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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박정배

2016년 4월 1일 — 0

미식의 의미는 무엇일까. 미식은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복합체와 같다.

© 김재욱
© 김재욱

세상에 같은 음식은 없다. 음식이 공정한 적도 없었다. 아담이 이브에게 사과를 건넨 후 음식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맛을 탐하려는 노력들과 생존을 위한 에너지로서의 음식은 지금까지도 대치 중이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은 조선 최고의 미식가였다. 그는 변산 유배 중 바닷가에서 상한 생선이나 감자, 들미나리 같은 생존용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고향 강릉의 방풍죽 같은, 그의 미각을 결정한 미식을 그리며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글을 썼다. 이 조선 최초의 미식비평서 서문에는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음식에 대한 허균의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글이다. 이 글은 <맹자>에도 나오는데, 맹자가 한 말이 아니라 고자告子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사회지배층이었던 유학자들은 미식에 관심이 많았다. 고려 말 대학자 이색李穡의 음식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정약용, 이덕무 같은 조선을 관통한 천재들은 한결같이 방대한 양의 음식글을 남겼다. 이색은 말년에 돈이 없어 청주 대신 막걸리밖에 마실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고, 정약용은 여름이면 일본에서 들여온 소면을 먹었다. 하지만 쌀밥, 고깃국, 젓갈, 김치 같은 한국인의 일상식이 일반 사람들의 밥상에 오른 건 19세기 넘어서였다. 지배층의 미식이 생산력의 발달, 외식의 태동, 운수의 혁신에 의해 서민의 식탁으로 확대되고 재생산되었다. 미식과 대식大食은 가진자들의 특권이었고 비만은 부자들의 상징이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농업 대국에서는 일찍이 상류층을 중심으로 미식이 발전했지만, 재료가 나지 않는 북유럽과 영국은 미식을 죄악으로 분류했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의 세계관이 지배하던 영국에서는 탐식貪食을 지옥에 갈 7죄 중 하나로 꼽았다.

20세기 들어 생산력과 저장력, 유통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경제와 생리의 해결이라는 음식의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식에 대한 관심도 일상화됐다. 최상의 식재료와 최고의 기술을 가진 요리사, 식사의 구성이 체계화되면서 미식은 우아한 예술로 자리 잡았다. 겨울 오마산 참다랑어의 뱃살로 만든 스시지로의 오도로 스시 한 점은 10만원을 훌쩍 넘긴다. 자연에서 난 최상의 재료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부자들의 식탁에 오른다. 반대로 공산품처럼 만든 돼지와 닭, 곡물들은 부패하지 않게 첨가물로 가공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량으로 소비된다. 넘쳐나는 칼로리 덕에 가난한 사람들의 몸은 비대해졌고, 비만은 빈자貧者들의 상징이 되었다. 패스트푸드가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이 됨에 따라 몇몇 사람들은 대안으로 슬로푸드를 외치기 시작했다. 슬로푸드 운동은 자신의 땅에서 제철에 난 흔한 식재료들로 만든 소박한 음식을 먹자는 것으로 이탈리아에서 탄생했다. 세계 미식의 기준이 되었던 프랑스에서는 1960년 20세기 초 에스코피에가 만들어놓은 강력한 음식의 문법에서 해방되자는 누벨 퀴진이 일어난다. 철학은 슬로푸드와 거의 같다. 주변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한 소박한 음식이 맛있고 몸에 좋다는 것이다. 유럽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은 대도시보다 작은 전원에 더 많다. 그 땅에서 난 재료로 그 땅의 미각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세계에서 미슐랭 별을 제일 많이 받은 조엘 로부숑은 한 접시에 세 가지 맛 이상을 표현하지 않는다. 복잡한 세상에 사는 현대인들이 간단한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요리사들은 대개 자신의 음식 기반은 어머니의 음식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음식을 만들 때 어머니의 음식에서 만들어진 기억을 더듬어가며 완성한다. 어느 어머니라도 자식의 음식을 만들 때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을 위해 최상의 재료를 고르고 평생 부엌에서 익힌 일생의 기술을 이용해 혼을 담는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농경 중심 사회였던 대한민국에서 음식의 중심은 외식이 아닌 집밥이었다. 1960년대 들어 도시화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한국의 외식 산업은 빠르게 발전한다. 할머니, 어머니의 손맛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중식과 일식, 서양 음식이 한식이 제자리를 잡기도 전에 우리의 입맛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었다. 1960년대 일본으로 돼지고기 정육 수출이 본격화되면서 돼지머리와 등뼈, 다리, 돼지 피가 저렴한 가격에 대량 유통되었다. 장충동의 족발 골목과 왕십리의 곱창, 신림동의 순대와 돈암동의 감자국 골목은 이를 기반으로 성장했고, 도시로 몰려든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것을 먹으며 살았다. 1963년의 쌀 부족으로 본격화된 분식장려운동은 밀가루 음식의 대중화를 가져왔다. 대한민국의 대중적인 외식은 정치 경제 사회의 구조적 환경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생존 음식에도 엄연한 미식이 존재했다. 사람들은 결국 맛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음식이 풍부해지면 사람들은 맛의 질로 관심을 돌린다. 미식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틀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가장 먼저 접하는 가족 음식에 커다란 영향을 받지만, 맛은 언제나 상수常數이자 정점이다. 하지만 음식은 언제나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다. 내 혀와 코와 뇌와 식도와 위장만이 자신의 미식을 온전히 기억한다.

© 박정배
© 박정배

박정배는 푸드 칼럼니스트다. <쿠켄> <조선일보> <주간동아> 등의 매체에 오랫동안 음식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 <음식강산> 시리즈를 출간했으며, 대한민국의 음식 문화를 발로 뛰며 취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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