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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전주 2박 3일 미식 여행

2016년 6월 17일 — 0

산책하듯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전주다. 맛있는 식당과 아름다운 명소가 곳곳에 어우러져 있다. 어디서든 보이는 전동성당을 이정표 삼아 발길 닿는 대로 가보자.

오목대에서 바라본 전주 한옥 마을 © 김재욱
오목대에서 바라본 전주 한옥 마을 © 김재욱
FIRST DAY

LUNCH — 전주에서 먹는 전주비빔밥

한 끼라도 더 전주에서 먹고 싶은 마음에 오전 7시에 출발하는 KTX를 탔다. 전주역에 도착하니 이른 점심을 먹기 좋은 시간이었다. 전주 음식 중 가장 맛보고 싶었던 전주비빔밥을 첫 끼로 정하고 택시를 탔다. 가족회관은 1980년부터 3대째 운영되고 있는 곳으로 지금도 전주음식명인 1호인 김년임 씨가 주방을 지키고 있었다. 메뉴는 전주비빔밥과 육회비빔밥 두 가지뿐. 주문에 앞서 무엇이 다른지 물어보니 고기 고명이 다르단다. “궁중 음식에서 유래된 전주비빔밥이니 소고기 육회가 올라가는 것이 맞지만 손님들 중에 이따금 육회를 못드시는 분이 계셔서 메뉴를 두 가지로 구분해두었어요.” 육회비빔밥을 주문하자 풍성한 찬과 함께 샛노란 달걀 찜이 나왔다. 머핀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달걀찜부터 한 수저 떠먹었다. 보들보들한 데다 짠맛이 없이 깔끔했다. 유기그릇에 담겨 나온 비빔밥은 그 담음새를 눈으로 먼저 충분히 즐기고 싶어 찬찬히 재료들을 살폈다. 콩나물, 애호박, 표고버섯 등 으레 먹는 것들이지만 색과 모양이 유독 선명하고 먹음직스러웠다. “재료의 색을 선명하고 예쁘게 살리려고 노력해요. 특히 황포묵은 전주 음식의 특징을 대표하는 고명이죠. 녹두로 만든 묵이라 원래는 색이 흐린데 보기 좋게 천연 치자로 노란색을 입혔어요.” 이곳을 3대째 운영 중인 양미 대표가 설명을 보탰다.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라 맛과 멋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주 스타일이라는 것. 정성이 깃든 비빔밥을 쓱쓱 비벼 먹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맛이었다.

가족회관의 전주비빔밥은 재료의 색을 선명하게 살려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 김재욱
가족회관의 전주비빔밥은 재료의 색을 선명하게 살려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 김재욱

숙소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는데 바로 앞사거리에 PNB풍년제과가 보였다. 얼마 전 서울에 매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전주에 가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맛보곤 했던 것이 이곳의 초코파이였다. 눈앞에 1호점이 있는데 들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빵굽는 냄새를 맡으며 화이트초콜릿, 크림치즈 등 여러 가지 맛의 초코파이와 아몬드붓세, 센베를 구입했다. 초코파이가 이렇게 인기를 얻기 전에는 센베로 유명했단다. 초코파이를 바로 먹어보았다. 서울에서 맛본 초코파이와 맛이 똑같았다. 숙소가 있는 한옥마을에 도착하자 전주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전동성당이 보였다. 둥그런 첨탑과 붉은 화강암 벽돌이 고풍스럽고 아름다웠다. 이곳은 1931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면서 우리나라 첫 천주교 순교지이기도 하다. 높은 첨탑 아래로 전주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은 전동성당 앞에 서 있으니 오래된 건축물이 가진 아늑함이 전해졌다. 성당의 왼편에는 경기전이 있었다.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만든 곳이다. 그러고 보니 태조 이성계는 전주 이씨다. 잠시 녹음이 짙은 경기전의 나무 그늘 아래서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기왕 한옥마을에 왔으니 한복을 입고 싶은 사람이 많은 모양이었다. 한옥마을을 돌아볼 생각으로 경기전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한장 챙겼다. 마침 2시부터 한옥마을 골목길 투어가 있다는 안내를 받아 참여하기로 했다. 그사이 걸어서 2분 거리의 길거리야에 서둘러 다녀왔다. 바게트의 속을 파내고 토마토소스와 각종 채소, 고기를 넣은 바게트 버거가 유명한 곳이다. 한 개를 한 번에 먹기엔 배가 불러서 반을 잘라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빵의 끝부분까지 꽉 차 있는 매콤한 소가 맛있어서 어느새 한 개를 다 먹었다.

전주를 대표하는 건축물 전동성당은 해 질 녘에 바라보면 더욱 아름답다. © 김재욱
전주를 대표하는 건축물 전동성당은 해 질 녘에 바라보면 더욱 아름답다. © 김재욱
PNB풍년제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은 역시 초코파이다. 파이 속에는 부드러운 크림과 딸기잼이 들어 있다. © 김재욱
PNB풍년제과의 초코파이 속에는 부드러운 크림과 딸기잼이 들어 있다. © 김재욱

골목 투어를 가려는 사람들이 관광안내소 앞에 모였다. 전주 한옥마을에 들어서면 곧장 시작되는 넓은 길이 있다. 알고 보니 그 길의 이름 역시 태조 이성계에서 따온 태조로다. 투어는 태조로를 중심으로 한옥마을의 윗부분을 둘러보는 골목길 투어와 아랫부분인 오목대와 전주향교를 돌아보는 코스가 있다. 전주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걷다 보니 길이 눈에 익었다. 은행로에는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다. 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에 오면 더 아름답다고 했지만 푸른 잎사귀보다는 긴 세월을 품은 굵은 나무 기둥이 더 인상적이었다. 소리문화관과 전통술박물관을 지나자 한옥을 모티브로 지은 모던한 현대식 건물 기와가 눈에 들어왔다. 한정식, 이탤리언 레스토랑, 카페를 겸하는 곳이다.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3층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커피와 티라미수를 먹었다. 가게에서 직접 만든다는 티라미수는 소복하게 올려진 초코가루가 포슬포슬하고 진한 맛을 내 맛있었다. 활짝 펼쳐진 기와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커피맛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밖으로 나와 걷다 보니 다시 태조로였다. 슬슬 배가 고파왔다. 다우랑은 한옥마을에서 가장 붐비는 만두 가게다. 만두를 골라 계산한 뒤 직접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다. 만두피 가득 속이 꽉 차 있는 철판새우군만두와 부추만두 등 몇 가지를 골라 맛봤다. 풍성한 소가 남다르긴 했지만 아무래도 전주에만 있는 맛은 아니다. 같은 골목에 있는 만두 가게 소담골에도 가봤다. 만두를 고르자 아주머니가 전자레인지에 데워주셨다. 동그랗게 생긴 새우샤오마이가 아주 맛있었다. 담백한 데다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좋아서 간식으로 먹을 참이었는데 그만 배불리 먹고 말았다.

소담골 수제 만두집에 가면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제대로 느껴지는 새우샤오마이를 꼭 맛봐야 한다. © 김재욱
소담골 수제 만두집에 가면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제대로 느껴지는 새우샤오마이를 꼭 맛봐야 한다. © 김재욱

DINNER 전주식으로 술 마시기

저녁은 막걸리와 먹기로 했다. 막걸리 골목으로 알려진 삼천동과 서신동에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면 안주가 한 상 푸짐하게 나오는 막걸리 집이 많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택시 기사가 추천해준 용진집에 가보기로 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아 15년째 성업 중인 곳이라더니 이른 저녁인데도 자리가 없었다. 다른 곳에 갈 수도 있었지만 회전율이 좋아 해산물이 더 맛있다는 택시 기사의 말을 떠올리며 기다렸다. 마침내 편육, 꼬막찜, 꽁치구이, 파전 등이 빼곡하게 차려진 상을 받았다. 음식에 막걸리 한 사발과 곁들이니 금세 배가 불러왔다. 막걸리를 추가로 주문할 때마다 상차림이 달라진다는데 먼저 온 다른 테이블을 보니 전복회, 백합탕 등이 있었다.

용진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주문하면 이토록 많은 안주가 딸려 나온다.
용진집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주문하면 이토록 많은 안주가 딸려 나온다.

맛이 궁금했지만 다 먹지 못할 것 같아 2차는 택시를 타고 15분 거리인 전일슈퍼로 갔다. 연탄불에 구운 납작한 황태포와 갑오징어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는 가맥집이었다. 가맥은 ‘가게 맥주’를 줄여 부르는 말인데 전주에만 있는 술 문화라 궁금했다. 망설임 없이 황태포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큼지막한 황태포를 뜯어 특제소스에 푹 찍어 먹었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는 황태포도 좋았지만 매콤하고 짭조름한 맛의 특제소스가 술을 불렀다. 하지만 무엇보다 훌륭한 안주는 선선한 밤공기라는 생각을 하며 깊어가는 밤을 즐겼다.

전일슈퍼에서는 살이 부드러운 납작한 황태포를 연탄불에 바로 구워 특제 양념과 함께 낸다. © 김재욱
전일슈퍼에서는 살이 부드러운 납작한 황태포를 연탄불에 바로 구워 특제 양념과 함께 낸다. © 김재욱
SECOND DAY

BREAKFAST — 비 오는 날엔 뜨끈한 콩나물국밥

어제의 화창한 날씨와 달리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보슬보슬 가볍게 내리는 봄비였다. 지난밤 술을 마시기도 해서 따뜻한 국물을 마시고 싶어졌다.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은 그 맛에 손님들이 벌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왱이집’이라고도 부른다. 먼저 수란 먹는 법을 배웠다. 수란에 국물을 몇 수저 붓고 김 한 봉지를 다 찢어 넣는다. 그리고 반숙을 섞어 먹는다.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콩나물국밥을 먹기 전 입맛을 돋워주었다. 이곳은 식은 밥과 삶은 콩나물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가 따라내어 덥히는 토렴 방식으로 끓인다. 그래서인지 콩나물은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었고 바로 먹어도 입천장이 데이지 않을 정도로 알맞게 뜨끈했다. 모주도 한사발 곁들였다. 막걸리에 각종 약재를 넣고 끓이는데 만드는 사람마다 레시피가 달라 그 맛이 다양하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대부분 날아가 도수가 거의 없다. 왱이집의 모주는 달큰하면서 약재의 향이 은은하게 느껴져 좋았다.

왱이집의 콩나물국밥은 바로 먹기에 알맞은 정도로 뜨끈하다. © 김재욱
왱이집의 콩나물국밥은 바로 먹기에 알맞은 정도로 뜨끈하다. © 김재욱

계속 비가 내렸다. 따뜻한 음료로 몸을 녹이고 싶어 식당 옆에 있는 삼양다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1952년에 문을 연 삼양다방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이다. 과거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전시를 열거나 모임을 가졌던 살롱문화가 담긴 곳. 쌍화차를 한 잔 주문했다. 다른 테이블에는 단정한 차림새의 할아버지가 신문을 읽고 있었다. 커피 2스푼, 프림 2스푼, 설탕 3스푼이 들어간 일명 다방커피를 마시러 오는 분이 많다고 했다. 뜨겁게 끓인 쌍화차에는 달걀노른자가 동동 띄워져 있었다. 우선 대추, 각종 견과류와 함께 진한 차맛을 즐 겼다. 반쯤 마셨을까, 반숙으로 익은 달걀을 호로록 들이켰다. 뜨끈한 쌍화차에 달걀노른자를 마시고 나니 으슬으슬하던 기운이 가시고 힘이 났다.

옛날 다방 인테리어 그대로인 삼양다방에서는 옛날커피, 쌍화차 등을 즐겨보자. © 김재욱
옛날 다방 인테리어 그대로인 삼양다방에서는 옛날커피, 쌍화차 등을 즐겨보자. © 김재욱

한옥마을을 벗어나 조금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건지산에 있는 편백나무 숲이다. 사람 키를 훌쩍 넘어 울창하게 솟은 편백나무 사이에 들어서니 비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촉촉한 공기를 머금은 흙내음이 기분 좋게 퍼졌다. 숲속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나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폭신한 흙을 밟으며 산책 하다 보니 이곳이 전주라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숲에 취해버렸다. 언덕을 넘자 작은 도서관이 보였다. 한쪽 면이 전부 유리로 되어 숲속의 운치가 한 폭의 그림 속에 담긴 듯했다. 이곳을 매일 같이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편백나무 숲에서 보내고 나자 간식이 당겼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옛날땡땡이상추 튀김에 가서 상추튀김, 떡볶이, 순대를 주문했다. 20년 넘게 전북대 앞을 지켜온 24시간 분식집이다. 상추에 튀김을 싸먹도록 한 것이 이곳의 인기 비결. 오징어튀김을 하나 집어 간장에 찍고 상추에 싸먹었다. 튀김만 먹을 때보다 먹기에 부드럽고 맛이 산뜻했다. 줄곧 이곳을 운영해온 유근숙 대표는 전북대 학생들과 각별하다. “학생이었던 손님들이 결혼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올 때가 많아요. 참 신기하고 반갑죠. 원래 포장마차로 시작한 곳이라 가게를 열고도 이름이 없었어요. 그런데 전북대 학생들이 땡땡이집이라는 별명을 짓고 포장마차 였던 옛날 그 집이라고 불러 옛날땡땡이상추튀김이 됐죠.” 신기하게 평소보다 많은 양의 튀김을 먹었는데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편안했다.

울창한편백나무숲에 들어서면 영화 속에 들어온 듯 아름다운 풍경에 잠기게 된다. © 김재욱
울창한편백나무숲에 들어서면 영화 속에 들어온 듯 아름다운 풍경에 잠기게 된다. © 김재욱

LUNCH — 줄서서 먹는 초밥 가게

요즘 전주에서 가장 핫한 초밥집인 곰초밥을 찾아 나섰다. 오픈 시간이 지나면 길게 줄을 서서 먹어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갔다. 모듬초밥은 연어, 도미, 참치, 단새우 등 숙성한 회가 두툼하게 올려져 나왔다. 한입에 넣자 부드러운 살이 금세 녹듯이 사라졌다. 표고버섯과 유부 건더기가 듬뿍 들어간 우동은 칼칼해서 초밥과 함께 먹기 개운했다. 가성비가 좋은 곳이었다. 식당이 있는 동네는 웨딩의 거리로 불리는 곳이라 드레스 가게와 리빙 숍이 모여 있었다. 리빙 숍의 쇼윈도를 구경하면서 한옥마을로 걸어갔다.

숙성한 회가 두툼하게 올라간 곰초밥의 모듬초밥 1인 세트. © 김재욱
숙성한 회가 두툼하게 올라간 곰초밥의 모듬초밥 1인 세트. © 김재욱

계속해서 전주의 트렌드를 살피기로 했다. 재미있는 가게가 많이 생기고 있다는 서학동 예술마을이다. 한옥마을을 지나 남천교만 건너면 되니 걸어서 갔다. 사실 한옥 마을을 걷다보면 길거리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믹스밥에서 비빔밥크로켓을 하나 사서 남천교에 있는 정자 청연루에 앉아 먹었다. 바삭한 튀김과 매콤한 비빔밥은 예상했던 대로 잘 어울렸고 정자 청연루는 멀리서 바라볼 때보다 이렇게 앉아 강을 내려다보는 운치가 좋았다.

서학동을 구경하는 법은 따로 없다. 서학아트스페이스, 서학동사진관 등 걷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곳에 들어가 보면 된다. 조지오웰의 혜안이라는 재미난 이름의 가게는 책방이었다. 조지오웰을 탐독하는 주인이 인문학 도서를 소개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이 있고 이따금 인문학 모임이나 문학 세미나도 열린다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책방 주인장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녀가 고른 책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져서 책장을 엿보듯 구경했다. 비가 조금 세게 내리기 시작해서 서학아트스페이스로 향했다. 1층은 카페, 2층은 갤러리다. 에스프레소콘파냐를 주문하니 직접 빚은 도자기 잔에 생크림이 소복하다. 달콤한 생크림이 먼저 폭신하게 입술에 닿고 씁쓸한 커피맛이 더해지니 디저트가 아쉽지 않았다.

인문학 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꽂힌 책들을 둘러보자면 독서욕이 샘솟는다. © 김재욱
인문학 서점 조지오웰의 혜안. 꽂힌 책들을 둘러보자면 독서욕이 샘솟는다. © 김재욱

비오는 전주를 돌아보는 것도 나름의 운치가 있어 전주향교에도 가보기로 했다. 다시 남천교를 건넜다. 한복을 입은 사람들로 붐비는 경기전과 달리 전주향교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향교는 지방에 있는 양반 자제들의 유학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본래 경기전 옆에 있다가 경전을 외거나 회초리를 맞는 소리가 태조의 영령을 편안히 모실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됐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한옥마을의 안쪽에 자리한 향교가 조용하다. 향교에 들어서면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있다. 일부러 벌레를 타지 않는 은행나무를 심어 나중에 공직에 나가서도 바르고 깨끗하게 살아가라는 교훈을 가르쳤단다. 세월에 따라 독특한 형태로 자리한 은행나무는 확실히 눈길을 사로잡으니 그 교훈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는데 고즈넉한 분위기와 널찍한 처마, 커다란 은행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당장이라도 문 밖으로 유생들이 걸어 나올 것만 같았다.

향교 뒤편에 있어 걸어서 10분 거리인 자만벽화마을을 들러보기로 했다. 어제 커피를 마시며 내려다보았던 한옥마을의 풍경이 기억나 높은 곳에 오르고 싶었다. 자만벽화마을은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벽화들을 구경하면서 슬슬 걸어 올라가기 좋은 높이였다. 올라가는 길에 작은 카페와 가게들이 있었다. 성냥 가게 당각에 들어가니 삼양다방에서 보았던 육각성냥부터 일본과 미국에 서 가져온 독특한 프린트의 성냥을 판매했다. 가격대는 1000원 부터 시작해 만원을 넘는 것이 없다. 여행기념품으로 무엇을 구입할지 고민하던 차에 선물이 될 만한 예쁜 성냥을 몇 개 골랐다.

경사가 완만해 가볍게 둘러보기 좋은 자만벽화마을. © 김재욱
경사가 완만해 가볍게 둘러보기 좋은 자만벽화마을. © 김재욱
고즈넉한 분위기의 전주향교는 천천히 산책하듯 시간을 보내기 좋다. © 김재욱
고즈넉한 분위기의 전주향교는 천천히 산책하듯 시간을 보내기 좋다. © 김재욱

DINNER — 옛날 포장마차에서 파는 맛

진미집은 전국에 너무 많아 상호 등록이 되지 않는 가게 이름 중에 하나다. 하지만 전주에서 유명한 진미집은 두 곳이다. 각각 돼지고추장불고기와 메밀소바를 파는 곳이다. 저녁은 고기를 배불리 먹고 싶었다. 자만벽화마을에서 택시를 타고 중앙시장 쪽 진미집으로 가달라고 말하니 5분 만에 도착했다. 포장마차로 시작한 이곳은 가게 형태로 바뀐 지금도 옛날 포장마차식으로 맛을 낸다. 가격도 그대로다. 우선 돼지불고기를 주문했다. 빨간 양념이 무쳐진 돼지의 등심과 삼겹살 부위를 주문이 들어간 즉시 연탄불에 구워 돼지불고기 한 접시가 나왔다. 그리고 김밥 한 접시, 깍두기, 어묵국이 전부. 단출하지만 상 위에 있는 재료를 하나씩 얹어 쌈을 싸먹으니 맛이 좋았다. 다른 음식도 궁금해 오징어볶음을 주문했다. 과하지 않은 매콤함이 이 집의 매력인 듯했다. 불맛이 느껴지니 자극적으로 양념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이 났다. 야들야들한 고기 한 점이 먹고 싶을 때 진미집이 다시 생각날 것 같았다.

주문과 동시에 연탄불에 구워주는 진미집의 돼지불고기. © 김재욱
주문과 동시에 연탄불에 구워주는
진미집의 돼지불고기. © 김재욱

밖으로 나오니 주변이 제법 어두워져 있었다. 야시장을 구경하러 10분 정도 걸어 남부시장에 갔지만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열린다는 아쉬운 소식을 접했다. 대신 2층으로 올라가니 상시 운영 중인 청년몰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남부시장에 젊은 상인을 수혈해 활기를 띠게 하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문화를 통한 전통 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 프로젝트로 시작된 곳이다. 보드게임방 같이놀다가게, 페루 문화를 소개하는 가게인 아모르페루아노 등 기존의 전통시장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콘셉트의 가게가 눈에 띄었다. 청년몰은 가게마다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다 다르다고 하니 꼭 가고 싶은 가게가 있다면 미리 시간을 체크해보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하루 종일 비가 온 탓인지 밤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청년몰을 나서려다가 자그마한 바가 보여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바, 차가운 새벽은 메뉴판이 없는 칵테일 바다. 대신 원하는 칵테일이나 맛, 향 등을 말하면 그 자리에서 만들어준다. 시그너처 메뉴가 하나 있는데 바텐더가 베일리스를 넣고 직접 만든 술 아이스크림에 원하는 리큐어를 얹어 먹을 수 있도록 한 ‘어른의 아이스크림’이다. 쑥, 벚꽃, 밤 등 리큐어 종류를 다양하게 보유한 곳이라 독특한 풍미를 경험해볼 수 있다. 어떤 리큐어를 곁들이느냐에 따라 도수가 달라진다는 것도 재미있다. 초콜릿 리큐어를 아이스크림에 살짝 부어 한 술 떴다. 위에 뿌려진 캐러멜 토피는 쫀득하고 아이스크림과 리큐어 속의 알코올이 쌉싸래하면서도 달콤하게 어우러졌다. 여행을 마치고도 이곳이 떠오를 만큼 인상적인 것으로 두 번째 잔을 부탁했다. 드래곤스브리드라는 이름의 술이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독한 폴란드 보드카 스피리터스가 들어갔다고 했다. 96도의 알코올을 품은 작은 술잔이 신비롭게 반짝였다. 한 번에 쭉 들이켰다. 뜨겁고 강렬한 맛이었다. 잠시 후 살짝 취기가 돌았다. 11시에 영업이 끝난다니 바의 이름처럼 차가운 새벽에 이곳을 나설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어떤 술을 마시게 될 지 모르는 청년들의 칵테일 바 차가운 새벽. © 김재욱
어떤 술을 마시게 될 지 모르는 청년들의 칵테일 바 차가운 새벽. © 김재욱

대신 남부시장 1층에 있는 조점례남문피순대에서 피순대를 한 접시 먹기로 했다. 이곳의 피순대는 돼지 피보다 각종 채소와 고기를 더 많이 넣는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보니 피순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만했다. 옆 테이블에서 혼자 순대국밥을 먹고 있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조점례 대표의 남편이었다. 순대국밥의 맛이 어떤지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먹어본다고 하셨다. 이곳이 40년 넘게 남부시장을 대표하는 식당인 비결을 알 것도 같았다.

THIRD DAY

BREAKFAST — 시원한 메밀소바로 아침을

날이 다시 화창하게 개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숙소 가까이에 있는 또 다른 진미집으로 향했다. 50년 가까이 된 남천교 근처의 진미집이다. 메밀소바와 메밀콩국수를 주문했다. 냉면 그릇에 푸짐한 양이 담겨 나왔다. 무즙은 나오지 않는다 하여 파와 김, 와사비를 곁들였다. 깔끔하고 시원한 맛. 다음으로 곱게 간 콩국물에 얼음이 동동 띄워진 콩국수를 맛봤다. 간이 알맞아 다른 것을 넣지 않아도 되었다. 전주 사람들은 설탕을 넣어 먹는다고 했다. 반쯤 먹었을 때 설탕을 더해 먹으니 그것대로 맛있었다. “메밀면은 너무 쫄깃하게 만들면 차가운 국물과 먹을 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렇다고 너무 풀어지지도 않게 적당한 찰기로 만들어야 맛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의 레시피를 이어받은 손자가 진미집의 비결을 들려주었다. 그가 직접 끓인 모주도 맛봤다. 달콤하고 시원한 세 가지 국물을 차례로 맛보고 나니 찌뿌드드한 기분이 가셨다.

메밀소바와 메밀콩국수로 알려진 남천교 근처의 진미집은 푸짐한 양도 인상적이다. © 김재욱
메밀소바와 메밀콩국수로 알려진 남천교 근처의 진미집은 푸짐한 양도 인상적이다. © 김재욱

전주에도 전주한옥레일바이크가 새로 생겼다고 하여 타러 가기로 했다. 폐선된 구간인 아중역을 레일바이크로 만든 곳이다. 아중역까지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10분쯤 걸려 도착했다. 눈으로는 잘 알아차릴 수 없는 경사면이라 가는 길은 조금 힘이 들었다. 뒤에서는 신이 난 초등학생 여럿이 따라잡을 듯이 쫓아와 페달질을 쉴 수 없었다. 그나마 이따금씩 나란히 지나가는 KTX를 구경할 때 페달을 쉬었다. 다행히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페달을 많이 돌리지 않아도 저절로 속도가 붙었다. 갈 때의 고생이 깨끗이 씻겨 나가는 상쾌함이었다.

KTX로 폐쇄된 구간을 레일 바이크로 만들었다. 구간의 길이가 적당해 적은 인원이 탑승해도 힘들지 않다. © 김재욱
KTX로 폐쇄된 구간을 레일 바이크로 만들었다. 구간의 길이가 적당해 적은 인원이 탑승해도 힘들지 않다. © 김재욱

LUNCH — 전주에서 맛보는 진짜 한정식

모처럼 땀을 내 운동을 하고 나니 정말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한옥마을에 위치한 한정식집 궁은 지난해 궁중 음식 명인으로 선정된 유인자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채광이 아름다운 세련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이곳에서라면 무엇을 먹어도 기분 좋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상, 진상, 미상 세 가지 상차림 중에 고르도록 되어 있는데 진상을 선택했다. 기본 찬이 나오고 타락죽을 시작으로 단호박밀쌈, 두텁떡, 냉채와 해물파전, 홍어삼합, 석류만두, 광어회야채무침, 신선로, 우럭탕수 등 다채로운 요리가 차례로 고운 유기그릇에 담겨 나왔다. “전주는 산과 바다가 가까운 집산지라 좋은 산물이 많아요. 그래서 다양하게 해먹으면서 음식 문화가 발달했죠. 또 조선을 세운 전주 이씨 본가로 왕족이 먹었던 음식이 자연스럽게 전파된 곳이기도 해요.

사치스럽게 느낄 수도 있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이는 궁중 음식과 맥이 같죠. 손이 많이 가지만 아름다운 모양새를 함께 즐기도록 만들어요.” 전주에서의 첫날 전주 비빔밥을 먹으며 느꼈던 즐거움이 다시 떠올랐다. “전주 요리의 매력은 섬세함이에요. 타락죽 하나를 끓일 때도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녹두와 땅콩을 써요. 또 간을 맞추는 것 못지않게 온도가 중요해요. 차가운 요리는 차갑게 내고 뜨거운 요리는 뜨겁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거요.” 유인자 명인이 직접 요리 하나하나에 들어간 정성을 설명해주니 입안에서 그 맛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했다. 보통 디저트로 나오는 떡이 코스 요리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것이 특이해 물었더니 “정성껏 만든 맛있는 두텁떡을 배부른 상태에서만 즐기시는 것이 아쉬워서”라고 했다. 음식을 먹는 순서에도 맛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전생에 나라를 세운 것도 아닌데 극진한 상차림을 대접받고 나니 사극 속에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궁에서 아름답게 차려낸 전주 한정식을 맛보고 나면 그 섬세하고 풍성한 맛에 한식이 달라 보일 것이다. © 김재욱
궁에서 아름답게 차려낸 전주 한정식을 맛보고 나면 그 섬세하고 풍성한 맛에 한식이 달라 보일 것이다. © 김재욱

나와서 10분 정도 걸어 경기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더 스토리 카페에 갔다. 자연광이 드는 커다란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경기전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수제 초코케이크를 천천히 포크로 베어 먹었다. 폭신한 식감에 너무 달지 않은 케이크였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때 더 예뻤다. 태조로 끝까지 10분 정도 걸어 오목대에 올라갔다. 황산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돌아가던 이성계 장군은 이곳 작은 언덕에서 승전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조선왕조를 개국한 뒤에 지은 정자가 오목대다. 오목대에 오르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태조로 끝인 한옥마을 쪽에서 계단을 오르거나 오목교를 통해 가는 것. 오목교를 통하는 편이 경사면이 덜해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대신 한옥마을 쪽으로 가면 오르며 구경할 수 있는 경치가 있어 좋다. 늦은 오후, 오목교에 올라보니 한옥의 아름다운 지붕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 이틀간 나의 발걸음이 닿은 곳들은 어디일까 가늠해보며 전주를 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아직 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빵집 맘스브레드에 들렀다. 오징어먹물빵과 튀김소보로, 모주단팥 빵이 유명하다고 하여 몇 개를 집었다. 아기궁뎅이라는 이름의 흰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폭하고 바람이 빠지면서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이 입속으로 밀려들었다. 한옥마을을 뒤로 하고 떠나는 길, 해질 무렵의 붉은 하늘이 전동성당의 화강암 벽을 더욱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걷고 또 걷고 산책하듯 여행한 전주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지만 머릿속에서는 전주의 풍경이 선명하고 아름답게 포개져 있었다.

전주에만 있는 맛있는 빵집을 찾고 싶다면 맘스브레드에 들러야한다. 오징어먹물빵과 튀김소보로가 가장 많이 팔린다. © 김재욱
전주에만 있는 맛있는 빵집을 찾고 싶다면 맘스브레드에 들러야한다. 오징어먹물빵과 튀김소보로가 가장 많이 팔린다. © 김재욱
한옥마을의 시작과 끝은 경기전에서 오목대까지 이어지는 태조로다. © 김재욱
한옥마을의 시작과 끝은 경기전에서 오목대까지 이어지는 태조로다. © 김재욱

edit 김주혜 — photograph 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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