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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시대를 반영하다 @정재훈

2016년 2월 11일 — 0

과학의 발전과 다양한 문화 속에서 변화를 거듭하는 두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text 정재훈 — edit 권민지 — photograph 박재현

© 박재현
© 박재현

출소한 사람에게 왜 제일 먼저 두부를 먹이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교도소에서 제공되는 음식이 부실했던 시대에 영양 보충을 위해 두부를 줬다는 설이 있지만 신빙성은 떨어진다. 이미 콩밥을 먹고 나온 사람에게 영양 결핍이 있다고 한들 두부로 채우긴 어려울 테다. 그보다는 제액除厄을 뜻하는 액막이를 위한 두부 먹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더 설득력 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그해의 액운을 막기 위해 생두부의 한 귀퉁이를 잘라서 먹는 풍습이 감옥에서 나온 사람에게 두부 먹이는 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풍속에 대해 알 리가 없었던 초등학생 시절, 내가 세운 이론은 다음과 같았다. 차가운 두부는 조금만 먹어도 콩 비린내 때문에 비위가 상한다. 그런 생두부를 한 모나 먹는다면 문자 그대로 치가 떨린다. 다시는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되새기기에 차가운 생두부만큼 효과적인 음식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나의 생각은 오늘 두부를 맛보면서 깨지고 말았다. 혀끝에 느껴지는 질감은 부드러우면서도 몽글몽글했고, 완급이 조절된 고소한 맛도 훌륭했다. 뒷맛은 과하게 익혔을 경우 발생하는 특유의 텁텁함 없이 깔끔했다. 이런 두부라면 생으로 먹어도 질릴 리가 없다.

두부의 복고 트렌드
요즘 두부는 예전과는 다르다. 일단 맛이 확실히 나아졌다. 그런데도 막상 요즘 마트를 주름잡는 두부 트렌드는 복고풍이다. 진열대에서 제일 비싸 보이는 두부는 전부 옛날 식으로 만들었다는 제품들이다. 콩, 물, 간수만을 사용하여 두붓발을 세우고, 살짝 엉긴 순두부를 베보를 깐 나무틀에 앉히고 눌러 물을 짜내 굳히는 옛 전통 방식을 따라 만든 ‘진짜’ 두부라는 것이다. 그 ‘옛날’ 이란 정확히 언제일까?

고려시대는 아니다. 그때 두부는 조포사로 지정된 사찰에서나 만들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양반들이나 절간에 모여 연포탕을 즐길 수 있었던 조선시대도 아니다(연포탕은 본래 연한 두부와 닭고기를 넣고 끓여 먹는 음식으로 낙지와는 관계가 없었다). 조선시대 서민층에게 두부는 큰 잔치나 제사 때나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콩의 진액만 응고시켜 두부를 만드는 것이 사치스러운 일이기도 했지만 두부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25년 최서해의 자전적 소설 <탈출기脫出記>를 보면 근대에 와서도 두부 제조가 얼마나 지난한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두부 제조에 성공할 때도 있었지만, 두붓물이 희멀끔해지고 기름기가 돌지 않으면 응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두부 제조에 실패할 때도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온 집안이 비통함에 잠겼다고 기록했다. 왜 실패했을까? 그가 쓴 콩의 품종이나 단백질 함량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콩이 오래된 것이라 단백질 성분이 물에 잘 녹아 나지 않아서 였을 수도 있다. 두유 응고는 두부 제조에서 가장 복잡하고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는 단계로, 콩의 품종과 품질, 단백질 함량, 두유를 끓이는 온도, 두유의 농도, 부피 등 13가지 이상의 요소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합주곡이기 때문에 변수가 많다.

과학과 함께 발전한 두부 제조법
두부는 분자요리의 원조다. 두유 속의 단백질과 지방이 엉겨서 만들어내는 그물 같은 입체 구조는 오늘날 분자 요리에 종종 등장하는 알긴산 구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이 과정에서 콩은 좀 더 소화하기 좋은 음식으로 변모한다. 아직도 가끔 날콩이 몸에 좋다는 주장이 들리지만, 콩을 날로 먹으면 얻게 되는 것은 복통 뿐이다. 날콩에는 소화를 방해하는 항영양인자가 들어 있어 충분히 익히지 않으면 장염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킨다. 콩을 가열 조리하면 이들 성분은 무력화된다. 하지만 장 내 가스를 만들어내는 올리고당 성분은 그대로 남는다. 때때로 빈 속에 두유를 마시면 가스가 차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물에 녹은 올리고당을 비지와 함께 제거해 만드는 두부는 더 부드럽게 소화된다. 두부에는 콩의 영양을 효율적으로 흡수하면서도 맛을 즐기기 위해 인류가 찾아낸 지혜로운 기술이 담겨 있다. 두부는 과학이다. 그러니 과학 기술이 발달할수록 두부가 더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음식에 관한 한 고정불변의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음식을 만드는 방법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했고, 그 과정에서 이전의 전통과 관례가 부서지는 일도 많았다. 두부를 만드는 방법도 그렇다. <문종실록文宗實錄>에는 정효강이라는 관리가 염전의 위생을 우려하여 소금에서 얻은 간수 대신 산수(신맛이 강한 물)를 쓰자고 상소를 올린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그 당시 두부 응고제는 소금에서 녹아나온 간수를 쓰는 게 관례였는데 염전을 소로 갈아서 배설물이 섞인 바닷물로 소금을 굽다 보니 정결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를 확인한 문종은 이후 두부를 만들 때는 산수를 쓰도록 했다. 종묘 제례에 사용할 두부에 조금이라도 오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천일염이나 해수를 천연응고제를 사용했다며 뽐내는 요즘 두부 가운데 조선 왕실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오늘날로 치면 산수는 해수보다 신맛의 화학응고제에 가깝다).

두부 포장 라벨의 ‘옛날’이란 단어가 정말 옛날 방식을 뜻하는 건 아니다. 압력을 점점 센 강도로 높여가며 누르는 기존 방식 대신, 제조 기계를 통해 일정한 압력으로 서서히 탈수시켰다는 의미다. 어떻게 보면 무늬만 옛 두부인게 그나마 다행이다. 사람이 큰 돌을 들고 나무 틀 위에 올라가 물을 짜냈던 옛 방식을 고집한다면 조선 시대의 두부처럼 만들자마자 금세 쉬어버릴 테니 말이다. 요즘 두부는 냉장고에서 2주일도 거뜬하다. 생산 과정에서 균의 오염을 철저히 막아 단단히 포장한 후 냉장 유통하기 때문이다. 전통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제조 방식을 개선한 결과다.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원료만 봐도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 수입산 콩부터 유기농 수입산 콩이 있고 국내산 콩에 원산지를 표시한 제품도 있다. 검은콩으로 만든 것도 있고 발아한 콩을 쓴 제품도 있다. 하지만 두부의 용도는 단조로움 그 자체다. 대한민국 두부는 거의 대부분 찌개용 아니면 부침용이다. 가끔 찌개용을 샀어야 했는데 부침용을 샀다며 한탄하는 소리도 들리지만, 단단한 정도가 약간 다를 뿐이지 그 차이는 크지 않다. 그 정도 차이는 조리법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다양한 문화 안에서 변모하는 두부
기름을 두르고 팬에 구우면 두부의 맛이 달라진다. 두부의 대부분은 물로 되어 있으므로 가열로 두부가 뜨거워지면 내부의 수분도 함께 끓는다. 이때 만들어지는 공기 방울 때문에 두부 속에는 구멍이 생긴다. 수분이 증발하면 그만큼 응고제 농도가 높아져 두부가 더 단단하게 굳는다. 같은 이유로 된장찌개에 두부를 넣고 너무 오래 끓이면 구멍이 뚫리고 쪼그라든다.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팬에서 과잉으로 익힌 두부는 최악이다. 달걀옷을 입혀서 수분 증발로 인한 질감의 변화를 줄이거나 또는 딥프라잉으로 튀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 부침용 두부라도 찌개를 다 끓인 다음에 살짝 익히면 충분히 부드럽게 맛볼 수 있다.

재료에 따라 맛과 식감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북미의 마파두부에는 부드럽게 녹는 연두부가, 우리 식 마파두부에는 좀 더 단단한 두부가 들어간다. 가내수공업이 주류인 중국에서는 판두부가 주로 쓰인다. 같은 중국에서도 지역에 따라 마파두부의 레시피가 다르다. 하지만 완전무결한 단 하나의 두부나 그 조리법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중국 요리의 대가 여경래 셰프의 말처럼 누가 더 맛있다기보다는 모두 장단점이 있다. 정답이 있다고 여기면 다양성은 존재하기 어렵다. 내 선호도와는 별개로, 송송 구멍 뚫린 두부도 매력적이다. 중국의 경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해서 스펀지처럼 만든 동두부를 훠궈 재료로 즐겨 먹는다. 우리 것이 최고라는 문화적 우월감으로 다양성을 가로막는 건 미식의 즐거움을 반감시키는 일이다.

마트의 두부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간식이나 아침 식사 대용으로 떠먹는 두부도 있고, 호박이나 감자와 함께 으깨어 만든 샐러드 두부도 있다. 생선살과 두부를 섞어 어묵 소시지처럼 가공한 두부도 있다. 중국과 교류가 활발해지고 이민자가 유입되면서 두부피와 포두부의 소비도 조금씩 늘고 있다. 한국 사회의 폐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참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니 마트의 두부가 아무리 전통을 강조할지라도 두부는, 두부만큼은 옛날로 돌아가지 않길 바란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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