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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과, 매일 먹어야 할까 @정재훈

2016년 3월 10일 — 1

마트에 가면 하루에 먹을 만큼씩 포장된 다양한 견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말 매일 챙겨 먹는 것이 좋을까.

© 박재현
© 박재현

견과의 명칭 변화
견과 하면 호두를 떠올리던 시대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호두를 압착한 기름을 사랑했고, 로마인들은 유럽 여러 지역에서 호두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비롯한 많은 유럽 언어에서 호두에 해당하는 단어는 견과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도 쓰인다. 한중일 3국에서도 견과는 호두가 대세였다. 차이콥스키의 발레에 등장하는 넛크래커Nutcracker는 호두뿐 아니라 다른 견과의 껍질을 깨뜨리는 데도 쓸 수 있는 도구지만, 이들 세 나라에선 모두 호두까기인형으로 번역되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가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세계로 퍼져나갔던 때가 1950년대이니 당시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견과는 호두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요즘 견과는 정말 다양하다. 믹스넛 한 봉지에 아몬드, 캐슈너트, 피칸, 마카다미아 등이 함께 들어 있다. 번역이 시대를 반영한다면, 이제 호두까기인형은 ‘견과까기인형’으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참 어색한 이름이다.

견과 섭취의 편리성이 주는 영향
생각해보면 견과 자체의 명칭은 ‘견과까기인형’보다 어색하다. 본래 견과는 단단한 껍질에 싸인 식용 씨앗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외피를 제거하지 않은 아몬드나 헤이즐넛은 찾아보기 어렵다. 껍질에 옻을 올리는 성분이 들어 있어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캐슈너트의 경우는 예외다. 견과의 껍질을 제거하는 이유는 대개 편리함 때문이다. 일등석 간식으로 유명해진 마카다미아는 껍질이 특히 단단해서 거의 대부분 껍질을 깐 것으로만 팔린다. 독일의 공학자들에 따르면 마카다미아 껍질을 깰 때는 비슷한 크기의 다른 견과보다 무려 다섯배나 더 힘이 든다고 한다. 포장을 벗기지 않았다고 비행기가 회항한 사건도 있을 정도이니 마카다미아를 껍질째 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는 견과가 더 이상 견과답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넛크래커가 호두까기인형이든 견과까기인형이든 무슨 상관일까. 마트에서 잘 포장된 견과를 먹는 데는 아무런 도구가 필요치 않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식품 브랜드 연구소장 브라이언 완싱크Brian Wansink에 의하면 이런 편리함은 재앙이다. 그는 군대 식당에 물주전자를 사이드 테이블 대신 각각의 식탁에 직접 올려 놓은 후 물 섭취량의 변화에 대해 실험했다. 식탁에 올려둔 결과, 병사들의 물 소비량이 81% 늘어났다. 또한 냉장고와 우유가 떨어진 거리를 절반으로 줄인 실험에서는 우유 소비량이 42% 증가했다. 이렇듯 먹기 편한 환경일수록 더 많이 먹게 된다.
견과는 껍질은 단단하지만 내용물은 부드럽다. 목질의 외피를 제거한 견과는 세포벽이 얇고 연약해서 씹으면 쉽게 부서진다. 게다가 견과는 지방이 절반 이상을 차지 하고 있어 마블링이 돋보이는 소고기처럼 입안을 촉촉하게 적신다. 조그맣게 포장된 견과 2봉지만 먹으면 밥 한 공기만큼의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지방은 건강의 적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견과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견과 섭취와 건강의 상관관계
1990년대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지방 덩어리인 줄만 알았던 견과가 오히려 건강에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하나둘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견과를 즐겨 먹는 사람들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와 고혈압, 심장병의 위험이 낮으며, 심지어 견과를 자주 먹는 사람일수록 체중 증가와 비만의 위험이 낮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동안 견과를 먹지 않았던 걸 한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2013년 하버드 의대의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탄식은 더욱 커졌다. 의료직에 종사하는 12만 명의 남녀를 지난 30년 동안 추적 조사한 연구 결과, 하루 한 줌(28g분량)의 견과를 먹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 해 동안 얼마나 자주 견과를 먹었는지 물어보는 것만으로 참가자들 사이의 건강상 차이가 드러났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견과를 먹은 사람은 전혀 먹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11% 정도 낮았고, 일주일에 5~6회 견과를 먹은 사람은 15%, 일주일에 7회 이상 견과를 먹은 사람의 사망률은 무려 20%가 낮게 나타났다.
견과를 자주 먹는 사람일수록 사망률이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버드대 연구팀은 견과에는 양질의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며, 섬유질, 비타민(엽산, 니아신, 비타민 E), 미네랄(칼륨, 칼슘, 마그네슘), 피토케미컬Phytochemical이 들어 있어 염증을 낮추고 심장 건강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물론 관찰하는 것만으로 그 인과관계를 밝혀내기는 어렵다. 견과를 자주 먹는 그룹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들도 있었다. 견과를 자주 먹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더 날씬했고, 흡연율이 낮았으며, 운동은 더 열심히 했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섭취하면서도 멀티비타민제를 복용하는 비율이 높았다. 또한 이들은 견과를 떠올리면 술이 생각나는 사람들이었다. 일주일 내내 견과를 즐겨 먹는 사람들은 전혀 먹지 않는 사람들보다 두 배 가까이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했다. 견과를 자주 먹어서 사망률이 낮은 게 아니라 본래 건강했던 사람이 술도 많이 마시고, 더불어 견과를 안주로 많이 먹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의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견과를 자주 먹는 게 건강에 유익하다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다. 특히 견과가 심혈관계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쪽의 연구가 많다. 그렇다면 어떤 견과를 먹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호두, 아몬드, 피스타치오 등의 다양한 견과를 먹어도 좋고, 입맛 당기는 대로 한 종류만 먹어도 괜찮다. 땅콩도 좋다. 콩과 식물의 씨앗인 땅콩은 나무에서 열리는 견과는 아니지만 맛, 영양, 용도에서 다른 나무 견과들과 비슷하다. 2015년 연구에 따르면 땅콩을 자주 먹는 사람에게도 아몬드, 호두, 피스타치오와 같은 견과를 먹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망률이 낮게 나타났다. 과식과 과음은 일삼으면서 그저 견과만 먹는다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1만 6000명의 의사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견과를 많이 먹는 사람들에게 고혈압이 적게 나타나는 상관 관계는 사람들이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경우에는 해당 되지 않는다. 견과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대부분의 연구 결과는 섭취 칼로리를 일정한 수준으로 제한하는 걸 전제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견과 속에 숨겨진 음식 문화
“작년 한 해 당신은 얼마나 자주 1회 분량의 견과를 먹었습니까?” 음식과 건강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는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진 후 답변을 얻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어제 저녁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잣을 갈아 넣은 수프를 시작으로 잣과 호박씨, 해바라기씨를 곁들인 양갈비를 맛본 후 호두아이스크림과 아몬드쿠키로 식사를 마무리한 사람은 뭐라고 대답해야 한단 말인가(해바라기씨, 호박씨도 요리사의 관점에서는 견과다). 음식과 건강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종종 딱딱하게 느껴지는 것은 음식을 음식답게 먹는 경우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에서 제일 재미없는 게 건강에 대한 내용이라면, 음식 이야기를 제일 재미있게 만드는 건 역시 요리에 관련된 내용이다.
다시 호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호두의 원래 한자어 호도胡桃에서 호胡가 가리키는 이국의 오랑캐는 누구였을까? 중국을 뜻하는 호떡胡-과 호면胡麵(당면)의 경우와는 달리, 호두의 호는 서아시아, 즉 중동 지방을 뜻한다. 기원전 126년 장건張騫이 서역 순례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가져와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견과를 하필이면 말린 과일과 함께 먹는 이유는 뭘까(개인적으로 늘 궁금했던 질문이다). 중동 식문화의 영향이다. 건포도, 대추야자와 같은 말린 과일과 아몬드, 호두, 헤이즐넛을 갈아 견과 특유의 부드러운 맛과 향을 더해주는 것 역시 모두 중동 요리의 특징이다.
모든 견과의 원산지가 중동 지방인 것도 아니고 수프에 견과 페이스트를 넣는 것도 그들만의 방식은 아니다. 브라질에서는 코코넛을, 멕시코에서는 호두를, 미국 남부에서는 땅콩으로 수프를 끓인다. 코코넛은 열대 아시아, 호두는 서아시아, 땅콩은 남미가 원산지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섞인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 각국의 음식과 요리는 공통적이면서도 다르고, 서로를 배척하는 듯하면서도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그래서일까. 음식 이야기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까면 깔수록 더 맛나다. 견과와 똑 닮았다.

text 정재훈 — edit 권민지 — photograph 박재현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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