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영역에서, 각자가 의지하는 신념을 가지고 저마다의 한식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 좀 놀랍다. 이렇게 한식을 이끄는 사람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게.
edit 문은정, 이지희, 권민지 — photograph 김재욱, 박재현, 양성모
기순도 – 한식의 기본은 장이다.

죽염으로 만든 장
담양 창평면 유천리. 바람이 불면 댓잎이 서걱서걱 부대끼고, 처마 밑 풍경이 맑게 울려 퍼지는 곳이다. 그 앞을 수천 개의 장독대가 차지한 가운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익어가는 고추장, 된장 등이 가득 담겨 있다. 이곳을 지키는 이는 전통식품명인 제35호 기순도 선생. 곡성 명문가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장흥 고씨 문중 10대 맏며느리로 시집온 뒤, 10대째 360년 전통의 장 맛을 이어가고 있다. 선생은 독특하게도 죽염을 사용해 장을 담근다.
“처음에는 집 주변의 대나무로 죽염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장 담글 때도 그 죽염을 쓰기 시작한 거죠. 음식은 간수를 뺀 소금으로 해야 맛있잖아요? 죽염은 간수가 전혀 없어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에 소금만 죽염으로 교체한 것이다. 담양 대나무로 만든 죽염과 국산 콩, 150m 암반수로 만든 장은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죽염은 천일염을 갈아 대통에 넣은 뒤 황토 지장수를 붓고 가마에 구워 만들어요. 굽는 양이 적으면 열이 빨리 식어 맛이 없는데, 우리는 한 번 넣을 때 나흘 만에 꺼내야 할 정도의 많은 양을 구우니까 맛이 좋죠. 한 번에 2000가마쯤 구워요.”
소금만 좋다고 맛있는 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생은 “장 만들기는 한 가지만 소홀히 해도 맛이 변한다”고 덧붙인다. “소금을 죽염으로 써도 발효가 잘못되면 문제가 생겨요. 염도를 잘 맞춰도 메주 속 수분 함량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올해는 공간이 부족해서 반그늘진 곳에 장독대를 놨는데 아직도 숙성이 안 됐어요. 항상 햇볕에 놔둬서 몰랐는데 올해야 처음 그 사실을 안거죠.” 기순도 명인이 장을 담근 세월은 자그마치 40여 년. 아직도 장에 대해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그녀의 겸손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소금, 콩, 물 등 모든 요소가 중요한 장은 1년에 한 번, 정월 동짓달(11월)에 메주를 끓여 섣달(12월)에 발효시킨 뒤 정월(1월)에 담근다. 맛보라고 건넨 간장은 짭쪼름하면서도 감칠맛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선생이 장을 담근 세월처럼 내공이 담긴 맛이었다.
장은 한식의 기본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간장의 가치를 알았다. ‘얼마나 없으면 소금으로 간해 먹고 사냐’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소금으로 간을 한다. 또 간장을 써도 왜간장을 쓴다. 선생은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방송에서 왜간장 만드는 것 보니까 소금만도 못할 것 같아요. 그거 염산으로 만드는 거잖아요. 물론 먹어도 사람에게 해롭지는 않다고하지만 이로운 것도 없을 것 같아요. 그죠? 사람들이 조선간장 짜다고 싫어하는데, 조금만 넣어서 기호에 맞게 간만 맞추면 돼요.” 선생은 김장할 때도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김밥에 간을 할 때도 간장을 쓰는 식으로 영양 많은 전통장을 두루 활용하고 있다.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는 선생은 한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요즘 한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선생은 덤덤히, 하지만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비빔밥 중요한 건 알아도 장 중요한 건 몰라요. 기본부터 좋은 걸 써야 고유의 맛이 나지. 한식 한다면서 왜간장 쓰면 전통의 맛이 날까요? 요즘 한식은 기본이 없는 것 같아요.” 기순도 선생은 ‘기본’이라는 단어를 빈번히 사용했다. 개인적인 기호보다는 일종의 신념에서 오는 습관 같았다. 장이야말로 한식의 시작이라는 굳건한 신념 말이다.
“대학 식품학과 다섯 곳에 강의를 다녔어요. 말로 해선 전통이 이렇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된장, 간장, 조청 다 가져갔죠. 이것이 한국 음식의 기본이다, 장이야말로 한식의 기본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전통이 이어지지. 어떤 과정을 통해 자연 발효되는지, 그 장점이 뭔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선생은 앞으로 학교 급식에도 전통 장을 보급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먹거리 교육을 통해 자연스레 장맛을 전파하고 싶다는 것. 전통이니 한식이니 하는 것은 말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 자연스레 녹아 나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터득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도 한식의 세계화를 강조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제대로 된 한식의 맛을 알고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간장과 된장은 무형문화재가 없어요. 장류를 얼마나 소홀히 여기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죠. 전통은 잘 보존해야 하는 건데. 시급하지 않나요? 점점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잖아요.”

기순도는 고려전통 식품 대표다. 담양에서 죽염을 사용해 360년 전통 장을 담그고 있다. 곡성 명문가의 막내딸로 장흥 고씨 문중의 10대 맏 며느리로 시집온 뒤 장 담그기만 40여 년째다. 전통식품명인 제35호인 선생의 장은 백화점 식품 코너 등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한복려, 한복선, 한복진 – 궁중 음식에 예를 담아 한식 문화를 전하다

식食문화를 기록하다
창덕궁 담벼락을 끼고 고즈넉이 자리한 궁중음식연구원은 한국 궁중 음식의 전통을 이어가는 유일한 공간이다. 조선 왕조 궁중 음식이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기까지는 고 황혜성 교수의 노력이 컸다. 조선 왕조 말기의 마지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 상궁의 기술을 전수받아 궁중 음식을 계량화하고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황 교수는 제2대 기능 보유자가 되어 1971년 궁중음식연구원을 세웠고 그녀의 자녀들 중 한복려, 한복선, 한복진 세 자매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우리는 반상에 둘러앉아 전업 주부인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는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자라지는 않았어요. 교수로 바쁘게 활동하셨던 어머니의 집밥은 오래된 장을 맛볼 수 있는 전통 가정식이 아니었죠. 다섯 남매와 친척, 오빠 친구들까지 교자상 두세 개를 펴고 둘러앉아 매끼를 먹었는데, 유학파였던 어머니의 서양과 일본, 중국 요리와 같은 특식 요리들로 밥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장맛보다 서양 기름 맛을 먼저 봤다는 한복려 원장의 말이다.
황혜성 교수는 그녀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통해 각 지역의 향토 음식과 집안 음식을 조사해 꼼꼼히 기록해 나갔다. 바쁜 어머니의 손을 거들며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건 세 자매의 몫. 그녀들은 밥상에서 물 건너온 외국 음식의 맛을 접하고, 어머니를 도와 수많은 한국의 지역 음식과 레시피를 정리하면서 식문화를 보고 자랐다. “당시 한식이든, 궁중 음식이든 먹는 행위에는 ‘문화’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궁중 음식을 무형 문화재로 만든 이유는 음식도 문화라고 생각하신 겁니다. 더욱이 트렌드와 문화는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데, 그 원형을 지켜 무형문화재로 남겨야겠다고 다짐하신 거죠. 식문화라는 용어를 소개하신 선구자지요.” 한복진 교수는 어릴 적부터 다채로운 식문화를 자연스레 접하다 보니 어머니가 다지던 궁중 음식과 한식 연구는 그녀들의 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한복려 원장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제3대 기능 보유자가 되어 궁중 음식을 전수하고 있고, 한복선 원장은 대중에게 궁중 음식을 편의 음식으로 다양하게 상품화해 알리고 있다. 한복진 교수는 한식조리학과 교수로 한식을 가르치고 있다. “교수가 왜 방송에 출연하냐고 말하던 시절이었어요. 혁신적이었죠. 어머니는 궁중 음식 전수부터 방송, 사회 활동까지 모두 하셨어요. 우리가 하는 전문적인 일을 합하면 어머니 한 분이지요”라며 한복선 원장은 싱긋 웃었다.
궁중 음식은 한식의 꽃이다
식문화를 알리는 세 자매의 뿌리는 궁중 음식이다. 한복려 원장은 궁중 음식은 무조건 좋은 재료와 기술만 가지고 막무가내로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신분 사회라 국가를 이끄는 왕이라는 권력자를 중심으로 궁중의 식생활, 식문화가 만들어졌어요. 궁중 음식은 가장 귀한 산물과 뛰어난 기술자들이 모여 최고의 맛뿐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조상과 웃어른, 왕을 모시는 유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인 예(禮)를 담은 음식이지요. 대중적인 한식과 궁중 음식의 맛은 비교할 수 있어요. 전자가 감칠미를 살리고 고춧가루로 간을 해 맛을 끌어낸다면, 궁중 음식은 재료와 조리법을 절제해가며 가장 좋은 맛을 이끌어내지요.” 궁중 음식은 최상의 재료들로 당대의 스타 셰프 격인 상궁들이 냈던 음식이며, 한식의 절정이자 꽃이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낯선 음식이었다. 때문에 세 자매는 전문 분야에서 궁중 음식을 알리고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한복선 원장은 1985년부터 3년간 MBC <오늘의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가정식 요리와 외국 요리까지 총망라한 레시피를 소개했다. 안 해본 요리가 없을 정도로 원조 ‘쿡방’으로서 인기를 얻었으며, 그녀의 음식 브랜드를 론칭해 궁중 요리를 편의 음식으로 다채롭게 소개해 나가고 있다. 한복려 원장은 지난 5월 경복궁 소주방(燒廚房) 복원 행사에서 전시 음식을 디렉팅하고 일반인에게 궁궐의 음식을 소개해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한복진 교수 역시 지난 5월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해외 셰프 7인과 함께한 컬리너리 아트 고메 프로젝트의 갈라 디너에서 밀쌈과 죽순회를 내며 궁중 음식을 선보였다.
문득 궁중 한식 문화를 잇는 선생들이 생각하는 한식의 범주가 궁금해졌다. “한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한식이죠. 김밥이 노리마키에서 왔다, 튀김은 일본 덴뿌라다 논란이 일어도 맛있으면 먹잖아요. 국적을 불문하고 일상 속에 녹아났으면 한식이죠.” 한복진 교수가 시원하게 답하자 한복려 원장도 거들었다. “식물도 접붙이는데 세계화 시대에 우리 것을 서양 음식에 접붙였다고 구별짓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통 한식과 궁중 음식은 그것대로 지켜져야 하고, 그런 음식을 소개하는 곳도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전통 한식점도 없고 관심도 사라지고 있어요.” 한식은 영혼의 음식이라는 한복선 원장의 표현처럼, 이미 자신 안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주는 음식이 한식이란다. 그렇기에 늘 일상 속에서 찾아 볼 수 있고, 우리 것이기 때문에 소홀하게 여겨져 아쉽다.
현재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수많은 먹방과 쿡방도 마찬 가지다. 한복선 원장은 ‘그림의 대결’이라 표현했다.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렸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듯, 음식의 예술성에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 한복려 원장은 ‘음식을 다루는 태도’를 강조했다. “상대를 위해 음식을 정성껏 만들겠다는 마음과 그런 음식을 고마워하는 태도가 부족해요. 최근 쿡방을 보면 곱게 음식을 먹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어요. 미디어로 접하는 먹방을 본 아이들의 밥상 머리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거죠.” 한식 문화에 대한 교육이 줄어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숟가락과 젓가락의 위치를 반대로 놓고, 가로로 놓을 오발이나 직사각형 접시를 세로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제가 교수로서 교육을 시킬 때 조리사는 남을 위해 일하는 직업이기에 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특히 생선과 고기 같은 재료가 도마에 올라왔을 때 한번 인사하라고 시켜요. 수많은 난관을 거쳐 많은 사람들의 정성을 통해 이 자리에 왔으니 최선을 다해 아름답고 맛있게 만들자는 다짐이지요.” 한복진 교수는 어떤 비법을 찾는 데 앞서 재료에 대한 존경심과 매너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식의 원형은 3첩 반상이다
한국 사람들은 한식 원형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한복진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특히 일상적인 반상의 기본인 3첩 반상을 꼭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밥과 국, 간장 종지와 나물, 육류, 어류의 세 가지 찬과 김치로 구성된 상은 계절에 따라 반찬이 바뀌고, 김치의 종류도 변한다. 고기나 생선을 강조하면 정식이 되며, 15가지의 재료가 들어가 하루 영양 섭취 권장과도 상통하니,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상 문화를 소개하지 않고 국적 불명의 플레이트로 한식을 내면서 세계화를 외칩니다.” 한복진 교수는 본질을 무시한 채 한식을 세계화로 이끌기 위해선 무리한 세계화를 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식도 변합니다. 생나물을 밑간해서 무친 생채 대신 외식에서 재고의 부담을 덜기 위해 샐러드드레싱으로 생채를 대체해요. 한식의 음식 원형 그대로를 다른 문화권에 밀어 넣는 건 자제하고, 쌈장소스나 고추장소스 등의 드레싱을 만들어서 그들의 식문화에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흥미를 갖게 해야죠.” 한식을 대표하는 이미지와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바비큐는 한국 음식이 아닌데 왜 정부에서 지원을 받느냐’며 항의하지만 매콤한 양념의 맛은 한국밖에 없어요. 한국 커피 전문점이 세계화되면 안 되나요? 한식이 기업화, 브랜드화가 되어 퍼져나가야지, 순수하게 냉면과 김치만 알리며 세계화가 되기는 어려워요.”
한식이 탄탄한 브랜드와 수준 높은 이미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역시 답은 기본에 있다. 한국 음식과 문화에 대한 자료를 정리해 문서화하고, 황혜성 교수의 고향인 충남 예산에 한식 자료관을 설립하는 것이 선생들의 목표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서양의 것과 접붙인 한식이 새롭게 생겨도, 누군가는 기본을 계속 유지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신념에서다.
“누군가는 한식의 기본을 알려야지요. 우리 세대가 간직한 한식에 대한 지식을 정리하고 꾸준히 전수해야 다음 세대에도 한식 문화가 자연스레 흘러가겠지요.”
세 자매는 웃으며 거듭 한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복려는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 음식 기능 보유자로 황혜성 교수의 뒤를 이어 궁중 음식의 재현 및 현대화에 공헌했다. 한복선은 한복선 식문화연구원 원장이다. 조선왕조 궁중 음식 기능 이수자이며 요리연구가로 궁중 음식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대복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한복진은 전주대학교 문화관광 대학 한식조리학과 교수다. 조선왕조 궁중 음식 기능 이수자이며 조리 기능장으로 한식을 알린다.
이윤신 – 한식은 우리 그릇에 담을 때 가장 멋스럽다.

한국 도자를 대중화시키다
“식탁 위에 오르지 않는 그릇은 그릇이 아니죠.” 이도의 이윤신 대표가 말했다. 식탁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한국 도자의 대중화를 위해 그녀만큼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쓰임이 없는 그릇은 생명력을 잃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화려하고 멋지지만 일상에서 음식을 담는 데 부담스럽고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면 그건 조형물이지 그릇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릇의 기본은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거예요.” 일본 유학 시절, 셰프들이 음식을 어디에 담을지 까다롭게 살피는 모습을 자연스레 접하면서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일본 음식은 맛있고 훌륭하죠. 그러나 일본 음식을 높이 사는 이유는 단순히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미학적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에요.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든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릇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한식은 맛과 음식에 담긴 지혜, 정성까지 모두 뛰어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한식을 담는 그릇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항상 고민해요. 한식을 더 멋스럽고 먹음직스럽게,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적이게 담아낼 수 있 는 그릇이 무엇인지를요.”
한식의 가치를 제대로 빛낼 수 있는 한식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한 이윤신 대표는 귀국하자마자 한국 특유의 절제미에 세련미를 더한 그릇을 만드는 데 몰두했다. 그렇게 만든 그릇을 인사동에서 직접 팔기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규모도 점차 커졌다. 한국 도자에 대한 열정으로 30여 년의 시간을 흙으로 빚어내며 지금의 이도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단순히 그릇 만드는 일에만 그치지 않고 지난해에는 이도 그릇에 음식을 담아 선보이는 이도 다이닝을 오픈했다. “레스토랑 사업은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레스토랑은 음식과 그릇이 만들어내는 조화와 이를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거든요.” 한국의 도예가로서 우리 고유의 식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일에 책임감을 느낀다는 이윤신 대표. 한국 도자를 대중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일상에서 도자기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찬장 속에 모셔두는 작품이 아니라, 어떤 음식을 담아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식탁에 계속 오르내리는 진짜 ‘그릇’처럼 말이다.
우리 그릇에 담아야 제맛이다
그릇을 만들기 전, 그 안에 담을 음식을 먼저 생각한다는 이윤신 대표는 음식의 색, 국물의 유무 등을 꼼꼼히 체크한다. 특히 한식의 경우 한 상 차림으로 반찬 가짓수가 많고 음식을 담아내는 양도 제각각이어서 더욱 신경을 쓴다. 게다가 음식의 색이 다양해 화려한 문양이 많은 서양 그릇보다는 은은한 색과 손맛을 살린 자연스러운 형태의 우리 그릇이 더욱 돋보인다고.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음식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 물었다. “그릇을 빼놓고 세계화를 논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단순히 음식만 가지고 한식을 알리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누구나 음식을 즐길 때,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고 그다음 입 안에서 음미하죠. 낯선 음식일수록 예쁘게 담겨 있어야 맛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지 않겠어요? 한식을 아름답고 특색있는 우리 고유의 식문화로 녹여 내는 것이 중요해요. 전통 한식을 서양 음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그릇에 담으면 우리 색을 잃게 되죠.” 최근 이도는 밀라노에서 열린 푸드엑스포에서 한국관의 공식 협찬사로 선정되어 우리 그릇에 정갈하게 담은 한식을 해외에 알리는 데에도 힘썼다.
해외 출장과 많은 업무로 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이도의 그릇은 여전히 그녀의 손을 거쳐 탄생한다.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부터 샘플링 작업까지도 그녀의 몫이다. 오롯이 흙에 몰두해 그릇을 빚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식을 보다 멋스럽게 차릴 수 있는 팁을 물었다. “다양한 컬러의 그릇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한국 도자기는 색이 은은하고 옅게 돌아 다양하게 구성해도 튀거나 촌스럽지 않거든요. 둘씩 짝을 지어 색을 맞춰도 좋고요. 한식은 대부분 약간 오목하고 깊이 있는 그릇이 어울리는 편이에요. 특히 나물이나 찜 요리는 쌓듯이 담아야 먹음직스러워요.”

이윤신은 수공예 도자 브랜드 이도(Yido)의 설립자 겸 도예가다. 홍익대학교 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 일본 교토 시립미술대학원에서 유학했다. 1984년 일본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 그릇과 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우관 스님 – 사찰 음식은 한식의 미래다.

한식의 한줄기, 사찰 음식
스님을 만나기 전 사찰 음식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사찰 음식이란 무엇일까? 채소로 만드는 것이니 채식일까? 건강한 재료로 만드니 건강식일까? 불교는 인도에서 유래했고, 사찰 음식은 불교의 음식이니 한식의 범주로 볼 수 없는 건 아닐까? 우관 스님은 직접 만든 토마토주스 한 잔을 건네며 쉽고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다. “한식은 한국 사람이 먹는 음식이죠. 사찰 음식 또한 한식의 일부분이에요. 불교 초기에 승려들은 탁발공양을 통해 공양을 했지만, 요즘은 직접 농사를 짓고 장을 담가 요리를 해 먹어요.”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해 중국으로 전해졌고, 한국은 중국의 불교를 이어받았다. 열대 지방인 인도와 달리 중국은 지리적으로 탁발공양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에 승려가 직접 농사를 지었다고. 따라서 자연스레 채식이 발달했으며, 그러다 보니 자연식을 즐기는 문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 문화를 고스란히 전달받은 것이 한국 불교다. “우리는 음식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어요. 부족한 것보다는 넘치는 것이 문제죠. 요즘 사람들에게 사찰 음식이 각광받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직접 농사를 짓고, 산에서 채집한 식재료를 쓰는 사찰 음식, 요즘 현대인들이 원하는 것 아닌가요.” 사찰 음식은 육류와 오신채를 금한다. 오신채는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무릇)를 뜻하는 말로, 향과 맛이 자극적이라 마음을 들뜨게 한다. 사찰 음식은 직접 채취하고 농사지은 식재료를 쓰기 때문에 자극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사찰 음식을 건강식으로만 보기엔 설명이 부족해요. 사찰 음식의 핵심은 정신이에요. 음식은 부처님과 스님께 공양 올리고 대중과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음식이 오기까지 많은 이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최소한의 음식을 건강을 유지하는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는거죠. 많은 사람의 수고를 통해 이 식재료가 나에게 온 거잖아요. 이 음식을 통해 수행을 해나가는 거죠.” 사찰 음식은 또한 종교 음식이다. 부처의 수행 정신이 담긴 수행식이라 할 수 있다. 사찰 음식은 계절의 흐름에 맞는 제철 음식을 사용하고, 저장 기술로 만들어낸 발효 음식을 활용한다. 봄철에 나는 산야초를 데쳐 말렸다 쓰거나, 김치나 된장, 고추장, 간장 등과 장아찌, 효소 등을 다양하게 이용하는 식이다. 또 한 가지 식재료로 국, 찌개, 찜, 조림 등 수많은 조리법을 활용할 수 있으며, 천연 양념과 고명으로 맛을 더한다. 즉, 전체적인 흐름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식과 매우 흡사하다.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한식 세계화
스님은 요즘 한식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다고 말했다. “쿡방, 먹방 좋아요. 외식하는 것보다 집에서 먹는 게 낫잖아요. 요즘 백선생이 집밥을 선도하더라고요. 초등학교를 진학한 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듯 모든 건 과정이 필요한 거죠. 남자든 여자든 백선생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바로 그 자체가 훌륭한 거예요. 문제는 음식을 얼마만큼 질적으로 다가가느냐죠.” 스님 생각에 그 정점은 사찰 음식이다. 스님은 사찰 음식을 일컬어 ‘음식의 미래’라 표현했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사찰 음식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사람들이 사찰 음식을 받아들일 마음 자세가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관스님은 2015 스페인 마드리드 퓨전에 참가해 채소 발효 음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때의 기억을 회상하며 그녀는 소녀처럼 들뜬 표정이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었어요. 음식이 떨어져도 가지를 않더라고요. 그때 산초 열매 주먹밥을 만들었는데, 고추장 비빔과 간장비빔 중에 선택할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고추장비빔을 더 좋아하더라고요. 너무 행복했어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스님은 ‘간장, 된장, 고추장’과 같은 한국 양념류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간장, 된장, 고추장만 넣으면 어디에서나 한식을 만들 수 있어요.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재료가 있잖아요. 그 식재료에 양념만 넣으면 되죠. 채소뿐 아니라 육류, 어패류 모두 적용할 수 있어요.”
스님은 한국의 장류로 우리 음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엇이든 내가 주고 싶어서 주면 안 돼요. 누가 나에게 원할 때 주어야죠.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그 식재료가 있을 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식재료는 철을 따라 먹어요. 뭔가를 사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집에 있으니까 하는거죠. 이건 내 (인생의) 지론이기도해요.” 스님은 오늘도 그렇게 물 따라 흐르듯, 제철 향이 물씬 나는 음식상을 낸다.

우관스님은 이천 감은사 주지.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 원장이다. 대한 불교 조계종 사찰 음식 전문 교육관 향적세계와 용문사 자연요리연구 소에서 강의를 하고있다. 저서로 <우관스님의 손맛 깃든 사찰 음식>이 있다.
박종숙 – 한식은 손맛으로 계승된다.

한식의 문화를 뷔페로 소개하다
한식 뷔페 ‘올반’의 세련된 인테리어와 은은한 조명 아래 정갈한 종가 잔치 음식이 차려졌다. 그곳에서 만난 요리연구가 박종숙 선생은 곱게 한복을 입고 버선발로 뛰어나오듯 다가와 어서 밥을 들라며 등을 떠밀었다. 아삭한 낙지탕탕 무샐러드, 진한 시골콩탕, 경상도식 날콩가루 부추찜, 궁중잡채까지, 지역 음식과 제철 음식이 금세 한 접시에 담겼다. 모두 박종숙 선생만의 레시피와 노하우가 담긴 음식이다.
최근 집밥과 한식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에 대기업까지 뛰어든 한식 뷔페가 대거 론칭되는 가운데, 박종숙 선생은 신세계푸드의 올반을 컨설팅했다. “한식의 정체성과 대기업이 추구하는 한식 콘셉트의 방향성을 같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종가의 전통과 문화로서 종가 잔치 음식을 차리는 집밥을 콘셉트로 삼았습니다. 제철 재료와 지역 음식을 가지고 저의 한식 레시피를 계량화해 손맛으로 만든 것이죠.” 한식의 범주가 넓어지는 가운데, 한식 뷔페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에 선보이게 된 데는 그들의 탄탄한 R&D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식으로 표현되는 저변이 넓어진 거죠. 올반뿐 아니라 계절밥상, 풀잎채 그리고 올 하반기 롯데와 현대의 한식 뷔페 출점을 볼 때 단순히 뷔페 시장만 바라보지 않고 향후 건강과 한식의 맛을 콘셉트로 하는 한식, 집밥 브랜드 완성을 목표로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어떤 기업은 한식과 전통장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한식의 문화적인 배경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다고 한다. “전통장과 한식이 주는 문화적인 깊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제조법으로 접근하면 우리 음식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박종숙 선생이 담담하게 풀어낸 한식의 문화는 옛 기억이다. 슴슴한 이북 김치, 소의 양과 곱창을 넉넉히 담아낸 서울 경기식 육개장, 밑간을 위해 소고기를 썰어 넣은 생태찌개….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도는 평안도와 경북의 섬세한 한식을 선생은 할머니의 밥상에서 접했다. “외가였던 경기 종갓집의 잔치 음식을 자주 접했는데, 네 살 때 맛본 송화 다식과 흑임자 다식을 잊을 수 없어요. 푸짐한 담음새보다 먹을 만큼 차려서 낭비하지 않기를 바라셨던 할아버지의 철학과 풍부한 재료로 단정하게 외상을 내던 할머니의 부엌을 기억해요.”
정갈하고 내실있는 음식을 먹은 경험이 자연스레 요리 연구가의 길을 걷게 했다. 요리를 가르치기 시작할 무렵에는 가정식이 유행이었는데, 학생들이 모든 요리를 통틀어 한식이 가장 어렵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식은 손맛으로 계승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장 맛있는 김치와 전통장 등 계량화하기 어렵다고 여기던 우리 음식을 계량했어요. 또 가지를 말려 만든 쫄깃한 식감의 가지밥처럼 식재료의 성질에 따라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지요.” 이런 노하우가 집밥으로, 한 상으로, 한식 뷔페로 오롯이 소개되고 있다. 문득 선생이 먹는 집밥이 궁금해졌다. “슴슴한 경기 김치를 기본으로 여름엔 오이지, 겨울에는 동치미무김치를 즐겨 먹어요. 잡곡밥에 장을 적당히 사용한 나물 숙채를 먹지요.” 여기에 가족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다. 함께 먹어야 더 맛있는 한상이다.
한식의 정체성은 밥상에서 온다
일상에서 항상 접할 수 있는 편안함이야말로 한식이 주는 매력이다. “남들은 어렵다는 섬세한 한식 조리법이 마음에 들어요. 나만의 새로운 조리법을 만들 땐 희열도 느끼죠.(웃음)” 그런 매력 때문에 전통 음식의 발자취도 찾게 됐다. “수원 갈비는 소금으로 간을 하는데, 아마 간장이 귀한 시절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10년 겹간장으로 수원갈비 레시피를 다시 만들었어요.” 한국인은 결코 소금으로 만족할 수 없는 섬세한 입맛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식의 맛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밥상 문화에서 한식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의 밥뚜껑을 열어 맺힌 물방울을 모아 마시는 행위는 밥상머리에서 급히 달려들지 않는 여유를 주고, 늘 밥상 가운데 놓였던 간장 종지는 우리네 밥상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수저를 국그릇에 한 번 담갔다가 밥을 뜨고, 빈 그릇에 숭늉을 부어 마시는 행위는 설거지하는 이의 수고를 덜어주는 배려라고 할 수 있어요.” 한식 밥상은 여유와 배려, 문화 그리고 건강을 지켜주는 구심점이다. 그래서 한 끼도 소홀함 없이 맛있게 먹되, 바쁜 시대에 너무 번거로운 반상보다는 한 그릇에 다양한 영양소를 담는 음식을 권하고 싶단다. “조선시대 한식만이 진정한 한식이라고 할 수 없듯 한식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어요. 편하게 만드는 한식 조리 제품과 시판되는 장류도 많아요. 하지만 저는 저만의 한식을 생각합니다.”
박종숙 대표는 전통 장을 담가 자신이 만드는 음식의 정체성을 담고, 디테일한 자신만의 조리법, 그리고 젓갈과 육수, 매실청 등의 양념을 무게로 비율화하며 찬찬히 계량화를 해나가고 있다. “음식과 관련된 기업과 전통 장류를 연구,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를 통해 한식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리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젊은 셰프들이 자신의 음식에 전통 장을 접목시키도록 그들과 교류하고 싶어요. 그리고 맛없는데 건강에 좋으니 무조건 먹으라는 것처럼 큰 잘못도 없죠. 맛있는 한식을 무엇보다 반길 병원 환자식에도 건강 밥상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녀의 프로젝트 덕분에 맛있는 한식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다양하게 전파되길 바란다.

박종숙은 경기음식연구원, 박종숙 쿠킹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요리연구가다. 한식의 계량화와 연구를 통해 한식을 전수하고 기업 컨설팅을 한다. 샘표, 동원김치 등에 이어 현재 신세계푸드 올반과의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조희경 – 한식은 지금 혁명 중이다.

당찬 한식 경영가
인터뷰 전 검색창에 ‘조희경’이라는 키워드를 넣었다. 광주요 그룹을 필두로 무수히 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조태권 회장의 둘째 딸, 16여 년을 미국·일본·이탈리아 등지에서 유학, 토마스 켈러의 레스토랑 ‘퍼세’에서 인턴 생활, 귀국 후 한식 레스토랑 ‘비채나’와 ‘가온’ 오픈, 젊은 나이에 광주요 기획이사로 승진…. 감각적이고 당찬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렇게 묘한 기대감을 품고 가온소사이어티의 조희경 대표를 만났다. 역시 예상대로 그녀는 정말 그런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한식을 대표하는 회사를 경영하셨고, 재일동포인 어머니는 미식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셨죠. 어릴 적 부터 집에 손님들이 자주 오셨어요. 그릇을 나르고 설거지도 하며 자연스레 한식을 배웠죠. 김장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주워 먹고, 불고기를 육회처럼 먹는 성격 급한 애가 저였기 때문에…(웃음). 주방은 저에게 놀이터 같은 곳이었죠.”
미국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녀는 회사를 다니며 요리 학교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 뒤 회계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미국으로 가 토마스 켈러가 운영하는 퍼세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저는 사랑받으려고 노력하는 게 있어요. 아마도 둘째의 기질이겠죠. 레스토랑에 가면 상대방이 먹는 것을 자세히 살펴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떤 음식을 시키는지 관심 있게 보죠. 상대방이 그 음식을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제가 사랑받는 것처럼 느껴져요.” 이렇듯 음식에 열정적인 그녀가 가온소사이어티의 대표이사직을 맡은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한식 레스토랑 비채나를, 작년 말에는 호림아트센터에 가온을 오픈했다. 비채나가 ‘뭣 모르고 낳아 키워낸 첫아이’였다면, 가온은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준비했다. 요리연구가, 외식 사업 경영가, 손님을 많이 치르는 대기업 사모님들까지 한식에 애착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무조건 경청했다. “새로운 것이지만 옛것을 해야잖아요. 확신 없고 두려운 만큼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준비했죠.” 광주요 그룹에 입사한 지 6년 차. 그녀는 이제야 가업에 발을 담근 것 같다며, 경영인보다는 매니저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고 헤아리고자 한다고 했다.
재미없는 한식
그녀에게 한식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식이 뭐지? 한식의 방향은 어떻게 흘러가야 하지? 아아…. 제 나이에 너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이탈리아 선술집을 하면 다른 질문을 받을 텐데(웃음).” 하지만 분명 고집스러운 소신은 있다. 그녀는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통은 지키되 변화는 있어야 해요. 변화에서 진화가 있고, 개발과 발달이 되어 가는 것이 중요하죠. 한식은 아직 아이덴티티가 없어요. 부대찌개집, 고깃집 등 각자 생각하는 한식이 달라요.” 그녀는 한식의 범위가 좁은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식은 고급 식당과 일반 식당의 두 카테고리로만 구분된 다는 것. 이 둘의 중간 단계가 다양하지 않아 지루하다고 했다. “세련된 레스토랑은 많지만, 맛있는 레스토랑은 드물어요. 반대로 음식은 맛있는데 인테리어는 엉망인 곳도 많고요. 왜 ‘진짜’ 맛있는 집은 위생 상태가 나쁜 곳이어야 하죠? 인테리어가 좋아지면 ‘그건 한식이 아니야, 그 식당은 이제 매력 없어’라고 말하잖아요. 고급 한식당에 대한 것도 ‘이런 식이어야 한다’는 명확한 개념이 있고요. 그게 너무 재미가 없어요. 레스토랑은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한식에 대한 개념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식을 말한다. 조 대표는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 “한식은 지금 혁명 중인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사상이 혼합되고 분리되어가는…. 새로운 것을 갈망하지만, 그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리며 전통을 고수하려 하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이 시기가 지나면 곧 발전도 있겠죠.” 그녀는 베누의 코리 리 셰프를 자신의 멘토라고 말했다. 동양인으로서 프렌치 요리를 하며 미국 사회에서 미슐랭 스타를 3개나 따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코리 리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하고 싶어? 해보자. 어떻게 하면 잘할까? 접근법이 아주 단순 명쾌하죠. 저의 사업 모토도 그와 비슷해요. 몰입하고, 집중하고, 끝까지 하는 것. 그러면 결국에는 뭔가 만들어지겠죠. 그 과정에서 또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고요.”
조희경 대표의 목표는 ‘맛있는’ 한식 레스토랑을 만드는 것이다. 목표를 정했으니 그 과정은 단순 명쾌할 터. 그래서 그녀가 풀어내는 한식은 어떤 스타일일지 더욱 기대가 된다. 도착점에선 혼돈 속의 한식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 않을까.

조희경은 광주요 그룹 외식사업부인 가온소사이어티의 대표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16여 년간 유학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한식 레스토랑 비채나와 가온을 오픈했다. 젊은 감각과 새로운 발상으로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