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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소래섭

2016년 5월 11일 — 0

미식이 몸이 아니라 마음에 좋은 음식을 뜻한다면 나는 ‘미식가’라고 자처한다.

© 심윤석
© 심윤석

음식에 관한 책을 냈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미식가세요?” 선택지가 둘뿐인 질문인데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질문은 간단하지만 미식의 의미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한자 ‘미美’에는 아름답다는 뜻과 더불어 좋다와 맛있다는 의미도 있다. 일반적으로 미식美食의 ‘미’는 맛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때 ‘미식가’란 감식력이 뛰어난 미각을 갖추고 있거나 맛난 것에 탐닉하는 사람을 의미할 터인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미식가가 아니다. 내가 추천한 음식점에 들렀던 이들이 가끔 음식 맛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것을 보면 내 미각은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만큼 섬세하거나 고급스럽지는 않은 듯하다. 평범한 수준을 넘을 만큼 식도락을 즐기지도 않으니 미식가라고 자처하기에는 여러모로 함량 미달이다.

미식이 아름다운 음식을 가리킬 경우에도 나는 미식가로서 자격 미달이다. 아름답다는 말은 예쁘고 고운 것을 이르므로 아름다운 음식이란 모양과 빛깔이 고운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한 폭의 명화를 보는 것처럼 자태가 고운 음식은 먹지 않아도 사람을 흥분시킨다. 그러나 나는 음식의 겉모양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보기 좋은 것이 맛도 좋다는 말도 있지만, 보기 좋지 않은 것들 중에도 맛있는 것은 널렸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름다운 치장과는 거리가 먼 것이 대부분이다. 김치찌개와 간장게장과 곱창구이를 꾸며본들 거기서 거기다.

미식이 좋은 음식을 뜻한다면 약간 고민해야 한다. 어디에 좋은 것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먼저 그것이 몸에 좋다는 뜻이라면 나는 반쯤만 미식가다. 살자고 먹는 것이니 음식은 몸에 이로워야 한다. 몸에 이로운 음식을 먹자면 재료의 생산 방법과 신선도는 물론 조리법과 포함된 영양소 등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매 끼니마다 그런 것들을 따지지는 않지만 신경을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조미료가 가득한 인스턴트 음식이나 추억이 깃든 불량식품을 찾는 걸 보면 온전한 미식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미식이 몸이 아니라 마음에 좋은 음식을 뜻한다면 나는 미식가라고 자처한다. 음식에 마음이 깃들어 있고, 그래서 음식은 마음을 전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그 마음을 음미하면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은 시인 백석이었다. 예컨대 그의 시 속에 등장하는 국수에는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맛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고담하고 소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요즘의 소위 ‘먹방’에서는 음식의 맛과 모양과 영양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만, 백석은 음식에 담긴 마음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헤아리는 데 집중한다. 얼마 전 최고의 요리사 중 한 사람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성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마음으로 만들면 상대방한테 충분히 전달이 된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음식에 담긴 열량을 따지는 것보다는 그 음식에 깃든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내게는 한결 수월하다.

경우의 수가 하나 더 남았다. 만약 미식이 맛있고 아름다우며 몸과 마음에 두루 좋은 음식을 가리킨다면, 나는 완벽한 미식가다. 브리야사바랭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다. 음식은 우리를 만들고 변화시킨다. 고대의 전통에서 맛의 비결을 아는 것이 우주만물의 법칙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간주되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맛있고 아름다우며 좋은 음식을 먹으면 멋있고 아름다우며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모두 미식가라 불릴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미식가인지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미식가인 듯 미식가 아닌 미식가 같다고.

소래섭은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다. 1920~30년대의 문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다. 그 시대의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것들의 의미를 복원해내기 위해 한국 문학을 문화론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시인 백석의 시와 음식 이야기를 담은 <백석의 맛>을 비롯해 <18세기의 맛>(공저) <불온한 경성은 명랑하라> <시는 노래처럼> 등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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