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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파씨오네 @이용재

2015년 10월 21일 — 0

‘가성비 뛰어난 레스토랑’으로 미식가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파씨오네. 그 인기의 비결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이민진
©이민진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맛이 있다.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된 경험이다. 한국의 레스토랑에서는 셋을 꼽는다. 라꼼마의 작별의 푸아그라, 레스쁘아 뒤 이부의 후무스의 카옌페퍼 그리고 파씨오네의 채소 국물이다. 라꼼마는 과거가 되었고, 레스쁘아 뒤 이부는 지난 8월호에 리뷰했다. 이번엔 파씨오네 차례다.
셰프가 칠판을 들고 나와 직접 설명해주는 고정 코스는 유동적이다. 여름 식탁의 별은 샐러드였다. 제철 복숭아와 연어를 투톱으로 내세우고 치즈가 보좌하면서 변주하는 구성이다. 매끄럽고 보드라운 연어가 짠맛으로 밀면, 여름을 한껏 머금은 복숭아가 촉촉함을 불어넣고 단맛 으로 당긴 뒤 신맛으로 균형을 잡는다. 콘셉트는 좋았으나 결과는 치즈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원인은 부드러움의 부족. 베이글에 크림치즈와 연어의 조합이 맛있는 건 지방이 겹쳐서다. 지방 위에 지방을 얹으면 느끼해질 것 같아도, 오히려 부드러움과 고소함이 증폭되는 이치다.

삼겹살과 참기름의 조합도, 강한 후자가 균형을 깨지만 기본 원리는 같다. 이 경우엔 번갈아 오른 두 종류(부라타와 페타) 모두 제 몫을 하지 못했다. 부라타는 뻣뻣했고, 페타는 꺼끌거렸다. 그래도 샐러드는 여전히 훌륭했다. 다른 조연급 요소 덕분이다. 각 경우마다 완전히 다른 것들이 제 몫을 한다. 부라타의 저녁 샐러드에서는 레몬젤리가 빛난다. 저온 조리로 레몬의 맛을 뽑아내, 샐러드드레싱에 가까운 농도로 전체를 잘 아우른다. 복숭아의 다소 떨어지는 단맛도 받쳐준다. 페타의 점심 샐러드에서는 올리브유와 살라미가 훌륭하다. 전자는 흙과 풀 냄새, 알싸함으로 카르파초처럼 얇게 저민 복숭아에 싱그러움의 막을 한 겹 더 입혀준다. 후자는 치즈가 못다한 지방의 부드러움을 보태는 한편, 발효 소시지 특유의 시큼함과 매콤함으로 방점을 찍어준다. 저녁 코스에서는 이 좋은 흐름을 전복리소토가 이어받는다. 쌀은 기본이고 늘보리, 수수, 기장 등의 곡식이 각자의 완벽함으로 잘 익었다. 보리 알갱이의 가운뎃줄에 어금니를 딱 맞춰 씹을 때의 쾌감이라니. 포실포실한 강낭콩도 사랑스럽다. 곡식의 개성을 받쳐주는 전복 국물은 채소 국물의 기억을 머금고 있다. 두꺼운 켜를 이룬 솜씨와 철학의 뿌리가 같다는 얘기다. 너무 두껍다 싶은 순간, 비네그레트에 버무린 치커리가 신맛과 쓴맛으로 균형을 잘 잡아준다. 전복도 무리 없이 잘 익었다.
코스는 여기까지 올라간 뒤, 단백질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주요리의 영역부터 조금 가파르게 내려간다. 패턴이 뚜렷해 다른 사람의 요리라는 생각까지 든다.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대표적 징후가 지나치게 지진(Oversearing) 표면이다. 푸아그라부터 마지막의 양갈비나 오리 가슴살까지 일관적이다. 의도라는 생각마저 들지만 과조리를 조장한다. 심지어 지질 필요 없는 새우나 오징어 같은 재료도 자유롭지 않다. 다음은 집중력의 결여다. 샐러드나 리소토처럼 각 요소가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전혀 주지 못한다. 각각의 관계를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가 나열하듯 등장해 느슨하게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생선 스튜다. 맛조개, 새우, 삼치 등의 재료가 한데 모였다. 부야베스를 연상시키지만, 아울러줄 소스의 존재가 너무나도 미미하다. 바닥에 깔린 라타투이도 희미하다. 소스 자체를 아주 적게 쓰고 싶은 의도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너무 존재감이 없다. 고기 중심의 주요리에서는 채소와 으깬 감자—치즈가 필요할까?—가 모두 구심점 없이 표류한다.

이렇듯 따로따로 노는 원인이 단순한 기술 부족 때문일까. 코스 전체를 보면 그럴 수가 없다. 좀 더 큰 그림을 보자. 두 달 전, <허핑턴 포스트>에 박찬일 셰프의 인터뷰가 실렸다. 기본적으로는 여태껏 그가 말해온 것이다. 일, 즉 요리의 고됨과 지난함. 그런데 이번엔 유난히 울림이 깊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 그중 첫 번째는 바뀐 맥락이다. 음식이 엔터테인먼트의 소재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현실 말이다. 요리하는 존재, 셰프가 예능에 출연한다. 모두가 음식을 말한다. 책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지난함은 가시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저변 때문이다. 사람이 없다. ‘허리’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수 셰프 또는 셰프 드 퀴진급을 찾아보기 어렵다. 직접 조리하는 중간 관리자급 말이다. 실무자의 부재로 인해 셰프는 50대가 되어도 20~30대의 젊은 인력을 가르쳐가며 직접 조리해야 한다. 파씨오네의 현실이다. 노동 조건을 비롯한 주변 현실도 녹록지 않다. 그렇다, 요리는 힘들다. 지력을 겸비한 육체노동이면서 남들 노는 시간에 일하는 서비스업이다. 불과 칼을 다루므로 위험하다. 그런데 보수도 많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양식, 특히 파인다이닝은 여전히 한식의 그늘에서 인정투쟁認定鬪爭으로 고전한다. 이러한 현실이 두 갈래로 영향을 미친다. 첫째, 레스토랑이 무리하는경향이 있다. ‘가성비’로 손님을 끌려 한다. 파씨오네도 그렇다. 여섯 코스 점심이 4만1800원, 여덟 코스 저녁은 7만1500원이다. 주요리는 선택지가 무려 여섯 가지. 자리만 채우거나 완성도 떨어지는 요리가 안 나올 수 없다. 대표적인 예가 점심 코스의 프렌치어니언수프다. 켜도 없이 치즈가 어중간하게 녹은 달달한 국물이다. 디저트도 마찬가지. 둘이나 내놓지만 결함이 뚜렷하다. 공통인 밀푀유는 켜가 많이 부풀어 오른 푀이타주 사이에 생크림을 채워 질감과 맛, 모두 썩 조화롭지 않았다. 그에 앞서 점심에는 생과일이 등장한다. 저녁 샐러드의 젤리와 흡사한 레몬소스를 끼얹는데 요리로 보기 어렵다. 저녁에는 망고와 바질 소르베가 오른다. 향이나 질감은 훌륭하지만 밑에 깔린 해동 블루 베리의 껍질이 쭈글거리고 질기다. 굳이 노동력을 분산할 필요가 있을까? 한 가지만 잘해서 내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주요리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둘, 많아도 셋이면 충분하다. 여섯 가지라면 불안의 산물로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변화를 꾀한다면 손님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가성비’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이들 말이다. 여전히 인정투쟁을 해야 하는 양식의 현실, 두 번째 영향은 술의 판매 부진이다. 요리가 어렵지만 보수는 많지 않다고 했다. 보수를 올리려면 이익을 더 내야 하는데 그러려면 술, 즉 와인을 많이 팔아야 한다. 보통 식비로는 현상 유지만 가능한 수준이다. 팁 제도도 없는 나라에서 술을 팔지 못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 하지만 많은 손님들이 술 주문에 인색하다. 내가 취재한 점심에 파씨오네는 거의 만석이었다. 그러나 술은 전멸. 점심이라서? 6인 손님이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신다면 90분 동안 125ml를 마시는 셈이다. 음식의 맛과 식사의 흥은 돋우지만 취할 가능성은 낮다. 저녁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파씨오네. 이탈리아어로 ‘정열’이다. 뒤집으면 ‘열정’, 하필 요즘 우리 사회에서 위험하게 쓰이는 개념이다.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피하려 들때 ‘네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라는 말과 함께 쓴다. ‘열정 페이’ 말이다. 파씨오네의 음식에는 분명 뚜렷한 결함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때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원인이 이제는 굉장히 모호해 보인다. ‘기술의 부족’이라고 결론 내리면 아주 편하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덕지덕지 달라붙은 ‘가격 대 성능비’와 ‘열정 페이’의 때를 벗겨내고 제대로 보기가 어렵다. 어쩌면 그런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 파씨오네의 가치 일지도 모르겠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관련 글을 올리는 한편 <철학이 있는 식탁> <뉴욕의 맛 모모푸쿠> 등의 책을 번역했다. 올해 출간 목표로 <외식의 품격>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

파씨오네
분위기 — 거슬리지 않고 편안한, 최선의 아마추어리즘
서비스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매니저, 기본에 충실한 서버
소리 — 낮은 천장
메뉴 및 가격 — 점심 4만1800원, 저녁 7만1500원
주류 — 남부 프랑스 쪽의 보완이 필요한 와인 리스트. 적절한 반 병 짜리 선택 가능
예약 — 추천
•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46-23 
• 02-546-7719 
• 월~토요일 점심 정오~오후 3시, 저녁 오후 6~1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