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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리스토란테 에오 @이용재

2016년 1월 14일 — 1

이탤리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리스토란테 에오. 이곳의 점심과 저녁 식사는 물론이고 에오의 백화점 메뉴까지 맛보았다.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 이민진
© 이민진

<럭셔리> 2015년 8월호의 ‘서울을 대표하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17선’ 기사에서 정작 ‘레스토랑’은 별로 없다.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집이 압도적인 리스트다. ‘일식=스시’의 현실과 일치한다. 트라토리아 등의 형식을 규정하거나 현대화된 이탈리아 요리를 추구하는 곳도 드물다. ‘현대화’와 ‘이탈리아 요리’가 따로 또 같이 부재한다. 먼저 이탈리아 요리부터. 왜 찾기가 어려운가. 문법의 부재 때문이다. 이탈리아 요리는 모든 것에 앞서 재료를 말한다. 남북으로 긴 지리적 조건이며 지형의 차이가 자아내는 재료를 정수로 규정한다. 프랑스 요리처럼 테크닉이나 소스 등의 문법을 우선으로 삼지 않는다. 배움의 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추상적 언어만 존재한다. 게다가 학원 문화가 판치는 한국이다. 긴 사고는 시간 낭비다. 답을 제공받고 외워 시험을 보고 점수를 따낸다. 이런 문화에서 문법이 정립된 요리 세계의 호소력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구체적인 답을 주는 세계의 매력 말이다. 이탈리아 요리는 그런 세계가 아니다.

활용도 난제다. 재료가 시사하는 추상적 세계의 특징을 소화한 뒤, 한국의 재료를 놓고 점을 잇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국 또는 서울이 제공할 수 있는 재료의 최선을 이탈리아 요리의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지점에서 현대화가 따라 붙는다. 요리에서 현대화란 무엇인가. 파인다이닝의 맥락이라면 개인화면서 미화다. 한 접시에 담던 요리를 1인분씩 나눈다.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한편, 모든 요소가 기능―즉 맛과 양―의 측면에서 합일하도록 미세 조정해야 한다. 앞에 언급한 <럭셔리> 기사에서의 어윤권 셰프 표현을 빌리자면 ‘디자인을 더하는 과정’이다.

그런 디자인의 부재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에오의 음식에서 말이다. 시작은 극적이다. 승화하는 냉매의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아뮈즈부슈가 등장한다. 간 마에 캐비아를 얹었다. 코스를 향한 기대를 일구는 역할이라면, 절반인 분위기는 성공이다. 나머지 절반인 맛도 아귀가 잘 맞는다. 재료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감각을 자아낸다. 유지방 위로 마 특유의 흙 내음이 올라와 캐비아의 향과 손을 잡는다. 캐비아의 짭짤함은 적절한 선에서 유지방을 잘라 마무리하는 한편, 미끌거림은 마가 머금은 거칢의 흔적과 질감의 대조를 이룬다. 단순함으로 자아내는 복잡함. 오랜만에 개념에 충실한 아뮈즈부슈다.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애피타이저인 모둠 크루도가 등장하면, 기대는 빠르게 실망으로 돌아선다. 단순함이 복잡함을 자아내는 데 실패한다. 굴, 연어, 광어, 참치, 스캠피, 그리고 소고기타르타르. 수가 양으로 화한 전시식 구성이다. 종류도, 양도 너무 많다. 연어나 광어, 참치는 구색을 맞춘다. 철과 지역을 고민한 결과가 아니다. 맛의 측면에서는 나열과 방치에 가까웠다. 일단 소금과 산이 거의 완벽하도록 부재했다. 불에 닿지 않고 칼질(과숙성)만으로 접시에 오르는 날것이라면 각자의 맛을 살려 영역과 거리를 구분해줄 요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없다. 심지어 코스 자체의 입가심용인 퓌레도 땅콩단호박의 단맛 위주다.

코스는 방치와 나열의 체계를 굳히며 나아간다. 감자와 광어, 바닷가재의 삼층탑은 지루함에서 모둠 크루도의 거울상, 또는 데칼코마니다. 조리까지는 나아가지만 요리 앞에서 멈춘다. 세 재료의 관계를 설정해주는 셰프의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파스타는 하필 봉골레인데, 없는 조개껍데기만큼 생기도 빠져 있다. 면도 마찬가지. 알 덴테를 놓고 불평할 손님이 좋아할 만한 정확함이다. 정점은 전복과 푸아그라구이 몫이다. 소르베로 깨끗하게 가져낸 입으로 쓴맛이 돌아온다. 푸아그라는 고정, 전복의 대체품은 한우 안심이다. 클리셰의 삼위일체, 자기표현에 내리는 사형 선고다. 버섯 소테와 오렌지 향이 깃든 호박 퓌레가 애를 쓰지만, 그렇게 누그러질 재료가 아니니 정형성이 식탁을 압도한다. 아이스크림과 과일, 체면치레 같은 3종 치즈의 디저트가 뒤를 이어 확실하게 굳히기에 들어간다. 평범함과 단조로움의 쓴맛을 가시지 못한 채 식사는 막을 내린다. 4∼5년 전 접시를 빛냈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현대화에서 앙상하게 개인화만 남았다. 디자인의 반쪽만 남은 것이다.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결론 내리고 접을 문제가 아니다. 어윤권 셰프는 베테랑이다. 경험 미숙이나 능력 부족의 산물이라 볼 수가 없다. 부재의 결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과거만이 실마리가 아니다. 또 다른 현재도 존재한다. 압구정 현대백화점의 음식이다. 현장에서 조리해 에오의 브랜드로 팔린다. 고객층을 감안하는지 소금과 산이 한층 더 부족하지만 적어도 재미는 있다. 재료도, 가짓수나 조리법도 단조롭지 않다. 게살을 켜켜이 발라 올린 크레이프 케이크, 시칠리아식 고등어 절임 같은 요리가 왜 1회용 플라스틱 그릇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라구의 감칠맛은 왜 백화점 쇼케이스에서만 빛나야 하는가.

점심 코스도 있다. 기본은 같지만 군데군데 작은 손길이 숨통을 터놓아주고 지나간다. 이를테면 크루도의 구성은 여전하지만, 구워 껍질을 벗긴 가지 한 쪽이 등장한다. 차가워 신선하고 또 달콤하다. 균형 비슷한 것이라도 잡아주려 애쓴다. 리소토의 쌀 질감도 파스타에 비해 훨씬 낫다. 얇게 저민 가리비 관자가 크루도의 가지 역할을 자처하는데, 절반이나마 성공이다. 리소토의 바탕인 전복과 향의 결은 같지만 질기다. 바닷가재 소스를 곁들인 광어구이에서는 얇게 저민 감자의 아삭함과 파의 향긋함이 돋보였다. 사소하다면 그럴 요소들이 뒤를 잇는 한우와 전복과 푸아그라, 파인다이닝의 기준에서 지나치게 평범한 디저트를 감싸준다. 씁쓸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지만, 사뭇 덜하다. 한결 더 체면치레로 전락할 수 있는 게 레스토랑의 점심 아니던가?

점심이 저녁보다, 백화점 메뉴가 레스토랑의 것보다 더 낫다. 결국 역전이라 규정할 수 있는 상태의 음식들을 아울러 내릴 수 있는 결론, 또는 부재의 결은 딱 하나다. 바로 ’방어는 최선의 공격’. 무슨 말인가. 이스트빌리지 시절, 권우중 셰프(현재 권숙수)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냉면 같은 음식을 내면 ’내가 아는 냉면은 이렇지 않아’라고 불평이 들어온다는 것. 그럴 때마다 지적받는 걸 메뉴에서 하나씩 지워나간다.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문법의 족쇄가 손님을 압박한 뒤 고스란히 셰프에게 넘어간다. 어떤 문법인가. 존재하지 않는 문법이다. 피자와 파스타, 또는 환상 속 이탈리아 할머니의 가정식 문법이다. 현대화의 다듬기(Refinement)가 프렌치에서나 존재하는 줄 아는 문법이다. 셰프는 지적받고, 그때마다 자신만의 언어를 하나씩 봉인한다. 더 이상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지만, 한편 부재로써 손님의 잠재적 즐거움을 앗아가는 공격이다. 그 결과 음식에선 현실의 맛이 지나치게 많이 난다. 부재를 비전 삼아 무력함과 피로, 두 무채색의 얼룩으로 그린 정물화가 식탁에서 빛난다. 모든 것은 정확한 계획의 산물이 확실하다. 셰프도 알고 있다.

리스토란테 에오
분위기: 다소 기죽은 세련됨
서비스: 매니저 외에는 경험 부족, 떨어지는 디테일
메뉴 및 가격: 점심 코스 4만5000원/6만5000원, 저녁 9만원/12만8000원
와인: 의지와 관성 사이의 갈등
•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 96-22
• 02-3445-1926
• 월~토요일 점심 정오~오후 3시, 저녁 오후 6시~10시 30분

이용재
음식평론가.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관련 글을 올리는 한편 <철학이 있는 식탁> <뉴욕의 맛 모모푸쿠> 등의 책을 번역했다. 올해 출간 목표로 <외식의 품격>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