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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라연 @이용재

2015년 9월 22일 — 0

2015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38위에 선정된 신라호텔의 한식당 라연. 라연에서 경험한 낮과 밤, 두 번의 여정에 대해 전한다.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이민진
©이민진(일러스트)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럼 라연의 점심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마지막의 식사와 디저트가 정말 좋았다. 조금의 주저 없는 ‘해피 엔딩’. 일행은 냉면을 놓고 ‘평양냉면의 미래’라는 의견을 밝혔고, 나는 100% 동의했다. 맑고 생기 넘치는 국물—소 양지와 닭 위주—을 타고 가늘고도 섬세한 메밀 위주 면이 넘실거린다. 삶은 달걀의 흰자는 하늘하늘하고 또 맨들맨들하니 면의 사뿐한 까실함과 대조를 이룬다. 라연의 개업 직후, 나는 이 냉면을 먹고 한참 생각했다.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이날은 시야가 너무나도 뚜렷했다. 지난달 취재 탓일까? 평양냉면의 가장 큰 단점인 들척지근함 및 잡맛의 터럭이 국물에 단 한 올도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건 단순한 맛의 표현이 아닌, 습관의 억제다. 뇌에 문신처럼 박혀지지 않는 맛내기의 습관 말이다.

디저트는 냉면 국물의 맑음과 생기를 그대로 이어받아서는 한 자락 일단 펼쳤다가 다시 깔끔하게 접는다. 소르베와 젤리 두 질감과 온도로 수박이 싱그러움과 달콤함을 풀어놓으면 작은 토마토와 딸기, 꽈리, 망고 등이 각기 다른 표정의 신맛과 상큼함, 질감으로 맞장구치며 정리하는 구성이다. 디저트의 어원인 ‘Desservir’, 즉 ‘식탁을 치우다’에 딱 들어맞는 마무리. 이를 비교적 간단하게, 효율적으로 이끌어낸 점도 훌륭했다. 불필요하게 복잡하지 않고도 보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는 말이다. 다양한 생과일이 열쇠였다.

자, 그렇다면 ‘행복한 한 끼였습니다, 짝짝짝~’ 하고 식탁에서 일어날 차례다. 잠깐, 그전에 굴곡 많은 여정(Bumpy Ride)을 살펴보자. 진흙탕 같은 한국 맛의 지형 위로, 결말과 나머지 여정 사이의 이질감 또는 분열이 깊은 바큇자국을 남겼다. 차(Vehicle)가 나빴나? 전혀 아니다. 요리에서 형식을 완성하고 전체의 맛을 전달해주는 요소를 ‘Vehicle’이라 일컫는다. 카나페의 크래커, 구절판의 밀전병 같은 역할이다. 주연인 재료를 물리적, 미각적으로 한데 아울러준다. 라연의 여정, 즉 코스에서는 조리 기술이 차의 역할을 맡는다. 완벽에 가깝다. 기술 탓에 음식의 완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원래 좋고 유지 관리도 잘한다. 덕분에 매끈하게 굴러간다. 사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완벽한 기술의 예로 두 가지를 든다. 첫 번째는 더 이상 멀끔할 수 없게 속껍질 벗긴 호두다. 나도 안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호두는 인간의 뇌만큼 주름졌다. 이토록 흠집 없이 손질해낸 걸 어디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허다한 디테일의 부재 속에서 기준을 잡아주는 역할로 충분하다. 씁쓸함도 함께 벗겨내, 희디흰 호두는 몇몇 요리에서 의미 있는 조연이다. 특히 아뮤즈부슈인 호두 냉탕에서 빛나는 존재. 땅콩, 잣 등과 함께 매끈한 자개 숟가락 위에서 고소함의 결을 펼치는 한편, 고명으로도 가세한다. 신선로에도 등장하는데 이 경우엔 국물 탓에 설컹거려 덜 유쾌하다.

두 번째는 줄리엔(Jullienne)이다. 굳이 옮기자면 ‘가늘게 채 썰기’, 치수도 문법화되어 있다. 가로 세로 각 3mm에 길이는 3∼5cm다. 조금 과장하자면 라연의 줄리엔은 초월적이다. 거의 모든 재료가 칼의 손길로 가늘고 곱게 거듭난다. 구절판 같은 요리에서 빛나지 않을 수 없다. 소고기를 필두로 느타리, 오이, 단호박, 새송이, 고구마 등이 각자의 맛을 품고 새로운 질감을 선보인다. 각자도 훌륭하지만, 밀전병에 싸면 어우러짐을 규정한다. 기술의 수준을 감안한다면 밀전병이 좀 더 얇고 탄력을 지닐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울 뿐. 밀가루 때문은 아닌가 추측한다. 국산은 글루텐 함유량이나 입도 등, 물성이나 품질이 썩 좋지 않다. 기술에 실패의 여지가 없다면 왜 여정은 굴곡투성이인가. 단맛 때문이다. 그렇다, 요즘 이래저래 말 많은 단맛이다. 입장을 간략히 정리해보자. 단맛이라 무조건 나쁘다고 낙인찍을 수 없다. 그런 포지션을 취하기는 너무나 쉬운 일, 중요한 건 맥락이다. 백종원의 단맛이 공공의 적 수준으로 질타를 받는데, 가격 등을 감안해 즉각적인 만족이 필요한 끼니 음식이라면 개입해도 좋다고 본다. 한마디로 달아도 괜찮은 음식, 그렇지 않은 음식이 있다는 말이다. 라연 같은 파인다이닝, 그것도 코스 요리라면 당연히 후자다. 단맛이 다음 요리의 미각적 기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물론(달리 말해 물린다), 뒤로 갈수록 쌓인다. 그래서 달갑지 않은 단맛이 라연 음식의 거의 전체를 장악한다. 조짐은 이미 식사 전부터 살짝 불길하다. 주전부리로 식탁에 놓인 말린 대추와 고구마 웨이퍼 때문이다. 초월적 줄리엔으로 썰어 조청을 발라 말렸다는 대추는 단맛은 물론, 특유의 향도 강하다. 대추는 본디 그런 재료다. 식전 음식으로는 입맛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굳이 비유하자면 ‘뻥튀기’와 비슷하지만 사뿐함이 몇 갑절 돋보이는 고구마 웨이퍼도 빵이나 밥처럼 코스의 동반자가 될 맛은 아니다. 좋지만 중립적 탄수화물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미 부담을 지고 시작하는 코스는 갈수록 단맛을 첩첩이 떠안긴다. 진짜 문제는 오직 단맛만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라연의 음식은 섬세하고 결이 곱다. 두드러지는 단맛 자체도 어색하지만, 그에 비해 소금간이 너무 떨어져 코스 전체 맛의 불균형이 심화된다. 민어전이나 등심구이처럼 양념장을 쓰지 않는 요리는 재료의 맛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싱겁다. 간장을 찍어 될 일이 아니다. 한편 장류를 조금이라도 쓰는 요리는 압도적으로 단데 매운맛만 거든다. 된장양념이 깔린 전복광어물회가 그렇다. 여름 음식 미만두는 질감(아삭함)과 짠맛의 악센트를 주려는 무장아찌가, 의도가 무색하도록 달다. 앞에서 칭송한 냉면도 고명인 단 무김치가 옥에 티였다. 고추장을 발라 잘게 깍둑썰기(Brunoise)한 당절임 생강을 표면에 붙여 구운 장어는 달고 매운 데다가 굽다 말아 물컹거려 완벽한 실패였다. 바닥에 깔린 마늘종은, 그대로 부드럽게 볶기만 해도 맛있을 재료를 썰어 초월적 줄리엔이 유일하게 부정적인 경우였다.

한편 저녁의 ‘신라’ 코스에서는 단맛이 쌓이다 못해 막판에는 ‘슈거 러시’가 찾아온다. 일단 주요리인 떡갈비와 곁들여진 열무된장절임—역시 소금간은 전혀 안 맞는다—의 단맛과 매운맛이 충돌한다. 생대추의 맛과 질감이 썩 유쾌하지 않은 닭온반(선택 메뉴) 덕분에 숨을 고르지만, 디저트에서 완전히 폭발한다. 계절감 없는 홍시푸딩도, 짝을 맞춘 디저트 와인도 너무 달다. 이어 ‘차’로 수정과가 등장해 이미 끝난 승부에 어지러운 마침표를 찍는다. 단지 달아서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달지 않은 음식의 맛과 호텔이라는 조직을 감안할 때, 줄줄 흐르는 단맛의 결정권자가 셰프가 아닌 것 같아 그게 걸릴 뿐이다. 맛은 셰프의 권한이어야 한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음은 와인. 짝짓기를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안일하다. 음식과 와인이 각각 좋다고 해서 둘을 짝지었을 때도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사이를 조정하는 것이 소믈리에의 역할인데,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 가장 느슨하게 얽어놓기만 했다. 한편 서비스에선 자질구레한 것들에 무심하다. 예약 확인 전화를 걸지 않는다거나, 30석 넘는 공간에서 혼자 먹는데 지는 해가 차양으로 가리고도 정수리에 내리쬐는 자리에 굳이 앉힌다. 주문 시 계절 코스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향이 대체로 없는 요리에 서버들의 화장품 냄새가 미칠 영향도 고민해볼 문제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홈페이지(www.bluexmas.com)에 음식 관련 글을 올리는 한편 <철학이 있는 식탁> <뉴욕의 맛 모모푸쿠> 등의 책을 번역했다. 올해 출간 목표로 <외식의 품격>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