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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평양냉면 @이용재

2015년 8월 24일 — 2

이상적인 평양냉면은 어떤 것일까. 면과 국물, 고명, 그리고 음식 바깥에 있는 것들과의 조화로움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text 이용재 / illustration 이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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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진

맑고 차가운 고기 국물과 메밀면. 두 ‘미션 임파서블’이 대접에서 만났다. 평양냉면. 한국 식문화의 별종이다. 형식 덕에 독특한 입지 또는 위상을 누린다는 말이다. 첫째, ‘집 밥 지옥’ 속에서 거의 유일한 프로의 한식이다. 아무도 ‘집 밥 같은 평양냉면’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둘째,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다. 기술의 벽에 뿌리나 족보 같은 이중 인증 장치가 존재한다. 실향민 또는 그 자손이라거나, 이미 검증된 평양냉면집의 재직 경험 등을 갖춰야 진짜라 인식한다. 셋째, 입지와 위상 덕분인지 음식 바깥에서도 최소한의 체계를 갖추었다. 접객 등 총체적 외식 경험을 이루는 나머지 요소 말이다. 대부분 적절한 유니폼 차림으로 능수능란하게 움직인다. 넷째, 모든 걸 감안하면 적절함에도 매 여름 가격 논란이 불거져 나온다. 고급 한식이라 정형화된 고깃집의 ‘음식값=재료값’ 논리가 빚는, 기대와 실제 가격 사이의 격차다.

평양냉면을 정리해보자. 출발점은 우래옥이다. 맛·취향의 호불호를 따지기 전에, 완성도가 다른 곳에 비해 한두 수 위다. 접객이며 공간 같은 외적 요소도 그렇지만, 냉면에 기울이는 집중력이 다르다. 대기 손님이 가득한 한여름 열두 시 반에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차갑다기보다 서늘한 긴장감이다. 메밀면의 까슬함도 가세한다. 지극히 냉면답다. 같은 시간대 논현동 평양냉면의 축 처진 한 대접과 비하면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일관성이 큰 미덕이지만, 그와 별개로 의문도 품는다. 첫 번째는 국물의 ‘육향’이다. 우래옥 불호로 가장 많이 꼽는 요인이다. 나에게도 고민거리다. 한 한우 숙성 전문가가 ‘육향 아닌 고기 냄새’라고 딱 잘라 말했으니 참고하자. 두 번째는 겉절이. 맵고 감칠맛도 너무 강하다. 냉면 맛을 침해하는데, 다른 업소의 반찬도 거의 대부분 그렇다는 점에서 전체의 고민거리다. 세간의 인식만큼 ‘담백’도 ‘슴슴’도 하지 않지만, 평양냉면은 그 자체로 완성된 맛을 지닌 음식이다. 육수가 깔아놓은 바탕을 냉면김치의 신맛이 견제하고, 그 위에 메밀과 고기의 각기 다른 고소함이 고개를 드는 얼개다. 굳이 결이 다른 매운맛, 감칠맛이 필요 없다. 반찬은 나쁜 습관일 수 있다. 소비자가 나서 재고하자. 서비스에서는 두 가지 사소한 점을 지적한다. 크게 보아 세심함의 결핍이니 요식업계 전체의 과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본점의 식사 선불제. 백번 양보해 원활한 회전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이해해도, 카드를 가져가 결제할 이유가 없다. 모바일 시대고 백화점의 이동식 단말기도 있다. 전담 직원이 기기를 들고 다니며 결제하면 바로 주방에 통보되는 시스템도 가능하다. 두 번째는 상 치우는 데 쓰는 핑크색 ‘다라이’다. 반찬 문화라 그릇이 많이 나오는 건 알지만, 식사 도중 뒤죽박죽인 빈 그릇 무더기를 보는 건 유쾌하지 않다. 평양냉면은 비싼 음식이다.

다음은 벽제갈비-봉피양이다. 우래옥과는 다른 결로 격을 지킨다. 까슬하지 않고 맨들맨들한 면, 맞장구치는 황지단, 놋그릇이 그렇다. 벽제갈비에서만 내오는 곁들이 편육 한 점에는 차갑게 먹는 지방의 이상형이 담겨 있다. 저온 조리처럼 한식에서는 새롭다 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해 삼겹살에 적용하는 것도 좋다. 지점의 편차는 비교적 적은 편이라고 믿고 싶은데, 인천공항점처럼 난감한 존재도 있다. 또한 벽제갈비를 벗어나면 반찬의 단맛도 훅 높아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평양냉면은 진입 장벽이 높은 가운데, 후발 주자 세 군데가 각자 다른 화두를 던진다. 첫 번째는 판교의 능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훌륭했다. 육수는 절묘하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도록 감칠맛이 정확하고, 면은 신선하다. 사실 신선하다 못해 살짝 뻣뻣했는데, 조리나 반죽의 배합보다 굵기의 영향으로 보였다. 한편 고명 가운데는 오돌오돌하게 절인 오이가 돋보였다. 질감도 맛도 아주 유쾌했는데, 강서면옥(신사점)이나 장충동 평양면옥 등의 생오이와 견줘 생각해본다. 김치 덕택에 익숙한 것처럼, 소금 절임은 불을 안 쓰지만 수분을 뽑아내 맛을 바꾸니 조리다. 따라서 생오이와 절인 오이는 다르다. 고명 한쪽이지만 더 적극적으로 맛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로 읽었다. 디테일의 결핍이 한식의 고질적 문제임을 감안한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다른 고명의 의미도 재고할 수 있다. 특히 공통 요소인 무와 배를 놓고 늘 고민한다. 여름엔 둘 다 맛이 없다. 대안은 없을까? 전통인지 습관인지 구분하고, 후자라면 추구하는 맛의 본질-개운함, 상큼함 및 단맛-에 호응하는 대안을 융통성 있게 찾아볼 수 있다. 옌볜이나 일본으로 건너간 냉면에는 수박이나 토마토가 오른다. 무와 배에 익숙하다면 거부감 느낄 수 있지만, 계절을 감안하면 더 자연스러운 해법은 아닐까. 고민해볼 만하다.

한편 이제 안정을 찾은 것으로 보이는 여의도의 정인면옥에선 가격과 면의 양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평양냉면의 평균 가격대는 1만원이다. 고기 국물의 진득함-젤라틴과 지방에 기대는-을 배제하고 글루텐 없는 메밀을 극복해 뽑는 면을 감안하면 합당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매년 논란에 휩싸인다. 일종의 대응책으로 대부분의 평양냉면집에서는 면의 양을 늘렸다. 물어보면 정확히 계량해 내는 곳-“모른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다-은 200~250g 정도다. ‘한 판=1인분’으로 통하는 이탈리아의 마르게리타 피자 도우와 같으니 성인 남성이 포만감을 느낄 양이고, 한 끼 탄수화물 섭취량의 마지노선이다. 그 위에 평가옥이(300g), 아래 정인면옥이 있다. 평균에서 1000원 빠진 9000원이지만 살짝 모자라 고기 먹은 뒤 입가심용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과 관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냥 1000원 싼 건 아니라는 말이다.

공덕동 골목길의 무삼면옥은 현존하는 평양냉면집 가운데 가장 큰 화두를 던지는 곳이다. 일단 이름 자체가 선언이다. 조미료, 색소, 설탕의 삼요소를 쓰지 않겠다는 것. 의지는 높이 사지만, 그것만으로 음식을 먹을 수는 없다. 걸맞은 실력이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먹는 입장에서 때로 맛은 지극히 결과적이다. 의도가 좋아도 맛이 없으면 헤아리기 어려워진다. 무삼면옥이 그렇다. 고명으로 얹힌 것을 보아 표고버섯 등으로 감칠맛을 낸 국물은 좋게 말하면 질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둔탁하다. 그나마 의지를 높이 사야 전자라 간신히 말할 수 있다. 다량의 표고버섯이나 다시마를 쓰는 것과, 소량의 화학조미료를 쓰는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현재 한국에서 화학조미료는 단지 존재하거나 부재한다. 왜 중간을 찾아보기 어려울까.

그 밖의 ‘노포’ 가운데는 의정부의 평양면옥이 좋았고, 자손 격인 입정동 을지면옥은 실망스러웠다. 평양냉면이라 보기 어려운 질긴 면과 대강 썰어 던진 듯한 편육이 음식 내외로 구차했다. 염리동의 을밀대에선 논현동 평양냉면처럼 긴장감 전혀 없는 한 그릇을 먹었다. 겉만 간신히 익힌 부침개, 질긴 종잇장 같은 수육까지 감안하면 ‘대 물려 가는 집’ 수준의 정서적 가치 없이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없겠다.

평양냉면 전체에게 마지막으로 두 가지의 개선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스테인리스 대접과 젓가락이다. 격이 떨어진다. 대접에서는 비린내가 풍기고 젓가락은 미끄러지며 이에 닿는 감촉도 나쁘다. 이미 사기나 놋대접을 쓰는 곳도 있다. 또한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 있다면 그 대나무로 만드는 젓가락도 기대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달걀이다. 음식과 어울리는지도 의문이지만 문제는 학대, 즉 과조리다. 흰자는 뻣뻣하고 노른자는 목이 멘다. 비린내와 노른자에 낀 녹태까지, 달걀이 입맛을 떨구는 데 두몫을 한다. 후자는 흰자의 황과 노른자의 철이 만나 생긴 황화철 탓이다. 달걀을 과조리하지 않고, 삶은 뒤 바로 찬물로 식히면 막을 수 있다. 면을 그렇게 다루는 냉면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거의 언제나 그런 달걀이 오른다. 괜찮다고 여겨 소홀했다고 본다. 그렇지 않고, 바꿀 때다. 아예 없애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