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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제주에서의 2박 3일 PART1

2015년 8월 20일 — 0

제주는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바다뿐 아니라 하늘 그리고 음식까지도.

edit 문은정 / photograph 박재현

1st Day –  제주시에서 스시와 디저트를 맛보다
LUNCH
제주 3대 고기국수집 중 하나인 올래국수. 줄 서는 것은 기본이다.
제주 3대 고기국수집 중 하나인 올래국수. 줄 서는 것은 기본이다. © 박재현

차를 몰고 제주의 아스팔트 위를 달렸다. 잿빛 안개에 둘러싸인 대지, 그 위를 느릿느릿 흐르며 시시각각 변화 하는 구름. 스피커에서는 이름 모를 영국 가수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순간 물기 어린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마주한 제주의 풍경에 전율하며 급히 사진기를 찾았다. ‘사진을 찍는 대신 마음에 담아. 그게 더 오래, 선명하게 기억될 때도 있더라고.’ 스쳐 지나갔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들었던 사진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때의 기억은 새로운 제주의 모습으로 남았다. 제주는 눅눅하고, 구름 많고, 변화무쌍한 날씨의, 영국 남자의 목소리가 어울리는 곳이었다. 작년 이맘때쯤의 기억이다.

덕분에 올해는 흐린 제주가 반가웠다. 소금기 가득한 제주공항에서 쏟아지는 비를 보며 ‘흠, 비가 오는 날에는 국수를 먹어야지’ 정도의 생각을 했다. 달관한 도인처럼 첫 번째 동선을 쉽게 정했다. 차로 10분 거리인 올래국수로 향했다. 정오의 올래국수는 우비 입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한 시간 반쯤 기다리셔야 합니다. 취소하지 않을 분만 주문받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해볼 테면 해봐’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모습에 오기가 생겨 이름을 적었다. 결국 국수를 먹기 위해 한 시간 반 동안 거리를 방황해야 했다.

근처에 위치한 제원분식에서 급한 대로 허기를 달랬다. 분식으로만 23년간을 영업한 곳이다. 입구의 낡은 간판이 세월을 대변하고 있었다. 쌀떡을 넣어 만든 국물떡볶이는 마늘 향이 진하게 나는 것이 입에 딱 맞았다. 매콤하면서도 칼칼한 맛이었다. 벽에는 ‘영암산 쌀, 영암 산 고춧가루, 제주산 단무지’라는 원산지 표시가 적혀 있었다. 단무지가 제주산이라고? 호기심에 열심히 단무지를 씹어댔지만, 단무지는 역시 단무지 맛이었다. 배부를까봐 떡볶이는 조금만 먹었다.

예약 시간에 맞춰 다시 올래국수로 향했다. 운 좋게도 착함과 동시에 자리가 났다. 따끈한 고기국수 한 사발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캬’ 하는 탄성이 식당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두툼한 고기는 씹는 맛이 살아 있었고, 굵직한 면은 먹을수록 든든했다. 국물은 맑은 돈코츠라멘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기국수는 제주의 오래된 향토 음식이다. 제주는 경사가 있을 때 돼지를 잡아 대접하는 풍습이 있는데, 그 돼지로 만든 메뉴 중 하나가 고기 국수다. 국수에 쓰이는 면이 도톰한 것은 밀을 주식처럼 먹었기 때문이다. 토질상 쌀농사가 힘든 제주는 밀, 보리 등이 주식이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계산을 하는데, 주인아저씨가 사뭇 다른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맛있게 드셨나요? 기다린 보람이 있으셨는지요?” 그럼요, 있고말고요. 기다리며 투덜댔던 마음이 국수 한 그릇에 녹아버렸다.

제주시 연동으로 이사한 어머니빵집.
제주시 연동으로 이사한 어머니빵집 © 박재현

국숫집에서 나와 시내로 디저트 투어를 나섰다. 제주 시내에는 유명 베이커리가 많다. 어머니빵집과 명당양과 등의 오래된 빵집 뿐 아니라 아라파파, 보엠 등 주가를 올리는 신생 베이커리도 있다. 평소 궁금했던 어머니 빵집으로 향했다. 건물주의 계약 해지로 연동으로 옮겨 오픈한지 3개월.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도 않은 신생 공간이었다. 30여 년간 제주시청 맞은편에 위치했던 어머니빵집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서울역의 시계탑 같은 곳이었을 거다. ‘어머니빵집 앞에서 보자’라고 말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눈앞을 스쳐갔다. 화가 났다가 이내 슬픈 마음이 들었다. 추억을 앗아가는 법이라니.

시식용으로 준비된 빵을 하이에나처럼 맛보았다. 8할 이상의 빵이 모두 맛있었다. 대표 메뉴인 생크림팥빵과 초코방망이를 쟁반에 올린 뒤 6~7개의 빵을 마구잡이로 골랐다. 팥빵은 즉석에서 먹어치웠다. 씹을 때마다 팥알이 톡, 톡, 소리를 내며 터졌다. 팥이나 밤 등의 부재료는 시장에서 장본 것을 직접 삶아 사용한다고. 어디선가 ‘제주는 팥이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팥빵을 먹으며 몸소 실감했다. 좋은 빵집이 언제나 그렇듯 화학첨가제나 계량제, 유화제 등은 하나도 넣지 않았다. 이 때문인지 빵은 쫄깃하면서도 담백했다. 어머니빵집이라 는 이름은 가게에 들른 스님이 ‘어머니라는 이름을 넣으면 좋다’고 지어준 것. 하지만 빵은 어머니보다는 전문가의 맛이 났다. 대한민국제과기능장이나 한국프로제빵왕인 이병선 셰프가 굽는다. 갓 구운 빵은 정오쯤 가면 맛볼 수 있다.

재료 본연의 단맛으로 맛을 내는 올래파이. 유기농 쌀조청, 천연 버터, 유기농 설탕 등을 넣어 만들며, 파이에 사용하는 밀가루는 최소화했다.
재료 본연의 단맛으로 맛을 내는 올래파이. 유기농 쌀조청, 천연 버터, 유기농 설탕 등을 넣어 만들며, 파이에 사용하는 밀가루는 최소화했다. © 박재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차로 5분 거리인 올래파이로 향했다. 영국식 식기류로 전시된 찬장과 눈부신 샹들리에, 바구니에 아무렇게나 담긴 과일과 밀가루 포대가 공간을 더욱 이국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역시나 좋은 파이 집이 그렇듯 유기농 쌀조청, 유기농 밀가루, 천연 버터, 유기농 설탕을 기본 베이스로 한다. “저희는 재료 본연의 단맛으로 맛을 내요. 설탕은 가급적 쓰지 않고요. 이 애플파이 좀 맛보세요. 사과 자체가 워낙 맛있어요. 원재료가 맛있는데 뭘 더할 필요가 있나요?” 애플파이뿐 아니라 당근케이크 역시 태어나서 맛본 것 중 가장 맛있었다. 언제 입에 들어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사르르 녹아 내렸다. 전 이명박 대통령의 조리사였던 사람이 와서 맛 보고는 감탄하고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레시피는 비밀이라는 그린주스를 곁들이니 궁합이 딱 좋았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쇼케이스 안의 모든 파이를 맛보기로 마음 먹었다. 흑임자파이, 호두파이, 레몬파이, 레몬머랭, 배파이, 라즈블루베리파이, 키시, 머드파이, 커리번…. 지켜보던 김현지 파티셰가 깔깔대며 웃었다. “중국인들이 와서 이렇게 먹어요. 중국 관광객들이오.”


DINNEr
스시호시카이의 오마카세. 한치와 성게알, 금태스시, 단새우성게알, 아까미, 참치뱃살 등으로 구성됐다. 오마카세는 담백한 맛에서 시작해 지방이 많은 것, 향이 강한 것의 순서로 먹는다.
스시호시카이의 오마카세. 한치와 성게알, 금태스시, 단새우성게알, 아까미, 참치뱃살 등으로 구성됐다. 오마카세는 담백한 맛에서 시작해 지방이 많은 것, 향이 강한 것의 순서로 먹는다. © 박재현

첫날 코스의 화룡점정은 스시다. 질 좋기로 유명한 제주 생선이지만, 그 질 좋은 생선을 제대로 다루는 사람에게 맛보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제주의 스시야는 신라호텔 내에 있는 히노데, 시내에 위치한 스시호시카이가 유명하다. 스시효 출신의 임덕현 조리장이 셰프로 있는 스시호시카이로 향했다. ‘제주의 별과 바다를 품은 곳’이라는 이름 뜻처럼 제주 생선으로 만든 특별한 스시를 맛볼 수 있었다. 자리돔과 옥돔, 은갈치, 금태, 고등어 뱃살까지. 고등어 뱃살의 경우 살아있는 상태에서도 썩어들어간다는 부위다. 선도가 좋지 않으면 절대 낼 수 없다. 셰프의 기술을 감상할 수 있는 오마카세를 맛보기로 하고 바 테이블에 앉았다. 따듯한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단호박을 넣은 달걀찜이 나왔고, 스시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초밥의 중요도는 샤리(밥)가 7할, 생선이 2할을 차지합니다.” 나머지 1할은 뭐냐 물으니 ‘조리장의 실력’이라고 겸손하게 답한다. 스시호시카이의 샤리는 온도가 따듯한 편이다. 사람 온도와 비슷해야 목넘김이 좋기 때문이라고. 기본적으로 초밥은 설탕, 식초, 소금을 넣어 만들지만, 스시호시카이의 초밥은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장기 숙성한 적초를 사용해 설탕 없이 감칠맛을 낸다. 제주 광어 살에 성게알을 만 뒤 5년간 간수를 뺀 소금을 얹은 스시를 맛보았다. 익숙한 광어의 맛으로 그간 맛본 스시와의 퀄러티를 비교할 수 있었다. 그 뒤에 이어진 금태는 가히 혀를 내두를 맛이었다.

금태는 주로 조림이나 찜으로 먹기 때문에, 스시는 아마 처음이실 거예요. 참치처럼 녹진한 맛이 일품입니다. 와사비를 많이 바른 뒤 드셔보세요. 지방이 많은 생선은 와사비를 듬뿍 발라도 맵지 않아요. 오히려 고소하죠.

금태는 당일 상태에 따라 지방이 많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 오늘은 운이 좋았다며 셰프는 또 겸손하게 웃었다. 뒤이어 여름 제철인 한치와 성게알, 금태스시, 단새우성게알, 아까미(참치 속살), 참치 뱃살, 연어알과 성게알 등이 순차적으로 나왔다. 오마카세는 담백한 맛에서 시작해 지방이 많은 것, 향이 강한 것의 순서로 먹는다. 일본의 경우 오마카세의 양이 제한되어 있지만, 임덕현 조리장은 손님이 배부를 때까지 계속 스시를 낸다. “스시를 진짜 잘드시는 분은 손으로 드십니다. 요리사의 기를 손으로 받는다는 의미에서요. 그런 분들이 오면 저도 ‘내공 있는 분이 왔구나’ 하고 감탄하죠.” 긴가민가하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가 손으로 스시를 먹고 있었다. 저런 내공을 쌓으려면 대체 얼마나 먹어야 하는 것일까.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스시호시카이의 임덕현 조리장.
스시호시카이의 임덕현 조리장 © 박재현

그대로 숙소로 들어가기엔 무언가 아쉬웠다. 잠들고 싶지 않은 제주의 여름밤이었다. 오픈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제주시의 술집으로 갔다. 맛 미(味)에 친할 친(親) 을 쓰는 미친부엌이라는 곳이었다. 메뉴판을 보니 ‘고독한 미식가 셋트’라는 메뉴가 있었다. 혼자 먹을 수 있는 맥주 한 잔과 사시미 4종, 치킨가라아게, 크림짬뽕으로 구성된 세트였다. 구성이 괜찮아 보였다. 치킨가라아게는 근래 먹어본 것 중에서 가장 잘 튀겼고, 파스타를 변형시켜 만든 크림짬뽕은 칼칼한 맛이 안주로 딱 좋았다. 셰프의 이력을 물었다. “나카무라 아카데미에서 일식을 배웠어요. 청담동에 있는 가이세키 전문점에서 일하다 대기업 외식 파트에서 근무했고요.” 제주에 내려온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공건아 셰프는 수줍은 표정으로 답했다. 어느 레스토랑을 다녀왔냐는 질문에 스시호시카이를 다녀왔다고 답하자, 그는 자신도 종종 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들르는 곳이라고 말했다. 임덕현 조리장을 일컬어 ‘훌륭하신 분’이라며 다섯 번이나 반복해 말했다. 대선배와 그의 뒤를 보며 걷는 후배의 식사를 연달아 맛보니 흥미로운 느낌이 들었다. 오늘 하루, 입맛이 지나치게 까다로워졌다. 내일이 걱정되었다.

친부엌의 고독한 미식가 셋트.
미친부엌의 고독한 미식가 셋트 © 박재현

제원분식
› 떡볶이 3000원, 김밥 1000원, 오뎅 4개 1000원
› 오전 10시~오후 5시 월요일 휴무
› 제주 제주시 신광로6길 2
› 064-747-6941

올레국수
› 고기국수 7000원
› 오전 9시 30분~오후 9시
› 명절 휴무 제주 제주시 제원길 17
› 064-742-7355

어머니빵집
› 소보로도넛 1000원, 오곡찹쌀빵 2500원
› 오전 7시~새벽 3시
› 제주 제주시 도령로 103 연동한일씨티파크
› 064-752-1281

올래파이
› 배파이 6000원, 레몬머랭 7000원 애플파이 5000원, 그린쥬스 7000원
› 오전 8시~오후 10시
› 제주 제주시 국기로2길 11
› 064-746-3305

스시호시카이
› 점심 스시 코스 A 3만8000원
› 저녁 스시 코스 7만원, 저녁 오마카세 14만원 정오~오후 3시(라스트 오더 오후 2시 30분), 오후 6~10시(라스트 오더 오후 9시)
› 제주 제주시 오남로 90
› 064-713-8838

미친부엌
› 모듬 사시미 4만원, 고노와다 1만8000원, 고독한 미식가 셋트 2만5000원
› 오후 5시~자정(라스트 오더 자정)
› 제주 제주시 중앙로3길 4
› 064-721-6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