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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농장에 가다

2015년 10월 12일 — 0

이토록 근원적인 창조를 하는 예술가가 세상에 있었나 싶다. 농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할수록 그 믿음은 더욱 깊게 뿌리내렸다.

edit 문은정, 이지희, 권민지 — photograph 심윤석, 양성모

유선영(스카이피아농원)

약을 뿌려 사과를 키우면 우리 몸에는 약이 될 수 없다.

유선영 농부와 가족이 함께 일군 사과 농원은 가족 모두의 소중한 터전이자 자랑거리다. ©심윤석
유선영 농부와 가족이 함께 일군 사과 농원은 가족 모두의 소중한 터전이자 자랑거리다. ©심윤석

자연이 만든 사과
전라북도 장수에서 산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다 보면 키 작은 사과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해발 650m쯤 부부와 두 아들이 함께 사과를 재배하는 스카이피아농원이 있다. 몇 시간 전까지 머물렀던 서울과는 달리 탁 트인 풍경에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풀 내음과 사과 향이 선선한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풍겨왔다.

이곳의 대표인 유선영 농부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면서도 손으로는 사과 가지를 쳐냈다.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해 몸에 자연스레 밴 농부의 손놀림이었다. 10년 전, 건강상의 이유로 부부는 전국을 돌며 공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다 이곳 장수를 발견했다. 가족이 함께 건강한 삶을 누리기에 이만한 데가 없었다. 처음 장수에 내려올 때만 해도 중고생이었던 두 아들은 어느덧 농대를 졸업하고 부모님의 사과 농사를 돕기 시작했다. 이제는 각자의 농원을 꾸리느라 일이 더 많아졌다.

이곳의 풍경은 올라오며 지나친 여느 사과 농원과는 사뭇 달랐다. 바닥에 비닐을 가지런히 덮어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은 그냥 맨땅이었다. 여기저기 이름 모를 꽃과 풀들이 사과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풀을 뽑지 않고 그냥 두어 지력(地力)을 살려요. 벌레도 풀을 먹느라 사과나무에 덜 올라오니까 소독도 많이 할 필요가 없지요.” 땅을 살리는 초생 재배를 통해 친환경 농법으로 사과를 키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거둔 사과로 식초를 만드는데 그중 일부는 판매하고 나머지는 물로 희석해서 사과나무에 다시 뿌려준다. 영양 공급은 물론이고 소독 효과도 있어 더욱 질 좋은 사과를 수확할 수 있다. “1년에 일곱 번 정도 가족이 함께 풀을 베는데 풀 자체가 자연 퇴비가 되는 거죠. 사실 제초제를 덜 사용하고 이렇게 풀을 베면 몸은 훨씬 힘들어요. 그렇다고 사과 가격을 더 비싸게 받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맛 좋은 사과를 만드는 것, 이유는 그거 딱 하나예요.”

장수에서 본격적으로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이다. 해발이 높은 까닭에 일교차가 커서 이 지역 사과는 당도가 높다. 그러나 장수 사과가 맛있기로 소문난 건 날씨 때문만은 아니다. 대구처럼 사과 생산지로 유명한 지역에 건물들이 들어서고 도시로 발전하다 보니 사과 농사 기술을 보유한 농부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이곳까지 넘어온 것이다. 그렇게 기술력이 보급되고 자리를 잡으면서 사과 재배지는 점점 더 넓어졌다. 그즈음 유선영 농부 가족이 장수에 터를 잡았으니 그야말로 장수 사과의 역사를 함께 일궈내고 있는 셈이다. 남편 전은식 농부가 작고 새빨간 홍로를 그 자리에서 따주었다. 바지에 슥슥 닦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새콤한 맛보다는 달콤한 맛이 강했다. 스카이피아농원에서는 철마다 사과 품종을 달리해 사과즙을 만든다. 가을에는 당도 높은 홍로에 향이 진하고 새콤한 맛의 부사를 섞어 즙을 낸다. 유선영 씨는 사과를 키우는 농부답게 집에서도 사과를 즐겨 먹는다. 사과청을 만들어 물에 타 마시거나 고기를 재우는 데 설탕 대신 사용한다. 또 사과를 살짝 졸인 뒤 갈아 무스를 만들어 잼이나 디핑소스로 활용하기도 한다.

“직장인이 회사에 얽매인다면 농부는 날씨에 얽매여요.” 전은식 농부의 말을 듣고 청명한 가을 하늘에 홍로가 주렁주렁 달린 풍경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왠지 장수에서는 뭔가에 얽매일 일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은 크기의 메이폴은 새콤한 맛이 강하고 과육이 붉어 체리사과라고도 불린다. ©심윤석
작은 크기의 메이폴은 새콤한 맛이 강하고 과육이 붉어 체리사과라고도 불린다. ©심윤석

농사는 끝없는 공부
추석을 앞두고 있어 이곳은 한창 바쁠 때다. 먹음직스럽고 실한 사과를 선물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크고 빛깔 좋은 사과는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사과를 크게 키우려면 꽃을 자주 따고 열매를 솎아주는 등 별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크다고 해서 더 맛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작은 사과가 더 단단하고 속이 알차다. 그 때문인지 요즘은 큰 사과보다 작고 새콤한 맛의 사과를 많이 찾는다. 이처럼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사과 품종의 비율을 조절해 재배하는 것은 사과농사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농촌 생활의 동경 때문인지 농업의 미래를 밝게 내다본 때문인지, 최근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두 형제에게 물었다. “농부도 하나의 직업이잖아요. 대학에서 농업 이론부터 실무까지 4년 동안 공부하고 해외에서도 열심히 경험을 쌓았어요. 그래도 아직은 알아야 할 게 많아요. 평생 공부하며 농사짓는 거죠.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농사에 뛰어드는 건 여태 농사일만 해온 제가 변호사 되겠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오죽하면 10년은 적자라는 말이 있겠어요.” 공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시골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라고 했다. 도시 생활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자연과 어울릴 줄 모르면 아무리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이어도 다 소용없기 때문이다. “농업을 시골에서만 할 필요는 없어요. 이제 농업은 단순히 생산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통을 확장하는 방법까지 생각해야 해요. 도시 농업 종사자들이야말로 농촌과의 연결 고리가 되어주고 다양한 판로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거든요.” 농업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두 아들의 말처럼 과거 농업이 소규모 농가 위주였다면 지금은 농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화되고 있다. 그래서 마케팅은 물론이고 온라인 판로를 넓히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 변화에 신경 쓰느라 농사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판로를 넓혀도 품질이 떨어진다면 소용없어요. ‘맛있는 사과’의 기본을 갖춰야 그 사과를 이용해 가공식품도 만들고 탄탄한 브랜드로 구축해나갈 수 있으니까요.”

유선영 농부의 가족은 매일 아침 6시 반이면 농원에 나와 일한다. 점심을 먹고 해가 너무 뜨거울 때는 직접 우린 구수한 둥굴레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면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또 유선영 농부는 처음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영농 일지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꾸준함과 가족의 성실함이 8000평(약 2만여m2) 규모로 농원을 키웠다. 최근에는 사과를 이용한 가공품을 만들어 이에 대한 특허 출원과 가공 공장을 준비하는 등 새로운 일도 열정적으로 해내고 있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은 농부의 필수 덕목인 듯하다.

바쁘게 일하던 중에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으며 유선영 농부가 말했다. “매일같이 땀 흘려 가꾼 사과를 수확할 때보다 그 사과를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가 더 뿌듯해요. 그래서 고생스러워도 친환경 농법을 고집하는 거예요. 이것저것 약만 챙겨 먹는 것보다 제철 과일이나 음식을 먹는 게 건강의 비결이잖아요. 그런데 농작물에 실컷 약을 뿌리면 우리 몸에 약이 될 수 없어요.” 덧붙여 농부로 살면서 우리 농업을 지켜나가고 있다는 데 자부심을 갖는다는 이야기에 함께 사과를 맛보던 가족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농사의 기본을 묵묵히 몸으로 보여주는 부부와 농업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가는 젊은 두 아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 한편이 든든해졌다.

사과 저장소 천막에 비친 농원의 자연이 근사한 수묵화를 그려낸다. ©심윤석
사과 저장소 천막에 비친 농원의 자연이 근사한 수묵화를 그려낸다. ©심윤석

김동우(연꽃마을)

농사는 마음을 비울수록 수확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김동우 대표가 걷는 곳이 길이 된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풀로 우거진 연밭 ©양성모
김동우 대표가 걷는 곳이 길이 된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풀로 우거진 연밭 ©양성모

손수 김을 매는 연근 농부
서울에서 이천까지 3시간 남짓, 제법 누렇게 영근 벼들이 창밖을 스쳐갔다. 어느새 한적해진 길 끝에서 연근 조림 냄새가 솔솔 풍겨오자 침이 절로 넘어갔다. 이윽고 연꽃마을 영농조합법인이라고 적힌 건물이 보였고, 이미 연밭에 뛰어들 만반의 채비를 한 김동우 대표가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복불복이라고, 연근은 저에게는 복이죠. 그렇잖아요, 어떤 직장에 처음 발을 내딛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어요.” 20대 후반, 사업에 실패한 뒤 대구에서 연근 농장을 꾸리던 형님댁으로 귀농을 하면서 연근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복이었다. 다른 작물과 달리 세월이 흘러도 연근은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수작업을 통해 수확하기 때문에 가격 폭등과 폭락이 심하지 않고 안정적이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지금, 농부 8명의 공동체인 김동우 연꽃마을을 운영하게 됐다. 대구와 여주, 이천에 위치한 농장에서 연근, 우엉, 마, 토란 등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뿌리 식품을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과 한살림에 전량 공급한다. 하빈면 봉촌리에 위치한 대구 농장에서는 8월 중순부터 연근 수확을 시작했다. 제조 공장이 있는 이천 농장으로 연근을 보내 손질하고 다양한 가공식품을 만든다. 향이 솔솔 나던 연근 조림도 제품 중 하나였다.

이천 연밭은 제조 공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미끄러지듯 논과 밭 사잇길을 달리다 우거진 풀숲으로 차가 들어섰다. 놀란 메뚜기 떼와 잠자리 떼가 이리저리 튀어나오는 울퉁불퉁한 오프로드 코스를 지나니 푸른 잎이 넘실대는 연밭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졌다. 여름 내 흐드러지게 폈다는 연꽃은 몇 송이만 남아 있었다. 분홍 연꽃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고혹적이었다. 식용 연으로 크게 홍련과 백련이 있는데, 이곳에서 키우는 70% 이상이 홍련이란다. 홍련과 백련이 자연스레 교접해 나온 것이 분홍 연꽃이다. 연근 맛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10~20cm의 따뜻한 물에서 자라는 연은 4~5월에 파종한 뒤 빠르면 8월 말부터 이듬해 6월까지 수확이 이어진다. 특히 연근은 거미줄, 실타래처럼 땅속에서 얽혀 자라는데 본격적으로 크기가 커지는 7월 중순부터는 웃거름을 주고 장마에 불어난 물이 둑을 터뜨리지 않게 관리를 잘해야 한다. 여름에는 부지런히 움직여 논둑을 밟고 다니면 오히려 둑이 터지는 경우가 많아 조금 게을러져야 한다고. 그런데 연밭의 물을 한 번씩 빼주고 다시 채워 넣어주면 연근이 더 강하고 튼튼하게 자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뿌리가 딸막딸막하게 커진다. 그렇게 연근 농장의 하루 일과는 연밭의 물관리와 끝없는 풀베기다. 금방 하루해가 꼴딱 넘어간단다.

말랐던 연밭은 전날 내린 소나기로 인해 물이 찰랑거렸다. 문득 왜 논이 아니라 ‘연밭’이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졌다. “연을 캐려면 물을 모두 빼고 맨땅에서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연밭이라 부른다고 전해집니다. 연근은 저 장성이 떨어져 매일 작업을 해야하는데 날씨 때문에 3일만 수확을 못해도 연근값이 쑥 올라가요.” 그는 연밭으로 거침없이 들어가 연줄기를 쳐내고 쇠스랑을 척척 진흙에 박아가며 연근을 찾았다. “이 자리에 연을 심었다고 해서 바로 위에 연근이 맺히지 않아요. 거미줄과 실타래처럼 땅속에서 얽혀 있죠.” 끙끙대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물속에서는 수많은 우렁이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렁이는 잡풀을 먹고 자란다. 연을 다 갉아먹을 거라는 주변의 우려를 뒤로하고 연밭에 제초제 대신 우렁이를 풀었다. 그렇게 잡초를 잔뜩 먹은 통통한 우렁이들이 연밭에서 서식하기 시작했고, 우렁이가 먹지 못하는 논두렁 풀은 그가 하나하나 직접 베었다. 그런 노력 덕분인지 김동우 대표의 연꽃마을은 2001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국내 최초로 연근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손에 진흙을 묻혀가며 연근을 캐던 그가 “연은 다른 작 물에 비해 가꾸기 수월해요. 풀과 물 관리만 잘하면 됩니다!”하며 뽀얀 연근을 쑥 뽑아들었다. 이곳 이천 농장과 대구 농장은 사질토로, 점질의 땅보다 수확이 쉽고 연근 모양이 예쁘며 빛깔도 좋아 가격을 더 받는다.

김 대표는 풀이 무성한 논두렁으로 올라와 연근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논두렁의 풀을 몇 번 깎았는데도 무성해요. 그런데 풀 때문에 둑이 살아있는 겁니다. 너무 깔끔하면 둑이 무너져요.” 그는 잠시 연 줄기를 바라봤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에 진딧물이 잔뜩 껴서 골치를 썩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갑자기 변하는 환경에) 사람 살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알알이 빼낸 연밥. 껍질만 까서 통째로 먹는다. 아삭한 밤맛이다. ©양성모
알알이 빼낸 연밥. 껍질만 까서 통째로 먹는다. 아삭한 밤 맛이다. ©양성모

연근이 주는 낙
허리를 뚝뚝 두드리는 그에게 연근이 주는 낙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수확의 재미’라고 전했다. “30대에는 밤에 잠이 안 왔어요, 설레서. 땅 속 가득한 연을 빨리 캐고 싶어서 왜 이렇게 밤이 기냐고 푸념을 했어요.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지만 저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워낙 없이 살 때여서 하루 종일 연근을 캐면 땅 한 평을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택도 없습니다(웃음). 연근은 허리를 굽혀서 하나하나 캐야하는 중노동입니다. 정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지만 참 재미있어요. 연은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자란 방향을 잡고 연을 캔다는 말 대신 끄집어낸다고 표현합니다.” 그렇게 수확한 연근을 볶아 먹거나 생선조림에 감자 대신 넣어 먹고, 사람들과 반주를 곁들일 때에는 연근전으로 그 맛을 더한다. 그는 집밥 메뉴의 70% 이상을 자급자족하는 게 목표지만 재배하는 농산물 개수가 적으니 아직 어림도 없다고 허허 웃었다.

수풀이 무성한 논둑을 걷다가 김 대표가 연밥을 뚝 꺾어서 건넸다. 연밥은 심신 안정의 효과가 있어 현대인들에게 좋단다. 그대로 꺼내 껍질을 벗겨 씹어 먹으니 고소한 밤 같았다. 친환경 농법이어서 덥석 먹을 수 있었다. 5000평(약 1만여m2)의 대지를 제초제 없이 우렁이와 사람 품만으로 꾸리기 쉽지 않았을 터. “사실 많이 어렵죠. 하지만 하나의 농사 철학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가 처음 농사를 시작했을 시기에는 제초제를 뿌리고 비료를 사용했다. 연근의 수확은 좋은 반면 땅은 가물어 죽어갔다. 김 대표는 다른 농사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약을 썩 좋아하지 않아 일일이 김을 맸습니다. 그래서 형님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어요. 한창 성장하는 연밭에 풀을 매러 들어가면 줄기가 부러지고 땅이 눌려 수확량이 나오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꿋꿋하게 농사를 짓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키운 농산물을 원하는 곳이 나타나더군요. 친환경과 상관없이 내 물건을 알아준다는 게 얼마나 반가워요.” 하지만 웰빙 열풍이 한창 불 당시에는 친환경 연근 보다 일반 연근의 판매 가격과 품질이 더 좋았다. “한 번만 약을 치면 멀끔한 품질의 연근이 나올텐데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빨리 걷는 대신 천천히 오래 가자는 결심을 하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10개 중에 7개만 먹겠다는 생각을 하면 편해요. 3개는 떨어질 수도 있고 동물이 먹을 수도 있지요. 물론 10개 다 먹겠다는 마음을 비우기까지 몇 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20년간 마음을 비우고 연근을 재배하면서 판매량은 10배 이상 늘었고, 연근뿐 아니라 연근가루, 연근쌈, 연근칩, 연잎밥, 연잎차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사무실에 돌아와 따뜻한 연잎차로 목을 축이며 그는 말을 이었다. “연잎밥을 항공 기내식으로 소개하고 수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니 인프라를 더욱 갖춰야 하겠지요. 연근과 우엉을 선도하는 농가이니 책임이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하거든요.” 지금도 그는 주변 농가에 연근 농사를 권한다. 자신이 모두 매입한다는 조건을 제시해도 연근 농사를 하지 않는단다. 직접 일일이 풀을 베고 고생하는 그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요. 사실 제 스스로가 농사를 통해 계몽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생협을 통해 먹거리와 환경 운동, 나눔 운동을 하다 보니 물들어간 겁니다. 앞으로도 저는 친환경 농법을 고수하며 농사일을 할 거예요. 하지만 아들에게는 저처럼 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겁니다. 힘들기 때문이지요. 저는 풀을 베면서, 농약이 싫어 시작했으니 그게 당연한 거고요. 매일 농사에 대한 기록도 하고 주말에도 농사일에 참여해요. 일의 노예가 된 것 같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합니다. 일을 즐기는 거죠. 그게 제 삶이었습니다.”

연근에는 끈적끈적한 뮤신 성분이 풍부해 변비와 노화방지 등에 효과가 좋다. ©양성모
연근에는 끈적끈적한 뮤신 성분이 풍부해 변비와 노화방지 등에 효과가 좋다. ©양성모

이근이(우보농장)

소농은 농사의 미래다

©심윤석
이근이 대표의 우보농장에서는 다양한 색과 모양의 벼들이 자라나고 있다. ©심윤석

토종벼가 주는 새로움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는 꽤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스쳐 지나간 직업이 나이만큼이나 많았으니까. 책도 만들고, 음반도 제작하고, 심지어 잡지 편집장까지 지낸 그는 별명이 ‘명함 수집가’일 정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농사 하나는 13년째 짓고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던 문화기획자가 어떻게 몸을 쓰는 농사에 빠져들게 된 것일까.

“저보다 먼저 집사람이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지었어요. 그런데 옆에서 가만 보니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하나의 새로운 씨앗을 심고, 그것이 열매 맺을 때까지의 다채로움. 그 다양성의 매력에 빠져 농사일에 발을 담갔다. 그런 그가 집중한 것은 다름 아닌 토종벼다. “우연찮게 벼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었던, 지금은 사라진 토종벼 말이에요. 그래서 몇 년 전 농장 앞에 있는 못자리 3분의 1에 20여 가지 품종을 심어보았어요. 하나의 줄기에 100개 정도 열리는 토종벼를 10알 정도 얻어와 확산시킨 거예요. 그게 커지고 커져서 3700평(약 1만여 m2)까지 재배했더랬죠.”

뒷산의 능선을 따라 계단식으로 지은 논에 도착하니 다양한 색과 형태의 벼가 자라나고 있었다. 한쪽에는 시커먼 잎의 벼들이, 또 다른 한쪽에는 장대만큼 꼿꼿이 허리를 세운 벼들이, 그리고 바로 앞에는 허리를 잔뜩 구부린 벼들이 있었다. 그렇게 각기 다른 특성과 모양을 지닌 벼는 20여 종에 달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논 보다는 화원을 연상시켰다.

“졸장벼, 자광도, 흑저도, 올벼, 북흑조, 흑갱…. 무수히 많은 토종벼가 있어요. 수확 시기가 각기 달라서 어떤 것은 꽃이 피고, 어떤 것은 벌써 수확시기가 다 됐어요.”

그는 토종벼를 수확한 뒤 말려 직접 도정을 해먹는다. 그 맛은 시중에서 판매하는 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건 올벼라는 토종벼예요. 다른 것은 고유의 한 가지 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건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고, 여러가지 색이 혼합되어 있어요. 키가 크다 보니 대가 약해서 잘 쓰러지지만, 고소한 맛으로는 따라올 벼가 없죠. 진짜 최고예요.”

그는 꿀벌이 벼꽃에서 꿀을 모으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직접 양봉하는 꿀벌집에서 날아온 벌들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벼꽃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생강, 오크라, 토종콩 등 우보농장에는 토종벼 외에도 신기한 것이 많다. 식탁에 오르는 모든 작물을 직접 기르고 있다고. 농장 한편에는 오색 빛의 토종닭도 뛰어다녔다. “우보는 소의 걸음이라는 뜻이에요. 주변에서 이름처럼 소도 길러서 농사를 지어보라는데…. 어휴, 난 그건 못하겠어(웃음).” 그 외에도 생강, 토종콩 등 여러 작물을 함께 짓는 공동체도 있다. 마치 어른들을 위한 하나의 커다란 놀이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래 한 세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다양한 품종의 벼를 재배하고 있었는데 식량증식 운동을 시작한 일제강점기부터 그 수가 급감했다. 군량미 증대를 위해 수확량 좋은 개량종을 들여왔던 것이다. 자연스레 토종 종자도 줄어들었다. “이 토종벼가 지금까지 그대로 재배되었다면 어땠겠어요? 전라도에 여전히 졸장벼가 있었다면요? 분명 졸장벼로 무언가 만들 수 있었을 거예요. 쌀은 가공해서 쓰니 졸장벼로 술을 담글 수도 있고 한과를 만들 수도 있었겠죠. 요즘 한식의 세계화다 말이 많은데, 쌀의 세계화도 가능했던 거잖아요. 이건 완전히 새로운 식문화가 될 수 있었던 거죠.” 일본의 사케가 무수히 많은 종류를 지닌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토종벼의 존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에 맞는 토종벼를 찾고 그 지역에 맞게 확산시키는 것은 더 중요하다. “토종벼는 전통 방식으로 농사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농약, 화학비료를 치면 안 돼요. 이런 약을 치면 웃자라서 금방 쓰러져버리거든요. 대량 생산은 어렵겠지만 뿌리가 강해지도록 해야 해요. 뿌리가 튼튼해야 고유의 벼가 나와요. 수량보다는 질의 문제로 접근해야지요. 땅은 철저하게 유기 재배 하고 거름은 최소화하며 관리 요령 역시 달라져야 하고요.” 그가 우보농장에서 하고 있는 방식이다.

자광도는 250년 된 쌀이다. 중국에서 사신이 가져온 것으로 자색빛이 돈다. 김포 지역에서 키우던 것으로 잘 쓰러지는 것이 문제다. 개량종에 비해 수확량이 2⁄3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독특해서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것이다. 현재 우보농장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쌀이기도하다. ©심윤석
자광도는 250년 된 쌀이다. 중국에서 사신이 가져온 것으로 자색빛이 돈다. 김포 지역에서 키우던 것으로 잘 쓰러지는 것이 문제다. 개량종에 비해 수확량이 2⁄3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독특해서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것이다. 현재 우보농장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쌀이기도하다. ©심윤석

왜곡시키지 않는 자연스러운 농법
현대의 농법은 석유를 사용하는 ‘석유 농법’이다. 대량 생산 구조로 돌아서면서 생긴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근이 대표는 석유 없이도 농사 지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급하고, 잉여로 남는 것을 판매하는 것. 바로 소농 방식의 농업이다. 그렇게 하면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도 농사지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생태뒷간에서 1년간 숙성한 인분을 거름으로 쓴다. “언젠가부터 작물에게 필요한 요소만 주사하는 링거 농법만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작물의 맛이나 영양소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순환 방식으로 하려면 거름을 만들어야 해요. 내 몸에서 나오는 것이 1차인 거죠.” 나라에서 한 작물 검사를 통해 안전성도 검증받았다.

“물은 지나치게 주지 않아요. 자연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죠. 죽기 직전에 한 번 줍니다. 그러면 뿌리가 굉장히 튼튼해져요.”
멀칭(덮개를 덮어 잡초를 죽이는 것) 작업 시에는 볏짚과 낙엽, 톳밥, 왕겨 등의 부산물을 덮는다. 풀을 풀로 잡는 친환경 농법이다. “풀은 오래 두면 말라 삭잖아요. 이게 자연스레 땅속으로 들어가 거름이 되죠. 다시 미생물의 먹이가 될 수도 있는 거고.” 그에게 자연스럽다는 것은 ‘순환’을 의미한다. 자연의 공기와 흐름, 기온에 맞는 작물을 기르는 것. 반면, 왜곡시킨다는 것은 땅을 열대화시킨다는 뜻이다.

그는 우보농장을 각 생산 공동체의 장들에게 넘기고 자신은 지방으로 내려가 온전히 농사만 짓고 싶다고 말했다. 딱 먹을 만큼만 생산하며 자급자족하는 농부의 삶을 사는 것. 그가 그리고 있는 내년의 그림이다. “직접 가꾼 작물만 먹고 싶은데, 농사일 하다 보면 바빠서 그러지 못해요. 자주 시켜 먹고 외식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그렇게 살아보려고요. 자급자족하는 삶을요.”
그러고 보니 그는 처음 기자를 만났을 때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더랬다. “농사가 좋아서 농부가 되고 싶은 사람이에요. 이제 8부 능선은 넘어선 것 같습니다.‘농부’라고 말할 수 있는 접점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가 생각하는 농부의 기준은 꽤 높은 잣대일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건 원초적인 상태로 돌아감에 있다. 왜곡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는 그런 농부가 되고자 한다.

보농장은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교육 농장이기도 하다. 생태뒷간을 만들어 농장을 찾는 아이들에게 ‘순환’에 대해 설명한다. ©심윤석
보농장은 아이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는 교육 농장이기도 하다. 생태뒷간을 만들어 농장을 찾는 아이들에게 ‘순환’에 대해 설명한다. ©심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