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다와 맛깔스러운 음식. 여수로 떠날 이유는 이미 차고 넘쳤다.

여수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함께 걷고 싶은 바다가 있고, 조명에 비친 밤바다는 무척이나 아름다울 터였다. 한반도 전역이 여수 밤바다를 찬양할 때도, 그렇게 혼자만 무심한 척했다. 그때 누군가 홀리듯 아름다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바다도 좋지만 여수 여행의 절반은 먹는 일이죠.” 하얀 쌀밥에 석석 비벼 먹는 새빨간 돌게장을 생각해보았다. 뽀얗게 우러난 장어탕 한 그릇이면 내내 든든할 것 같았다. 새콤한 갓김치는 막걸리와 씹고 싶었다. 갓김치, 게장, 서대회, 한정식, 하모(갯장어), 굴구이, 장어, 갈치, 새조개, 전어…. 컴퓨터 화면 속 여수 10미가 손짓했다.
FIRST DAY LUNCH 광장미가

비행기에서 내리니, 남도는 이미 찬란한 봄이었다. 봄에는 식욕이 도는 법이다. 아, 봄이 아니라 가을이던가. 어쨌든 중요한 건, 이른 비행기를 타느라 아침을 굶었다는 사실이었다. 주린 배를 안고 좌수영음식문화거리를 기웃거렸다. 발길을 돌린 곳은 여수 10미의 절반을 맛볼 수 있는 광장미가였다. 서대회와 아귀탕, 장어탕, 생선구이 등을 맛깔나게 하는 집이라 했다. “아이고, 여수에 오셨으면 서대회를 드셔야죠.” 광장미가의 김상문 사장이 새빨간 서대회무침을 내오며 말했다. “서대는 성질이 급한 생선이라 잡는 즉시 바로 죽어요. 사시미로 먹을 순 없고 막걸리 식초를 넣어 무침으로 먹습니다. 서대회로 소문난 집은 대부분 직접 담근 막걸리 식초를 써요.” 서대는 여수를 대표하는 생선이다. 막걸리 식초는 서대의 식중독을 예방한다. 금산에서 제사상에 인삼을 올리듯, 여수 사람들은 서대를 올린다. 사장님의 친절한 설명에 귀 기울이며 흰쌀밥에 서대회를 듬뿍 올렸다. 고루 비벼 한 입 가득 채우니 매콤하면서도 새콤한, 또 부드럽게 달콤한 맛이 혀를 훑고 지나갔다. 사발에 여수 막걸리도 가득 따라 들이켰다. 막걸리 식초를 넣어 만든 서대회는 막걸리와 가장 궁합이 좋다. 취기 때문일까. 온몸 가득 봄이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함께 주문한 군평선이의 살점도 크게 떼었다. 군평선이 역시 여수 사람들이 사랑하는 생선이다. 이순신 장군이 전시에 즐겼던 것으로, 너무 귀해 숨겨둔 샛서방(姦夫)에게만 준다고 했다. 본래 여수 10미 중 하나였으나 근래 아쉽게도 탈락했단다. 군평선이란 이름의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생선을 구운 주모의 이름이 ‘평선’ 이라 군평선이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표준어는 군평선이예요. 한데 발음이 어려워 다들 금풍생이라고 불러요. 어떤 곳은 금풍쉥이라고 적어 놓은 곳도 있다니까요. 언젠가 완도분들이 와서는 ‘어? 돗돔이네?’ 하시더라고요. 완도에서는 그렇게 불리나 봐요.” 주인 아주머니도 설명을 더했다. 양식이 불가능한 군평선이는 여름에 잡아 급랭시킨다. 군평선이의 담백한 맛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이유다. “뼈까지 쪽쪽 빨아 드세요. 거기서 담백한 맛이 나오거든요. 좀 드실 줄 아는 분들은 그렇게 먹어요.” 설명대로 군평선이를 발라 먹다 보니 순식간에 밥그릇이 텅 비었다.

광장미가에서 슬슬 걸어 이순신광장으로 갔다. 실측 사이즈로 만든 거북선 위를 거닐다 보니 ‘중앙선어시장’이라는 큰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가보았다. 중앙선 어시장은 말 그대로 선어를 파는 시장이다. 새벽에 도매 시장이 열리는데, 시내에서 노점하는 할머니들도 이곳에서 물건을 떼어 판다고 했다. 시장에는 생을 마감한 채 숙성되고 있는 병어와 민어, 삼치 등 수많은 선어가 널려 있었다. “여수 말로 여름 삼치는 개도 안 먹는다고 해. 여름철은 살이 푸석하거든.” 상인 아주머니가 설명해줬다. 삼치는 3월이 끝물이다. 서둘러 먹지 않으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꼭 맛봐야 할 음식 리스트에 삼치회를 적어 넣은 뒤 차에 올라 오동도로 향했다.

오동도는 여수에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몇 안되는 섬이다. 오동나무의 잎을 닮아서 오동도라 불린다. 섬까지는 동백열차를 타는 것과 걸어서 들어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800m가 채 되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에, 천천히 걸으며 바다의 풍광을 감상하기로 했다. 오동도로 향하는 방파제는 내일로를 타고 여수를 여행하는 수많은 대학생들로 붐볐다. 카메라를 들고 서로의 아름다운 순간을 담기에 바빴다. 그들의 생기 어린 웃음이 더해져 여수의 봄은 더욱 활기를 띠고 있었다.
오동도에 들어서자 새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동박새였다. 400여 종이 넘는 오동도의 수목만큼이나 날아다니는 새도 많았다. 살아있는 섬이었다. 겨울과 봄의 경계선에 있는 이 시점에도 이렇게 푸르른 녹음을 볼 수 있다니, 마치 에어컨을 틀어놓은 숲 속에 들어선 듯 묘한 기분도 들었다. 동백꽃으로 만든 차로 목을 축인 뒤, 오동도 등대에 올라 여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노을이 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요즘 여수에서 가장 핫하다는 해상케이블카를 타러 나섰다. 무려 바다를 가로지르는 케이블 카다. 빠르게 높은 곳에 올랐다 떨어지는 놀이기구보다도, 천천히, 오감으로 중력 차이를 느끼며 떠있는 순간이 더 무섭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며 차올랐다.
케이블카에 오르자 돌산대교와 이순신대교가 내려다 보였다. 여수의 바다와 도심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평선 너머는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에디 히긴스 트리오를 틀었고, 부드러운 재즈와 붉게 물든 여수가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눠 갖고 싶은 풍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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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DAY DINNER 삼학집&꿈

같은 연극도 여러 번 보았을 때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음식이라도 다양한 곳에서 맛보고 싶었다. 과연 서대회 맛은 점심의 그 맛이 전부일까? 또다른 식당에서는 어떤 식으로 서대회를 무칠까? 유명한 집을 수소문해보니 대부분 종포해양공원 앞에 위치한 삼학집을 꼽았다. ‘여수의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추천하는 집’이라는 대목을 듣곤 마음을 굳혔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다양한 찬을 내던 광장미가와 달리 삼학집은 찬의 가짓수가 많지 않았다. 메뉴도 서대회와 갈치구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단출한 메뉴는 대놓고 ‘맛집’이라는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참기름과 김을 넣어 비벼 먹는 삼학집의 스타일은 광장미가와는 달랐다. 광장미가가 막걸리 식초의 새콤함을 강조한 슴슴한 스타일이라면, 삼학집은 좀 더 임팩트 있고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설명에 적힌 대로 밥에 서대회를 올린 뒤 참기름과 김가루, 상추를 찢어 넣어 비벼 먹었다. 관광객들의 입맛에는 삼학집이, 재료 자체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광장미가를 좋아할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두 곳 모두 맛있는 곳임은 분명했다.

밤 9시. 밥만 먹고 끝내기엔 아쉬웠다. 삼학집을 나오니 ‘꿈-난 스타 천사 카페가 하고 싶었다’라는 기묘한 간판의 가게가 눈에 띄었다. 뭔가에 홀리듯 안으로 들어 갔다. 해물라면과 해물삼합, 시카고피자, 고르곤졸라피자…. 메뉴 역시 기묘한 조합이었다. 통일성이 없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들이기도 했다. “제주도에 갔는데, 해물라면이 참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해물라면집을 차리려 했죠. 그렇게 끓여본 라면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돈데…. 고르곤졸라요? 짬뽕과 피자를 함께 먹는 게 유행이었잖아요. 시카고피자도 서울에서 유행하길래 따라 만들었어요. 해물삼합은 여수 포장마차거리에서 유행하는 거고….” 숨김없이 정면으로 날아오는 사장님의 돌직구에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의 입담 때문에 미각이 관대해진 걸까, 의외로 맛은 나쁘지 않았다. “제가 몇십 년 요리한 여수 이모들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맛은 좀 없더라도 재료는 좋은 걸 쓰자 싶었죠. 해산물은 모두 생물을 써요. 제가 직접 경매에 나가서 받아오죠. 고르곤졸라피자에도 무조건 좋은 치즈를 넣고요.”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올린 불판 위에 살아있는 문어를 올려놓았다. 문어는 ‘끼-끼-’ 소리를 내며 스러져갔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본능적으로 침을 삼켰다. 문득, 가게의 이름은 무슨 뜻인지 궁금해졌다. “원래는 스타벅스, 엔제리너스 같은 체인 커피숍을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했어요(웃음). 사실 진짜 꿈은 유스호스텔을 차리는 거예요.” 그는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새콤한 묵은지에 문어와 삼겹살을 올려 입에 넣었다. 꿈이 담긴 그의 음식에서는 좀 더 색다른 맛이 났다. 그건 직접 맛을 봐야만 하는 묘한 맛이었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서울에서 문어치킨이 유행했잖아요? 제가 얼마 전에 문어튀김을 만들어봤거든요. 그런데 이게 참 괜찮더라고요.” 이번 시즌 ‘꿈’의 신 메뉴는 문어튀김이 유력할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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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DAY BREAKFAST 환희
오전 6시 30분. 살결에 닿는 서늘함에 잠에서 깼다. 통 유리창 너머로 여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에서 동이 트는 모습을 침대에서 볼 수 있다니. 그 순간이 너무나 귀하게 느껴졌다. 전날 과음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좋은 컨디션으로 여수를 즐기고 싶었다. 여수시청 근처에 위치한 환희에서 해장국을 먹었다. 가게는 아침부터 해장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조용히 물메기탕을 시켰다. 이곳은 제철 생선으로 탕을 내는 곳으로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원래는 물메기를 했었는데, 철을 따라가다 보니 다양한 생선을 내게 됐죠. 물메기는 자연산이라 겨울에만 나오거든요. 여수 사람들은 겨울에는 물메기, 봄에는 도다리로 해장을 해요. 늦은 봄부터는 뽈락(볼락)이나 쏨뱅이, 세미 같은 것을 먹고요.” 세미라는 생선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이다. 그 맛이 어떤지 자못 궁금해졌다. “삼식이(삼세기)랑 맛이 비슷한데, 삼식이보다는 맛있어요(웃음). 그리고 삼식이는 독이 없지만 얘는 독이 있어요. 가시에 찔리면 병원에 다녀와도 3시간은 넘어야 독기가 빠져.” 살이 보드랍고 국물은 칼칼한 물메기탕을 먹으며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맑은 정신이 되었다.
차로 10분 거리인 카페 오후에 들러 커피를 테이크아웃했다. 매장에서 직접 구웠다는 커피콩빵도 잊지 않고 챙긴 뒤 서둘러 신기항으로 향했다. 신기항은 금오도로 가는 가장 가까운 항구다. 분명, 남해에 왔다면 섬에 들어가야 할 일이다. 격리되어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섬은, 육지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배로 20분 걸려 도착한 금오도는 실제로 매우 신비로운 섬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비렁길 1코스로 향했다. 벼랑의 여수 사투리인 ‘비렁’에서 연유한 이름으로, 본래 섬 주민들이 땔감, 낚시를 위해 다니던 해안길이었다. 함구미선착장에서 시작하는 비렁길 1코스는 가파로운 미역널방까지 1시간 걸린다. 봄 날씨에 막 녹기 시작한 흙길을 밟으며 오색의 숲 열매를 만났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을 땐 너른 바다가 있었다. 절벽을 뜻하는 ‘비렁’처럼 중간중간 자연이 만들어낸 멋진 절벽들도 나타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산책을 끝내고 동네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마주친 민가 에서 이성록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집 앞마당에서 김에 찹쌀풀을 바르고 있었다. 궁금한 듯 토끼눈을 뜨고 바라보자 할아버지는 “깨를 넣고 찹쌀풀을 쑨 다음, 김에 발라 말려 튀기는 부각”이라고 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찾지 않아 사라져버린, 여수 전통의 부각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튀김으로 만들어 먹으면 소화도 잘된다며, 할아버지는 부각 한 조각을 건넸다. 입에 넣고 씹으니 김의 고소함과 찹쌀의 달짝지근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귀한 조리법을 이어나가는 것이 주름 가득한 노인들 밖에 없다는 사실에 조금 서글픈 기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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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DAY LUNCH 상록수식당
비렁길을 산책한 뒤 점심을 먹으러 상록수식당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비렁길도 금오도를 방문해야 할 이유지만, 상록수식당의 회정식은 꼭 맛보고 싶었다. 청정 해역인 금오도의 해산물 요리가 가득한 회정식도 그 종류만 봐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미역과 다시마를 먹고 사는 군소, 부채손으로도 불리는 거북손, 자연산 소라인 꾸죽, 바위에 삿갓 모양으로 붙어 사는 배말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해산물이 수두룩했다. 특히 꾸죽은 달콤하면서도 아삭하게 씹히는 것이, 지금까지 맛보았던 소라와는 색다른 맛이 났다. 먹을수록 배어나오는 단맛이 입안을 가득 메웠다. “신랑이 공무원이라 시청, 도청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시더라고요. 그분들에게 차려주던 것을 메뉴로 내게 된 거예요. 금오도에서 나는 제철 해산물로 차리다 보니, 계절마다 식탁이 달라져요.” 거북손과 군소, 멍게, 광어를 공부하듯 맛보았다. 주먹만 하게 큰 홍합도 있었지만 흔히 맛보던 것이라 손이 가지 않았다.“ 그 홍합, 엄청 구하기 힘든 거예요. 자연산 홍합인데 오늘 운 좋게 나왔어.” 재빨리 입에 넣었다. 그때, 옆테이블에 앉아 있던 부부가 비렁길 몇 코스를 다녀왔냐고 물었다. 1코스를 갔다 왔다고 하니 아쉬운 표정으로 “비렁길은 3코스가 보석”이라고 했다. 일 하던 아주머니도 “아무렴, 비렁길은 3코스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금오도에 돌아와야 할 이유 하나 정도는 남겨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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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DAY DINNER 소선우방풍꽃게장&민들레집
신기항에서 향일암으로 달렸다. 향일암을 오르는 금오산 입구부터 알싸한 갓김치 냄새가 났다. 싱싱한 갓이 가게 앞에 수북이 쌓여 있었고, 이모들은 바쁜 손놀림으로 새빨간 갓김치를 버무렸다. 골목은 아예 ‘갓김 치 골목’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갓김치 가게로 붐볐 다. “돌산에서 가장 먼저 갓을 배달하는 곳이 향일암이 에요.” 갓김치 골목의 이모가 알려줬다. 확실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가장 질 좋은 갓이 오는 곳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전국 택배도 되는지라 향일암에서 내려오다가 몇 통 주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향일암은 돌산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절이다. 향일암이 위치한 금오산은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에 들어가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이름 붙었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처럼 일출이 유명한 곳이지만 바다가 가장 선명한 시간에 왔다.
향일암으로 가는 길은 7개의 바위로 된 틈을 통과해야 했다. 향일암의 틈을 모두 통과하면 소원 한 가지가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 틈 사이로 허리를 구부리며 어떤 소원을 비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바위 사이 사이에 사람들이 올려놓은 동전이 유난히 빛을 발했다. 향일암에 오르니 돌로 만든 거북이 모형이 수북했다. 모두 손으로 직접 깎은 듯, 각기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거북이의 모양을 자세히 관찰하는데, 멀리서 스님의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뭐랄까, 그 소리는 종교와 관계없이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는 힘이 있었다. 목탁 소리를 들으며 여수의 바다를 바라보니, 금오도의 바다와는 또 다른 청명함이 느껴졌다.
시내로 1시간 남짓 달려 소선우방풍꽃게장으로 향했다. 여수 10미 중 하나인 돌게장뿐 아니라 방풍을 넣어 맛을 더한 꽃게장도 파는 곳이었다. 갈치구이는 삼학집에서 맛보았지만, 조림은 또다른 맛이 있을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돌게장과 꽃게장, 갈치조림을 모두 주문했다. 돌게장도 맛은 있었지만, 젓가락은 자꾸 알이 꽉찬 꽃게장으로 향했다. 밥 한 공기가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달지도 짜지도, 그렇다고 물리지도 않는 간장꽃게장은 최고의 맛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 여행 마지막 날 밤의 아쉬움을 달래러 선어회집으로 향했다. 민들레집은 선어회로만 30년 넘게 장사한 집이다. 투명한 유리 쇼케이스 안에는 족히 1m는 넘어 보이는 민어와 덕자병어, 삼치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선어는 숙성을 시키기 때문에 육질이 단단하고 고소한 맛이나. 숙성을 시키면 비린내도 없고, 감칠맛은 활어보다 훨씬 높아지지.” 민들레집의 사장님이 자신의 몸체만 한 민어를 꺼내며 설명했다. 그릇에 담겨 나온 삼치와 민어, 덕자 병어 등 서울에서는 귀해 못먹는 생선이 즐비했다. 선어는 활어와 먹는 방법이 다르다. 사장님은 김에 간장 양념을 얹은 뒤 회와 양파, 갓김치, 된장 양념, 고추냉이 간장을 넣어 큼직하게 싸먹는 것을 추천했다. 때를 잘 맞춘 덕에 귀한 민어 부레도 맛볼 수 있었다. 가만 보니, 여수 사람들은 활어보다 선어를 즐기는 듯 보였다. 사장님에게 슬그머니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으응, 그건 여수 사람들이 미식가라 그래. 생선의 고장에서 사는 사람들이잖아. 객지 사람들은 활어를 좋아 하지만, 우리는 고기 맛을 알아서 활어는 치지 않어. 선어는 구수~하니 너무 맛있지.” 뛰어난 안주가 있으니 술이 술술 들어갔다. 술은 여수의 참이슬이라는 잎새주를 마셨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THIRD DAY BREAKFAST 여수1923
이틀 내리 로컬 음식점만 갔다. 마지막 날은 조금 세련되게 먹고 싶었다. 원도심인 공화동에서 발견한 여수 1923은 여수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곳이었다. 장진우식당, 문오리 등을 오픈한 장진우 대표가 컨설팅한 곳이라고 했다. 여수항이 개항한 1923년을 모티브로 했다. “여수에 오는 20대 여성들이 꼭 맛보고 싶어 하는 음식을 조금씩 담아냈어요.” 정인숙 대표가 설명했다. 그녀는 20년 넘게 여수 공무원으로 일하며, 다문화 여성 복지를 위해 힘썼다. 여수 1923도 다문화 여성 복지를 위한 사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3월부터 다문화가족 여성 두 명이 함께 근무할 거라며 말이다. 본래 전라도 지역에 위치한 여수는 한상 차림을 기본으로 한다. 어느 집에 가든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주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미식여행이 반복될수록 이 구성이 부담스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수1923에서는 여수의 핵심 음식을 조금씩, 저렴한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 간장소스로 만든 돼지고기를 덮밥 형태로 내는 동병정식과 문어와 홍합, 새우 등의 해산물에 은행, 밤, 대추 등을 넣어 만든 해산물솥밥을 맛보았다.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솥밥은, 해산물 특유의 단맛으로 맛을 냈다. 돼지고기는 팔각을 넣어 오향의 향을 더했다. 두 메뉴 모두 먹을수록 매력적이었다. “홍합은 여수 소호동이 생산지예요. 엄청나게 많이 나요. 어쩌면 통영보다 많이 날지도 몰라요. 문어는 금오도 남면에서 가져오고, 새우는 공판장에 가서 직접 사오고요. 되도록 지역 주민에게서 구매하려고 해요. 맛도 좋고 취지도 좋지만, 원가가 너무 높아지는 게 문제라서 그렇죠.” 정인숙 대표는 웃으며 설명했다. 집 된장에 땡고추를 썰어 넣어 칼칼하게 끓인 된장찌개를 들이마셨다. 마치 손맛 좋은 엄마의 밥을 맛본 것처럼 몸과 마음이 든든해졌다. 식사를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독특한 천장의 목재가 눈에 들어왔다. “리모델링을 하려고 건물을 뜯었더니, 일제강점기의 흔적들이 남아 있더라고요. 여수는 일제강점기에 개항된 뒤 발전한 도시인데, 그 흔적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없거든요. 여수 1923은 음식점뿐 아니라 일종의 전시관 같은 역할도 하고 있어요.” 벽면에 장식된 여수 개항 당시의 자료도 흥미로웠다. 여수1923은 앞으로 핫플레이스가 될 것이 확실한 곳이었다.

여수아쿠아플라넷에 가기 위해 가게를 나왔다. 근처에 위치한 싱글벙글빵집에 들러 후식으로 먹을 찐빵을 샀다. 한자리에서만 19년째 운영하고 있는 옛날 빵집이었다. 도넛, 꽈배기 등의 옛날빵을 600원이라는 착한 가격에 파는 가게지만, 아쉽게도 직전 손님이 찐빵을 뺀 모든 빵을 구매해갔다. “저 여자분이 여기서 여중을 나왔대요. 36살 먹은 처자인데, 근처를 지나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가게 이름처럼 싱글 벙글 웃으며 주인 아저씨는 말했다. 매일 신선한 빵을 튀겨내는 싱글벙글의 빵은 오전 11시부터 나온다. 그쯤가면 가장 맛있는 상태의 빵을 맛볼 수 있다.

차로 3분 거리에 위치한 여수아쿠아플라넷에 들어갔다. 제주에도 훌륭한 아쿠아리움이 있지만, 여수는 그보다 훨씬 어종이 다채로운 듯 보였다. 수족관을 유유자적 헤엄치는 흰수염고래도 보았고, 식인 물고기로 알려진 피라냐도 구경했다. 3일 내내 물고기를 먹고, 마지막으로 물고기 관람까지 하니 여수 사람이 다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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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RD DAY LUNCH 갯마을장어
서울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몸보신을 하고 싶었다. 장어집이 모여 있는 봉산동 골목으로 향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갯마을장어로 들어갔다. 장어탕은 장어구이를 먹으면 후식으로 나온다기에, 양념구이와 소금구이를 섞어 주문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장어는 그간 본 것들과는 씨알이 달랐다. “업자에게 주문해서 받는데, 우리 집에 가장 좋은 장어를 줘요.” 갯마을장어의 사장님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느 해산물이 그렇듯, 장어도 월별로 맛있는 곳이 다르다. 안흥과 충무, 진도 등 전국 각지에서 가장 맛있는 장어를 구해 쓴다고. 장어구이를 먹다가 조금 느끼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때 즈음 장어탕이 나왔다. 머리와 뼈를 3시간 동안 푹 고은 뒤 그 국물에 장어살과 숙주, 양배추, 대파를 넣어 익힌 것이다. 하얀 쌀밥에 말아 먹으니 그 맛이 깔끔히 마무리되었다. 차창 밖으로 물드는 여수의 노을을 바라보았다. 굴, 새조개, 갯장어. 아직 맛보지 못한 여수의 3미가 남아 있었다. 걷지 못한 비렁길 3코스도 있었다. 여수로 돌아가야 할 그리움을 남긴 채, 그렇게 바다를 등졌다.

edit 문은정 — photograph 김재욱 — advice 이미숙(여수시청 관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