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들은 관대하고 넉넉하다. 고기를 더 많이 먹기 위해 채소 먹기도 주저하지 않는다. ‘잘 구워졌냐’며 가끔 고기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언제가 가장 맛있는 때인지 본능적으로 안다. 육식을 탐하는 인류의 본성에 순응하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다.
edit 문은정, 이지희, 권민지 — photograph 심윤석, 박재현, 양성모
축산 농부, 박흥수

소를 제대로 키우는 일
대관령에 가까워질수록 경적 소리는 멀어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움직임만이 느껴졌다. 그 사이를 비집고 ‘음매’ 하는 묵직한 소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대관령에 자리한 박흥수 축산 농가에 가까워진 것이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자 박흥수 대표가 오토바이를 타고 우사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산책하듯 우사를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덩치가 큰 소를 보자 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더 놀라운 것은 냄새가 심할 것이라고 예상 했던 우사에서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는 사실. “냄새가 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무리 소들이 가득해도 잘만 관리해주면 냄새가 거의 안 나거든요.” 뭐가 그리 놀랍냐는 듯이 씩 웃으며 박흥수 대표가 말했다.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 사니 다른 곳에서는 숨도 못 쉬겠다니까요(웃음). 100m만 내려가도 공기가 다른 게 느껴지거든요.”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시늉을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말을 들으니 해발고도 700m의 대관령, 하늘은 물론 공기까지 맑은 이곳에 살면 삶이 좀 더 윤택해질 것만 같았다. “사람이 이러니 소는 어떻겠어요. 또 기온 차도 크다 보니 고기 맛이 훨씬 좋아요. 겨울에는 소의 온몸이 수축되어 단단해졌다가 여름에는 다시 이완되는 과정을 반복해서 육질이 아주 연하죠. ‘한우’ 하면 아직도 사람들이 횡성을 떠올리는데 그건 다 옛말이에요. 이렇게 환경이 주는 자연적인 연육 과정을 거친 대관령 한우를 따라올 수가 없죠.” 소와 눈이 마주치자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살살 녹는 고기 맛을 떠올리며 침을 꿀꺽한게 떠올라 괜스레 미안했다.
1976년부터 대관령에 터를 잡고 소를 키우기 시작했으니 이제 거의 40년이 되었다. 그의 인생에서 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어릴 적 밭 가는 소 한마리를 키웠어요. 그러다가 퇴비 만드는 일을 시작하며 소도 같이 키우면 퇴비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 10마리로 늘렸는데 점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결국 이렇게 700마리 정도를 직접 키우게 됐네요.” 지금이야 웃으며 그 긴 40년의 역사를 짧게 내뱉지만 대관령에서 가장 큰 규모의 소 농가를 일구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고민이 있었을까.
이곳은 소를 방목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물었다. “우리나라에서 소를 방목하며 키우기는 사실상 힘들어요. 여기에 있는 소 700마리를 제대로 방목해 키우려면 대략 60만~70만 평이 필요할 거예요. 좁은 땅덩어리에서는 힘든 일이에요.” 그러나 방목만큼이나 날씨도 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또한 무리하게 소를 출하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철칙. 한 마리의 소를 출하하기까지는 30개월이 걸리는데, 이곳은 매년 30개월이 된 200~250두의 소를 출하한다. 이렇듯 일년 중 딱히 더 바쁜 시기가 없다고 말하는 박흥수 씨에게서 소를 더 많이 팔고자 하는 욕심이 아닌 소를 제대로 키워내고자 하는 욕심이 느껴졌다.
암소 개량이 한우의 미래
박흥수 대표는 매일 아침 7시면 우사에 나와 소들에게 물을 주며 하루를 시작한다. 우사를 소독하고 변을 치운 다음에는 송아지들의 뿔이 자라나기 전 이를 막기 위해 제각연고를 꼼꼼히 발라준다. 뿔이 자라면 소들이 싸우거나 잘못 움직였을 때 상처가 생길 수 있는데 멍이라도 들면 그 부위는 고기로 판매할 수가 없다. 오전 일을 마치면 함께 농가를 일구는 두 아들, 그리고 오랜시간 함께한 직원들과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잠시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한다. 물론 점심 상차림에 고기가 빠질 수는 없다. 오후에 우사로 돌아와 다시 700마리의 소들에게 볏짚과 사료를 나눠주는 등의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문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을 40년 가까이 한 그에게 지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느냐고 물었다. “교과서 같은 말처럼 들리겠지만, 인간은 단백질이 필요한 존재잖아요. 가장 질 좋은 단백질을 내 손으로 공급하자, 이를테면 그게 나의 신념인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며 매일매일을 보내서 그런지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품질의 한우를 공급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니까요.” 신념과 자부심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 정말 교과서적인 답변으로 느껴졌다.
이곳 소들은 새끼 낳는 암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거세우다. 대관령은 물론이고 횡성, 안동 등 한우로 유명한 곳들은 주로 거세우를 키운다. “사실 한우의 참맛은 30~40개월의 암소에서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암소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도 아니고 번식도 해야 하니 거세우가 등장한 거죠. 무엇보다 암소는 맛의 편차가 클 수 있는데 반해 거세우는 고기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깐깐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맛이 상대적으로 균일하고 편차가 적은 편이죠.” 덧붙여 한우의 경쟁력을 보다 확보하기 위해서는 암소의 개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에서는 수소만을 개량해왔어요. 암소 개량은 그에 비해 많이 미흡했죠. 그러나 한 5년 전부터 제대로 된 우량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암소를 개량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정부와 농가가 함께 암소 종자 개량에 힘쓰고 있죠. 이미 우수한 수소 종자는 보유하고 있는 상태니 암소 종자를 개량한 뒤 수소 종자를 암소에 수정하고, 그렇게 탄생한 송아지의 등급을 기록해가며 높은 등급이 나오는지 관찰하는 겁니다. 수년을 걸쳐야 그 성과를 볼 수 있으니 세심한 관찰과 꾸준함은 필수고요. 그렇게 해서 소 등급이 높게 나온다면 정말 보람되죠.”
한우의 품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 보니 문득 소를 키우며 소고기를 먹기가 어쩌면 조금 신경 쓰이지 않을까 궁금했다. “소고기 싫어하면 소 키우겠습니까? 고기 먹을 때마다 ‘내가 키운 소인데…’ 하며 괜히 마음 쓰이는 건 이미 벗어난 지 오래죠. 소고기 엄청 좋아합니다(웃음). 특히 채끝살을 좋아하는데, 지방도 적당해 담백하고 구워 먹기 좋죠. 사실 고기로 별다른 요리를 한다기보다는 늘 먹는 음식에 넣어서 같이 즐기는 거죠 뭐.” 한우를 자주 먹는 게 뭐 그리 대수냐는 듯이 말하는 박흥수 대표야말로 육식주의자들에게는 진정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식육 마케터, 김태경 박사

고기는 덜 익힌 게 맛있다
고기는 술안주가 아니다. 술이 고기 안주다. 적어도 김태경 박사에게는 그렇다. “술 마시는 날은 술만 먹는 거예요. 술을 무슨 안주랑 먹어?” 까칠하게 고기를 굽는 이 남자는 국내 최초의 식육 마케터라 불린다. 식육 마케터는 말 그대로 고기를 마케팅하는 사람이다. 고기를 잘 팔리게 해서 수익을 내기보다는 고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먹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했다. 둘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크게 다르다.
그는 건국 축산대학교 축산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롯데햄에 입사했다. 박사 과정을 거치며 건국햄에 입사했고 TGIF와 도드람포크, 팜스토리한냉, 생생포크, 청미원 올리브포크 등 수많은 고기를 마케팅했다. 꼭 일 때문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고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육식주의자다. “할아버지가 미식가셨거든요. 옛날 모래내 시장에 있던 정육점을 다 먹여 살리셨지. 소골이며 간, 우설 같은 특수 부위가 나오면 항상 외상으로 집에 가져왔어. 우리 딸은 거의 고기 소믈리에 수준이에요. 두럭, 바크셔, 삼원교잡…. 살찐다고 잘 안 먹어서 그렇지, 한번 먹어보면 어떤 고기인지 품종을 알아맞혀.” 고기를 좋아하는 집안 내력처럼, 그 역시 ‘한 고기’ 한다. 심지어 밥 없이 고기만 2~3일 연속으로 먹는 날도 있다고. 일 때문에 많이 맛보아야 할 땐 하루 6끼를 고기만 먹기도 한다.
진정한 고수를 만났으니 비법을 캐보기로 마음먹었다. 고기는 어떻게 구워야 맛이 좋을까.“ 소, 돼지 등의 레드 미트는 덜 익혀 먹으면 맛있어요. 미디엄 레어로 굽는 게 딱 좋아.” 얼마 전부터 드라이에이징 돼지고기가 인기를 끌며 돼지고기도 덜 익혀 먹어도 된다는 새로운 이론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에 돼지고기는 예랭을 시키지 않았어요. 그래서 문제가 됐지만 요즘은 그런 게 없어요. 등급 판정을 받으려면 예랭을 받아야 하는데, 중심 온도가 떨어져 돼지가 썩을 틈이 없죠.” 즉 문제가 되는 갈고리촌충 등의 기생충이 생길 여유도 없다는 말이다. 바짝 익혀 먹지 않아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그는 불판에 굽던 선홍빛의 삼겹살을 에디터에게 건네며 맛보라고 했다. 육즙이 풍부하고 감칠맛이 좋아 재빨리 몇 점 더 집어 먹었다.
“고기 먹는 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감칠맛(단백질)으로 먹는 것과 지방 맛으로 먹는 법이죠. 지방 맛 좋은 걸 원한다면 마블링 좋은 고기를 먹으면 돼요. 단, 물려서 많이 먹지는 못하지. 나는 감칠맛 좋은 단백질 쪽을 많이 먹자는 주의야.” 하지만 단백질은 태생적으로 퍽퍽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융화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에이징’이다. 숙성을 하면 감칠맛의 핵심인 펩타이드, 유리아미노산 등이 높아지고, 세포의 끝이 부드러워져 소화에도 도움을 준다. 또 크게 물리지 않아 질 좋은 단백질을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원래 고기는 남의 돈으로 남이 구워주는 게 맛있어요.” 그는 웃자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며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유명한 삼겹살집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고기 자체는 특별하지 않은데 서비스하는 직원들의 구찌(입담)가 좋아 유명해진 집들이 많아요. 고기를 구워주며 고기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해주는 거죠. 우리가 고기에 대해 너무 모르니까, 그 사람들이 말해주는 것에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 거예요. 그게 아주 큰 차이를 낳아요.” 레스토랑(Restaurant)이란 단어는 위로받는 공간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는 고기를 하나의 음식으로 보는 것을 뛰어넘어, 진정성과 영혼을 추가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계산은 반드시 남이 하도록 한다.
고기랑 잘 어울리는 반찬도 분명 있다. 김태경 박사는 소고기와 잘 어울리는 찬으로 브라질의 비나그래치를 추천했다. 양파와 레몬즙, 올리브유를 넣어 만든 것으로 일종의 양파 김치라고 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파절이, 장아찌, 젓갈 등과 잘 어울린다. “고기를 멜젓에 찍어 먹으면 맛있죠? 그렇게 먹으면 MSG와 동일한 효과가 나요. 젓갈은 어단백에 의해 감칠맛이 나오거든. 고기의 맛을 돋워주는 효과가 있지.”
맛의 다양성을 인정할 줄 알아야
고수를 고수라 칭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깊은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뚝심 있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밥의 한자어를 풀어보면 사람 인에 어질 량이 결합되어 있어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식품이에요. 고기 다루는 사람들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해야지, 고기로 돈벌고 그것을 이용해서 장난질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는 특정 부위만을 선호하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식문화 행태도 꼬집었다. “한국 사회는 다원성이 없어요. 그게 먹거리에도 그대로 나타나. 일본 소는 150종인데 우리나라는 3종밖에 없어. 울릉도 칡소, 제주도 흑소, 누렁이 한우의 3가지가 전부라고. 왜 평양냉면이 맛있는 줄 알아요? 1930년대까지만 해도 평양소가 있었어. 그 소로 육수로 만들어서 맛있던 거예요. 먹거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종의 다양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순식간에 불판 위의 고기가 사라졌고, 김태경 박사는 마지막으로 고기를 맛있게 즐기는 비법 한 가지를 더 알려주었다. “고기를 진짜 맛있게 먹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과 먹으면서 마음을 나눠. 그게 고기 즐기는 법의 핵심입니다.”
고기 굽는 남자, 이원호 셰프

스테이크를 굽는 셰프
이원호 셰프는 볼트 스테이크 하우스의 헤드 셰프다. 그는 오픈 키친 너머에서 그릴과 브로일러에서 700g이상의 스테이크 한 덩이를 힘있게 턱턱 돌려가며 굽는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거친 환풍기 소리와 한가득 피어오르는 열기, 미끈한 기름 향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고기를 구웠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고기를 즐기는 데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스테이크였을까? 이원호 셰프는 “고기 자체를 가장 잘 맛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스테이크를 소개한다. “경제가 발전하고 식재료가 풍부해지면서 스테이크의 크기가 커지고 두툼해졌어요. 이른바 미국식이지요. 그런데 사이즈도 사이즈지만, 고기가 가진 그 자체의 풍미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겁니다. 아무런 시즈닝을 하지 않고 구워낸 스테이크는 고기의 향과 육즙을 그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양과 질, 둘 다에 집중하게 된거죠.” 특히 최근 들어 남성 지향적이고 멋들어진 식문화를 표현하는 데 위스키와 스테이크만 한 게 없단다. 확실히 얇은 스테이크를 조신하게 썰던 옛 이미지와 달리 최근의 미국식 스테이크는 10cm이상의 두툼한 고기살 아래 피가 고이고, 그것을 톱날이 달린 칼로 썰어 먹으니 말이다.
볼트 스테이크 하우스의 거친 오픈 키친과 깔끔하고 차분한 홀이 서로 대비되면서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스테이크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단순히 배를 채우거나 취하기 위한 행위보다 고기의 풍미를, 위스키의 향취를 즐기는 현대판 주지육림 속 미식가들이 등장했다. 이원호 셰프도 그중 한 사람으로, 고기 맛을 즐기는 육식 애호가로서 고기가 주는 매력에 푹 빠졌다. 스테이크에 집중하기 위해 볼트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지난해 6월부터 메인 그릴러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릴러는 단순히 고기만 굽는 사람은 아니다. 고기를 다듬고 손질하는 것은 물론, 에이징 정도를 판단하며 구워지는 과정까지의 일을 담당한다. 그도 오전부터 점심 메뉴인 버거를 만들기 위해 프라임육을 갈아 뭉쳐가며 250g의 거대한 패티를 만든다. 브레이크 타임에는 잠깐 숨을 고른 뒤 웨트에이징과 드라이에이징 고기를 선별하고, 그램 수에 맞춰 썰고 다듬는다. 고기를 실온에 꺼내놓고 구울 준비를 마치면 예약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스테이크를 굽는 그의 양옆에서 핫 파트와 콜드 파트 담당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제가 가운데에서 스테이크를 구우면 다른 직원들이 움직이지 못하죠(웃음).” 이원호 셰프는 커다란 접시에 두툼한 스테이크를 담아내면서 씩 웃었다. 고기 맛을 알고, 맛보는 걸 주저하지 않는 단골 미식가들은 고기 선택과 굽기를 이 셰프한테 일임한단다. “기분 좋게 만든 음식은 맛도 확실히 차이가 나요. 스테이크에게 말도 걸면서 즐겁게 요리를 합니다(웃음).”
스테이크의 풍미를 살리는 드라이에이징
볼트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는 웨트에이징한 안심과 뉴욕스트립(채끝등심), 립아이(꽃등심), 드라이에이징한 본인립아이, 포터하우스, 티본, 엘본 등 7가지의 소고기 부위를 맛볼 수 있다. 이곳의 소고기는 미국 농무부가 인정한 상위 3% 이내의 최상급 프라임육을 사용하는데, 그중에서도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와 뉴욕 피터루거 등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에 고기를 납품하는 마스터 퍼베이어Master Purveyors사가 선별한 소고기를 항공으로 배송받는다. 특히 해동하면서 수분이 빠지는 냉동육은 배제하고 도축한 지 7~10일 된 냉장육만 수입해 재료가 주는 맛과 식감을 살렸다. 지난해 오픈 당시에는 웨트에이징의 선호도가 높았지만 최근에는 95% 이상의 손님들이 드라이에이징을 찾는다. “저장시설이 변변치 않던 과거에는 수렵 생활을 통해 얻은 고기를 상온에서 숙성시켜 풍미와 식감을 그대로 즐겼는데 이것이 드라이에이징의 시초지요.” 웨트에이징은 육즙이 많고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 오히려 진공 포장의 개발로 최근에 등장한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요즘 핫한 드라이에이징 방식은 마치 우리나라 홍어처럼 숙성 과정에서 생기는 치즈 향과 은은하고 고소한 견과류 같은 고기의 풍미를 느낄 수 있고, 식감은 다소 거칠지만 처음 한 입 베어 먹을 때와 입 안에서 풀어지는 후미도 달라 육류 애호가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드라이에이징이 무턱대고 상온에 고기를 그대로 말리는 작업은 아니다. 에이징 전용 시설에서 박테리아가 생기지 않게 1°C 정도의 온도와 적정 습도에 맞춰 고기를 최대한 말리는데, 바람의 세기를 세밀히 조절하고 고기를 옮겨가며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볼트 스테이크 하우스도 키친 내부에 에이징 전용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가 에이징 냉장 문을 열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건조 바람에 선반에 차곡차곡 자리 잡은 소고기 덩어리들의 다소 누릿한 냄새가 끼쳐왔다. 그는 살코기로만 드라이에이징을 하면 기름 부위가 없어 풍미가 덜하고 손실률이 높아 뼈 있는 고깃덩이를 드라이 에이징한다고 설명했다. 10kg 정도 되는 고깃덩이를 28일간 꼬박 건조해야 스테이크로 선보일 수 있다.

고기가 주는 본질을 전한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굽기 최소 한 시간 전에 냉장고에서 꺼내 고기의 내·외부를 상온으로 맞춘다. 그는 두툼한 포터하우스를 집게로 집어 표면이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직접 만든 우지 기름을 고기 표면에 바른다. “소금과 버터를 사용해 간을 하면 고기 자체의 풍미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지 기름만 사용해 굽습니다.” 그가 브로일러에 고기를 내리자마자 ‘치익’ 소리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표면을 살짝 태우는 시어링Searing을 했다. “스테이크 겉면의 바삭함이 살아있게 살짝 태워 구우면 고기의 육즙이 손실되지 않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테이크는 미디엄이 가장 맛있어요(웃음).” 스테이크 하나를 굽는 시간은 15분. 고기가 10cm 정도로 두툼해 계속 뒤집어가며 굽다가 그릴에서 마무리를 했다. 커다란 접시에 포터하우스와 그릴에 구운 옥수수와 파인애플이 투박하게 담겼다. “처음 한 점은 그냥 고기 자체를 씹어 향을 느껴보는 게 좋습니다. 고기 자체에도 특유의 간이 있거든요. 그다음에 프리미엄 소금을 조금 찍어 먹습니다. 입안에 기름기가 어리면 홀그레인머스터드소스를, 마무리로 올드패션소스를 곁들이는 것을 추천합니다. 소스를 흥건하게 찍어 먹는 손님들을 보면 고기가 주는 풍미를 놓치는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그의 말대로 살짝 식은 포터하우스 한 입을 그대로 베어 물었다. 전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식감이 느껴지면서 싱겁지 않고 향이 좋았다. 미디엄으로 구워 접시에는 피가 고였지만 육즙의 풍미만 느껴질 뿐 결코 비릿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그릴과 씨름하며 고기를 굽는데, 집에서도 고기를 즐길까? “집에서도… 제가 구워야지요(웃음). 고기는 일상입니다. 고기를 싫어하거나 베지테리언이 아니라면 고기는 인생에서 필요한 부분이죠.” 그는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단호한 대답으로 육류 애호가의 면모를 뽐낸다. 가장 좋아하는 스테이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마블링과 기름이 풍부한 꽃등심 부분인 립아이를 꼽았다. 등심이면서도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더해지기 때문이라고. 최근에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스테이크를 많이 접해본 사람들이 늘어서인지 포터 하우스와 함께 립아이 스테이크를 찾는 손님들도 부쩍 늘었단다. 더불어 제주도 돼지고기도 그가 즐겨 찾는 고기다.
그렇다면 ‘큰맘’ 먹고 스테이크를 먹어야 했던 예전보다 문턱이 낮아졌을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전히 비싼 고기입니다. 스테이크 하나에 10만원 중반대이니, 매일 밥 먹듯이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아니죠. 하지만 한우갈비집 대신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스테이크가 주는 맛과 특별함을 누리면서 분위기를 즐기는 소비자층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고기 맛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고기를 즐기는 방법을 알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죠.” 그의 플레이트는 접시에 고기 하나, 채소 하나가 전부다. 갖은 기교가 없어 투박할 수 있지만 이것을 준비하기 위해 일주일에 3~4번 정도 저녁 영업시간이 끝난 뒤 가락시장에서 식재료를 구입하고 고기는 28일 동안 세세하게 드라이에이징을 한다. 재료가 주는 본질을 그대로 전하는 것, 소비자가 고기 즐기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에 뿌듯하다. 그 어떤 것보다 어렵지만 그가 추구하는 그릴러 셰프로서의 철학이다. “여전히 배울게 많습니다. 고기와 가장 친하지만 더 친해져야 합니다. 어떤 음식이든 만드는 기교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재료에 대한 이해가 커야 하기에 지금도 여전히 고기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아기 다루듯 조심스레 다루면서 ‘어떠냐? 잘 구워졌냐?’ 하며 농담 삼아 대화도 건넵니다(웃음). 육류 애호가로, 드라이에이징을 굽는 그릴러로서 제 이름 석자를 말했을 때 ‘와’ 소리 나오는 그릴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고기는 식재료 이상의 삶이라는 그는 육류 애호가답게 호기로웠다.

정육점 대표, 이경수·이준용

팔판동의 수상한 정육점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지나가던 동네 꼬마가 수줍게 인사를 했다. 팔판정육점의 이경수 대표는 인자한 미소로 인사를 받고는 “옜다, 과자 사먹어라” 하며 지갑을 활짝 열었다. “하하, 아버지가 원래 잘 베푸시는 성격이세요.” 에디터의 사심 어린 표정을 읽었는지, 아들 이준용 씨가 재빨리 설명을 보탰다. 팔판정육점이 문을 연 것은 1940년. 창업자인 이영근 씨로부터 시작해 벌써 3대째다. 팔판동 사람들에게는 항상 있었고 언제나 있어야 할, 그야말로 동네의 터줏대감 같은 곳이다.
사실 한국에서 대를 이어 정육점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준용 씨는 미국에서 MBA를 공부한 재원. 무엇이 그를 정육점로 이끈 것일까. “일본처럼 몇 대째 대를 잇고…. 좋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실 아버지가 직장 월급의 3배를 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시작하게 된 거죠.” 빠르게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잇따랐다. 대체 매출이 어느 정도길래 그렇게 어마어마한 월급이 가능한 것일까. 팔판정육점은 정육점 앞에 ‘주식회사’가 붙는 엄연한 법인 회사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는 곳으로 식당 납품을 주거래로 한다. 1939년 개업한 하동관과 1946년 문을 연 우래옥 등 서울의 유명 식당과 50년 이상 거래한 곳이다. 재료 선택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식당들이 오랜 시간 거래를 지속할 정도로 질 좋고 우수한 고기만 판다. 내로라하는 재벌가 회장님과 연예인 등 유명 단골도 수두룩하다. 외국의 미식가들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저희는 암소를 전문으로 해요. 400마리 도축하면 투뿔이 20~30마리, 암소는 3~4마리만 나옵니다. 그래도 암소만 고집하는 것은 그 맛이 고소하고, 먹고 난 뒤의 여운이 오래 남기 때문이죠.” 이윤이 덜 남더라도 양심을 걸고 질 좋은 고기를 팔아야 한다는 팔판정육점의 대를 잇는 소신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고기 인생
과거, 축산업자의 생명은 눈썰미였다. 눈썰미 좋은 업자는 적게는 30만원부터 많게는 50만원까지 저렴하게 질 좋은 소를 샀다. 이경수 대표 역시 눈썰미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좋은 고기는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았다. “일단 허리를 한번 잡아보죠. 살이 두껍게 잡히면 속이 꽉 찬 거예요. 귀를 만졌을 때 겉돌면 물먹인 소니까 고르면 안 돼. 항문이 치질 걸린 것처럼 나왔다면, 그 소는 볼 것도 없어요. 잘 먹어서 지방이 나온거니 바로 사야 해.”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며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귀중한 비법이었다. 그 비법이 팔판정육점을 최고로 만들었다.
척보면 아는 아버지와 달리, 이준용 씨 눈에는 고기가 어렵게만 보였다. 5년 전만 해도 고기는 ‘빨간 것은 고기요, 하얀 것은 지방’이었다. 책을 보며 고기를 공부했지만, 여전히 부위가 구분되지 않았다. 컴퓨터로 뽑은 자료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아버지를 따라 해본 발골 작업(고기의 부위를 나누는 것) 이후 슬슬 고기에 대한 감이 오기 시작했다. “한번 (고기를) 까보니 알겠더라고요. 아, 여기가 앞다리구나 하고 말이죠.”
축산물가공처리법에 의하면 공식적인 살코기 부위는 39가지다. 하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부위도 많다. “소고기 중에 멍에살이라는 부위가 있어요. 목뒤에 있는 고기인데, 소에서 가장 질긴 부위야. 씹히지 않아서 불려 삼키는 수밖에 없어. 옛날에 짓궂은 고기 장수들이 골탕 먹이려고 이걸 썰어주기도 했지. 그러면 아무리 씹어도 씹히지 않고 불기만 해요.” 부자는 재미있다는 듯 킥킥대며 웃었다. 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육식주의자의 고기 즐기는 법
매일 고기를 보며 살다 보면 물릴 법도 한데, 두 부자는 고기 이야기를 하며 또다시 입맛을 다신다. “고기는 하루 세끼 매일 먹어요.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땀 흘리며 일해야 하는데, 풀 먹어서 어떻게 힘을 쓰나요. 어릴 적부터 가족끼리 고깃집에 가면 첫판에 15인분씩 주문했어요. 갈비 10인분, 불고기 5인분(웃음).” 규칙적이고 올바른 고기 섭취 덕분일까. 이경수 대표는 유달리 피부가 뽀얗고 아들 준용씨는 풍채가 좋다. 역시 고기는 ‘옳다’.
질 좋은 고기를 매일 맛보며 고기에 대한 입맛이 한없이 높은 그들이다. 준용 씨의 경우에는 외식할 때 생고기는 입에도 대지 못한다고. 그토록 까다로운 그에게 고기 굽기의 정석을 물으니 “달군 팬에 여러 번 뒤집지 않는 것”이란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여서 실망하려던 찰나, 정육업자답게 전문적인 설명을 덧붙인다. “고기의 수분은 세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증발하는 수분, 또 하나는 압력에 의해 빠져나가는 수분이에요. 마지막으로 유리수가 있는데, 이건 아무리 눌러도 빠져나가지 않는 수분을 뜻해요.” 성격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기를 눌러가며 굽는다. 이러면 압력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가 고기가 퍽퍽하고 질겨진다. 맛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금만 찍어 먹는다는데, 두 부자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했다. “고기는 반드시 채소와 함께 먹어야죠. 고기를 고기로만 먹으면 많이 못 먹어요.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랑 먹어야 ‘많이’ 먹을 수 있어요.” 과연 고기를 팔고 먹고 즐기는 육식주의자들의 모범 답안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