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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

미식의 의미 @윤덕노

2016년 2월 4일 — 0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이 별로라면 아무리 훌륭한 산해진미를 먹어도 미식은 완성되지 않는다.

text 윤덕노

고백하자면 아주 비싸고 맛있는 요리를 무지하게 맛없게 먹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하나는 해외에서 먹었던 전복 스테이크다. 전복 하나의 크기가 성인 남자 손바닥을 쫙 편 것보다 조금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었는데 지금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서는 값도 가장 비쌌던 것 같다. 그러면 맛있게 먹었나? 대답은 절대적으로 ‘No’다. 어려운 사람과 불편한 상황에서 눈치를 보며 먹었기 때문이다. 내 돈 내고는 절대 못 먹어볼 최고급 요리였지만 전복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먹었다. 솔직히 맛이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입에 처음 넣는 순간뿐 먹는 내내 빨리 식사가 끝나기만을 빌었다.

또 다른 요리는 중국어로 쭈이샤(醉蝦), ‘술 취한 새우’라는 뜻의 요리다. 살아있는 새우를 독한 술에 넣으면 새우가 펄쩍펄쩍 뛴다. 이 모습이 새우가 술취해 비틀거리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인지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독주인 만큼 술에 불이 붙어 그 속의 새우가 발그레 익는데 살짝 익은 새우를 꺼내 먹는 요리다. 쭈이샤는 홍콩의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었는데, 현역 기자 시절 컴퓨터 관련 심포지엄 취재를 위해 초대를 받아간 만찬자리였다. 그것도 대타로 간 취재였다. 만찬을 함께한 사람들은 홍콩과 호주, 뉴질랜드에서 온 컴퓨터 전문 기자들이었다. 당연히 언어는 원어민들이 쓰는 영어, 화제의 주제는 컴퓨터 산업이었다. 한마디도 끼어들 수 없었고 남들이 폭소를 터뜨릴 때도 그저 외계인처럼 묵묵히 새우만 까먹고 있어야 했다. 맛있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Yes’인데 맛있게 먹었냐는 질문에는 절대적으로 아니다.

미식이 무엇일까? 국어사전에는 ‘좋은 음식’ 혹은 ‘맛있는 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이 미식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전복 스테이크와 쭈이샤는 요리 자체로는 미식이지만 당시 그 요리를 맛본 나한테만큼은 미식이 아니었다. 싸구려 입맛이어서 그런지 값싼 음식을 아주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먹었던 기억이 많다. 그중 하나가 칼국수다. 아내와 함께 간 재래시장에서 허름한 칼국숫집을 발견했다. 그날따라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아내와 둘이서 깔깔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손님도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았다. 값은 보통 분식집의 반값 정도였으니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인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시장 칼국수를 미식이라고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그날 내가 먹었던 칼국수는 분명 미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맛있는 음식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맛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맛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음식을 맛있게 먹었는지 맛없게 먹었는지를 결정짓는 우선 요소는 아니라는 뜻이다.

필자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솔직히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는 국내에서 또 해외에서 맛집도 열심히 찾아다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맛은 언제나 부수적이었다. 업무적으로 사람을 만나 식사할 때도 가족과 외식을 즐길 때도 친구나 동료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 때도 처음에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맛있는지 맛없는지를 의식하지만 대화에 집중하다 보면 솔직히 무엇을 먹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니 진짜 미식은 음식에서 찾을 것이 아니다. 청나라의 장영(張英)이 쓴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에서는 사람이 밥을 맛있게 먹는 열두 가지 조건이 적혀 있는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게 꼽은 것이 ‘짝(侶)’이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먹어야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니 극단적으로 말하면 ‘밥맛 떨어지는 사람과는 함께 밥 먹지 말라’는 이야기다. 혼자 먹는 것은 적막하고 많은 사람이 먹으면 시끄럽기만 할 뿐이니 친한 벗들과 함께 먹거나 가족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한다. 무엇을 먹든 좋은 사람과 즐겁게 먹을 때, 그것이 미식이자 복이며 기쁨이 아닐까 싶다.

윤덕노는 현재 청보리미디어 대표이자 음식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에서 25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베이징 특파원과 사회부장, 국제 부장, 과학기술부장과 부국장을 역임했다. 음식문화 관련 주요 저서로 <음식이 상식이다>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