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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 섭취의 득과 실 @정재훈

2015년 12월 28일 — 0

지난 10월,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가공육을 1군 발암 물질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하며 가공육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과연 소시지는 우리 몸에 해롭기만 한 음식일까?

text 정재훈 — edit 권민지 — photograph 심윤석

© 심윤석
© 심윤석

계산대에서 소시지를 한가득 봉투에 담으니 기분이 뿌듯했다. 소시지는 인간이 미생물과 벌인 치열한 전쟁과 승전의 기록을 담고 있는 음식이다. 이름부터 그렇다. 소시지(Sausage)라는 단어는 소금을 뿌렸다는 뜻의 라틴어 ‘살시치아(Salsicia)’에서 비롯되었다. 염장은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버티기 위해 꼭 필요한 방어 장치다. 영양소가 풍부한 고기는 미생물도 좋아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었다가는 미생물의 공격을 받아 고기가 변질 되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세균과 곰팡이도 먹고살려면 우선 물이 필요하다. 소금이 물을 빼앗아가면 미생물은 눈앞에 고기를 두고도 전사하거나 발이 묶여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고기 속에 원래부터 존재하는 분해 효소는 쪼그라든 근육 세포 속에서도 잘 작동하여, 소금에 절인 고기를 건조한 곳에 보관하는 동안 단백질을 쪼개고 감칠맛이 풍부한 성분으로 변화시킨다. 동시에 지방은 분해되어 과일 향의 향기 물질로 탈바꿈한다. 그렇게 돼지 뒷다리는 하몽이 된다. 1년 반에서 3년에 이르는 장기간의 건조와 숙성을 거친 햄에 농축된 풍미는 소금과 바람의 도움으로 미생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값진 보상이다.

오랜 전쟁의 유물은 소시지 포장의 뒷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열된 원재료 가운데 유산균 발효 분말 또는 야채 발효균이 금방 눈에 띈다. 소시지에 야채발효균을 넣는 원리는 김치나 치즈를 발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잘게 간 고기를 적당한 농도의 소금에 절여서 건조한 곳에서 숙성시키면 인체에 해로운 세균의 증식은 억제되고 소금에 둘러싸여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유산균은 살아남아 고기를 발효시킨다. 사람의 편에 서서 유산균이 내놓는 유기산 성분은 다른 세균의 증식을 막고, 분해된 단백질과 지방 조각들과 어우러져 발효 소시지 특유의 맛과 쫄깃한 질감을 낸다. 말 그대로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살라미(Salami)를 씹을 때 시큼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즐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일단의 세균으로 다른 세균 무리를 제압하여 거둔 승리의 기쁨 때문일지도 모 르겠다(살라미 역시 ‘소금에 절인 고기’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살라메(Salame)’에서 유래한 말이다).

소금을 이용한 고기를 저장하는 데는 단점이 있다. 소금은 지방의 산화를 촉진시킨다. 겨울철 도로 제설을 위해 소금을 뿌리면 자동차에 쉽게 녹이 스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고기의 지방이 산패하여 맛이 변질되는 것을 막으려면 방어 장치를 추가해야 한다. 이때 종종 사용되는 것이 아질산염(MINO2)과 훈연이다. 적색육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철분은 빈혈에는 도움이 되지만, 지방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철분은 지방 산화를 촉진시켜 고기 맛을 변질시킨다. 가공육에 첨가하는 아질산염은 철분에 들러붙어서 지방과 철분이 만나지 못하도록 한다. 덕분에 고기의 색도 선홍색으로 유지된다. 훈연도 고기 지방의 산패를 막는 한 가지 방법이다. 나 무를 불에 때울 때 나오는 연기 속의 다양한 항산화물질을 이용해서 지방 산화를 방지하는 것이다. 나무 연기 속의 일부 휘발성 성분에는 미생물의 번식을 직접 억제하거나 살균하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요즘 마트에 진열된 소시지 가운데서 보존 기간을 늘릴 수 있을 정도로 오랜 훈연을 거친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훈연 향이나 시즈닝을 넣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중 “유럽산 너도밤나무로 훈연했다”는 소시지가 눈에 띄긴 했다. 하지만 이 제품 역시 아마도 가볍게 훈연 공정을 거쳤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날 훈연은 와인을 오크통에 넣어 숙성 시킬 때처럼 주로 맛을 위한 처리 과정이다. 나무 연기의 풍미를 가공육에 더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교적 가볍게 사용된다. 훈연을 너무 오래하면 나무 연기 속의 유해 물질이 축적되어 인체에 해로울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흔적뿐이다. 현대적 방식으로 생산된 햄과 소시지에 들어 있는 소금의 양은 장기간 보관을 위한 용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제품에 첨가된 야채발효균과 유산균도 맛을 내기 위함일 뿐이다. 훈제 처리 역시, 유해균의 증식과 부패를 막기에는 모자란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햄과 소시지가 한 달 남짓 유통이 가능한 것은 가열해서 미리 익히고 냉장 보관하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세계를 주름잡기 시작했던 독일식 삶은 소시지는 본래 통조림에 넣어서 팔렸다. 냉장 진열대가 늘어선 오늘날의 마트에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전보다 훨씬 더 안전한 방법으로 음식을 즐기고 있다. 냉장고는 인간이 미생물과의 오랜 음식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소시지에 기록된 전쟁의 역사는 잊혀지고 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으로 빈곤해져 음식의 위생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게 되자, 독일 남부에서 소시지 식중독이 크게 증가했다. 정부가 나서서 소시지의 해악에 대한 경고문을 공시할 정도였다. 거의 백년 뒤에야 사람에게 치명적인 소시지 식중독의 원인균이 밝혀졌다. 유해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아질산염 처리가 충분치 않으면 소시지 속에서 자라난 미생물이 독소를 만든다. 아주 적은 양으로도 구토와 마비를 일으키는 강력한 독소를 만들어내는 이 세균은 소시지를 뜻하는 라틴어 ‘보툴루스(Botulus)’를 따라 보툴리누스균으로 이름 붙여졌다. 보툴리누스균이 만든 강력한 독소는 이제 극미량으로 사용되어 피부의 주름을 펴는 보톡스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보툴리누스가 소시지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미생물과 벌인 음식 전쟁에서 승리한 인간은 암으로 눈을 돌렸다. 2015년 10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마침내 가공육을 1군 발암 물질, 적색육을 2군 발암 물질에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내 주변에는 이번 발표가 놀랍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당연한 반응이다.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된 일이니까. 뉴욕 타임스의 건강 칼럼니스트 제인 E. 브로디는 1987년 5월 6일자 신문에서 “거의 한 주도 쉬지 않고 우리가 먹는 음식, 마시는 음료, 숨쉬는 공기에 또 다른 발암 물질이 들어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고 썼다. 비영리 단체인 세계암연구재단(WCRF)은 1997년에 이미 가공육과 적색육이 대장암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가공육과 적색육을 가열 조리할 때 만들어지는 화합물 때문일 수도 있고, 적색육에 풍부한 헴철(Heme Iron) 때문일 수도 있으며, 고기에서 과잉 섭취하게 되는 지방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들 모두가 합쳐져서일 수도 있다.

우리는 발암 물질로 뒤덮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소시지는 햇빛, 흡연, 술과 함께 1군, 바비큐와 고열 조리가 뿜어내는 연기는 적색육과 함께 2A군 발암 물질로 분류된다. 주의할 점은 세계보건기구의 발암 물질 분류 기준은 과학적 근거가 얼마나 확실하냐에 따른 것일뿐, 위험성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같은 1군이라도, 가공육 과잉 섭취로 인한 경우보다 흡연으로 인한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수가 30배 많고, 음주로 인한 암 사망자 수는 20배, 대기 오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6배가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가공육을 많이 먹어서 좋을 일도 없지만, 그보다는 담배를 끊고 음주를 줄이고, 환경 문제에 주의를 기울이는 게 건강에 더 유익하다.

김치를 많이 먹으면 대장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김치와 절인 채소는 2B군 발암 물질로 위암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칼슘이 풍부한 우유와 유제품을 많이 섭취 하면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칼슘을 너무 많이 먹으면 전립선암이 증가한다는 반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음식 속에는 발암 물질과 항암 물질이 섞여 있으니,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게 정답이다. 역사 이래 내 몸 사용설명서는 변하지 않았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으며, 모든 것에는 득실이 있다. 고기를 너무 많이 먹으면 암을 유발한다지만, 고기를 안 먹는다고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35세 이후로 매년 감소하는 근육량을 보존하려면 운동과 양질의 육류 섭취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마트에서 구입해온 소시지는 아직 절반 이상 남아 있다. 천천히 조금씩 다 먹으면서 행복을 누려봐야겠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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