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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지역 음식의 재발견, 안동

2016년 1월 27일 — 0

올리브 100인 클럽 멤버인 배영동 교수가 안동의 맛을 추천했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친정집인 경당종택과 향토 음식을 선보이는 농가맛집 뜰을 찾았다.

text 김옥철 — photograph 현관욱

경당종택 종가 상차림 © 현관욱
경당종택 종가 상차림 © 현관욱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 안동

경상북도 중북부에 위치한 안동시(安東市)의 인구는 2015년 현재 16만8910명, 면적은 서울의 2.5배인 1520km2로 대한민국에서 행정 구역 면적이 가장 넓다. 고려 때부터 안동대도호부가 설치되어 불교 문화 유산들이 많고, 조선시대 때는 대표적인 유교 문화의 고장이었다. 양반 문화와 함께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민속 문화까지 남아 있어 안동은 시대별 한국 문화 지층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안동에는 내륙 지방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과 유교 문화의 전통에서 유래된 음식들이 많다. 종가 음식, 헛제삿밥, 간고등어, 건진국수, 찜닭 등 소박한 음식에서 조선의 사대부들이 가졌던 검박함을 숭상하는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배영동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 현관욱
© 현관욱

안동에서 태어난 배영동(55) 교수는 고려가 망하던 1392년부터 조상 대대로 살고 있는 그야말로 안동 토박이다. 1997년 안동대에 부임한 이래 민속학이 민족 문화의 고유성을 주체적으로 밝히는 전통 학문이자,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창조적인 미래 학문임을 강조하며 안동 지역의 종가, 제사, 생활 문화, 의식주, 음식 등 다양한 주제를 연구해왔다. 특히 음식 문화에 관심이 깊어 제사와 전통 음식들이 현대 사회에서 상품화되는 과정을 연구하면서 <안동 지역 전통 음식의 탈맥락화와 상품화> <안동 지역 간고등어의 소비 전통과 문화 상품화 과정>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밖에도 1970년대 안동의 통닭 골목에서 시작된 상품이 마늘통닭을 거쳐 전국적으로 안동찜닭, 봉추찜닭이라는 유명 상품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안동의 문화 콘텐츠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연구, 특강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왔다.
배 교수가 생각하는 안동, 경상도 지역 음식은 호남과 비교할 때 물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양하거나 호사스럽지 않다.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에서 드시던 밥상은 손님이 찾아와도 밥과 무, 가지, 미역 세 가지 반찬뿐이었다고 한다. 지극히 소박한 밥상이지만 유교적 가치인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한다)’ 정신에 기반을 둔 밥상이라 선비들의 자부심과 연결되어 가히 ‘조선 최고의 밥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오늘날 현대의 식재료로 되살린 종가 음식은 열 가지가 넘는 반찬을 내며 종부들의 음식 솜씨 또한 그때 못지않아 예전보다 더 먹을 만한 화려한 음식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정작 배 교수가 되살리고 싶은 안동의 음식은 퇴계정식, 서애정식 같은 선비의 정신이 담긴 상차림이다. 적은 수의 반찬과 소식으로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낭비를 절약하는 음식 문화를 통해 정신까지 맑게 치유하는 음식 문화를 지향하고픈 것이다.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친정집, 경당종택

종가 음식의 깊은 맛을 지켜주는 항아리들. © 현관욱
종가 음식의 깊은 맛을 지켜주는 항아리들. © 현관욱

경당종택은 퇴계 선생의 학맥을 이은 안동 장씨 장흥효 선생으로부터 이어온 종갓집이다. 장흥효 선생은 퇴계 선생의 3대 제자인 학봉 김성일, 서애 유성룡, 한강 정구 세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으며 이들로부터 퇴계 사상의 계승자로 인정받았다. 17세기 전반 영남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생토록 퇴계 학문의 바탕인 경敬을 실천하는 성인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의 호를 ‘경당敬堂’이라 짓고 배움과 수양에 충실하며, 많은 후학들을 양성했다.
안동 정부인 장씨로 알려진 장계향은 경당 선생의 외동딸이다. 어려서부터 시·서·화에 능했던 딸을 경당 선생은 무척 사랑했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인 이시명에게 시집 보냈다. 그녀가 자손들을 위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은 모든 음식학자들이 한국 최고의 식경食經으로 인정하는 고조리서이자 17세기의 음식사, 문화사, 한글학 연구의 보배 같은 고전이다.
1600년대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과 저장·발효 식품, 식품 보관법 등 146가지를 소개하고 있으며, 책에 나오는 ‘맛질 방문’이라는 표현은 친정어머니 권씨가 ‘맛질에서 하는 조리를 보러 가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책의 후기에 딸들에게 “이 책이 이리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잘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오되 가져갈 생각은 하지 말며 부디 상치 말게 간수하여 수이 떨어버리지 말라”는 당부의 글을 남겼다. 이를 통해 당시 여성들의 요리 솜씨 대물림은 시어머니뿐 아니라 친정어머니로부터도 전수받았음을 알 수 있다.

경당종택 종가 음식
무, 배, 생강, 고춧가루로 만드는 안동식혜와 한과 강정 © 현관욱
무, 배, 생강, 고춧가루로 만드는 안동식혜와 한과 강정 © 현관욱

종부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영양 권씨 종갓집에서 태어나 스물다섯에 시집온 권순(77) 종부는 53년 동안 말 그대로 하늘이 낸 종부의 삶을 살아왔다. 400년 넘게 이어온 경당종택의 가풍을 지키며 식솔들을 거느리고,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비롯한 대소사의 관장, 손님 접대를 고스란히 도맡아왔다. 그녀는 친정과 시댁의 양 종갓집 음식을 배워 평생동안 해온 접빈객 상차림을 종가 음식 체험을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약속 시간보다 늦게 찾아간 고택의 온돌방은 종부, 종손의 손님맞이처럼 따뜻했다. 11대 장성진(78) 종손이 짓는 농사로 수확한 쌀밥과 개운한 콩나물국에 곁들인 10여 가지의 반찬은 다채로웠다. 안동 간고등어, 경북 지역 향토 음식인 상어껍질편, 안동 특산물인 마를 이용한 생마전, 노인들을 위해 만드는 음식인 북어보푸라기, 선비들이 선호했다는 문어회, 우엉채조림, 오징어파무침 등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편안한 한 상 차림이었다. 맛 또한 조화롭고 특별했는데, 다만 이곳에서 느낀 유일한 아쉬움은 두 분이 언제까지 이런 종가 음식을 보여주실 수 있을지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경당종택의 한 상 차림은 맛있었다. 하지만 맛으로만 먹는 음식은 아니다. 400여 년을 이어온 내림 음식의 깊이와 평생토록 접빈객, 손님을 맞이해온 종부와 종손의 정성을 공감하는 미식 체험이었다. 음식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고, 평범하면서도 특별했다. 오래된 것들의 평범함과 익숙함 속에 짙은 감동이 담긴 아름다운 음식, 진실한 음식이었다.

자연주의 향토 음식, 농가맛집 뜰
향토 음식 연구가인 농가 맛집뜰의 조선행 대표 © 현관욱
향토 음식 연구가인 농가 맛집뜰의 조선행 대표 © 현관욱

안동시청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에 위치한 농가맛집 뜰은 안동의 전통 요리법과 친환경 농산물로 차린 로컬푸드·슬로푸드·제철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7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농가맛집 뜰의 조선행(55)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음식 만들기를 좋아해 할머니와 어머니, 친정 어른들에게 기본을 익혔고,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로부터 전통 내림 음식을 배웠다.
농가맛집 뜰은 조선행 대표가 오랜 세월 닦아온 열정을 바탕으로 안동의 품위 있는 전통 요리와 마, 고구마, 단호박, 생명의 콩을 비롯해 텃밭에서 직접 기른 신선한 채소 등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과 각종 산야초 장아찌와 효소를 이용하여 정성과 멋을 함께 갖춘 품격있는 웰빙한 정식 상차림을 선보이는 곳이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꿩장은 안동 권씨 부호장공파에서 내려오는 내림 음식으로 꿩의 살을 다지고, 뼈는 무와 함께 푹 곤 뒤 뼈를 뺀 다음 수수를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수수가 익은 뒤에는 다진 꿩살과 고추장, 마늘, 수수조청, 생강을 넣어 조리면 특별한 비빔장이 완성된다.
‘멸장’은 멸치를 깨끗이 손질해 마른 팬에 한 번 덖은 후, 멸치와 메주콩, 검은콩을 끓이는데 콩이 익을 때쯤 고추장, 된장, 생강, 마늘, 조청을 넣고 조리면 깊은 맛이 일품인 비빔장이 된다. 기름에 볶지 않은 나물과 채소들을 넣고 꿩장과 멸장으로 비빔밥을 만들면 단백질과 칼슘을 함께 섭취할 수 있어 영양학적으로 뛰어나면서 칼로리가 적은 웰빙 음식으로 그만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과 아름답게 꾸미는 상차림의 두 가지 열정은 식재료를 구하는 일에서부터 집 안 가꾸기, 그림 그리기, 텃밭과 꽃밭을 일구는 모든 일에 미의식으로 나타난다. 그런 까닭에 농가맛집 뜰에는 사시사철 정성과 아름다움이 함께한다.

안동 권씨 부호장 공파의 내림 음식인 꿩장. © 현관욱
안동 권씨 부호장 공파의 내림 음식인 꿩장. © 현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