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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의 비밀

2016년 5월 4일 — 0

어묵은 누가, 언제부터 즐겨 먹기 시작했을까, 튀긴 어묵은 정말 몸에 안 좋을까. 어묵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여기 있다.

© 양성모
© 양성모

무첨가를 내세운 어묵
“만약 정치인이 자신은 소박하다는 이미지를 과시하기 위해 길거리 간식을 먹는 증명사진 한 장을 찍는다면 그것은 순대나 호떡이나 떡볶이가 아닌 오뎅일 것이다.” 김찬별 작가가 자신의 책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을 통해 내놓은 예언이다. 그가 예상한 대로 4·13총선을 앞둔 각 당 정치 지도자들은 시장에서 어묵 꼬치를 집어 들고 자신들의 서민적 이미지를 보여주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들 중 한명이라도 직접 어묵을 사러 가본 사람이 있을까? 마트에 진열된 어묵을 보고 있노라면 의구심이 솟아오른다.
어묵과 정치인은 닮았다. 둘 다 깨끗함을 자랑하고, 공약 내걸기를 좋아한다. 어묵 중에는 무려 9가지 약속을 전면에 내세운 제품도 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 제품에서 내건 9가지 약속이란 천일염, 쌀, 생채소 3가지 국내산 원재료는 첨가하고 합성보존료, 산화방지제, 합성착색료 등 6가지 첨가물은 넣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건강한 제품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어묵 꼬치를 들고 먹방에 열심인 정치인들이 정작 마트의 어묵을 집어본 적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 대목에서부터다. 어묵 포장의 약속은 난해한 전문 용어로 가득하지만, 꼼꼼히 따져볼수록 신뢰하기 어려운 것들뿐이다(확실히 선거철 정치인들의 공약과 비슷하긴 하다).
합성보존료, 합성착향료, 산화방지제, 팽창제, 스테비올배당체, 정제염까지 모두 6가지 첨가물을 뺐다고 자랑하는 6무첨가 어묵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들 성분이 각각 무엇이며, 어떤 용도인지 알기 위해 백과사전을 찾아가며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저 옆에 놓인 다른 제품과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6무첨가 어묵의 위칸에는 새우향 합성착향료를 넣어서 만든 5무첨가 제품이 있고, 다시 그 옆에는 정제염이 들어있지만 소르비톨 성분을 빼서 6무첨가라는 어묵이 나란히 진열 되어 있다. 정제염, 합성착향료(새우향), 소르비톨은 어묵에서 빼야할 정도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인가? 세가지 어묵이 모두 같은 회사 제품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정제염은 빼고 천일염을 넣어 만들었다는 6무첨가 종합 어묵 겉면의 설명을 통해 보면 정제염이 나쁜 성분같지만, 정작제품에 함께 들어있는 어묵탕용 스프에는 정제염이 들어 있다고 큰 글씨로 표기되어 있다.
가벼운 과학 지식만으로도, 무첨가 약속의 공허함이 더 선명해진다. 소르비톨은 본래 과일과 채소에도 들어 있는 당알코올로, 어는점을 낮춰 어묵에 얼음 결정이 생기는 걸 방지한다. 요즘 어묵에 무첨가를 강조하는 산화 방지제 L-아스코르빈산나트륨은 항산화제의 대명사 비타민 C를 가리킨다. 비타민 C를 빼서 더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니 ‘둥근 사각형’과 다를 바 없는 형용모순이다.

어묵의 서민적 태생
정치인과 어묵에는 본질적 차이점이 존재한다. 아무리 고급스럽게 수식해도 어묵은 평범한 서민 음식이다. 어묵을 먹으며 애써 서민코스프레를 해도 정치인은 귀족이다. 이미지 변신을 꾀한다는 점만 같을 뿐 그 이면에 깔린 방향성은 정반대다. 부유층과 빈곤층 모두 자연적인 음식을 싫어했던 중세 유럽의 상황과 유사하다. 둘의 태도는 같았지만 이유는 달랐다. 당시 유럽의 부유한 귀족들이 자연적인 제철 음식에 무관심했던 것은 그들이 지역과 계절을 뛰어넘는 음식으로 신분과 지위를 과시하기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요리사로 이름을 날렸던 바톨로메오 스테파니Bartolomeo Stephanie의 기록처럼 ‘빠른 말(馬)과 두둑한 지갑’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하인을 말에 태워 남부 휴양도시의 채소와 과일을 사오도록 할 수 있는 재력가에게 계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서민층은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으로 싱싱한 제철 음식을 멀리했다. 음식을 자연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상하기 십상이라 소금에 절이고 굽고 찌고 말리고 훈연하는 식으로 가공하지 않고서는 식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었다. 생선은 특히 변질과 부패가 빠른 식품이다. 신선함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은 곧 가 공품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중국의 어단(Fish Ball)이 먼저인지, 일본의 가마보코가 먼저인지, 한민족도 어묵비슷한 것을 먹고 있었는지 아니면 일본의 가마보코를 받아들인 것인지 등 어묵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일본 기원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그 기원이 어디인지에 관계없이, 어묵이 서민의 발명품이었을 거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생선이 버려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사람이 귀족이었을 가능성은 낮으니 말이다. 결국 어묵은 태생부터 서민적인 음식이었던 것이다.
마트에서 어묵만큼 안전함을 강조하는 식품도 드물다. 어묵 포장 앞뒷면에는 깐깐함, 엄선한 재료, 깨끗한 공정, 정성과 정직을 강조하는 문구들은 물론 제조 방법을 단계별로 설명하는 친절한 그림까지 발견할 수 있다. 이 그림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쌓인 어묵에 관한 대중적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어묵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생선을 갈아서 만드는 어묵의 속성상 뭐가 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소규모 공장에서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제조했던 과거의 기억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어묵의 출생 배경에 있다. 역사 이래 식품 사기를 당하는 사람은 주로 빈곤층이었다. 가난한 서민의 영양식이던 어묵이 불량식품의 오명을 쓰는 이유는 어쩌면 필연적이다. 어묵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모두 가난했던 시절에 흰색보다는 회색빛에 가까운 어묵을 먹었기에 사람들이 의심을 거두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1980년대 말 대기업이 어묵 시장에 진출하는 빌미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위생 문제였다.

조리법의 차이가 어묵에 끼치는 영향
요즘 마트에 가보면 튀기지 않고 구운 어묵이 눈에 종종 띈다.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가공식품에 좋은 기름을 쓸 리가 없다는 불신이 깊기 때문이다. 어묵을 튀기는 과정에서 풍미와 보존성은 좋아지지만, 사실 어묵의 원조는 구운 어묵이다. 기름을 사용해서 튀기는 것 자체가 역사가 짧아 비교적 새로운 조리법이기 때문이다. 튀기는 과정에서 어묵에 흡수되는 기름이 어묵의 칼로리를 높이는 걸 걱정하는 사람에게 구운 어묵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단, 구운 어묵이 튀긴 어묵보다 건강에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 2012년 스페인 연구자들은 저명한 영국의학저널(BMJ)에 4만 명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발표했다. 올리브유나 식물성 기름으로 튀긴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특별히 심장병의 위험이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결과의 연구였다. 그러나 동일 학술지에 미국 연구자들이 2014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는 그 반대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에서 튀김을 즐겨 먹는 사람들 중 일부는 유전적으로 비만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의 어묵 소비량은 연간 200만 톤에 달하지만, 튀긴 어묵과 구운 어묵을 두고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연구한 자료는 아직 없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은 튀긴 어묵이 특별히 몸에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많이 먹을 경우에는 살이 찔 수 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매일같이 어묵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묵의 조리법보다는 어묵의 섭취량과 어묵에 어떤 음식을 곁들이는지가 건강에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변신을 위한 어묵의 시도는 성공적이다. 어묵으로 만든 국수, 바로 먹는 큐슈풍 어묵, 손으로 만든 느낌의 수제형 간식 어묵, 알래스카 명태산 어묵, 조기연육으로 만들었다는 어묵까지, 마트의 어묵은 정말이지 고급스러워지고 다양해졌다. 과거 길거리의 밀가루와 잡생선을 갈아 만들어 판 ‘오뎅’과는 격이 다른 고운 빛깔의 어묵은 그냥 먹어도 부드럽다. 그래도 뭔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지는 시장과 길거리의 어묵 때문이다. 서로 정통을 내세우는 마트 어묵을 보고 있자면, 마치 가난한 배경에서 성공한 정치인이 부자들 편에 선 것처럼 그 모습이 어색하다. 정치인이든 서민이든, 기왕이면 어묵은 길을 걷다가 멈추어 생각하며 이야기하며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text 정재훈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dit 권민지 — photograph 양성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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