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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나인커피 로스터스 @김종관

2015년 10월 16일 — 0

청운동에 위치한 조용한 분위기의 로스팅 카페다. 각기 종류가 다른 신선한 원두커피를 즐길 수 있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창 너머 햇살이 아름답게 스쳐가는 공간이다.

text — photograph 김종관

©김종관
©김종관

봄이 시작되면 여러 가지 냄새가 바람에 실려온다. 생명의 주기가 돌아오면 연한 잎과 순들의 향기가 시작되고 지천에 꽃이 망울을 터뜨리며 다양한 향기를 내뿜는다. 봄비에 젖은 흙 또한 기분 좋은 냄새를 풍긴다. 시원한 바람에 꽃향기가 퍼지는 5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리고 곧 여름이 찾아온다. 여름의 냄새는 짙다. 풀은 진한 빛깔과 내음을 품고 있고, 봄꽃은 떨어지고 더 무거운 향기를 지닌 여름꽃이 핀다. 떨어진 봄꽃은 썩기 시작한다. 열매들, 죽은 동물들, 버려진 음식물도 썩기 시작한다. 그러면 골목 어귀에서 고약한 냄새를 맡기 일쑤다. 장맛비에 물 비린내가 나고 햇살이 뜨거운 날이면 무더운 대류 안에서 좀 더 말초적인 꽃향기로 뒤덮인 거리를 걸을 수도 있다. 그렇듯 여름 산책은 즐거운 길만 걷는 것은 아니다. 짙은 풀내음을 그럭저럭 즐기다가도 악취에 코를 막게 된다. 몸에서 나는 땀 탓에 악취가 내 몸에 들러붙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다 미지근한 바람에 실려오는 여름꽃의 향기를 맡으며 걷노라면 꿈길을 걷는 듯, 꽃향기에 취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실감하게 된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길을 다양한 냄새가 덮고, 그렇게 여름 길은 색과 내음이 짙은 길로 마음이 열린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는 청운동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봄부터 여름까지 그러한 산책을 했다. 매번의 산책은 혼자였다. 매일 오전 눈을 뜨면 간단한 세수를 하고 길을 나섰다. 옥인동 길을 오르거나 부암동 길 혹은 사직동의 골목을 걸었다. 집 근처로 돌아오는 길, 단골이 된 몇 곳의 식당 중 하나에 들러 이른 점심을 먹고 청운동 길목,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산책 중 얻은 문장들을 노트에 정리하고, 읽고 있던 책을 읽었다. 그렇게 두어 계절이 지나고 다른 계절의 냄새를 맡았을 때, 그는 그녀를 만났다. 그는 간밤에 그녀를 자신의 집에 들였고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닿은 살갗 외에 서로를 알지 못했다. 아침이 오고 햇빛이 들이치는 자취방에서 남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간밤을 지나고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이른 시간, 남자는 여자에게 산책을 청했다.

둘은 오전의 골목들을 걸었다. 벽 너머로 밥 짓는 냄새가 나고 좁은 골목들 사이로 계절감 다른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뺨과 손이 시렸고 추워진 날씨에 남자는 여자의 눈치를 살폈다. 걷는 중에 둘은 별 말이 없었다. 남자는 미안한 마음에 산책을 멈추려 했지만 여자는 계속 걷고 싶어 했다. 좁은 골목을 타고 부암동을 올랐다. 작은 언덕을 지나자 빛깔을 바꾸는 녹음이 보였다. 비탈과 햇살 덕에 추위는 사라졌고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그의 산책을 좋아했고 몇 시간 동안 봄부터 그가 걸었던 모든 산책길을 함께 걸었다. 둘은 그의 단골 식당에 들러 이른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여자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매일 가던 카페에 들러 커피를 시켰다. 멀쑥하고 성실한 주인이 신선한 원두 몇 종류를 권했다. 깔끔한 잔에 과육 향 진한 에티오피아산 커피가 담겼고 그는 찻잔의 온기를 즐기며 계절이 바뀌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커피에서도 가을 냄새가 났다. 여름의 나라에서 온 커피가 가을의 향을 담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잠을 자지 못한 그는 몸의 노곤함을 느꼈지만 읽다 멈춘 책을 다시금 읽고 싶어졌다. 책갈피를 잡아 책을 열자 창 너머 가로수 이파리의 그림자가 글자 위로 쏟아졌다. 문장 두 어개를 읽을 때 즈음 그녀와의 산책이 떠올랐다. 또 몇 개의 문장을 읽어나가려 노력했지만 눈으로 쫓는 활자를 머릿 속에 담지는 못했다. 그는 책을 덮고 커피를 마셨다. 입 안에 따듯한 향을 머금고 창 너머 부산스러운 가로수를 보았다.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외투 깃을 올렸다. 카페안은 다른 온도 차를 지니고 햇빛으로 일렁거렸다. 그는 창밖을 보며 그가 걷지 못한 다른 계절의 골목이 궁금해졌고 그녀와 함께 걸을 수 있는 다른 골목을 찾고 싶어졌다.
잔이 비워질 무렵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김종관은 영화감독이자 작가다. <폴라로이드 작동법> <낙원> 등 단편영화로 국내외 다수 영화제에서 입상했으며 장편영화로는 <조금만 더 가까이>가 있다. 저서로 <사라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