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후 셰프는 지금까지 경험하고 기억했던 것들을 그만의 스타일로, 그리고 제로컴플렉스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다. 이런 그의 요리를 네오비스트로Neo-Bistro라고 한다.

한국의 첫 네오비스트로
프렌치 레스토랑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순간적으로 음식과 인테리어, 서비스는 당연히 최고급이며, 스타 셰프가 있고 드레스 코드까지 지켜야 하는 그랑 메종Grand Maison(파인다이닝)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한식도 백반, 한정식, 선술집, 모던 한식 등 다양한 종류가 있듯 프렌치 레스토랑 역시 수많은 종류가 있다. 최근 프랑스의 미식 트렌드는 비스트로의 편안한 분위기에서 가스트로노미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비스트로노미, 비스트로노미를 펍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가스트로펍, 비스트로노미에 셰프의 창의성을 더한 네오비스트로 쪽으로 흐르는 추세다. 그리고 국내에서 네오비스트로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반포동에 위치한 제로컴플렉스가 유일무이하다. “한식은 간장, 된장 등의 양념류를 사용하기 때문에 식재료 본연의 맛을 감추는 경향이 있죠. 저희는 이와 반대로 식재료의 맛을 부각시키는 요리를 해요. 소스 없이 간단한 터치의 요리들이 많다 보니 초창기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이런 요리는 나도 하겠다’는 반응도 있었고요. 지금은 다행히 네오비스트로 라는 퀴진을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예요.” 제로컴플렉스는 다양성이 부족한 한국 외식 시장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히 다지며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요리 인생의 멘토를 만나다
이충후 셰프가 처음 요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제이미 올리버 셰프의 요리 프로그램을 본 뒤다. “부모님과 미래의 와이프를 초대해놓고 요리해주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참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하나의 요리로 한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러던 차에 친누나가 유학하던 프랑스에서 경험한 미식에 큰 감동을 받았다. “진주 촌놈이 당근, 배추, 시금치 같은 것만 먹다가 프랑스에서 신세계를 만난 거죠(웃음). 치즈, 버터, 빵, 와인…. 아,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맛있는 버터는 처음 먹어봤어요.” 바게트 빵에 버터만 발라 먹어도 뛰어난 맛이 났다. 단 두 가지 재료만으로도 이런 맛이 나는 조합은 ‘밥과 김치’ 이후 처음이었다. 결국 프랑스는 그의 요리 인생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가 네오비스트로를 접한 것은 이나키 에즈피타르트Inaki Aizpi- tarte 셰프의 ‘르 샤토브리앙Le Chateaubriand’에서였다.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 졸업 후 조교 생활을 할 때,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보게 됐어요. 여러 책 중 유독 눈에 띄는 플레이팅 몇 개가 있었는데, 재밌게도 한 사람이 만든 요리더라고요.” 네오비스트로의 선구자 격인 이나키 셰프의 플레이팅은 심플하지만 색다른 맛이 있었다. 그러던 중 운좋게 르 샤토브리앙에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나키 셰프는 자신이 느낀 경험을 요리로 풀어낼 줄 알았다. 주재료를 덮고 감추며 음식에 ‘재미’라는 요소를 곁들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으면, 식재료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전까지는 낯선 재료를 보면 겁이 날 때도 있었지만, 셰프와 함께 일하면서 ‘요리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학교는 나와야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멘토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나키 셰프는 이충후 셰프가 자신의 스타일을 구현하는 데 커다란 중심점이 되어주었다.
한국 식재료로 선보이는 프렌치
그가 프랑스에서 경험한 요리는 ‘재미있는 것’이었다. 서둘러 자신만의 요리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는 이나키 셰프의 세컨드 비스트로인 ‘르 도팽Le Dauphin’의 오픈 멤버로 근무한 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제로컴플렉스를 오픈했다. 제로컴플렉스는 좋은 식재료를 가볍게 터치하여 그 맛을 최대한 끌어올린 건강 음식을 추구하고 있다. 본연의 맛을 중시하므로 식재료는 까다롭게 고른다. “원래 여수에 있는 농장에서 채소를 받아 썼어요. 그런데 겨울이다 보니 사장님이 잠시 쉬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요즘은 경동시장에 나가 채소를 구매해오고 있어요. 직접 먹어보고 살 수 있어 좋기도 하고, 신기한 식재료도 많아 메뉴 구상에도 도움이 돼요.” 즐겨 사용하는 것은 뿌리채소와 허브류다. “뿌리채소는 굉장히 재밌어요. 한 땅에서 자랐는데 모양과 색, 맛, 식감이 제각각이잖아요. 허브류도 하나하나 재미있는 맛을 가지고 있고요.” 그는 앞으로 국내의 좋은 식재료를 더 많이 사용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한식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적인 식재료를 사용하여 프랑스, 동남아, 멕시코, 일본 등 이국적인 맛을 내는 것이 목표다. 남해의 섬음식이나 전라도, 강원도 등 가보지 못한 지역의 식재료도 경험해볼 예정이라고. 앞으로 점점 발전해나갈 제로컴플렉스와 이충후 셰프의 모습이 자못 궁금해진다.
DINNER AT ZERO COMPLEX
8가지로 구성된 제로컴플렉스의 디너 코스를 소개한다.

1. 아뮈즈부슈
숭어와 오이즙을 이용해서 만든 세비체.
2. 아뮈즈부슈
훈연 향을 입힌 우둔살에 콜리플라워, 패션프루츠가루를 더했다.
3. 고구마요구르트섬초
고구마 샐러드에 요구르트소스, 살짝 익힌 섬초, 꼬시래기를 곁들였다.
4. 갑오징어먹물감자
갑오징어 위에 먹물감자퓌레를 올려 만든 요리. 먹물 소스와 함께 먹는다.

5. 대구엔다이브자몽
구운 대구 위에 필필소스로 버무린 엔다이브, 상큼한 자몽, 산마늘을 곁들였다.
6. 플루마돼지감자봄동
돼지감자를 이용해서 만든 퓌레에 플루마, 골뱅이를 곁들였다.
7. 가지판나코타
태운 가지를 넣어 만든 판나코타와 캐러멜라이징한 딸기. 여기에 올리브유를 더했다.
8. 티라미수
목이버섯을 곁들인 티라미수.
제로컴플렉스 INFO
한국 최초로 네오비스트로를 선보이는 레스토랑이다. 최소한의 터치, 독특한 식재료의 조합 등 셰프의 개성 담긴 미식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 런치 코스 3만8000원, 디너 코스 8만원
• 서울시 서초구 동광로 113
• 02-532-0876
edit 문은정 — photograph 심윤석, 허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