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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유가 풍요로운 시대

2015년 10월 14일 — 1

다양한 가공법을 통해 등장, 이제는 조리법에 따라 다채롭게 활용되는 식용유를 살펴본다.

text 정재훈 — edit 권민지— photograph 심윤석

©심윤석
©심윤석

옥수수유와 콩기름의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는 카놀라유, 포도씨유, 올리브유 간의 경쟁이다. 사실 ‘경쟁’이란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식물이 사람에게 지방을 나눠주려고 애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생물체에게 지방은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비축하는 방법이다. 포도씨유는 포도 씨가, 카놀라유는 유채 씨앗이 발아하는데 필요한 영양을 담고 있다. 유채 씨앗의 입장에서 자신의 발아와 생장을 위한 지방을 동물에게 빼앗기는 것은 매우 불쾌한 일이다.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유채 씨앗에는 십자화과 특유의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라는 쓴맛 화합물과 에루크산(Erucic Acid)이라는 방어 장치가 있다. 에루크산은 유채 씨앗 특유의 지방산으로, 많이 먹으면 동물의 심장 근육에 해를 줄 수 있는 성분이다. 하지만 육종과 작물화를 통해 식물의 독성을 줄이는 법을 배워온 인간에게 이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60년대 캐나다의 농학자들은 유채 종자를 개량해 에루크산과 쓴맛 화합물의 함량을 최소화한 신품종을 만들어냈다. 이 새로운 품종의 유채 씨앗에서 짜낸 기름이 카놀라유다. 말 그대로 캐나다에서 개발한 기름이란 뜻이다(캐나다Canada의 앞 세 글자와 Oil의 변형인 Ola를 합친말).

포도씨유, 카놀라유, 옥수수유, 콩기름은 모두 씨앗을 짜서 얻는 기름이다. 반면 올리브유는 과육을 짜서 얻는 기름이다. 과일은 그 속에 품고 있는 씨와 다르다. 과일의 존재 이유는 먹히는 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식물로서는 동물이 과일을 먹고 그 씨를 멀리 떨어진 곳에 운반해주어야 자손을 여기저기에 퍼뜨릴 수 있다. 잘 익은 과일이 달콤한 맛과 향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데는 나름의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올리브는 뭐란 말인가? 사람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올리브는 과일이지만 쓴맛을 내는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 때문에 그대로 먹을 수 없으며 당분보다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질문의 답을 알려면 새가 되어보아야 한다. 올리브는 새들을 위한 과일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에게 올리브의 지방은 장시간 에너지를 공급하면서도 가벼운 최적의 연료다. 동일한 열량을 탄수화물이나 단백질로 비축하려면 적어도 두 배 이상 무거워진다. 열매를 통째로 삼키는 새들에게는 올리브 과육의 쓴맛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사람에게는 문제가 된다. 마트에서 생올리브를 찾을 수 없는 건 이 때문이다). 올리브는 나무가 새를 유혹하기 위해 만든 과일이다. 쓴맛의 폴리페놀은 새가 아닌 다른 동물을 쫓아내기 위한 방어 장치다. 물론 그렇다고 물러선다면 인간이 아니다. 고대인들은 올리브를 물에 담그고 발효시켜서 쓴맛을 줄이는 방법을 찾아냈고, 기름을 짜서 올리브의 맛과 영양을 취하는 가공법을 발명해냈다. 상당량의 쓴맛 성분이 수분과 유분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제거되므로 갓 짜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과하게 쓰지 않다. 다양한 향기 물질들과 특유의 풀 냄새를 내는 지방산 조각들이 독특한 풍미와 아름다운 색깔을 빚어낸다. 올리브유 맛은 재료 본연의 맛 또는 자연의 맛과는 거리가 멀다. 잘 볶은 커피의 맛과 향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풍미는 적절한 가공을 거친 맛이다(새가 아닌 이상 자연 그대로의 올리브를 즐길 수는 없다). 통념과 달리, 올리브유는 튀김 요리에도 적합하다. 2014년 튀니지의 과학자들이 발표한 연구 논문에 따르면 190°C에서 딥 프라잉(Deep Frying)을 반복했을 때 올리브유가 콩기름, 옥수수유, 해바라기유보다 더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영국 BBC의 의학 프로그램 <I’m A Doctor>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연구를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8종의 기름을 주어 가정에서 요리에 사용하고 남은 기름을 대학 연구소로 보내 분석한 것이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기름이 고온으로 가열될 때 생겨나는 유해 알데히드는 해바라기유와 옥수수유에서 제일 많이 검출되어 세계보건기구 권장량의 20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반대로 유채유, 버터, 거위기름과 올리브유에서는 이들 성분이 매우 적게 나타났다. 카놀라유, 포도씨유, 올리브유에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다. 포화와 불포화는 지방산 탄소 사슬의 이중 결합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중 결합이 많을수록 불안정하다. 실험 결과에서 보여주듯 해바라기유와 옥수수유가 고온에 약한 이유는 다중불포화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포화지방산이나 단일불포화지방산이 많은 올리브유와 유채유는 상대적으로 고온에 더 안정하다. 실험을 진행한 마틴 그루트펠 드 교수는 해바라기유와 옥수수유도 고열을 가하지 않는 한 안전하지만 튀김이나 가열 조리에는 올리브유를 사용할 것을 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일반 가정에서 튀김용 기름으로 쓰기란 쉽지 않다. 특유의 맛과 향이 음식에 배는 것도 문제겠지만 무엇보다 튀김이라는 조리법이 내포하고 있는 사치스러움 때문이다. 단언컨대 튀김은 가장 럭셔리한 음식이다. 집에서 이처럼 재료를 과감하게 낭비하는 조리법은 찾기 어렵다. 조리 과정에서 상당량의 기름이 재료로 흡수되지만, 몇 번의 딥 프라잉 뒤에는 폐식용유가 남기 마련이다. 결국 원래 팬에 부은 기름의 절반 이상을 버려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떤 기름이든 재료를 넣고 가열하는 과정에서 지방 분자들의 모양이 변하고, 고온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들로 말미암아 유해 물질이 생겨난다. 필터링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도 여러 번 튀김에 사용되고 나면 처음의 신선함을 잃어버린다. 눈에 보이는 찌꺼기를 걸러낸다 할지라도 같은 기름을 계속 반복해 사용할 수 없다. 오래된 기름은 재료에 더 쉽게 스며들어 눅눅한 튀김을 만든다. 기름이 가열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산화물로 인해 혼탁해지고 오염된 식용유는 결국 버려야 한다. 200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식용유 소비량은 55만5000톤이며, 폐식용유 발생량은 27만톤으로 추산된다. 절반을 쓰고, 절반을 버린다. 마트에서 구입하는 다른 어떤 식재료와도 비교 불가다. 올리브유, 포도씨유, 카놀라유, 옥수수유, 콩기름 중 어느 것을 구입하든, 그 용도가 튀김이라면 절반은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다행히 요즘은 폐유를 수거해 바이오디젤Bio-Diesel을 만드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튀김은 프라이팬이라는 기본 도구와 질 좋은 지방이라는 식재료를 전제 조건으로 한다. 남중국과 일부 동남 아시아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다른 지역 전통요리법에는 튀김이 없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도 흔하지만, 사실 튀김은 ‘특별한 축제 때나 먹던 음식’이었다. 가까이 조선시대로만 돌아가봐도 그렇다. 번철이나 솥뚜껑에 기름을 두르고 지진 부침이 명절 상에 오르긴 했지만 기름에 익힌 음식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프라이 팬도 없고, 기름도 모자랐던 시절에 튀김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딥 프라잉은 로컬푸드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는 조리법이다. 종자를 수입해 국내 공장에서 짠 것이든, 식용유 자체를 수입한 것이든, 절반을 버려야 하는 조리법의 특성상 값싼 기름은 튀김의 필수 조건이다. 지역에서 재배한 식재료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지역 재료에만 집착한다면 튀김은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볶지 않은 국산 참깨를 냉압착해서 정제한 참기름은 필터링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만큼 발연 점이 높아 230°C가 되어야 타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170~180°C에서 딥 프라잉을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러기에 참기름은 너무 고가의 지방이다. 국산 참깨로 짜낸 참기름은 마트에서 판매되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보다 4~5배 더 비싸다. 이런 참기름에 튀긴다면 치킨조차도 호사스러운 음식이 될 것이다.

요즘은 맘만 먹으면 매일 튀김을 먹을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이 하늘을 나는 새보다 더 많은 양의 지방을 먹으니 비만은 필연적이다. 그래도 튀김의 호사를 누리는 것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과학자들은 연구에 열심이다. 재료에 기름 흡수를 줄이면서 바삭한 식감을 내는 구조를 유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복잡한 물리, 화학 이론을 응용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체내로 흡수되지 않는 지방 대체물을 개발한다. 하지만 결국 근본적 문제는 우리가 날마다 축제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명절 연휴의 끝자락이면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축제는 가끔 한 번씩 있어야 즐겁다. 그래도 식욕을 조절하기 힘들다면 기억하시라. 먹기만 해서는 하늘을 날 수 없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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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놀라유의 어원이 캐나다와 오일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네요. 정말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