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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국수 @정용준

2016년 5월 18일 — 0

Dear. H

고마워요. 이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편지를 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표현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 이렇게 연필을 듭니다. 이 편지는 삶을 정리하는 유서가 아닙니다. 죽기 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회환에 젖거나 비참한 내 처지에 관해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다만, 오랫동안 나를 위해 애써주고 마지막 식사까지 대접해준 당신께 어떻게든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식사라니, 그런 건 됐습니다.’ 집행 날짜가 정해지고 담당 교도관 피터는 줄곧 마지막 식사 메뉴를 정하라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일관되게 그것을 거절했죠. 호들갑 떨며 죽고 싶지 않습니다. 이게 마지막이로구나, 그런 감상에 젖어 복잡한 심정으로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요. 낭만적인 기분에 취해 자기 연민이라는 바다에 빠져 음식을 씹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그게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이라면 더더욱 싫습니다. 이런 생각은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요. 마지막이니까 먹고 싶은 음식이라도 원 없이 먹어보고 죽으라는 건가요. 그런 작은 호의를 베풀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사람은 죽는 이가 아니라 죽어가는 이를 바라보는 사람일 겁니다. 그토록 야만적인 생각을 아주 인간적인 것처럼 여기며 자상한 얼굴로 설득하는 피터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수감 내내 겪은 그 어떤 수치와 수모보다 견디기 힘든 종류의 치욕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테네시Tennessee에서 아시아인으로 산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어딜 가나 소외받고 배척당했어요. 바로 곁에 멀쩡하게 서 있어도 조롱하고 놀려댔습니다. 그들은 내가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헝겊인형이라도 되는 듯 없는 사람 취급 했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나 역시 저항하거나 어필하지 않고 고요히 지내왔으니까요. 아이러니한 일이네요. 이전에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관심을 교도소에서 받고 있다니.

편지에 적혀 있는 당신의 모습. 매일의 일과,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때의 감정과 그것을 느끼는 감각, 이 모든 것들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당신의 언어. 아, 그 독특한 표현들. 당신을 읽어가는 것이 어느새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책들은 모두 헌책이었어요. 책장이 해지고 빛이 바랬긴 했지만 당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책은 새 책보다 훨씬 귀하고 빛이 났습니다. 좋은 문장엔 희미한 밑줄이 그어져 있었는데 놀랐습니다. 당신이 좋다고 여긴 그 문장이 내게도 좋았기 때문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H 당신이 궁금해졌습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게 이렇게 잘 해주는 걸까요. 그리고 마음 깊숙한 곳에선 묘한 불안을 느꼈습니다. 어찌하여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언급도 하지 않는 걸까…. 그것은 내 죄를 문제시 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자의 태도라기보다 결코 문제 삼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처럼 느껴졌어요. 그런 당신이 내게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원했습니다. 마지막 식사를 대접하게 허락해달라고요. 그것이 무엇이든 꼭 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바꿨습니다. 피터에게 마지막 식사를 먹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건 순전히 H, 당신 때문입니다.

어떤 음식을 고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40달러 선으로 메뉴를 고르라고 하더군요. 먹고 싶은 음식이라…. 벽에 등을 기대고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질 좋은 송아지 고기를 먹고 싶기도 했고 햄버거와 콜라 생각도 나더군요. 깔끔하게 물이나 한 잔 마실까도 했습니다만 결국 결정을 내리고 피터에게 말했습니다. ‘국수입니다.’ 생선으로 맑게 국물을 우려낸 한국식 국수라고 부연 설명을 하면서 내심 당신이 그것을 준비할 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내 예상은 틀렸어요. 지금 눈앞에 놓여 있는 국수는 내가 생각했던 그 국수가 맞습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반쯤은 두려운 마음으로, 국수를 물끄러미 내려봤습니다. 속이 비치는 맑은 국물 속에 돌돌 말린 하얀 소면이 정갈하게 잠겨 있습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생전 처음으로 어떤 대상을 향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느꼈습니다. 경건하고 고요하게 정신이 정화되는 듯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참 묘하더군요. 두 손으로 그릇을 붙잡고 국물을 한 모금 마셨습니다. 손끝이 덜덜 떨릴 정도로 놀랐습니다. 나는 이 놀람과 떨림을 스스로 멈출 수 없었습니다. 국수를 먹는 내내 숨이 찼고 턱이 덜덜 떨려 계속 이빨이 탁탁 부딪쳤습니다. 피터는 그런 내 모습을 동정하는 눈길로 바라봤습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 잘 알기에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맘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았어요. 그 순간엔 도저히 평정심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충격을 받았거든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갑자기 심박수가 빨라졌습니다. 관자놀이에서 툭툭 날뛰는 피 소리가 들릴 정도였죠. 진정을 해보려 길게 호흡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는데 허사였습니다. 난 진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토록 맛보고 싶었던 바로 그 맛이었어요. 다시는 먹을 수 없는 그 맛이었습니다. 때문에 나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소름 끼침을 한꺼번에 느끼게 되었죠. 그리고 펜을 들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내가 저지른 행위를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내가 한 일입니다. 살인을 저지를 때 나는 제정신이었습니다. 약도 하지 않았고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이길 수 없는 어떤 감정에 휘둘리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차분했고 분명하게 그 일을 꼼꼼하게 행했어요. 하지만 그것이 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품에서 죽은 그녀도 원한 일이었고 나는 그녀의 뜻을 따른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한 일은 나의 악함도 아니고 나 때문에 그녀가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 한 일이고 우리가 함께 겪은 행복한 경험입니다. 심리학자들과 종교인들은 내게 반성을 요구하고 뉘우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와 설득을 나는 거부했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어요. 내가 한 일은 나쁜 짓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국수를 먹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따뜻한 국물을 한 모금씩 마시고 얇고 부드러운 면을 씹을 때 무언가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틀어막아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째서인지 울고 싶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싶어졌고 고개를 숙이고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싶어졌습니다. 혹시 당신은 마침내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도록 마지막 식사를 준비한 것 아닌가요.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H.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이니셜의 첫음절이 H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늘 답장을 쓰고 싶었어요. 마지막 식사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도 내내 기억하겠습니다.

From. J

© 박요셉
© 박요셉

— P.S
곱게 접었던 편지를 다시 폈습니다. 한 문장을 더 써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당신의 이름은 모르지만 어쩐지 얼굴은 알 것 같습니다. 국수를 맛보고 내가 갑자기 혼란을 겪은 것은 특유의 맛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해준 맛과 똑같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맛있는 국수였습니다. 그녀는 그 국수를 어머니께 배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갑을 열어 루비폴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죠. 뒤에서 그녀를 꼭 껴안고 있는 여자의 미소는 환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아름답구나. … 무슨 말을 더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당신이 내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지, 무슨 마음으로 이러는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정용준은 1981년 광주 출생이다. 2009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굿나잇, 오블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가나>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장편소설 <바벨>이 있다. 2011년, 201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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