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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포아키, 배재훈 셰프

2015년 9월 21일 — 0

신사동과 청담동 일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식 레스토랑 갓포아키 배재훈 셰프를 만났다.

edit 문은정 — photograph 심윤석, 정지원

©심윤석, 정지원
©심윤석, 정지원
셰프 배재훈

일식집에서의 첫 경험을 기억한다. 비릿한 생선과 새콤한 초 냄새가 뒤 엉키고, 조리사는 바쁜 손놀림으로 초밥을 쥐었다. 냉동 해산물을 올린, 샤리의 간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초밥이었지만 단번에 반하고 말았다. ‘아, 나도 만들어보고 싶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온 누나가 데려간 초밥집은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때마침 지인을 통해 서울 강남 일식집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배재훈 셰프는 무작정 청주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첫 근무를 시작한 일식집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하루 14시간 일하고 한 달에 두 번 쉬었죠. 숙소는 가게 위 컨테이너였는데,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웠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힘들지 않았다. 2년 동안 설거지만 했는데도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일이 끝난 뒤 샤워할 때의 개운함, 퇴근해서 마시는 맥주의 시원함도 그때 알았다. 그러다 운 좋게 호텔을 소개받아 이력서를 넣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합격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습이나 인턴을 하다 직원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걸 보면 꽤 운이 좋았다. “실습을 마치고 2년 뒤에야 겨우 계약직이 되는데, 저는 한 번에 정직원으로 들어갔으니까요.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노조에 신고한다고…(웃음).” 학벌은 없었지만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1등이었다며, 그는 자신감있는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하지만 입사 후의 운은 그리 좋지 않았다. 레스토랑이 아닌 뷔페 파트로 빠진 것이다. 그가 접할 수 있는 것은 초밥, 회, 롤이 전부였다. 열등감과 배움에 대한 갈증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던 중 다른 호텔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그때 만난 이가 바로 그의 멘토가 된 최익석 셰프였다. 일본에서 10년간 요리를 한 해외파 셰프로, 현지에서 배운 기술을 그에게 전수해주었다. 평소 혼자 공부하면서 터득했던 모호한 지식이 최 셰프를 통해 다듬어졌다. 그는 최익석 셰프를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셰프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그를 통해 배웠다. 그는 아직도 여전히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요리는 퍼즐 같아요. 인터넷에서 배우고, 책을 보며 배우고, 손님에게 들어 배우고, 음식을 먹어보며 배우기도 하죠. 그렇게 해서 얻는 수많은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질 때 요리라는 그림이 나오는 것 같아요. 작은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죠.”

심플한 것이 최고다

갓포아키는 말 그대로 갓포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 갓포는 ‘자르고 삶고 조리한다’는 뜻. 격식을 차리는 가이세키보다는 가볍고, 이자카야 등의 선술집보다는 수준 높은 단품 요리를 낸다. 배재훈 셰프가 갓포 요리를 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갓포아키를 오픈하기 전에 어떤 콘셉트로 할까 한참 고민했어요. 그런데 제 요리 수준이 그렇더라고요. 가이세키를 할 정도의 깊이는 없지만, 이자카야보다는 수준 있었거든요. 요리스럽고 수준 높은 단품 요리를 내자. 그래서 콘셉트를 갓포로 정했죠.” 청담동과 신사동은 외식의 메카다. 어린 나이에 업장을 오픈하고, 냉정한 미식가들이 많은 두 상권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일까. “기본을 ‘튼다’고 하죠.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온 정통 일식에 살짝 재미를 주는 거죠. 그렇다고 퓨전은 아니에요. 저의 아이디어와 색만 넣은 거죠.” 그가 좋아하는 말은 ‘심플한 것이 최고’와 ‘베스트 쿠킹’이다. 재료를 볼 줄 아는 경험과 그 재료를 이상적으로 조리하는 것, 그 두 가지에 중점을 두고 요리를 한다. “레스토랑은 일단 살아남아야 하잖아요. 그래야 손님들에게 더 많은 요리를 선보일 수 있죠. 대중적인 이미지를 띤 일식 메뉴를 기본으로 배치하고 제철 재료를 활용한 아이디어 메뉴를 구성했어요.” 갓포 요리의 핵심은 계절감을 잘 살리고, 그 레스토랑의 색을 적절히 버무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갓포아키는 고정 메뉴에 계절마다 바뀌는 추천 요리를 더했다. “요리를 자주 바꾸니 후배들이 힘들어 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 업장의 수준을 이어가려면,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서라도 메뉴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일은 융통성 있게 해야 하지만 맛이 있다면 무조건 해야 해요. 손이 많이 가도 그렇게 만들어야죠.”

일식은 침체기, 그러나

갓포아키를 오픈한 뒤 호텔에 근무하는 친구가 찾아왔다. 양식을 하는, 소위 잘나가는 친구였다. 그가 배 셰프에게 안타까운 듯 말을 건넸다. “일주일에 한 번은 쉬냐? 다시 호텔로 돌아와. 호텔은 주 5일 근무에 연차도 있잖아.” 하지만 배 셰프의 생각은 달랐다. 호텔에서 하고 싶지 않은 요리를 5일간 한 뒤 이틀 행복한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6일간 즐겁게 하고 하루를 쉰다면 일주일 내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순간 새로운 포부가 생겼다. “호텔에 근무하며 흐름을 바꾸려면 20~30년이 걸려요. 하지만 함께 일하는 후배들을 좋은 요리사로 만들면, 그들이 다른 업장으로 가서 새로운 후배들에게 알려주겠죠. 나중에는 일식과 외식 업계의 큰 틀을 바꿔 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좋게, 크게 보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서른네 살. 앞으로 족히 몇십년은 더 일할 거다.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이룬 행보가 일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현재 일식은 침체기를 겪고 있다. 수많은 스타 셰프가 방송에 나오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일식 스타 셰프는 그리 많지 않다. “미디어와 매체에서 일식을 다뤄줘야 어린 친구들이 꿈을 품고 발을 담그잖아요.” 그는 직원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화려한 기술을 뽐낼 수 있는 여타 분야의 레스토랑과 달리, 일식은 인내심을 갖고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이 현재의 일식을 어둡게 만든 것일까.

셰프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초등학생이 쥐어도 초밥, 할머니가 쥐어도 초밥, 장인이 쥐어도 초밥’이라는 말의 뜻이 뭔지 아세요?”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가 웃으며 답했다. “초등학생도, 할머니도, 누구나 초밥은 쥘 수 있잖아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똑같은 초밥이라고는 할 수 없죠. 막 살아도 인생, 열심히 살아도 인생이죠.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차이가 있다는, 뭐 그런 뜻이에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차이가 인생을 결정짓는다. 그가 쥐는 초밥에는 그런 신념이 담겼다.


갓포아키의 단품 매뉴7
©심윤석, 정지원
©심윤석, 정지원

아와비엔초비챠항
안초비로 감칠맛을 낸 전복 볶음밥. 전복의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다.

아지하사미아게
양념하여 다진 전갱이를 연근, 가지에 감싸 튀겼다. 전갱이는 잘게 다질수록 맛이 깊어진다.

마다이사쿠사쿠
제주산 옥돔구이. 비늘을 바삭하게 구워 씹을 때 아삭- 하는 소리가 난다.

©심윤석, 정지원
(위에서부터) 온센다마고, 산마우니초회, 아보카도무스사라다 ©심윤석, 정지원

온센다마고
온천달걀과 순채, 해초, 산마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 만들었다. 우니와 이쿠라를 넣어 먹는다

산마우니초회
산마와 우니를 상큼한 젤리소스와 곁들인 요리.

아보카도무스사라다
새우와 가리비, 참치에 여름 채소를 더했다. 아보카도 무스와 함께 먹는 샐러드. 아보카도의 부드러운 텍스처에 해산물의 싱싱함이 어우러졌다.

모리아와세 ©심윤석, 정지원
모리아와세 ©심윤석, 정지원

모리아와세
쉽게 말하면 모둠회를 뜻한다. 일본의 사시미는 크게 흰살 생선, 등푸른 생선, 붉은살 생선, 조개류로 구분한다. 이름은 회를 담는 개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13종의 회를 내기 때문에 모리아와세라고 부른다. 갓포아키에서 반드시 맛보아야 할 메뉴다.

갓포아키 INFO
갓포 요리를 선보이는 일식 레스토랑. 갓포는 썰고 삶아 조리한다는 의미를 지닌 일식의 한 형태다. 가이세키보다는 무겁지 않고, 이자카야보다는 격식 있는 분위기에서 수준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다.

> 제철모둠사시미(2피스씩 13종) 5만8000원, 아보카도무스사라다 1만8000원
>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62길 12 마드레스(2호점) pin
> 02-540-8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