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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광주에서의 2박 3일 PART1

2015년 9월 16일 — 0

미식의 도시 전라남도 광주에서 먹고 먹고 또 먹었다. 2박 3일간 경험한 전라도 음식에 대한 기록.

edit 문은정 — photograph 김재욱

황혜성 선생에게 한식을 전수한 최인순 대표의 명선헌. 떡갈비, 보리밥, 오리탕, 김치와 함께 광주의 오미(五味)로 불리는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김재욱
황혜성 선생에게 한식을 전수한 최인순 대표의 명선헌. 떡갈비, 보리밥, 오리탕, 김치와 함께 광주의 오미(五味)로 불리는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김재욱
1st LUNCH

육전, 보리밥, 한정식, 떡갈비, 홍어, 닭회, 국밥, 오리 탕…. 광주의 음식을 검색하니 수많은 키워드가 쏟아진다. 전라도는 ‘뭐, 맛있는 것 없나?’보다도 ‘오늘은 또 뭘 맛보지?’를 고민해야 하는 곳이다. 용산역에서 KTX로 고작 1시간 40분. 미드 두 편을 채 다 보기도 전에 미식의 도시에 도착했다. 첫 끼니는 당연히 한정식으로 정했다. 전라도는 ‘상다리가 부러지게’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 아닌가.

무등산 근처 명선헌으로 향했다. 요리연구가 황혜성 선생에게 한식을 전수하고, 유명 김치대회에서 수상한 최인순 대표가 운영하는 곳이다. 김치는 떡갈비, 보리밥, 오리탕, 한정식과 함께 광주의 오미(五味)로 불린다. 최인순 대표는 보김치 전문가로, 보김치는 70여 년 전 개성 지방에서 개발된 보쌈김치를 일컫는다. 그런데 무등산 입구 곳곳에 ‘김치대회 수상’이라는 문구를 단 식당들이 눈에 띄었다. 대회를 수상한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다. “<한식대첩> 보셨어요? 전라남도가 시즌1 우승, 시즌2 준우승, 시즌3는 넘버 3에 들어갔어요. 전남은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이상한거야.” 함께 동행한 광주 사람이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그만큼 손맛 좋은 사람이 많은 동네라는 뜻이다.

명선헌은 조선시대로 치면 영의정이 살 것 같은 느낌의 한옥이었다. 자리에 앉아 구절판, 신선로가 올라가는 전통 한정식을 주문했다. 보리굴비와 육사시미, 홍어삼합, 홍어무침, 광어회 등 수많은 메뉴가 하나씩 상에 올라왔다. 자리가 모자라 미처 상에 오르지 못한 음식이 있을 정도였다. 보리굴비의 살을 발라 밥에 올린 뒤 녹차물을 적셔 먹었다. 꾸덕한 굴비의 살과 쌉싸름한 녹 차의 맛이 입 안을 감쌌다. 진짜 홍어를 넣어 만든 홍어무침과 시원한 맛이 일품인 보김치도 맛보았다. 한참 이것저것 입에 넣었는데도 아직 맛보지 못한 음식이 남아 있었다. 그간 여러 지역으로 미식 여행을 떠났지만, 시작부터 과부하에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도저히 더이상 무언가를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렀다. 전라도는 가히 그 스케일이 달랐다. 광주 지역은 정통 한정식뿐 아니라 퓨전 한정식집도 많다. 과거 양반집을 개조해 만든 일송정(062-525-9977)과 넓으실(062- 972-8201), 행복한 임금님(062-266-0300) 등의 한정식도 맛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무등산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광주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느긋하게 그림도 구경하고, 미술관 내에 위치한 전통 찻집에서 여유를 부릴 요량이었다. 그러다 무등산 수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여름이 끝난 9월에 난다는 무등산 수박은 조선시대 임금님께 바치던 진상품이기도 했다. 크기만 해도 14~28kg에 달하며 가격은 한 마디로 ‘뜨악’ 할 만한 수준이라고. “비싼 건 70만원쯤 한다고 하더라고요.” 안내를 도와준 광주 토박이 역시 아직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귀한 맛이라고 했다. 70만원 짜리 무등산 수박의 맛을 상상하며 미술관에 도착했다. 그런데 찻집 문을 열자마자 아차 싶었다. ‘초갤러’들이 방학을 맞이한 것이다. 가야금과 찻물 흐르는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한 찻집을 예상했는데, 이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최대한 구석으로 가 몇 가지 궁금한 메뉴를 주문했다. 그런데 웬걸. 현재까지 가본 전통 찻집 중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훌륭한 맛이었다.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것은 황차와 생강, 감잎을 넣은 고뿔차. 은은한 감잎의 달콤함과 생강의 알싸함, 황차의 깊은 맛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함께 먹을 수 있는 다과류도 지나치게 달지 않고 적절한 맛이었다. 다음에 광주에 또 오면 재방문할 생각으로 강덕순 다과점 다담이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근처 대인예술시장에 들러 강아지 뺨치는 고양이도 만나고(기자 옆으로 와 눕더니 배를 보이며 애교를 떨었다), 현대카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롭게 단장한 한약방 하루에 약초도 들렀다. 현대카드 특유의 깔끔함과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한약방이었다. 패키지가 예뻐서 ‘하루 한 팩’ 오미자차를 구매했다.

시장 곳곳은 정말 볼거리로 가득했다. 작가들의 작품이 군데군데 어우러져 있었는데, 상인들의 안목이 얼마나 높은지 ‘저건 팔릴 것, 저건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대인시장은 ‘예술가는 상인이 되고 상인은 예술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는데, 정말 그런 듯 보였다. 낮시간의 시장은 비교적 한가한 편. 야시장을 여는 둘째·넷째 주 금요일, 토요일에 들르면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다. 인디밴드 공연과 다양한 이색 먹거리들이 많아 다음에는 꼭 날짜를 맞춰 방문하리라 다짐했다.

명선헌의고즈넉한풍경 ©김재욱
명선헌의 고즈넉한 풍경 ©김재욱
강덕순다과점다담에서만맛볼수있는고소해검은깨 ©김재욱
강덕순 다과점 다담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소해검은깨 ©김재욱

1st DINNER

저녁은 대광식당으로 육전을 먹으러 갔다. 모 아이돌 그룹이 한 입 맛보고는 “캬, 이거 술땡기는 맛인데”를 외쳤다던, 광주 시민들이 ‘육전은 대광’이라는 말에 한결같이 공감한다던 그 육전집 말이다. 1988년 오픈하여 올해로 33년째 운영하고 있는 대광식당은 기름기 없고 담백한 아롱사태로 육전을 부친다. 아롱사태는 한 마리에 남자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 밖에 나오지 않는 귀한 부위다. 특유의 비법으로 얇게 썬 육전은 밀가루가 아닌 찹쌀가루를 입혀 붙인다. “초창기에 VIP 손님들이 오면 옆에서 전을 부쳐줬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계속 곁에서 부쳐드리던 게 이렇게 이어졌어요.” 자리에 앉아 이모님이 구워주는 육전을 재빨리 집어 먹었다. 공간 곳곳 퍼지는 기름 냄새가 추석 명절의 복작거림을 연상시켰다. 여섯 가지 견과류와 곡물을 갈아 만들었다는 영양 소금에 1차, 직접 방앗간에서 짜온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파절이에 2차, 신선한 쌈채소에 3차로 싸 먹었다. 세 가지 모두 ‘아름다운’ 맛이었다. 특히 파절이는 가히 인생 최고의 파절이라고 하고 싶다. 파의 아삭함이 살아 있었고, 참기름의 고소함이 적절히 버무려진 그런 맛이었다. 먹다 보니 순식간에 동이나, 여러번 “리필”을 외쳤다. 정말 술이 술술 넘어갔다. 대광식당에서 나와 걸어서 5분 거리인 궁전제과에 들렀다. 전국 3대 베이커리라는 궁전제과는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추억의 빵집이다. 가장 유명하다는 공룡알빵과 나비파이, 옥수수식빵을 샀다. 바게트 속을 판 뒤 샐러드를 넣어 만든 공룡알빵은 한 개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나비파이는 어릴 적 즐겨 먹던 누네띠네 맛이 났다. 남은 빵은 호텔에서 먹으려고 가방에 넣었다.

적당히 취기도 올랐겠다, 2차로 도토리묵잡채를 먹으러 황토길에 갔다. 광주에 내려오기 전 사진을 보며 군침 흘렸던 안주 메뉴다. 도토리묵잡채는 묵을 살짝 말린 뒤 다시 한 번 삶아 건져 잡채하듯 버무려 만든다. 손맛 좋은 사장님이 24년 전 개발한 것이라고. 도토리 묵은 대전에 있는 묵마을에서 가져온다. 묵잡채는 있지만 묵사발은 없다. “묵사발은 광주랑 안맞아. 광주사람들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데, 묵사발은 슴슴하니까 입맛에 안 맞지.” 사장님의 설명이다.

지리산에서 가져온다는 솔동동주, 쑥동동주를 맛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품절이다. 하는 수 없이 동동주 한 잔에 도토리묵잡채와 도토리묵전, 그리고 ‘홍어전’을 주문했다. 홍어는 익힐수록 향이 강해진다는데, 한 입 맛보니 실감이 났다. 입천장이 까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속부터 시원해지는 맛이 있었다. 특이하게 초고추 장을 내주길래 찍어 먹어보았다. 생각보다 궁합이 좋았다.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가 근처에 있어요. 홍어는 발효 식품이라 아무리 먹어도 탈이 안 나. 항암 작용도 하고 몸에 좋지.” 홍어는 맛을 들일수록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홍어전의 시큼함과 도토리묵잡채의 식감을 번갈아 즐기다, 결국 동동주 한 양동이가 순식간에 동났다.

지리산동동주를즐길수있는황토길 ©김재욱
지리산 동동주를 즐길 수 있는 황토길 ©김재욱
대광식당의육전.갓부친따끈따끈한육전을맛볼수있다 ©김재욱
대광식당의 육전. 갓 부친 따끈따끈한 육전을 맛볼 수 있다 ©김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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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

명선헌
> 한상(4인 기준) 14만원
> 광주광역시 동구 지호로127번길 11 pin
> 062-228-2942

강덕순 다과점 다담
> 고뿔차 6000원, 복분자장 6000원 녹차빙수 7000원, 고소해검은깨 5000원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 pin
> 062-522-4100

대광식당
> 육전(1인분) 2만4000원, 산낙지전 2만4000원, 키조개전 2만4000원 매생이떡국 5000원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로7번길 5 pin
> 062-223-3598

황토길
> 도토리묵잡채 1만5000원, 도토리전 1만3000원, 홍어전 1만8000원
>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로26번길 5-1 pin
> 062-226-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