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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스와니예 @이용재

2016년 2월 18일 — 0

스와니예는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콘셉트의 퀴진을 선보인다. 여덟 번째 에피소드인 야생(Wild)을 맛보았다.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 이민진
© 이민진

“스와니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Soigné는 ‘완성도가 높은’ ‘잘 만들어진’이란 뜻의 프랑스어로 이준 셰프의 유학 시절 별명이자 저희가 추구하는 음식의 방향을 뜻합니다.” 식탁에 놓인 카드의 소개 문구다. 시작은 과연 이름답다. 아뮈즈부슈의 이어달리기가 정교함으로 매혹을 시도한다. 빠른 페이스와 높은 완성도가 맞물려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덕분에 일단 직관에 호소한다. 몇몇은 좋다. 번데기에 채운 탈레조 치즈, 돌돌 만 애호박 카르파초에 얹은 튀긴 새우젓이 인상적이다. 전자는 번데기의 내장을 업그레이드한다. 쿰쿰함의 결이 잘 맞물린다. 후자는 애호박과 새우젓의 궁합을 개념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일단 재미는 있다. 반면 실패도 확실하다. 크림치즈를 곁들인 대파구이는 심이 미끈거린다. 질감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재료의 태생적 한계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서양 대파(리크)를 치환하려는 의도였을까? 무엇보다 궁금한 건 흐름이다. 예닐곱 가지를 관통하는 콘셉트는 무엇인가? 요구르트를 얹은 비트, 메밀차와 아란치니를 해석한 오렌지 도넛의 짝짓기는 알쏭달쏭하다. 재미는 있지만, 휘발성이 강하다. 금세 날아가고 없다.

채 헤아리기 전에 코스는 주요리로 넘어간다. 에피소드 8의 콘셉트는 야생(Wild)이다. 과연 어떻게 구현할까. 개구리 크로켓이 명확한 답과 함께 등장한다. 사슴, 개구리, 더덕, 달팽이, 능이버섯, 꿩 등 야생적이라 믿는(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은) 재료를 평범한 조리 방법과 짝짓고, 아뮈즈부슈처럼 조리의 완성도에 최대한 집중한다. 실행이 좋은 음식에 콘셉트의 스토리텔링 양념을 뿌린 것으로, 혼동의 산물이다. 야생적인 재료의 선택과 야생적인 맛 구현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가 후자를 자동적으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비슷하지도 않다. 맛내기는 전혀 다른 과업이다. 주요리 전반부의 더덕구이가 둘의 차이를 아주 간단하면서도 극명하게 보여준다. 통더덕이 그대로 등장해 얼핏 ‘야생’적으로 보이지만, 흰 속살의 용기로 쓰일 뿐이다. 게다가 조리 상태는 구이보다 찜에 가깝다. 전혀 야생적이지 않다. 껍질과 속살 사이 끼여 있는 풋콩의 어색함까지 감안하면, 실패 이전에 미완성이다. 더덕에서 야생의 흔적이라면, 주로 껍질에 배어 있는 향일 것이다. 모양보다 이를 살려야 한다. 달여 농축시켜 소스의 바탕으로 삼았다면 어땠을까. 다크 초콜릿을 갈아 뿌리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다. 파르메산 치즈에게 손을 벌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혼동은 스와니예만의 문제가 아니다. 콘셉트를 맛으로 구현하는 법을 모르고 단순한 재료 선택이나 형상화에 휘둘린다. 언제나 최종 목적이어야 할 맛은 표류한다. 다시 야생에 대해 생각해보자.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재료의 선택만으로 구현하고 싶다면 언제나 수렵 채집(foraging)이 있다. 또한 코스는 그 자체로 흐름이고 이야기다. 시나리오도 도입할 수 있다. 인간이 야생의 상태에 본의 아니게 처해, 생존을 위해 요리한다는 설정 같은 건 어떤가. 모닥불 같은 직화를 통한 구이가 떠오른다. 핵심인 불의 향과 거칢을 파인다이닝의 맥락 안에서 재현한다. 위악의 미덕을 담는 것이다. ‘야생=개구리, 달팽이’의 공식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본격적으로 고기를 내는 주요리 후반부에서는 그마저도 증발해버린다. 흑돼지, 양, 와규 안심, 바닷가재에 야생의 흔적이 배어 있는가? 아니다. 이런 재료로 원하는 콘셉트의 맛을 굳이 내겠다면 현대 요리 수준의 기술이 개입해야 한다. 물성마저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스와니예의 음식은 그 영역을 건드릴 의도까지 내비치지 않는다.

발상의 순진함은 디저트에서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완성도와 무관하게 다소 무안할 지경이다. ‘안개’는 복숭아 소르베 위에 솜사탕을 얹었다. 안개를 형상화한 것. 요리 이름을 결정짓는 요소가 완전히 장식적이니 큰 의미가 없다. 소르베는 끝물 복숭아의 맛과 향을 충실하게 담았다. 솜사탕이 없더라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설탕 실은 빙과의 차가움 때문에 딱딱해질 수도 있다. 혹 한창 유행했던 솜사탕 소프트아이스크림의 변주? 그 태생적인 한계를 느껴보지 못한 걸까.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함께 씹으면 설탕 알갱이는 딱딱해져 이에 들러붙는다. 지방인 초콜릿도 마찬가지다. 안개는 뿌옇고 또 축축하다. 이를 맛과 질감으로 표현해야 한다. ‘제주 현무암’은 한층 더 순진하다. 초콜릿 무스의 색깔과 형태로 제주의 지층을 표현했다. 안타깝게도 질감마저 딱딱한 게 닮았다. 의도라기보다 온도 조절과 내는 시기 조절의 실패일 것이다. 그나마 정식당의 돌하루방 케이크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은 것이 위안이랄까.

변덕스러운 실행에 기대어 주의를 끌고 불완전한 콘셉트를 덮으려는 전략은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음식의 정체성이 무너진다. 연말의 에피소드 9 ‘올스타’에선 그런 요리가 굉장히 선명하게 드러났다. 손님이 가득 차자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진 것. 미리 만드는 요소가 대부분인 아뮤즈와 크게 벌어지는 격차도 방증이었다. 이를테면 ‘달팽이’는 일단 질겨 완벽하게 부드러운 커스터드에 방해되는 것은 물론, 전체의 경험을 망칠 정도로 하나가 몹시 썼다. 축 처진 시금치가 전혀 영문을 헤아릴 길 없이 합세했는데, 서두른 흔적이 진하게 묻어나는 플레이팅을 한층 더 악화시켜 보기에도 안 좋을뿐더러 맛도 전혀 없었다. 레스토랑의 이름을 배신하는 완성도였다. 데친 것으로 보여 의아했으나, 열린 주방으로 보인 게 맞다면 실패한 튀김이었다. 뒤를 이은 ‘브란지노’는 바로 그 주재료가 완전히 촉촉함을 잃은 가운데, 이 사이로 계속 빠져나가 씹기 어려운 보리 알갱이와 이유를 헤아리기 어렵게 지금거리는 국물이 한데 모여 완벽한 실패였다. 대미를 장식한 ‘메추리’는 고기 특유의 강한 철분 맛과 푸아그라의 짝이 좋았지만, 시각성의 굴레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저 놓인 은달래가 아쉬웠다.

오히려 레스토랑의 진짜 ‘스와니예’한 측면은 서비스였다. 일단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했다. 한국 레스토랑의 보편적인 서비스 정서는 가감 없이 표현해 매우 괴롭다. 한국적인 인식과 서양의 형식이 만나, 굴종적이면서도 무관심하다. 스와니예의 정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끔 경계를 넘을락 말락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스스로 정해놓은 거리를 지키는 가운데 친근하면서도 유연했다. 아주 보기 드문, 적절한 훈련을 통한 공적 자아의 움직임이었다. 음식의 완성도가 고통받을 정도로 바쁜 상황에서 볼 수 있었던 스태프, 특히 서버의 움직임에서도 훈련과 직업정신의 흔적이 물씬 묻어났다. 민첩하면서도 유기적인 움직임이라니. 잘 정돈된 홈페이지와 더불어 레스토랑의 저변을 확인할 수 있는, 음식 바깥의 실마리였다.

어설프게 숨 죽은 시금치보다 몇 배는 더 흥미로운 움직임을 감상하며 동시대성의 의미를 생각했다. 스와니예는 ‘서울의 동시대적(Contemporary In Seoul)’ 레스토랑을 표방한다. 과연 서울의 동시대성이란 무엇일까. 족보도 근거도 없는 물리적 결합을 정당화하는 ‘퓨전’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서울 공대 교수들이 근저 <축적의 시간>에서 지적한 한국의 문제는 개념 설계(Conceptual Design) 역량의 부족이다. 바로 음식 문화의 문제다. 동시대성이 퓨전과 거리를 두려면 셰프가 개념의 측면에서 성장해야 한다. 답은 높은 확률로 음식 바깥에 있다.

스와니예
분위기: 흑색 철과 나무의 현대적 조화, 백색 악센트
서비스: 굴종적이지 않은 활기
소리: 보통의 웅성거림
메뉴 및 가격 : 코스 점심 4만5000원‧6만5000원, 저녁 11만원
와인: 의도만큼 재미있지는 않은 페어링
예약: 추천(홈페이지 가능)
장애인 편의: 진입 불가
좌석수 : 37석(바 17석, 테이블 20석)

• 서울시 서초구 반포대로39길 46 B1F
• 02-3477-9386
www.soigneseoul.com
• 월~일요일 정오~오후 3시, 오후 6~11시(라스트 오더 각 오후 1시 30분, 오후 8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