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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지방 음식의 재발견, 포항

2015년 9월 4일 — 0

포항(浦項)은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360km 떨어진 경상북도 최대의 도시다. 올 4월부터 KTX가 개통되어 서울역에서 불과 2시간 15분만에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text 김옥철 — photograph 임학현

외지인 보다는 포항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북부시장 ©임학현
외지인 보다는 포항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북부시장 ©임학현

새롭게 떠오르는 미식 여행의 도시
포항은 1970년대 초 포항제철이 건설되면서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포스코(Posco)의 용광로는 20세기 후반 중화학공업을 시작한 대한민국 경제의 상징으로, 이후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 역할을 해왔다. 20세기 대한민국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포항은 현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포항의 미래 발전 전략을 논의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포항뉴리더모임’처럼 젊은 CEO들이 모여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죽장연(竹長然) 정연태 대표는 새로운 포항을 설계하는 프로젝트들을 수립해서 추진 중이다. 포항 시민의 오랜 삶의 터전이었던 북부시장을 낙후된 재래시장에서 새로운 포항의 명소로 바꾸기 위해 40여 명의 젊은 CEO들이 모여 고민하고 토론하며 실천 방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요즈음 포항은 젊은이들에게 새롭게 떠오르는 미식 도시로 각광 받고 있다. 동해에서 잡히는 다양한 해산물들이 모이는 동해안 최대의 재래시장인 죽도시장과, 오랜 전통의 북부시장은 문어, 꽁치, 대게, 오징어, 가자미, 고래고기 등의 집산지이며 곳곳에 맛집들이 숨어있다. 더불어 영일대 해수욕장 부근의 해변가에는 카페와 커피 전문점들이 들어서며 새로운 음식과 레스토랑 문화를 선보인다.

자연과 세월로 담그는 죽장연의 장
포항시 북서쪽에 위치한 죽장면은 포항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다. 행정적으로는 포항시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는 청송에 가까워 포항 시내에서 이곳으로 가는 길은 강원도 첩첩산중의 오지 마을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청정한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에 ‘죽장연’이라는 장 담그는 회사가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콩과 고추, 깨끗한 물과 공기를 재료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자기 식구들에게 먹일 음식을 만드는 정성으로 콩을 삶고 메주를 만들어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근다. 좋은 재료와 깨끗한 자연환경, 그리고 정성으로 빚어내는 죽장연의 장류들은 달콤함과 깊은 맛으로 수도권 주부들은 물론 해외의 유명 셰프들에게까지 소리 소문 없이 알려져 있다. 뉴욕에서 한식으로 최초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획득한 단지(Danji)의 오너이자 셰프인 후니 킴은 한식의 기본이 되는 최고의 장을 찾기 위해 한국까지 와서 죽장연의 장류들을 선택했다.
“우리의 앞 세대가 도전과 용기, 뚝심으로 포항제철을 만들고 이끌어 갔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을 문화적으로 만드는 감수성을 통해 정성을 다하는 노력으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죽장연 정연태 대표의 말이다. 죽장연에 가보면 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죽장연은 한낱 장 공장이 아니라 섬세한 문화적 감수성으로 정성껏 관리되는 음식 문화의 창작 공간이다.

포항 물회
물회는 본래 서민 음식이다. 어부들이 고기잡이하던 틈틈이, 잡은 고기를 대충 썰어 고추장 넣고 물 부어 찬밥 말아 훌훌 마시듯 재빨리 끼니를 때우던 거친 음식이었다. 농촌에서 여름이면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비벼먹던 것과 같이 그 시작은 집밥이었지 사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1960년대 바닷가 마을에 외지 사람들이 드나들자 속초, 포항, 장흥, 서귀포 등지에 내륙 지방 음식점들이 비빔밥을 팔듯 바닷가 마을의 비빔밥인 물회를 파는 식당들이 생겨났다.
포항은 1970년대 초 포항제철이 세워지면서 외지인들의 왕래가 많아 지고 북부시장과 죽도시장의 풍부한 해산물로 빠르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물회 음식점들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더운 여름철 제철소에 일하러 온 외지 사람들에게 냉면은 반드시 찾는 음식이었을 것이고, 포항 물회는 냉면을 대신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었을 터. 그 결과 포항에는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물회집이 많은 대신 냉면집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포항의 여름은 물회가 냉면을 대신한다. 처음엔 간소했던 물회지만 요즘은 진화를 거듭해 전복, 해삼을 비롯한 온갖 해산물과, 심지어 금가루를 얹은 물회까지 등장하고 있다.

오대양 물회
여름철 포항의 대부분 횟집 메뉴에는 물회가 있고, 물회만 파는 전문점도 상당수 있다. 설머리 지역(두호동과 환호동)과 구룡포항, 죽도시장과 북부시장에는 오래된 물회 전문점들이 몰려 있는데 죽장연 정연태 대표는 “포항 사람들은 물회를 먹으러 북부시장으로 간다. 설머리나 구룡포는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북부시장의 ‘포항특미 물회’와 ‘새포항물회’ ‘오대양 물회’는 저마다 특색 있는 물회를 만들면서 지역민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오대양 특선물회를 1986년에 선보인 박상규(69세) 대표는 여름철 더위를 식히는 음식은 전통 방식의 포항 물회가 최고라고 한다. 포항 전통 물회의 특징은 육수를 따로 만들어 넣지 않고 자연스레 우러나게 하는 것이다. 물회에 고추장이 충분히 배어들도록 정성껏 비빈 다음 먹다가 얼음통에 빙수처럼 담겨 나오는 곱게 갈린 얼음을 넣으면 고추장과 양념, 생선에서 육수가 우러나온다. 여기에 밥이나 국수를 말아 먹으면 그야말로 환상이다.
역대 포항 시장들 모두가 단골인 이집 물회 맛의 비법은 첫째가 고추장에 있다고 강조한다. 대도시의 물회집과 다른 점이다. 박 대표의 주장에 의하면 포항은 바닷가에 있고 동해안 최대의 어시장을 가진 도시라서 좋은 해산물은 누구나 다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생선으로는 고급화, 차별화가 어려우므로, 오히려 고추장 같은 장맛이 최고여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오대양에서는 보통 음력 설전, 15일에서 때로는 한 달 정도 걸려 1년 먹을 고추장을 직접 담근다. 두 번째는 물회에 들어가는 12가지 재료(생선, 배, 마늘, 고추장, 참기름, 김, 깨소금, 오이, 쪽파, 당근, 양파, 설탕)를 최고의 제철 재료들로 아낌없이 사용한다. 마지막 세 번째가 주방을 맡고 있는 가족들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드는 것. 최고의 맛을 지키기 위해 박대표는 이틀에 한 번은 반드시 자신의 식당에서 만든 물회를 먹어본다. 30년 동안 지켜온 그의 음식 철학이다.

오대양 물회 ©임학현
오대양 물회 ©임학현

올리브 100인 클럽 / 정연태 죽장연 대표는…
미국 남일리노이 주립대학 MBA 출신으로 마케팅을 전공했다. 해외에서 쌓은 마케팅 지식으로 ‘자연과 세월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한국 최고의 명품 장류’를 만들어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이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꿈이다. 포항 사람들이 일구어낸 포스코가 그랬듯이, 이제는 세계인의 한식 재료, 케이푸드K-food 문화 사업을 만들어가는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