 게 하나 있었다. 벚꽃 열광자와 벚꽃 혐오자의 연애가 가능했다면, 그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 만난 날, “냉면 좋아하세요?”라고 묻는 남자에게 “네!” 혹은 “아뇨!”가 아니라 “우래옥 평양냉면 좋아해요”라고 말한 여자에게 남자가 끌렸던 것 역시 취향이 분명한 여자에 대한 강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해주었던 많은 일들이 헤어지기 직전, 이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연인이 된다는 건 아무래도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추억이란 이름으로 각인되는 일인 것이다.
“비오네.”
창밖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수육을 집어 남자의 냉면 그릇에 건네주던 여자의 눈에서 갑자기 핑~ 눈물이 고였다. 들킬까봐 그녀는 일부러 고개를 돌려 메뉴판의 가격표를 열심히 읽었다.
“우산 사줄게. 쓰고 가라.”
남자가 말했다. 그 역시 말없이 여자가 자신에게 건네준 달걀과 오이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여자가 말했다.
“황사비야. 안 괜찮아.”
남자가 말했다. “얼굴 썩어! 주름 지우고 싶다며? 비싼 돈쓰지 말고, 우산이나 쓰고 다녀!”
사실 이들은 싸우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속마음은 그랬다. ‘네가 비를 맞는 건 싫다’라는 마음. 이것 말이다.

벚꽃에서 시작해서 냉면으로 끝나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이들은 세 번째 헤어졌다. 그리고 네 번째 ‘다시’ 만났다. 3%의 확률을 뚫고 벚꽃 혐오자와 벚꽃 열광자는 네 번째 연애를 시작했다. 비 내리는 냉면집 앞에서.

백영옥은 2006년 단편소설 <고양이 샨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2008년 첫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산문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인터뷰집 <다른 남자>를 냈다. 얼마 전에는 4년 만에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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