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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우리 몸에도 달콤할까? @정재훈

2015년 9월 15일 — 0

단순히 단맛을 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음식의 맛과 물성을 변화시키는 설탕의 다양한 모습을 전한다.

text 정재훈 — edit 권민지 — photograph 박재현

©박재현
©박재현

물은 마실 수 있었다. 허니버터칩도 괜찮았다. 그릭 요구르트는 몇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고, 퀴노아와 렌틸콩을 넣은 즉석밥도 좋았다. 마트에서 구입한 식재료는 매번 먼저 시식을 해보고 나서 글을 썼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눈앞에 놓인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은 틀렸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설탕을 먹는 걸 좋아한다”고 썼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성인은 설탕한 스푼을 입속에 털어 넣는 생각만으로도 얼굴을 찌푸린다. 단맛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맛인데, 순수한 단맛의 결정체인 설탕을 그대로 먹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맥락 때문이다. 본래 사람에게 음식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는 맛이란 별 의미가 없다. 소금물 실험으로 내 입맛에 딱 맞는 냉면 육수의 짠맛을 찾기는 어렵다. 적절한 짠맛은 면과 고명과 육수가 합쳐져 만들어 진 맥락 속에서 정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좋아하는 단맛의 강도 역시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모넬 화학감각연구소에서 유아를 대상으로 행한 실험은 맛의 맥락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유아 14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실험에서는 설탕물을 정기적으로 먹인 집 아이들과 설탕물을 주지 않은 집 아이들로 나누어 생후 6개월째 설탕물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다. 실험 결과 달콤한 설탕물을 여러 번 먹어본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단물을 더 좋아했고 많이 마셨다. 하나의 음식으로서 설탕물의 맛이 달다는 사실을 배운 것이다. 생후 2년째 같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후속 실험에서도 설탕물에 대한 이런 선호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두 집단의 과일 주스에 대한 선호도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과일 주스도 단맛이 나기는 했지만 아이들 모두에게 생소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는 어떤 음식이 단맛이어야 적절한가에 대한 지식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임을 보여준다.

인간에게는 친숙한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있어서 자주 먹으면 그 음식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나타나는 선호도는 그 음식에 한정된다. “어려서부터 강한 단맛에 익숙해지면 은은한 단맛을 즐길 수 없게 되고, 모든 음식을 달게 먹는 입맛으로 굳어진다”는 주장이 종종 들리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그런 식이라면 모유보다 달콤한 분유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모든 음식을 더 달게 먹을테지만 앞서 소개한 실험에서 분유를 먹는 아이들이 모유를 먹는 아이들보다 설탕물을 더 좋아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특정 음식(설탕물)에 대한 선호도는 그 음식(설탕물)을 자주 먹었을 때만 증가했다. 성인도 마찬가지로, 밥을 먹을 때 적당하다고 느끼는 단맛과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적당하다고 느끼는 단맛은 서로 다르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밥에 설탕을 뿌려 먹지는 않는다. 이렇듯 단맛의 적절함은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음식과 단맛의 조합은 문화권마다 다양하다. 달게 먹는 사람이라고 해서 설렁탕에 설탕을 넣어 먹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타이 음식점에는 양념통 한가운데 남탄(설탕)이 놓여 있다. 멕시코인들이 수 백 년 동안 쓴맛 그대로 즐겼던 초콜릿이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달콤해졌다. 중국에서 그대로 마시는 홍차에 영국인들은 우유와 설탕을 넣어 마신다. 브리야 사바랭은 또 한 번 틀렸다. 그는 “설탕이 만능 조미료이며 어떤 음식도 망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설탕이 어떤 음식과 어울리느냐의 문제는 식문화와 조리법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 나물이 달아도 되느냐 하는 문제는 홍차가 달아야 하느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문제다. 그런데 음식 자체가 생소한 것일 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기준이 마땅치 않을뿐더러 원래 방식대로 조리한 맛을 대중이 좋아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 이유로 다른 나라의 낯선 음식이 도입될 때는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맛을 새로운 음식이나 식재료에 덧씌우는 방법이 흔히 사용된다. 바로 이때 단맛이 위력을 발휘한다. 단맛은 엄마 배 속의 태아 시절부터 좋아하는 본능의 맛이고, 설탕이 없던 시절에도 젖을 빨면서 느꼈던 인류 공통의 맛이다. 단맛의 친근함이 더해지면 새로운 음식에 대한 잡식 동물 특유의 저항감은 줄어든다. 바다를 건너온 음식에 종종 뜬금없이 원래의 맥락과 관계없는 단맛이 더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피자도, 파스타도, 피클도 달다. 스테이크소스와 익힌 채소와 구운 감자도 달다. 전통적 조리 방식과 양념이 무엇이든 대한민국의 식탁에 오르면 그 음식은 달아져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존재하는 듯하다. 이런 현상이 유독 한국인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한국 음식을 외국인이 접할 때도 종종 원래보다 더 많은 당이 첨가된다. 해외에서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다는 한식당 음식을 먹어보면 순두부도 달고 된장찌개도 달다. 불고기와 갈비는 당연히 더 달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보면, 태어나서부터 쓴맛이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달달한 설탕 커피 맛에 익숙해지고 나서, 아무것도 넣지 않은 드립 커피나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우리식과 현지식을 섞은 애매한 맛에 익숙해진 뒤에야 본래대로 요리된 정통의 맛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새로운 음식을 제대로 즐기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설탕도 그렇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설탕이 생산된 해가 1953년이라고 하니 이제 고작 반세기가 조금 넘었을 뿐이다. 짧은 역사를 감안하면 설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단순히 단맛 조미료에 머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설탕은 단순하지 않다. 설탕은 음식의 맛뿐 아니라 물성을 변화시킨다. 수분을 끌어당겨 음식에 촉촉함을 유지시켜주고, 같은 원리로 세균의 수분을 빼앗아 식품의 보존 기간을 늘려주며, 단백질의 응고를 방해해서 조직을 부드럽게 만든다. 커스터드와 크림, 일본식 달걀말이에 설탕이 들어가는 이유도 부드러운 질감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설탕은 음료에 바디감을 더해주고, 통조림 과일의 맛과 색상을 강화시키며, 아이스크림에 결정이 생기는 걸 막는다. 설탕을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캐러멜화’라는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당 분자들이 서로 반응하여 수백 가지의 다양한 화합물이 만들어지면 색상은 갈색으로 변하면서 단맛은 줄고 신맛과 쓴맛이 더해져 원래의 설탕과는 전혀 다른 풍미를 띠게 된다. 설탕을 고기와 우유 같은 단백질 음식과 함께 가열하면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 더 복잡한 풍미를 낸다. ‘요리의 과학자’ 해럴드 맥기(Harold McGee)의 말처럼 “평범한 설탕조차 비범한 음식이다”. 문제는 이처럼 비범한 설탕의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데서 발생한다. 1kg의 가격이 2000원을 넘지 않는다. 마트에서 설탕과 동일한 열량을 얻으려면 생쌀로는 2배, 즉석 밥으로는 7.5배의 비용이 든다. 비용 대비 칼로리 면에서 설탕은 밀가루, 식용유와 함께 최고 수준이다. 영양 과잉이 문제가 되는 시대에 저렴한 칼로리를 제공하는 설탕에 비난의 화살이 꽂히는 건 필연적이다. 그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가정용 설탕의 판매량이 줄고, 올리고당, 꿀, 메이플 시럽 등의 대체 감미료 판매량은 늘었다. 실제 대한민국의 가정용 설탕 판매량을 총인구수로 나누어 계산해보면 매년 1인당 설탕 구입량은 2kg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초반 연간 9kg에 불과하던 1인당 설탕 소비량은 2005년 26kg을 넘어섰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수치다. 20kg짜리 쌀이면 몰라도 설탕은 매해 2kg 이상 구입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언제 그 많은 설탕을 먹고 있다는 말인가. 답은 간접 소비 때문이다. 가공식품과 바깥에서 사 먹는 음식을 통해 나도 모르게 섭취하는 설탕의 양이 내가 알고 먹는 양보다 훨씬 많은 셈이다. 가격은 평범하고 재능은 비범한 설탕은 식품 및 외식 산업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결과적으로 가정에서 직접 소비하는 설탕의 양은 줄고, 산업에서 소비하는 설탕의 양은 늘어났다. 그러니 2배 더 비싼 값을 치르고 자일로스를 넣어 체내 흡수를 줄였다는 설탕을 사다 먹어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설탕 섭취량을 줄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전체 식사량을 줄이는 것이다.

책상에 놓인 설탕 봉지들을 쳐다보고 있으니 ‘식품 회사는 담배 회사만큼 해롭다’는 일간지 칼럼이 떠오른다. 쾌락만을 목적으로 하는 담배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분을 쾌락과 함께 제공하는 음식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니 유감이다. 음식에 맛이 없었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비만을 걱정하는 일도 없었겠지만, 동시에 식음을 전폐하여 굶어 죽는 사람도 속출했을 것이다. 설탕도, 설탕을 넣은 음식도 적당히 즐기면 유익하다. 190년 전 브리야 사바랭은 “먹는 즐거움은 절도 있게 맛보면 후회할 일이 없는 유일한 쾌락”이라고 썼다. 이번에는 그의 말이 맞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