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열기

main

Special

엄마와 차린 식탁 @이혜정,고준영

2016년 1월 15일 — 0

딸 고준영 셰프와 엄마 이혜정. “집밥은 가족의 삶을 담는다.”

edit 이지희, 권민지 — photograph 심윤석

모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한상 뚝딱 차렸다.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고기를 넣은 구수한 청국장과 늙은호박을 썰어 찹쌀가루와 중력분, 달걀을 넣고 부친 늙은호박전, 무와 단호박, 시래기, 우거지, 토막 낸 갈치를 조려낸 갈치조림, 참외를 소금에 절여 식초와 참기름으로 무친 참외장아찌, 달래파래무침, 배추뿌리깍두기, 묵은지, 디저트로 먹는 유자청석류에이드와 핫파이. © 심윤석
모녀는 빠른 손놀림으로 한상 뚝딱 차렸다.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고기를 넣은 구수한 청국장과 늙은호박을 썰어 찹쌀가루와 중력분, 달걀을 넣고 부친 늙은호박전, 무와 단호박, 시래기, 우거지, 토막 낸 갈치를 조려낸 갈치조림, 참외를 소금에 절여 식초와 참기름으로 무친 참외장아찌, 달래파래무침, 배추뿌리깍두기, 묵은지, 디저트로 먹는 유자청석류에이드와 핫파이. © 심윤석

삶을 요리하는 엄마와 딸
요리연구가 빅마마 이혜정 선생과 고준영 셰프는 최근 가장 인기 좋은 모녀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집밥을 솜씨 좋게 요리하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 잔소리를 하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실시간 채팅창은 빠르게 웃음으로 도배된다. 초현실적인 모녀—정숙한 엄마와 착해빠진 딸—가 아닌 오늘 아침에도 만났던 우리네 엄마와 딸의 풍경이다. “방송이라고 다르겠어요? 평상시나 방송 모습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어요(웃음).” 방송이든 어디든 부엌에서 요리 하는 엄마의 모습이 가장 편안해 보였다는 고준영 셰프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요리를 거들던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훌륭한 어시스턴트였다. “음식을 항상 많이 하셔서 무조건 도와야 했어요. 4, 5살 때였나봐요. 그날도 깻잎 몇 박스를 장아찌로 담그셨는데 엄마가 깻잎에 양념을 묻히면 저는 실고추랑 깨를 들고 옆에서 기다리다가 뿌렸어요.” 이혜정 선생이 옆에서 말을 거든다. “그러다가 힘들었나봐, 갑자기 빽 울어요. 시간을 봤더니 새벽 4시예요. 어머, 그 시간까지 음식을 하고 있었었나봐.” 요리에 푹 빠져 살았다는 말이 맞다. 이혜정 선생은 요리는 일상이었노라고 한다. “제 어머니 세대는 요리 선생이 있는지도 모르는 세대였어요. 집밥이라는 말이 어디 있어요, 그냥 엄마가 해주는 밥이지. 친정 엄마는 밖에서 일을 보더라도 밥때가 되면 허둥허둥 달려오셔서 금세 따뜻한 한 상을 차려냈어요. 항상 요리 하는 엄마 곁에서 콩나물국을 하시면 콩나물을 다듬고 거드는 게 다반사였죠.” 그런 친정엄마의 모습을 이혜정 선생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평범한 주부로 ‘우리 식구가 먹는 요리’를 힘껏 만들었다는 그녀는 집밥은 삶이었다고 답한다. “그게 아이들의 삶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밥을 지어요. 이 밥을 안 먹이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요리를 하는 거죠.” 고춧가루와 장, 액젓, 효소 등 천연 조미료를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어 따뜻하고 건강한 한식은 물론이요, 아이들 간식으로 캘리포니아롤과 함박스테이크를 내고, 밥물로 우유를 넣어 밥을 지어 우유를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먹였다. TV와 책에서도 보기 힘든 기상천외한 요리를 맛깔나게 만들고, 손도 커서 이웃과 음식을 나누다 보니 요리연구가 타이틀이 붙여지기 전부터 이미 동네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그런 집밥을 ‘당연한 듯’ 먹고 서로 투닥거리며 자란 딸이 요리의 길로 들어선 것 또한 당연지사다. 고준영 셰프는 엄마를 따라 요리를 하면 할수록 남을 위해 음식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고 했다. “설령 자식일지라도 매끼 따뜻한 밥을 차린다는 건 쉽지 않아요. 지금은 엄마한테 ‘나 잘났어요’라며 투닥투닥대지만 어떤 마음으로 집밥을 차려주셨는지 점점 알게 돼요. 지금도 제가 집을 나서면 ‘아침 먹고 가!’라고 하세요. 따뜻한 집밥을 먹고 오늘도 나가서 수고하고, 어깨 펴고 당당하라는 뜻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고준영 셰프가 차린 엄마의 간식. 유자청으로만 단맛을 낸 유자청석류에이드, 톡톡 부숴먹는 재미가 있는 핫파이, 추억을 부르는 시골풍 치즈샌드위치. © 심윤석
고준영 셰프가 차린 엄마의 간식. 유자청으로만 단맛을 낸 유자청석류에이드, 톡톡 부숴먹는 재미가 있는 핫파이, 추억을 부르는 시골풍 치즈샌드위치. © 심윤석

엄마의 밥상을 그대로 내는 엄마 이혜정
친정엄마의 밥은 참 따뜻했노라고 이혜정 선생은 회상한다.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월급을 가져오시면 적금을 넣고 연탄과 쌀, 한 달 치 식재료를 샀어요. 늘 새밥을 지어 찬합에 담아 아랫목과 이불 속에 넣어두셔서 그런지 참 따뜻했죠.” 친정엄마의 소반에는 건강을 생각해 달걀과 아무리 적더라도 소고기 메뉴가 꼭 올려졌다. 당시 선생의 집은 시장에서 소고기를 제일 많이 사는 집이었다. 남대문 미제식품점에서 구입한 귀했던 스팸은 구운 뒤 고슬고슬한 밥과 김을 곁들여 먹는 특별식. 남동생부터 먼저 챙겨주는 통에 숨겨둔 스팸을 찾아 구워 먹곤 ‘뒈지게’ 혼났던 기억도 있단다. 애증의 갈치조림도 그렇다. 두툼한 갈치를 동강내 단호박과 시래기, 무, 양념 등을 함께 넣고 자작하게 끓여내는데, 유달리 국물이 많다. 항상 갈치의 가운데 토막은 아버지, 조금 큰 건 남동생들, 꼬리와 머리는 늘 엄마와 선생의 몫이었다고. “엄마는 늘 그게 좀스러웠나봐요. 결혼 전날에 갈치 조림을 끓여내 제일 두툼한 토막을 주면서 이거 먹고가 라고, 이거 먹고 가라고. 결혼하면 남편과 아이들에게 몸통만 갈 거라는 걸 아셨던거죠.” 마음이 담긴 요리는 삶을 움직이는 법이다. 그래서 선생도 그녀의 삶을 담아, 가족들의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집밥을 짓는다. 15년 동안 냄비밥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기밥솥을 싫어해요. 손으로 버튼을 누르고 아무런 정성 없이 밥이 됐다고 알려주는 게 사료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은 안 하죠. 식구들이 다 있었을 때나 엄마지(웃음).” 이제 가족들도 선생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함께 모여 머리 맞대고 한 술 뜨기는 어렵지만, 주말만이라도 제대로 먹으려고 애를 쓴다. 단, 아무리 바빠도 식은 밥은 내지 않는다. 이혜정 선생은 요리에서 음식의 온도를 가장 중요시한다. 친정엄마가 했던 것처럼 따뜻한 집밥을 먹여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집밥에서 빠지지 않는 메뉴는 구수한 청국장이다. 일 년에 두 번 직접 띄운 청국장은 조금씩 나눠 얼려두고 소고기를 함께 넣어 끓여낸다. 장조림과 김, 그리고 토마토와 볶거나 수란으로 내는 달걀도 항상 챙기는 집반찬. 요즘같이 추울 때에는 친정엄마가 아버지에게 해장국으로 끓여주듯 참기름에 무를 달달 볶고 파, 소고기를 잔뜩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풀어 소고기뭇국을 팔팔 끓여낸다. “친정엄마는 뭇국에 파를 많이 넣었죠. 그래야 겨울에 감기에 안 걸린다고. 저는 소고기만 더 넣어 끓여내요. 아, 친정엄마가 하던 요리를 저도 그대로 하고 있네요.”

이혜정 선생이 엄마의 밥상을 추억하며 차려낸 소반상. 참외장아찌와 달달한 호박전, 배추뿌리깍두기, 향긋한 달래파래무침이 입맛을 돋운다면, 큼지막한 갈치조림과 칼칼한 소고기뭇국, 구수한 청국장은 냄비밥을 금세 비우게 한다. © 심윤석
이혜정 선생이 엄마의 밥상을 추억하며 차려낸 소반상. 참외장아찌와 달달한 호박전, 배추뿌리깍두기, 향긋한 달래파래무침이 입맛을 돋운다면, 큼지막한 갈치조림과 칼칼한 소고기뭇국, 구수한 청국장은 냄비밥을 금세 비우게 한다. © 심윤석

하굣길 간식을 추억하는 딸 고준영 셰프
고준영 셰프의 어린 시절, 엄마의 요리는 항상 집에 있던 엄마만큼이나 당연한 존재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 오면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는 엄마표 간식이 늘 준비 돼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속이 허하거나 마땅한 요리 재료가 없을 때는 그 때의 그 간식을 떠올리며 만들어보는데, 이제는 ‘컸다고’, 엄마의 레시피에 그녀의 취향을 곁들인다. 이혜정 선생의 시골풍 샌드위치는 잼이나 케첩을 넣고 만들어 한 입 베어 물면 금세 허기가 가셨는데, 고준영 셰프는 달걀 프라이와 치즈—한 장은 모자라니 두 장 이상씩—를 넣어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고. 그뿐인가, 그녀의 생일상과 간식으로 꼬박 올라왔 던 엄마표 핫파이도 마찬가지다. 고기를 많이 넣었던 엄 마의 레시피 대신 고준영 셰프는 게살과 새우, 패주(관자)같은 해산물과 채소를 듬뿍 썰어 넣어 우유와 생크림, 밀가루와 함께 끓여내 크림소스를 만든다. 그릇에 담고 파이 시트를 올려 오븐에 구워내면 끝. “추운 날씨에 핫파이가 가장 생각나요. 그릇 위에 봉긋 올라온 파이시트를 숟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부숴 고소한 크림소스와 함께 한 입 떠 먹으면… 아, 아무리 처져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식사를 마치면 이혜정 선생은 차가운 물이나 사이다에 과일을 썰어 넣은 에이드를 내줬는데, 그녀는 탄산수에 선생이 담근 유자청과 석류알, 배를 썰어 넣어 건강한 에이드를 즐긴다.

© 심윤석
고준영 셰프는 어린 시절 부엌에서 요리하는 엄마의 모습이 가장 편안해 보였다고 했다. © 심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