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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식물 @김종관

2015년 11월 25일 — 0

식물은 익선동의 오래된 골목 안에 들어선 카페다. 한옥의 구조 아래 국내외의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들이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맥주와 칵테일 등 다양한 주류를 즐길 수 있고 감각있는 파티션으로 테이블마다 다른 스타일의 아기자기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text — photograph 김종관

© 김종관
© 김종관

길가에 큰 소리가 오가고 거친 사내들의 욕지거리가 들렸다. 가라오케 불빛이 요란스럽고 조급한 차들은 좁은 골목길에서 경적을 내내 울렸다. 식당마다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고 거리에 돼지 비린내가 끼쳤다. 남자는 소란스러움을 피해 여자를 이끌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다시 거리로 빠져나갈까 고민했으나 길 저편에 장미 덩굴이 있었다. 덩굴 옆으로 여관이 하나 보였다. 초록색 불빛이 현관을 비추고 있었고 그 아래 카운터 앞에 노인 커플이 서 있었다. 둘은 골목 끝으로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작은 샛길을 따라 걸었고 막다른 듯 살아있는 길들이 이어졌다. 오래된 한옥들의 길, 가난한 벽들을 따라 걸으며 벽 너머 누군가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 어느 집에서는 찌개를 올렸고 어느 집은 라디오를 틀었다. 어두운 길 끝에서 둘은 말이 없었다.

남자는 길 끝에서 향수를 느꼈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사라진 그의 옛집과 옛골목, 누이와 어머니, 해마다 리어카만으로 좁은 골목길을 이사하며 근처의 달세방을 전전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여자는 잠실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다. 그녀에게 그런 골목은 일종의 여행과 다르지 않았다.

여자는 잠시 골목에 서서 줄지어진 화단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가에 화분을 내고 꽃을 가꾸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둘이 걸음을 멈춘 사이 벽 너머로 누군가의 기도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손을 잡았고 누군가의 아멘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길을 다시 걸었다. 고단함을 멈추고 잠을 자는 벽 너머의 사람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조용히 벽을 타고 넘었고 기척이 드문 골목이 끝나기 전 반짝이는 불빛을 보았다. 그들은 불빛이 있는 쪽으로 갔다. 음악 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골목의 모양새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비트의 음악들과 일렁이는 불빛들이 보였다. 가난한 집들 사이, 같은 기와 아래 감각적인 카페가 있었다. 창 너머로 웅성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맥주잔을 부딪치고 칵테일을 마셨다. 둘은 유리문을 열었다. 커피 원두가 갈리고 커피 향이 퍼지고 있었다.

그들은 도시의 틈 사이 작은 문을 열고 조용한 골목으로 빠져나왔다. 비밀스러운 길을 찾고 취한 것마냥 길을 어슬렁거리다 또 그 틈 사이 작은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파티를 하고 있었다. 둘은 자리를 잡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옥의 골격 아래 옛것과 젊은 감각이 섞여 있었다. 음악과 손님들이 젊었다. 남자는 위스키를 시켰고 여자는 국화차를 시켰다. 남자는 좌식용으로 설계된 대청마루에 앉아 그가 걸어온 골목을 바라보았다. 저 길 끝 벽 너머 누군가의 고단한 잠에 잠시 미안했다. 풍경으로 보이는 낡은 골목들 안의 사람들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는 카페 이름을 뒤늦게 보았다. 식물이라는 카페 간판이 길옆에 서 있었다.

그는 골목을 바라보며 그가 느꼈던 향수의 공간, 그가 어린 시절 뛰놀았던 좁은 골목을 떠올렸다. 그 작은 골목이 세상의 전부였고 골목 바깥을 나가는 데 용기가 필요했다. 골목이 전부이던 시절, 그는 다섯 가족이 한방에 모여 잠을 청하던 때, 자주 꾸던 꿈이 있었다. 녹슨 철문 아래, 시멘트 벽과 보도블록을 뚫고 꽃들이 피어나던 꿈이다. 순식간에 꽃들이 피어 가난한 집들을 덮었다. 폭설을 맞아 세상이 공평해지듯 꽃들로 세상이 공평해지고 똑같이 아름다웠다. 그가 알던 세상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나이가 먹고 같은 서울 아래 있지만 그의 고향인 그의 골목에 가본 적이 없다. 한번 가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그가 살던 공간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의 골목은 사라졌다. 하지만 드물게 그의 꿈속에서 골목이 나타났다. 그가 벗어나지 못하던 골목의 다른 경계로 발길을 옮기면 다른 기억의 공간과 만나게 된다. 혹은 그가 지금 사는 길을 걷다가 그 골목 끝에서 어릴적 그의 공간을 만난다. 다시 꽃이 피기도 했고 그는 꽃을 밟고 그의 어린 시절을 걸었다.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잔이 부딪쳤고 술에 취한 어떤 이의 걸음걸이는 춤처럼 보였다.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무릎을 가슴께로 올린 채 골목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홍색 페디큐어를 한 그녀의 발가락들이 귀여워 보였다. 그는 그녀가 보는 골목이 궁금했다. 그는 그녀의 찻잔 위로 피어오르는 꽃을 보았다.

김종관은 영화감독이자 작가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낙원> 등 단편 영화로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서 입상했으며 장편영화로는 <조금만 더 가까이>가 있다. 저서로 <사라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불은 끄지 말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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