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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메르씨엘 @이용재

2015년 11월 19일 — 0

국내 프렌치 레스토랑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메르씨엘. 해운대에서 맛본 두 번의 식사를 평가한다.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 이민진
© 이민진

9월 첫째 주 오후, 나는 완벽을 맛보고 있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식탁에 앉아, 바로 그 바다에서 낚시로 잡았다는 대삼치가 주연이었다. 바삭하게 구운 껍질엔 채 가시지 않은 바다의 빛깔이 영롱했고, 야들야들한 속살엔 터럭만큼의 과조리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토록 완벽한 생선, 해산물, 단백질을 먹은 적이 있던가. 신선함과 완벽한 조리 덕분에, 삼치는 다소 강할 수 있는 생선 내장 마틀로트(Matelote, 레드 와인 생선 스튜)소스에 기죽지 않았다. 어디 삼치뿐인가. 크루통, 라르동, 버섯, 그리고 양파까지, 모든 요소가 경계의 아름다움을 덧입었다. 소스에 반만 적셔져, 한 입에 두 갈래의 맛을 보여주는 상태 말이다. 공간과 재료, 조리가 정삼각형을 이루는 상태, 그것은 완벽함이 분명했다.
완벽함은 해체(Deconstruction)한 양갈비파스티야로 바통을 넘긴다. 요리의 요소를 일단 해체한 뒤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재료의 교체 등 재해석의 기회를 모색한다. 파스티야는 본디 다진 양고기를 바클라바의 재료인 필로 반죽으로 켜켜이 감싸 구운 모로코의 파이다. 이를 해체해 속은 양갈비, 겉은 튀일로 대체한다. 그 과정에서 후자를 완벽하도록 얇고 바삭하게 다듬는 한편 안초비의 날카로운 짠맛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레몬 마멀레이드와 함께 일말의 저항 없이 나이프에 썰리는 양고기의 균형을 잡아준다. 지진 푸아그라에 곁들이는 두 가지 오렌지(생것과 처트니)와 더불어 시트러스가 균형을 잡아주는 예로서 훌륭하다. 샹젤리제 코스(16만5000원)의 정점은 완벽했다.
나머지도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다만 수준 높은 조리에 비해 콘셉트가 미완성이라는 인상이었다. 첫 코스인 샐러드 ‘가을의 문턱’에서는 토마토콩피가 그런 요소였다. 계절감 때문이었는데, 대신 그리시니의 어란과 더불어 짠맛과 감칠맛을 성공적으로 자아냈다. 덕분에 부드러움과 풍부함의 부족으로 본의 아니게 중간자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맡은 모차렐라 치즈를 사이에 두고 청포도, 무화과의 단맛과 열심히 밀고 당겼다. 팬프라이 관자에서는 애호박과 팽이버섯이 질감을 놓고 고민했다. 전자는 날것에 가깝게 다소 어정쩡했는데, 1cm 넘는 두께를 감안하면 관자와 관계 맺으려는 의도가 채 정착하지 못한 인상이었다. 팽이버섯은 질겨서, 차라리 튀겨 이 요리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인 잔새우—부산처럼 바다를 면한 도시에서나 쓸 수 있는—와 함께 바삭함을 주는 편이 나아 보였다. 가니시인 엔다이브도 미완성이기는 마찬가지. 아삭함과 신선함의 요소로 쓰이는 동시에 조형적 역할도 맡았지만, 신선한 비네그레트의 손길을 입었더라면 모든 것을 한데 아우르는 역할을 맡을 수 있어 보였다.

이토록 훌륭했던 요리가 본격적인 가을에 긴장감을 잃어 아쉬웠다. 실시간으로 익히는 각 요리의 핵심 요소가 최적 구간에서 조금씩 비껴나간 상태. 코스 전체에 걸쳐 예외 없었다. 아름답던 삼치는 껍질과 속살 모두 생동감을 잃었고, 양갈비는 나이프에 아주 살짝이나마 저항했다. 겉을 지지면 액체에 가깝게 물컹거려 흔히 용암에 비유하는 푸아그라의 속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채 식탁에 등장했다. 짠맛과 아작거리는 질감의 대조를 한꺼번에 주는 소금 알갱이의 분포도 고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애호박이 가장 아쉬웠다. 한국식 볶음처럼 완전히 생기를 잃어 분위기 파악을 못했다.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팽이버섯은 질겼고, 엔다이브는 줄어든 크기만큼 생기도 떨어졌다. 스태프의 주문 착오로 먹게 된 한우 안심, 전복의 자리를 차지한 바닷가재는 완성도뿐 아니라 존재마저 답답했다. ‘현실’의 지나친 반영이라고 밖에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 혹시 셰프가 없는 것은 아닐까. 물론 닫힌 문 너머 주방의 내막은 알 길이 없다. 또한 셰프의 부재는 원래 문제가 아니다. 사실 요리하는 존재도 아니건만, 부재시 떨어지는 수준이 선입견을 빚어낸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짐작할 수 없는 완성도의 격차가 분명히 존재했다.
디저트에서는 해체를 시도한 티라미수 2015가 흥미로웠다. 각 요소는 좋았지만 파스티야처럼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당위성 없는 복잡함 때문이다. 구심점인 레이어드 케이크는 그 자체로 완성품이라 의도치 않은 위계질서를 자아낸다. 그 결과 겹치는 나머지 요소의 의미를 떨어뜨린다. 티라미수를 마스카르포네무스와 커피아이스크림으로 분리했다면, 케이크(또는 사보이아르디)도 같은 수준의 복잡함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젤리와 토피는 순수한 잉여였다. 왜 하필 더치 커피일까. 커피 맛의 핵심은 지방이 쥔다. 뜨거운 물이나 고압을 쓰는 이유가 있다. 찬물로 우리니 기름기도 적고 맛도 옅다. 그래서 더치 커피를 믿지 않는다. 티라미수의 어원은 ‘나를 깨워줘(Tirare Mi Su)’라는 표현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설은 아니지만 티라미수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인 카페인의 ‘킥Kick’을 말해준다. 더치 커피는 이를 덜어내는 추출 법이다. 젤리를 만들어봐야 커피아이스크림과 겹치고 또 눌린다. 바닥에 깔린 토피는 딱딱해 전체와 결이 너무 달라 확실한 불청객이었다. 시각적으로라도 요소를 더하고 싶었다면 바삭하되 딱딱하지 않은 크럼블류가 낫다. 케이크를 두 가지 질감—커피 시럽에 적신 것과 바삭거리는 것—으로 내는 가능성도 있다.
당위성 없는 복잡함은 아뮈즈부슈에서도 드러난다. 많고 복잡하며 무겁다. 조리가 좋아도 자리가 어색하다. 치즈 코스라면 제자리일 파르미지아노 푸딩, 주요리라면 맞을 홍합커리를 먹었다. 연어말이는 너무 평범해서 되레 어색했다. 아뮈즈부슈는 갈수록 가짓수도 많아지고 또 복잡해진다. 메르씨엘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식당처럼 ‘한 상 차림’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가지 이상의 음식을 내는 경우마저 있다. 유행이든 경향이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주방을 걱정한다. 인력을 분산시키면 실패의 확률도 높아진다. 그라니타의 뭉친 얼음 알갱이나 너무 익은 새우튀김은 굳이 자초할 필요가 없다. 메르씨엘은 ‘컨템퍼러리 파리지앵 퀴진Contemporary Parisian Cuisine’을 표방한다. 핵심은 동시대성(Contemporary)이다. 전통, 그리고 국제 도시로서 받는 전 세계의 영향이 촘촘하게 얽히는 시대의 파리 음식으로 이해했다. 파스티야나 티라미수가, 누벨 퀴진 이후의 균형 감각을 만나 새롭게 태어난다. 균형의 측면에서 대부분의 주요리는 성공적이었고, 아뮈즈부슈와 디저트는 그보다 덜 성공적이었다.

왕복 1000km의 여정을 오가며, 가장 큰 고민은 위치와 가치의 짝짓기였다. 좋든 나쁘든 서울 중심의 시각은 불공정하다. 좋아도 서울에 없는 것치고 좋은 게 아니고, 나빠도 서울에 없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다. 서울도, 부산도 모두 한국이다. 그럼 고민은 되레 간단해진다. 메르씨엘은 한국에서 의미 있는 존재인가? 성공과 실패가 공존했지만 총체적인 경험으로서는 그렇다. 집념의 큐레이션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와인, 온라인 예약까지 가능한 독립 홈페이지 등 경험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아우르면 당연히 그렇다. <올리브 매거진 코리아> 창간호에 게재한 칼럼에서 ‘모든 레스토랑은 찾아가는 곳’이라고 했다. 그 가운데서도 메르씨엘은 한국의 진정한 ‘목적지 레스토랑(Destination Restaurant)’이다. 물리적 거리가 메르씨엘의 가치를 한층 더 강화할 수 있는 현실이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관련 글을 올리는 한편 <철학이 있는 식탁> <뉴욕의 맛 모모푸쿠> 등의 책을 번역했다. 올해 출간 목표로 <외식의 품격>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

분위기 — 바다를 굽어보는 낮에는 국내 최고
서비스 — 사다리꼴 공간의 한계로 인한 자잘한 실수
소리 — 조용한 가운데 타성적인 음악
메뉴 및 가격 — 점심 코스 6만5000원, 저녁 16만원, 11만5000원, 8만5000원(점심에 저녁 코스 주문 가능)
주류 — 집념의 큐레이션(다소 궁여지책의 페어링)
예약 — 필수
•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 달맞이65길 154
• 051-747-9846
www.merciel.kr
• 화~일요일 점심 정오~오후 3시, 저녁 오후 6~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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