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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지방 음식의 재발견, 강릉

2015년 8월 5일 — 0

서울과 직선거리로 200km 떨어진 강릉(江陵). 강릉과 원주의 앞 글자를 따서 강원도라는 이름을 붙일 만큼 예로부터 강릉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명승지와 문화 유적들로 가득하고 동해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르는 영동 지방의 최대 도시. 휴가철마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의 하나로 꼽힌다.

text 김옥철 / photograph 임학현

국민 휴양지 강릉

강릉은 자연이 넓고 문화가 깊다. 동해 바다는 맑고 수심이 깊으며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탓에 어족 자원이 풍부하고, 병풍처럼 드리운 태백 산맥이 막아주는 탓에 겨울에도 춥지 않다. 조선시대의 역사 지리 답사기 <택리지>에 따르면 강원도에는 관동팔경 등 훌륭한 경치가 많지만 한양과 먼 탓에 훌륭한 인물이 나오기 어려웠으나 오직 강릉에서 과거에 오른 사람들이 제법 있다고 할 만큼 인문적 소양이 깊은 땅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이 남아 있는 강릉단오제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이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록된 전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축제다.

1970~80년대 여름 피서지로 각광받던 이곳은 자동차 문화가 시작 되면서 사계절 산과 바다가 제공하는 휴식과 낭만의 고장으로 사랑받아왔다. 음식 역시 풍부해서 각종 어류와 해산물, 초당 두부, 산나물 등 지역에서 산출되는 신선하고 소박한 재료가 가득한 맛의 고장이다. 10여 년 전부터 강릉 바다의 풍경은 커피와 더불어 새롭게 태어났다. 150곳이 넘는 드립 커피집들이 성업 중이며, 2009년부터 매년 가을 강릉커피축제가 열린다. 최고의 커피와 아름다운 바다 경치는 강릉을 대한민국 커피 풍경 1번지로 만들었다.

산촌(山村)의 황태뚝배기, 8000원 , 강릉시성산면구산길83, 033-641-9230
산촌(山村)의 황태뚝배기, 8000원 , 강릉시성산면구산길83, 033-641-9230 © 임학현
산촌 황태뚝배기

음식점 이름이 산촌(山村)이다. 한마디로 시골 중에서도 산골짜기에 있는 시골이라는 의미. 음식점 상호에 담긴 순박함은 이 집의 대표 메뉴인 황태뚝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산촌이나 황태뚝배기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보통명사일 뿐, 그만큼 소박하고 멋 부리지 않은 정직한 이름이다.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면서 음식에 스토리를 담는다며 이름만 화려하게 짓는 것보다 좋아 보인다.

아침 7시 서울을 출발해서 오전 10시경에 도착한 음식점은 소박하지만 깨끗하게 잘 정돈된 상태. 너무 이르지 않을까 생각하며 대표 메뉴인 황태뚝배기를 주문하자 잠시 후 뚝배기에 담긴 처음 접하는 푸짐한 음식이 나온다. 당연히 황태가 주연(主演)이려니 생각했는데 이름에서 비롯된 오산이다. 황태 살, 홍합, 명태 내장, 새우, 팽이버섯, 미나리, 콩나물, 파 등 모든 재료들이 뚝배기가 넘칠 정도로 가득 담겼다. 좋은 재료들을 엄선해서 푸짐한 양으로 정성껏 끓여내는 황태뚝배기는 강릉 일대는 물론이고 전국의 술꾼들에게 아침 해장의 끝판왕으로 알려져 있다. 해산물과 홍합 등으로 낸 육수의 진한 맛, 여러 재료들의 신선한 맛, 콩나물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나게 한다. 모름지기 음식은 백 번 듣고 열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먹어보는 것이 최고라는 말처럼 이 집 황태뚝배기는 먹어봐야 그 진가를 경험하게 된다.

산촌의 주방장 겸 사장인 김동욱(44세) 대표는 어려서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홀로 삼형제를 키워오신 반옥희(68세) 어머님으로부터 요리를 배웠단다. 8년 전부터 형(김동선, 49세)과 함께 음식점을 맡게 되면서 남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 끊임없이 여러 재료들의 조합을 통해 현재의 황태뚝배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김동욱 대표는 해산물, 채소, 양념 등 모든 재료를 직접 챙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의 신선함이라고. 그날 사용할 만큼만 준비하다 보니 저녁 시간에 더 이상 황태뚝배기를 만들지 못할 때도 많은데 수도권에서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대접하지 못할 때가 가장 미안하다고 한다.

산촌(山村)의 해물찜, 가격 3만원(중), 강릉시 교1동 1860-3, 033-655-0020
산촌(山村)의 해물찜, 가격 3만원(중), 강릉시 교1동 1860-3, 033-655-0020 © 임학현
교동산촌해물집

어머니의 손맛은 삼형제에게 모두 대물림되어 막냇동생 김동길(40세)씨도 강릉시 교동에 같은 이름의 식당인 산촌을 2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와 형에게 배운 요리임을 강조하는 동생 역시 이곳에서 주방장 겸 대표로 일하며 자신만의 요리를 개발하고 있다. 교동산촌의 다른 점은 황태뚝배기와 더불어 대표 음식으로 해물찜을 내는데, 이 해물찜의 자랑은 배에서 직접 사오는 400g정도 작은 크기의 문어 생물을 통째로 올리는 것. 다른 반찬들은 어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황태뚝배기는 어머니와 삼형제가 함께 만들어온 향토색 짙은 소박한 음식이다. 요즘의 대도시에서 유행하는 음식 트렌드에는 관심도 없이 지역에서 나는 좋은 식재료들을 푸짐하고 착한 가격에 시골의 품성으로 정성껏 만들기 때문에 이 음식은 강릉이라는 지역과 시골 품성이 담긴 진실의 음식이다. 이 음식을 좋아하는 단골들 역시 맛있고 없음보다는 진실이 전하는 맛, 마음의 미각에 감동하는 사람들이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강릉

강릉 교동에서 중학 시절까지 보내고 대학 졸업 후 런던, 파리를 거쳐 레일유럽 한국사무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강릉의 딸 신복주(44세) 소장은 유럽의 화려한 도시와 음식들을 경험한 커리어 우먼이다. 유럽 1만 5000곳의 도시를 연결하는 레일유럽 철도 티켓을 2004년부터 한국인들에게 소개하며 1년에 3900만 유로 매출을 통해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의 큰 시장으로 성장시킨 그녀의 한국사무소 운영 철학은 ‘Think Globally, Act Locally’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맞는 정서와 서비스, 마케팅을 통해야만 제대로 상품을 팔 수 있다는 생각은 필경 고향 강릉에서 자란 신 소장의 어린 시절에서 비롯했을 터다.

파리, 런던을 비롯한 유럽 도시들의 화려함과 명암을 알고 있는 그녀가 손꼽는 유럽의 좋은 도시는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비뇽이다. 파리에서 TGV 고속열차로 2시간 40분 걸리는(서울에서 승용차로 강릉까지 가는데걸리는 시간과 비슷하고, 인구 또한 아비뇽 29만명, 강릉 21만 명으로 비슷한 규모) 이 도시에는 소박함과 편안함은 물론이고, 사람들 또한 너그럽고 친절하며 여유로워, 한마디로 정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을 기반으로 맛있는 음식은 물론 록시땅 같은 지역성이 강한 아름다운 이미지의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다. 산골 소녀였던 신 소장에게는 아비뇽 주변의 강과 산, 스키장들이 강릉의 지형과 흡사하며 사람들의 인심 또한 고향과 같다고 느낀다. 강릉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의 특징을 신 소장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하다고 표현한다. 강릉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은 지역에서 나는 재료에 충실하며, 소박한 조리법으로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 신복주 소장은 최근 강릉의 커피 문화 발전에서 강릉의 밝은 미래를 본다. 커피를 생산하지 않는 강원도 바닷가에서 로스팅만으로 특화된 커피 산업을 일으키고 ‘별다방’ ‘콩다방’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대기업 브랜드로 넘쳐나는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게 커피 문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강릉이 가진 자연, 역사, 문화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강릉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 없이 커피만으로는 불가능 했을 거라고 말한다.

비엔나에 가면 커피와 디저트로 특화된 비엔나 커피 문화가 있듯이 강릉의 커피 문화는 앞으로 또 다른 변주를 통해 발전해 나갈 것이다. 강릉은 서울이 아니고, 바닷가라도 부산의 해운대와는 다르다. 소박하며 자연이 살아 있고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것이 강릉의 힘이다. 자연을 보전하고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지켜갈 때 강릉의 커피 문화는 앞으로 100년, 200년 이어가는 지역 문화로 발전할 것으로 확신한다.


레일유럽 신복주 소장이 추천하는 강릉 5대 커피집

1.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 공장
1980~90년대 대한민국 바리스타 1세대 ‘3박朴 1서徐’네분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활동하는 바리스타. 원두를 강하게 볶아 진한 맛을 내는 일본식 커피의 대가다.
> 강릉시 사천면 해안로 1107번지

2. 테라로사 커피 공장
숲으로 둘러싸인 커피 로스팅 공장. 서울, 부산, 제주 등에 직영점을 두고 있는 커피 전문점. 매일 굽는 천연 발효빵과 함께 시골 마을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다.
> 강릉시 구정면 현천길 25

3. 이디오피아
참숯으로 로스팅하는 사이폰 커피. 참숯으로 로스팅하면 커피 원두도 속까지 잘익어 향이 더욱 좋다고 한다. 향과 바디감이 이집 커피의 특징.
> 강릉시 안현로 36

4. 안반데기 커피 박물관
강릉 왕산의 풍경을 즐기며 방문할 수 있는 커피 박물관. 강릉의 깊은 계곡물과 맑은 공기로 만든 더치 커피가 맛있다. 왕산까지 가기 부담스럽다면 안목 해수욕장의 카페 커피커퍼 방문으로도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 강릉시 왕산면 왕산로 2171-19(커피커퍼)

5. 커피 내리는 버스 정류장
아기자기한 동네 카페로 주인장의 자부심이 넘쳐나는 곳이다. 강릉 드립 커피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곳.
> 강릉시 율곡로 2934

올리브 100인 클럽 / 레일유럽 한국사무소 신복주 소장은…
강원도 강릉 교동에서 어릴 적부터 산과 바다가 주는 자연의 풍요로움 속에서 무공해 산골 소녀로 자랐다. 1995년부터 세계적인 다국적 여행사 걸리버에서 10년간 일한 뒤 FIT 팀장을 거쳐, 2004년 레일유럽 한국사무소를 설립했다. 수많은 해외여행 경험을 통해 맛본 최고급 외국 음식보다 강릉의 소박한 음식을 더 사랑 하는 그녀의 미식 철학은 다음과 같다. ‘You are what you 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