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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 똑바로 보기 @정재훈

2016년 1월 8일 — 0

유정란과 무정란, 갈색 달걀과 흰색 달걀은 어떻게 다를까? 음식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맞는 것일까.

text 정재훈 — edit 권민지 — photograph 양성모

© 양성모
© 심윤석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음식에 관해서 얼마나 과학적으로 생각할까? 잠시 시간을 거슬러 1987년으로 돌아가보자. 강원도 원주시에 사는 한 소년이 달걀을 사오라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가게에 간다. 흰색과 갈색, 두 종류의 달걀이 눈에 띈다. 크기는 같은데 갈색 달걀의 값이 더 비싸다. 투철한 절약 정신으로 무장한 소년의 선택은 당연히 흰색 달걀이다. 하지만 아뿔싸. 자랑스러운 얼굴로 귀가한 소년에게 쏟아지는 것은 질책뿐이다. 갈색 달걀의 노른자가 색이 더 짙으며 또한 짙을수록 영양가가 높다는 어머니의 훈계를 듣고 소년은 다시 가게로 가서 차액을 치르고 흰색 달걀을 갈색 달걀로 바꿔온다. 학교에서 배우기로는 달걀껍데기의 색깔은 유전적으로 품종에 따라 다를 뿐이라고 했는데,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걸까? 의문을 품은 소년은 친구 두 명과 함께 지도교사의 도움으로 30일간의 연구를 수행한다. 제33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입상작으로 선정된 이들 초등학생의 연구 결과는 국립중앙과학관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지금도 열람이 가능하다. 50마리의 닭을 10마리씩 다섯 그룹으로 나누고 사료 배합을 달리해 먹인 후 달걀의 색깔을 관찰했다. 그 결과, 달걀노른자의 색깔은 노란색 외에도 흰색, 붉은색, 검푸른색으로 달라졌지만 영양 면에서는 차이가 없었다(영양 분석은 사료 회사 품질관리실의 도움을 받았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연구자들이 내놓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노른자의 색에 따라 영양가가 많고 적음은 과학적 이론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돈을 더 주고 사먹던 각 가정에서는 돈을 절약할 수 있고 갈색 달걀만을 찾는 선호도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올바른 지적이다. 달걀 껍데기의 색은 유전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뿐, 맛이나 영양과는 무관하다. 흰색 달걀을 낳는 품종도 있고 갈색 달걀을 낳는 품종도 있으며, 점이 박힌 달걀을 낳는 품종도 있다. 심지어 푸른색 달걀이나 초록색 달걀을 낳는 품종도 있다. 노른자의 색깔로 달걀의 영양 가치를 판단할 수도 없다. 노른자의 노란색은 크산토필Xanthophyll이라는 색소 덕분으로, 이들 색소가 풍부한 모이를 주면 색깔은 더 짙어진다. 루테인Lutein과 같은 노란 색소 성분이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이 있지만 닭이 사료를 먹고 달걀로 색소의 일부를 전달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녹색 채소를 섭취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다. 실제로 루테인은 달걀보다 옥수수에 2배, 시금치에 30배 더 많이 들어 있다.

비타민 E를 강화한 달걀도 있고 엽산 함유량을 높인 달걀도 있다. 마트의 달걀은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다(You Are What You Eat)’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먹는 음식이다(You Are What What You Eat Eats)’라는 생각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는 부분적으로만 사실이다. 사료에 특정 성분을 추가하면 달걀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나 그 차이는 크지 않다. 비타민 E를 강화한 달걀 한 알에는 아몬드 8알만큼의 비타민 E가 들어 있고, 엽산을 강화한 달걀 한 알에는 쑥갓 20g에 해당하는 엽산이 들어 있다. 달걀은 기본적으로 배아가 병아리로 변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를 담은 음식이다. 그래서 달걀에 담을 수 있는 성분의 종류와 양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방사를 하고 유기농 사료를 먹여도 달걀의 구성 성분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나는 내가 먹는 음식이 아니다. 신체의 근육 강도는 내가 먹은 음식이 닭가슴살인지 소고기인지 등의 음식 종류보다는 운동이나 유전자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음식은 내 몸의 필요에 따라 잘게 쪼개지고 변형되어서 본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나 자신이라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운 이유는 이 오래된 믿음이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 폴 로진은 어떤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의 속성이 먹는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믿음이 젊은 대학생들에게도 나타남을 보여줬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야생 돼지고기를 주로 먹는 사람들과 자라를 주로 먹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주고 평가하도록 한 결과, 음식의 속성이 그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전염될 것이라는 믿음이 드러났다.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은 돼지처럼 게으르고 폭식을 하며, 자라 고기를 먹으면 자라를 닮아서 느릿느릿한 성격일 거라는 식이다. 일부 사람들이 유정란을 몸에 좋다고 여기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생명력을 가진 알을 먹어서 그 활기를 전달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아무래도 무정란보다는 유정란이 좋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무정란은 수탉과의 교미가 없이 낳은 달걀이고, 유정란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 수정란이 하나의 배세포에서 수만 개의 세포로 분열된 배반포 단계에서 낳은 달걀이다. 수만 개의 세포라 해봤자 그 크기는 3~4mm에 불과하며 영양 면에서도 두드러진 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상황은 소년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왔다. 여전히 사람들은 갈색 달걀을 주로 찾았고, 흰색 달걀은 언제부터인가 마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과학은 소비자의 믿음에 판정패했다. 그와 동시에 생산자도 무시당했다. 사실 농업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지식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노른자의 색깔이 사료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은 닭에게 직접 모이를 주고 낳은 달걀을 관찰한다면 초등학생도 알 수 있었다. 달걀 생산자라면 당연히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그는 달걀은 모름지기 껍데기가 매끄럽고 광택이 있으며 오염되지 않아야 하고, 노른자는 밀도가 높아서 퍼지지 않으며, 쉽게 퍼지는 묽은 흰자보다 두툼한 흰자의 비율이 클수록 좋은 달걀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밝은 불에 비춰서 달걀의 품질을 판정하고 신선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미세한 금도 쉽게 식별해낼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달걀 생산자는 1만 개의 구멍이 뚫린 달걀 껍데기를 통해 배아가 숨을 쉬기 때문에 냄새가 강한 식품과 함께 두면 좋지 않고, 달걀이 흔들리면 흰자가 묽어져서 신선도가 떨어지니 냉장고 문보다는 선반에 두는 게 낫다는 것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에 앞서 좋은 달걀을 얻는 데는 닭의 방사 여부보다 사육장의 온도와 습도, 산란기에 맞춘 적절한 조명과 사료 배합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도 모를 리 없다.

과학의 발전에도 음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거리가 오히려 점점 멀어졌기 때문이다. 백 년 전 달걀노른자의 색소가 크산토필이라는 사실을 처음 밝혀낸 미국의 농화학자 레로이 팔머Leroy Palmer는 “겨울이면 시장에서 자주 눈에 띄는 노른자가 옅은 달걀이 불평의 대상이 된다. 특히 도시에서 그렇다”고 말했다. 달걀의 생산 과정에 관심이 없는 당시 도시인들은 투덜댔지만 녹황색 채소가 나는 철이 아닌 겨울에 달걀노른자가 흐린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겨울에 산란을 멈추는 닭에게 조명을 비추고 온도를 조절해서 달걀을 낳게 한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말이다.

농산물은 자연과 인공의 하이브리드다. 사과, 배, 감 같은 과일과 배추, 무, 브로콜리 등의 채소가 모두 인간에 의해 개량되고 변형된 종자들인 것처럼 닭도 자연 그대로와는 거리가 멀다. 달걀 생산을 목표로 육종된 산란계가 있고, 고기 생산을 주로 하는 육계가 있다. 한 해 동안 산란계가 낳는 달걀의 수는 그 조상인 야생 닭(Jungle Fowl)에 비하면 80배 더 많다. 야생 닭도 교미 없이 무정란을 낳을 수 있다. 병아리가 되지 않을 달걀도 있는데 굳이 생명으로 발달할 수 있는 유정란을 골라 먹는다면 그건 단지 무정한 일일 뿐이다. 그래도 자연란을 찾고 싶다면 기억하라. 모든 농산물에는 생산자가 있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 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 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