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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의미 @함혜리

2015년 12월 11일 — 0

수많은 여행에서의 식사가 항상 낭만적이지는 않다.

text 함혜리

나는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다. 남들이 흉볼지 모르지만 내 취미 생활 중 하나가 가끔 유명한 점집을 찾아가 운세를 점쳐보는 것이다. 물론 점괘를 맹신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말은 굳게 믿으며 ‘다 잘될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데 쓰고, 좋지 않은 말은 약으로 쓴다. 행동을 조심하고, 피하라는 것은 피해가면서 말이다. 언제인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사주에 역마살이 자그마치 세 개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봐도 참 여행을 많이 한다. 직업 특성상 출장을 자주 다닐 수밖에 없고, 외국 생활도 여러 차례 했다. 출장은 혼자가는 경우가 많지만 여행도 같이 떠날 사람을 찾는 것이 여의치 않아 혼자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낯선 곳에서, 길 위에서 밥때를 맞을 때가 많다. 사람들은 부럽다, 낭만적이다 뭐 이런 반응을 하겠지만 나는 혼자 객지에서 밥을 사먹는 게 아무래도 즐겁지가 않다. ‘고독한 미식가’처럼 혼자서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위인도 아니다 보니 언제나 ‘집밥’이 고팠다. 엄마가 차려주는 소박한 밥상, 누군가와 마주앉아 먹는 단출한 밥상이 무척 그리웠다.

어스름한 저녁 요즘처럼 쌀쌀한 바람이 불 때였다. 파리의 골목길을 걷다가 그만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창문으로 따스한 불빛이 비치고, 접시 부딪히는 소리가 나고, 고소한 수프 냄새가 풍겨왔다. 식탁에 둘러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는 듯 도란도란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순간 그 모든 것이 마른풀처럼 가슴 밑바닥에 누워 있던 나의 향수를 자극했다. ‘아, 나도 집밥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찬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그 쓸쓸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진정한 미식의 의미는 물리적인 요리 너머의 그 무엇에 있다. 그것을 굳이 말로 하자면 정이라는 것이 아닐까. 남들이 뭐라 하건 내게 최고의 미식은 따뜻한 집밥이다. 그것은 언제나 향수를 동반하기에 더 애틋하게 그립다. 자의건, 타의건 집을 떠나 있는 사람들 이라면 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식사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나고 고급 식기에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이 아니다. 한겨울에 둘러앉아 먹던 구수한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땅에 묻은 독에서 꺼낸 잘익은 김장 김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우거짓국, 방금 구운 바삭하고 고소한 김. 우리의 집밥뿐 아니다. 오래전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에 있는 친구 집을 방문 했을 때 친구 어머니가 만들어주었던 파에야, 프랑스 시골의 브르타뉴 지방의 친구 집에서 먹었던 따끈한 채소 수프와 토끼고기, 티티카카의 시골집에서 먹었던 생선튀김도 마찬가지다. 지역에 따라 종류는 다르지만 그런 집밥류의 요리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런 요리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50년간 여행을 하며 40년간 글을 쓴 여행 문학의 대가 폴 서루는 “가끔 우리는 전혀 모르는 곳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을 앓는다”고 했다. 향수병에 더해 나는 집밥병까지 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딘가로 떠날 궁리를 항상 하면서도 집밥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놈의 역마살 탓으로 돌려야 하나.

함혜리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 2대학에서 언론학 박사 과정(D.E.A.)을 마쳤다. 서울 신문사 기자로 3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 파리 특파원과 논설위원을 거쳐 현재 문화부 선임기자로 현장을 뛰고 있다. 프랑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비평서 <프랑스는 FRANCE가 아니다>(2009), 대한민국 대표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아틀리에, 풍경>(2014), 건축의 관점에서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소개하는 <미술관의 탄생>(2015)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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