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새롭게 해석한 요리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레스토랑인 밍글스. 레스토랑만큼이나 핫한 강민구 셰프의 디시를 맛보았다.

‘싱글? 그럼 어울려야지!(Single? Get Mingle!)’ 뉴욕 아니면 샌프란시스코였다.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던 시절, 어느 택시에서 들은 말이다. 짧지만 각운이 딱딱 맞아떨어져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밍글 Mingle’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용례 말이다. 사람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클럽 같은 곳이다. 물리적 개체가 섞이지만 개체의 형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사회화(Socialize),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다. 그래서 의문부터 품었다. 레스토랑 밍글스의 작명 의도 말이다. ‘서로 다른 것끼리 조화롭게 어우르다’라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요리의 핵심은 화학적 변화다. 반면 ‘밍글’이란 물리적 개체의 어울림이다. 화학적 변화의 가능성을 전제로 삼지 않는다. 또한 선택은 능동적이다. 어울리는 존재가 스스로 움직인다. 전지적 개체가 섞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밍글’은 요리를 위한 단어가 아니다. 오해이자 임의 해석이며, 잘못 지은 이름이다. 모든 맛의 부조화를 빚어내는 콘셉트의 오류다.
부조화의 뼈대는 소재주의다. 소재의 선택으로 일단 주목을 끌겠다는 전략이다. 고발 일색의 한국 영화를 떠올리면 된다. 소재에만 집착하고 나머지에는 무심하다. 음식에서는 재료의 선택이나 조합이 소재주의의 주 대상이다. 대개 제철·지역주의나 유기농 등에 기댄다. 밍글스는 한술 더 뜬다. 재료의 선택과 조합을 한국의 것으로 잡아 주의를 끈다. 장아찌와 장류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안전망처럼 아시아를 두른다. 참으로 영민한 전략이지만, 맛의 충돌이 안전망을 비집고 불거져나 온다. 검증을 전혀 거치지 않은 맛의 조합이 식탁에 오른다.
가장 좋은 예가 푸아그라 토숑과 김치다. 원통형으로 말아 굳힌 푸아그라를 흐들흐들한 위쪽 이파리로 감쌌다. 일단 질감부터 걸린다. 푸아그라를 해체해 천으로 말아 ‘토숑(Torchon, 행주)’이다. 순수한 지방의 밀도를 한층 강화시킨다. 촘촘하고 매끄럽고 진하다. 흐들흐들한 이파리는 되레 걸리적거린다. 완전하게 존재에 사족을 달았다. 차라리 아랫동이라면 어땠을까. 아삭함이 대조라도 일궈냈을 것이다. 게다가 맛마저 희미하다. 푸아그라는 쾌락이다. 거의 모든 시도를 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강도가 비슷해야 기죽지 않고 지방을 잘라줄 수 있다. 단맛이든 신맛이든, 또렷하고 자신감 있어야 한다. 체리피클이 고전적인 짝짓기인 이유다. 김치는 그렇지 않았다. 싱거운 가운데 미약한 신맛이 금세 사그라든다. 자체로도 큰 의미가 없지만, 진짜 의문은 따로 있다. 왜 하필 여기에서 김치일까. 한식의 영향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밍글스는 정작 김치를 배제한다. 심지어 선택 주요리인 오첩반상에도 매실장아찌만 오른다. 의도적이고 그래서 의구심만 더 쌓인다.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쨌든 한국의 대표 음식이다. 한식의 터럭이라도 지향한다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아찌는 되고 김치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장아찌의 적극적인 사용이 성공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지극한 실패다. 해초와 두부 샐러드의 장아찌 비네그레트를 예로 들어보자. 간장장아찌의 국물을 배합해 기초로 삼는다고 한다. 그렇다, 장아찌에는 강한 신맛이 딸려 올라온다. 하지만 볼모처럼 단맛도 딸려오니 전체적인 맛이 지저분해진다. 거의 모든 음식의 뒤에 이 지저분한 뉘앙스가 딸려 다닌다. 깔끔하지 않은 시큼함과 들척지근함의 조합이다. 메밀라비올리에 깔린 국물도 그렇다. 뒷맛이 불쾌하다. 샐러드는 여기에 딸기까지 가세해 불필요한 단맛을 더한다. 한국 딸기의 맛은 납작하다. 입에 넣자마자 강한 단맛만 폭발하고 허무하게 바로 사그라 든다. 그대로 먹어도 맛이 없지만 그나마 생식일 때가 낫다. 다른 재료와 조화는 더더욱 맞지 않는다. 완전히 불필요한 요소이며 소재주의의 실패를 한층 더 굳힌다. 게다가 샐러드의 몸통을 이루는 두부는 굉장히 여리다. 강한 신맛이 정확하게 잘라줄 대상이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지만, 설사 장아찌의 신맛만 정확히 분리해 가져왔더라도 요리의 균형은 맞지 않았을 것이다.
완전한 불청객인 딸기는, 밍글스의 또 다른 문제를 드러낸다. 편집의 완전한 부재다.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질보다 양’의 개념이 가짓수로 승화한 반찬 문화식 사고의 산물인가? 그렇다면 차라리 좋겠다. 부정적이라도 한식에 뿌리를 두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모든 접시가 일단 시각적으로 폭발 일보 직전이다. 요소를 세다 지쳐 포기한다. 메밀만두에는 5가지 버섯에 검정 트러플이 가세하고, 심지어 새우마저 등장한다. 관계를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다. 맛은 한층 더 폭발적이다. 범벅진 양념의 폭발이다. 디저트인 장트리오가 그렇다. 이름처럼 간장, 된장, 고추장을 하나의 디저트에 담았다. 장류는 물리적 개체가 아니다. 녹아 스며들어 맛을 입히므로 매개체(Vehicle)가 필요하다. 그래서 각각 크렘 앙글레즈(된장), 피칸(간장), 튀밥(고추장)과 손을 잡는다. 불협 화음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위스키 거품까지 가세해 동시에 목소리를 내면 피로함이 극에 달한다. 디저트란 무엇인가. 여정의 끝에서 지금껏 쌓인 맛의 여운을 끊어주는 음식이다. 장트리오는 정확하게 그 반대의 역할을 한다. 코스 전체를 주름잡은 맛의 불협화음을 다시 증폭시킨다. 한식에서 간장, 된장, 고추장 3가지를 한꺼번에 담은 음식이 있던가? 설사 그런 음식이 존재한다고 해도 짠맛의 영역에 머무를 것이다.
서양 문법을 차용한 요리마저 한식의 나쁜 습관에 충실하다. 섬세한 농어가 뵈르블랑소스, 또는 고추장바스크소스로 뒤덮인다. 미끈하고 질척한 소스의 장막이 걷히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심지어 소금 간조차 희미하다. 주 요리의 모든 육류가 같은 맛의 운명 공동체 속에서 고통받는다. 최대한 안전하게 조리한 단백질에 장류의 막을 입힌다. 재료가 가진 맛과 질감을 완전히 앗아가버린 뒤 텁텁함으로 질식시킨다. 그 가운데 시각성에 욕심마저 낸다. 오리 가슴살에 곁들인 자색고구마퓌레 같은 요소 말이다. 아무 맛도 없는 보라색의 곤죽이,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철저하게 짓밟는다. 고통만 남는다.
밍글스의 음식은 충격적이다. 한식이 극복해야 하는, 전통의 탈을 쓴 습관의 맛을 파인다이닝의 차원에서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세계 요리에서 맛의 개념적인 이해를 들어내고, 장류와 장아찌로 채운 뒤 억지로 뭉쳤다. 심지어 조리는 전체에 걸쳐 완벽했고, 높이 산다.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 밍글스의 식탁에선 야심이 넘쳐난다. 억지로 빚어 내는 스타 셰프의 야심, 수출형 유사 한식이다. 한편 그만큼 말의 무거움은 신중하게 따져보지 않았다. 메뉴와 홈페이지의 ‘Mingles With Mingles-mangles Approach In Foods’라는 문장이 방증이다. ‘맹글Mangle’은 망가뜨리다(To Injure Severely)라는 뜻의 단어다. 운을 맞추기 위해 ‘밍글Mingle’과 함께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잠깐, 그렇다면 한편으로는 의미가 맞아떨어진다. 잘못된 ‘밍글’의 개념적 이해로 맛을 망가뜨렸으니까. 그래서 밍글스는, 역설적으로 성공했다. 완벽하게 실패하는 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맛의 퇴보다.
밍글스 INFO
분위기 — 나무의 차분함과 한식 소품의 부조화
서비스 — 떨어지는 위기 대처 능력, 희미한 공적 자아
메뉴 및 가격 — 점심 코스 3만8000원, 6만5000원 저녁 코스 9만원, 기타 선택 메뉴
와인 — 야심차지만 집중력 떨어지는 프랑스 위주의 큐레이션. 페어링 추천(5종 11만원)
•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1-23 B1F(3월 2일 이전 예정.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94-9 1층)
• 월~토요일 정오~오후 3시, 오후 6시~10시 20분
• 02-515-7306
• www.restaurant-mingles.com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이용재
음식평론가.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홈페이지(www.bluexmas. com)에 음식 관련 글을 올리는 한편 <철학이 있는 식탁> <뉴욕의 맛 모모푸쿠> 등의 책 을 번역했다. 올해 출간 목표로 <외식의 품격>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