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Dining

보통날의 오사카

2016년 2월 17일 — 0

하릴없이 오사카를 헤맸다. 어떨 땐 좋은 것을 먹었고, 술로 대충 주린 배를 채울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제법 동네 주민의 체취가 났다. 그게 참 좋았다.

editphotograph 문은정 — product(카메라) 소니코리아(1588-0911)

오사카 난바역의 해질 무렵 풍경. © 문은정
오사카 난바역의 해질 무렵 풍경. © 문은정
1st DAY

간사이 공항에서 JR을 타고 오사카 덴노 지역에 도착했다. 구글맵을 따라 엉거주춤 길을 나섰다. 아스팔트에 닿은 캐리어가 덜덜 마찰음을 일으켰고, 지나가던 오피스 레이디들은 힐끔대며 시선을 던졌다. 골목길에 들어서자 인기척에 놀란 고양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뛰었다. 먼지 앉은 카페와 오래된 미용실, 계동의 중앙목욕탕처럼 낡은 온천을 순차적으로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번잡한 도심이었는데, 골목은 시간을 역행해 있었다. 1980년대 어느 지점쯤 멈춰 선 듯 보였다. 유치원에서 노란 모자를 쓴 아이들이 쏟아져나왔고, 노인들은 딸랑대며 자전거를 몰았다. 바구니에 담긴 봉지에선 바스락 소리가 났다.

“정말, 아무 밥집이나 다 맛있어요.” 오사카로 휴가를 떠난 건, 후배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고르고 거를 필요 없이 항상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미식의 천국. 그런 천국에 잠시 머무르고 싶었다. 실제로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이라 불린다. 이러한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에도 시대, 오사카가 유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미식은 경제와 함께 발달한다. 에도 시대도 그랬다. 언제나 그렇듯 돈 많은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먹었고, 요리사들은 전국에서 올라온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음식을 냈다. 지역의 특산물이 물길을 따라 오사카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으레 도쿄 사람은 보다 죽는다 하여 ‘미다오레みだおれ’, 교토 사람은 입다 죽는다 하여 ‘기다오레きだおれ’, 오사카 사람은 먹다 죽는다 하여 ‘구이다오레くいだおれ’라 부른다. 그렇게 오사카에서 먹다 죽을 계획으로 왔다. 아니, 딱 죽기 직전까지만.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으자 갑자기 허기가 느껴졌다. 숙소의 호주인 스태프가 지도에서 괜찮은 초밥집과 스테이크집의 위치를 짚어줬다. 카메라와 지갑, 휴대폰만 챙겨 거리로 나섰다. 택시를 탈까 잠시 고민했지만,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느릿느릿 동네 구석구석을 기웃거렸다. 길에서 만난 꼬마가 까르르 웃었고,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지유켄은 오사카 최초의 경양식집으로 명물 카레가 유명하다. © 문은정
지유켄은 오사카 최초의 경양식집으로 명물 카레가 유명하다. © 문은정

LUNCH – 이키나리 스테이크

초밥집을 찾다가 길을 잃었고, 헤매던 길에서 스테이크집을 발견했다. 이키나리いきなり스 테이크. 검색해보니 도쿄에서 시작한 체인점으로, 신촌의 서서갈비처럼 서서 먹는 가게였다. 고생해서 먹는 만큼 가성비가 좋았다. 메뉴판의 가격을 보니, 직장인들이 점심시간마다 밀어닥칠 만한 곳이었다.

카운터 테이블에는 늦은 점심을 해결하는 회사원 무리가, 창가에는 중년의 여성이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옅은 빛이 들어오는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3시가 넘지 않았기에 런치 세트를 주문하는 특권을 누렸다. 철판 위에 올려진 스테이크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등장했다. 쉴 새 없이 지글지글댔다. 두께가 족히 손가락 한 뼘은 돼 보이는, 피가 뚝뚝 흐르는 아름다운 자태를 띠고 있었다. 스테이크와 통조림 옥수수, 소스가 전부였지만, 그 단순한 플레이팅이 담백하게 느껴졌다. 고깃덩이를 슥슥 썰어 베어 물곤, 혓바닥에 닿는 고기의 감칠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지루할 땐 와사비 소스를 발라 지친 미각도 자극했다. 그리고 결국, 먹다 지쳤다.고기 서너 점을 남긴 뒤 레스토랑을 나왔고, 맥주를 시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걸었다. 그렇게 먹고도 고작 1300엔을 냈다.

따뜻한 4월의 봄날같던 한겨울의 오사카. © 문은정
어찌됐든, 들어가는 순간 서서 먹어야 하는 이키나리 스테이크. © 문은정

이키나리 스테이크
• 와일드스테이크(300g) ¥1200, 안심스테이크(300g) ¥2700
• 中央区難波1-5-23 法善寺タウンビル 1F
• 06 6120 9129

DINNER – 지유켄&코모도

난바 역 25번 출구를 나서니 세찬 바람이 불었다. 난바는 오사카의 남부, 미나미의 심장으로 불린다. 쉬는 날이면 취객들로 북적이고,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여자들이 거리를 메운다. 오사카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며 패션 거리인 아메리카무라로 향했다. 집중력을 발휘해 소호 숍을 이 잡듯 뒤졌고, 두어 시간의 노동 끝에 쓸만한 옷 몇 벌을 건졌다.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고 나니, 즐거우면서도 허기진 기분이 되었다. 근처의 카레집인 지유켄自由軒에 들어섰다. 오사카 명물 카레의 원조집으로 오사카 최초로 서양 요리를 선보인 곳이라고 했다. 생긴지는 100년도 넘었다. 가장 유명하다는 명물 카레를 시켰다. 밥을 카레로 뻑뻑하게 비빈 뒤 날달걀에 소스를 뿌려 먹는 카레였다. 날달걀을 섞으니 뻑뻑했던 밥이 부드럽게 변했다. 오사카 사람들의 소울푸드라고 했다. 한국 사람의 소울은 아닌지라 딱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훌륭한 맛보다는 경험해볼 만한 맛이었다.

여행에서 술과 음악이 빠질 순 없다. 배불리 밥을 먹은 뒤, 근처에 위치한 재즈 바 코모도Comodo로 향했다. 바 테이블에 앉아 블러디메리를 주문했다. 여행지에서 여자 혼자 술이라니, 대범해진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인인가요?”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건넸다. 자신을 미사상이라고 소개한 중년의 여성은 한국을 좋아한다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블러디메리를 두 잔 비우며 우리는 <대장금>의 이영애와 FT아일랜드에 대해 떠들었다. 대화보다는 눈짓과 손짓이 더 많았지만, 대부분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일본인 할아버지가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연신 환호성을 질러댔다. 본치 오사무The Bonchi Osamu라고 하는 일본의 국민 개그맨이라고 했다. 생일을 맞아 지인들과 함께 코모도를 찾았고, 재즈를 좋아하는 오사무상이 직접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이었다. 여행의 첫날,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 되었다.

지유켄은 오사카 최초의 경양식집으로 명물 카레가 유명하다. © 문은정
지유켄은 오사카 최초의 경양식집으로 명물 카레가 유명하다. © 문은정

지유켄
• 명물카레(소) ¥750
• 大阪市中央区難波3-1-34
• 06 6631 5564

코모도
• 생맥주 ¥700, 오므라이스 ¥900
• 大阪市中央区東心斎橋1丁目17-15 丸清ビル4F
• 06 6258 8088


2nd DAY

BREAKFAST – 요시노야

커튼을 젖히니 부드러운 햇살이 쏟아진다. 갓 구운 와플에 유기농 사과로 만든 잼, 적당히 산미가 있는 커피…는 무슨. 결국 늦잠을 잤다. 딱딱한 침대가 있는 숙소의 밤은 고되다. 머리에 까치집을 하고 부스스 일어나, 대충 옷을 챙겨입곤 길을 나섰다. 사실 럭셔리한 조찬보다도 오사카 사람들의 입맛에 무난히 통과되는 아침밥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오사카식 김밥 천국에 갔다. 요시노야Yoshinoya는 직장인들이 쉬이 들르는 밥집이다. 스키야와 마츠야도 비슷한 곳들이다. 이런 대중적인 밥집의 메뉴를 맛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입맛을 알 수 있다. 낫토, 연어구이, 김, 메밀, 불고기…. 메뉴를 보며 오사카 사람들의 취향을 찾았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고등어자반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백반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낫토와 연어구이, 김, 미소로 구성된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투박한 밥상이었지만, 먹고 나니 순식간에 속이 편안해졌다.

식당 밖을 나서니 물 비린내가 났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하늘이 잿빛이었다. 천천히 걸어 근처의 덴노지 동물원으로 향했다. 천황의 생일이라 번잡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흐린 날의 동물원은 꽤나 한적했다. 천천히 사색하듯 걸었다. 홍학, 얼룩말, 사자 따위를 구경 하다, 동물원을 뛰노는 작은 아이들의 뒤를 쫓기도 했다. 곳곳에 동물이 먹는 식물을 함께 심어놓았기에, 작고 발그레한 열매도 많았다. 가져간 카메라의 필름이 바닥났을 때,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 히 우산을 쓰고 동물원의 출구를 나서니, 신세카이しん せかい라고 쓰인 골목의 입구가 보였다. 신세카이는 우리말로 신세계를 뜻한다.

대중적인 맛을 체험할 수 있는 요시노야. © 문은정
대중적인 맛을 체험할 수 있는 요시노야. © 문은정

요시노야
• 야키도리츠쿠네동 ¥390, 부타동 ¥390
• 大阪府大阪市浪速区難波中2丁目18-115(난바지점)
• 06 6630 5277

LUNCH – 구시카쓰 다루마

신세카이 잔잔요코초에 들어서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오래된 오락실, 영화관, 이자카야…. 우산을 쓰고 가게 안을 엿보며 돌아다녔다. 옛 오사카의 거리 분위기와 현대의 세련됨이 공존하는, 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 100년 전만 해도 신세카이는 양파밭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03년, 제5회 일본 전시회&박람회 장소로 지정되며 전격 개발되었다. 신세카이라는 이름도 그때 생겼다.

고양이 작품으로 가득한 가게 유리창에 코를 댔을 때,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손짓을 했다. “들어와, 들어와.” 못 이긴 척 일단 들어갔다. 커피는 단돈 100엔. 고양이 작품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덤이었다. 솜씨 좋은 일본 할배의 작품을 구경하며 커피를 홀짝대다, 근처의 유명한 구시카쓰집을 물었다. 다들 손뼉을 치며 ‘다루마’를 외쳤다. “아리가토”를 연발하며 가게를 나왔다.

일본식 튀김꼬치를 뜻하는 구시카쓰는 신세카이에서 출발했다. 그 원조가 바로 구시카쓰 다루마串カツだるま다. 거리에 수많은 분점이 있었지만, 묻고 헤매기를 반복하며 본점을 찾았다. 좁은 골목에 위치한 구시카쓰 다루마의 본점은 1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중앙 자리에 호기롭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곤 시범 삼아 소고기와 가지 등의 구시카쓰를 몇 개 주문했다. 그리고 갓 나온 구시카쓰를 맛본 순간, 튀김의 신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했다. 맥주를 들이켜며 ‘튀김의 절정에 이른다면 이런 맛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안주가 훌륭하니 금세 알딸딸해져버렸다. 창 밖은 봄처럼 따듯한 비가 내리고, 최고의 안주와 술이 있다. 취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혼자 술 마시는 여자가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이내 혼자 온 여자 손님이 옆에 앉았고, 역시나 나처럼 혼자 술을 마셨다. 우리는 서로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경쟁하듯 술을 마셨다.

구시카쓰 다루마 본점에 가니, 어떤 남자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 문은정
구시카쓰 다루마 본점에 가니, 어떤 남자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 문은정

구시카쓰 다루마
• 원조꼬치튀김(쇠고기) 돈카쓰 표고버섯 ¥105씩 1세트(8개) ¥1050
• 浪速区恵美須東1-6-8
• 06 6636 1559

DINNER – 토라짱

취한 자에겐 딱히 두려울 것이 없다. 신세카이를 헤집고 다니다, 묘한 분위기의 야키도리집을 발견했다. 바 테이블로 된 작은 바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술을 마셨고, 한 명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입구에는 한국어로 ‘부산 아줌마 가게’라 적혀 있었다. 토라짱虎ちゃん이라는 곳이었다. 기웃대며 구경하니, 사람들이 연신 손짓을 해댔다. “들어와, 들어와.” 손짓은 언제나 좋다. 냉큼 들어가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좋은 가게에 왔어.” 자신을 미루상이라고 소개한 아저씨는 벌건 얼굴로 껄껄대며 말했다. 옆에는 중절모를 쓴 노신사가, 끝에는 나고야에서 온 커플이 앉아 있었다. 나고야에서 온 언니는 노래를 참 잘했다. 부산 아주머니는 언니가 부르는 노래 한 구절을 해석해주었다. “나중 일은 생각하지 마세요 / 저 혼자 방문을 열겠어요 /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을 바꿀게요 / 눈물이 글썽대는,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잊어버리기 위해.” 사람들은 노래가 끝나자 “うまい(잘한다)”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쳤다. 일본으로 시집온 지 27년째라는 부산 아주머니는 마이크를 건네며 말했다. “아가씨, ‘강남 스타일’ 불러봐.” “에이, 언니. 그건 부르는 노래 아니에요. 듣는 노래죠.” 자신 없는 노래 대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 서른은 이미 훌쩍 넘겼는데 왠지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파란 눈의 외국인이 가게 밖을 기웃댔다. 우리는 얼른 손짓을 했다. “들어와, 들어와.” 사람들의 손짓에 혹한 그 역시 어느새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독일에서 온 제임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우린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은 터라, 처음으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 것이 못내 반가웠다. 나라에서 온 황상과 그녀의 남자친구, 치야키, 고이치, 하마구치…. 실컷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며 수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됐다. 여행지의 외로움이 절로 사라졌다. 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더 마셨다간 좋은 추억이 일그러질 것 같았다. 코트를 입고 문을 나섰다. 부산 아주머니가 다급히 외쳤다. “너, 나중에 또 올거지?” 고개를 열 번 넘게 끄덕였다. 리얼 심야식당에서 그녀의 꼬치구이를 먹기 위해서라도, 오사카 신세카이는 반드시 또 와야만 한다.

가게를 나서는데 제임스가 따라나섰다. 잘생기고 어린 남자가 따라오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헵파이브 대관람차를 타러 우메다 역으로 향했다. 함께 우산을 쓰고 오사카의 비오는 거리를 걸었다. 적당한 습기와 바람, 적당한 취기가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도 열띠게 나눴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말했다. “난 정말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 그런데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산을 버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따뜻한 빗방울이 얼굴에 닿았다. “뛰자!” 괜히 빨간 불의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쓸데없이 오사카의 시내를 뛰었다. 취기에 소리를 지르고 마구 웃었다. 검은 정장의 오사카 사람들이 무심히 곁을 지나쳐갔고, 그 사이에서 우리만 들떴다. 도톤보리에 들러 글리코맨을 본 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오코노미야키를 사먹었으며, 파친코에 들어가 솜씨 없이 슬롯도 돌렸다. 마지막으로 빨간 헵파이브 대관람차에 올라 오사카의 습기 어린 야경을 구경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행복해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조명이 되고 오사카의 사람들은 춤을 추듯 걸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12월 24일의 풍경. © 문은정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조명이 되고 오사카의 사람들은 춤을 추듯 걸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12월 24일의 풍경. © 문은정

토라짱
• 네기마 닭껍질 닭가슴살꼬치 ¥150씩 생맥주 하이볼 ¥500씩
• 浪速区恵美須東1丁目18-8


3rd DAY

LUNCH – 스시사카우

늦은 아침, 슬슬 일어나 동네 온천으로 향했다. 나니와노유, 스파월드 등 오사카에는 유명한 온천이 많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동네 사람처럼 목욕하고 싶었다. 작은 가방에 샴푸, 린스, 칫솔 등을 구겨 넣고 슬리퍼를 신고 길을 나섰다. 와코 온천은 곳곳이 바래고 낡아, 어릴 적 할머니를 따라다니던 80년대 목욕탕을 연상시켰다. 목욕탕 거실에서 음료를 마시며 TV를 보는 모습이나, 동전을 넣고 말리는 헤어드라이어, 의자와 물을 받는 대야까지 너무나 흡사했다. 다른 점이라면 문밖에 작은 노천 온천이 있다는 것. 따듯한 노천에 턱까지 몸을 담그고 발을 첨벙거렸다. 조글조글해진 발가락을 하곤 소파에 앉아 일본 아주머니들과 뉴스도 봤다. 그러곤 바나나우유 대신 토마토 주스를 물고 목욕탕을 나섰다.

숙소로 돌아와 가장 근사한 옷으로 차려입었다. 지하철 입구에 놓인 공중전화로 궁금했던 스시야에 예약을 했다. 스시사카우寿司かが万는 미슐랭 1스타를 받았던 레스토랑이다. 직장인들로 붐비는 증권거래소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가게에 들어서니 바 테이블 너머로 스시를 쥐는 여자 셰프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왠지 일식 셰프는 여자가 많지 않다. 초밥을 쥐는 섬세한 그 손을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메뉴판을 살피다 가성비 좋은 런치 메뉴를 주문했다. 참깨로 만들었다는 두부는 쫀득한 것이 푸딩 같았다. 녹진한 맛이 났다. “흰살 생선은 소금에 찍어 드시고, 붉은살 생선은 간장에 찍어 드세요.” 기모노를 입은 웨이트리스가 설명했다. 아카미와 구루마에비, 아나고, 나니마키 등 7가지 초밥이 순차적으로 나왔다.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양이 넉넉지 않았다.

스시사카우의 여자 셰프인 오카하라상. © 문은정
스시사카우의 여자 셰프인 오카하라상. © 문은정

도심의 강변을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점심 식사를 마 친 직장인들이 라이터 불을 똑똑대고 있었다. 분홍색 정장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멋쟁이 할머니도 지나 갔다. 세련된 도심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잠시 모토커피Motocoffee에 들렀다. 강변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아 테이크아웃을 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난바역으로 갔다. 그릇 시장인 도구야스지道具屋筋로 가기 위해서다. 도구야스지는 주방도구 전문 시장이다. 약 160m 길이 의 거리에 수십 개의 점포가 늘어서 있었다. 오사카의 식당에서 쓰이는 그릇은 모두 다 이곳에서 나온 듯 싶었다. 멋스러운 도자기부터 술잔과 노렌, 음식 모형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조금만 산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두 손은 한껏 무거워져 있었다.

점심의 양은 분명 적었다. 금세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았다. 도구야스지 근처에 위치한 구로몬 시장くろもん いちば으로 향했다. 1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재래시장 이다. 초저녁 비행기라 이곳에서 잠시 군것질을 하고 가기로 결심했다. 아와지 지역에서 올라온 3년산 복어, 구마모토 현의 하얀 딸기 ‘딤설’, 홋카이도의 굴, 시즈오카 의 와사비…. 전국의 산물이 한곳에 집결해 있었다. 구로몬 시장의 장점은 즉석에서 고른 해산물로 요리를 해준다는 것. 시간을 맞춰가면 커다란 참치를 해체하는 진풍경도 감상할 수 있다. 가판대에 전시된 초밥 한 상자를 골라 자리에 앉아 정신없이 먹었다. 연어, 장어로 만든 초밥 세트였는데, 점심에 먹은 스시야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 공항으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근처의 고베, 나라, 교토는 들르지도 않고 2박 3일간 오사카에서만 일정을 보냈다. 한 동네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2박 3일은 너무나 짧았다. 1주일, 아니 한 달은 보내야 오사카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느새 해가 도심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맛의 도시 오사카를 흐르듯 놓아주었다. 마음 속에 아쉬움이 번졌다.

모토커피는 커피를 맛있게 뽑기로 유명한 곳이다. © 문은정
모토커피는 커피를 맛있게 뽑기로 유명한 곳이다. © 문은정

스시사카우
• 런치스페셜 ¥4000
• 大阪府大阪市北区堂島1-2-33坂ビル5F
• 06 6341 2233

이 기사도 읽어보세요
알고 보면 복잡한 탄산수 이야기 탄산수를 처음 마셨을 때의 따끔거렸던 목 넘김은 계속 경험할수록 이내 청량하고 시원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탄산수 열풍이 일 정도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매력은 무엇일까. © 박재현 탄산수의 달콤한 자극 언어는...
가을을 담은 제철 식재료 올리브 그린, 라이트 베이지, 크림슨 레이크, 프렌치 버밀리언.... 모든 산물은 초가을의 오묘한 색을 담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이 사그라드는 게 안타까워, 네 장의 화폭에 재빨리 담았다. 가을의 싱그러움이 그리울...
1월 신상 품평기 기능은 물론 디자인까지 갖춘 트렌디한 신제품을 사용해보았다. edit 이지희 — photograph 심윤석 발뮤다, 더 토스터 © 심윤석 발뮤다만의 스팀 테크놀로지와 토스트에 최적화된 온도 제어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