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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ning

지방 음식의 재발견, 목포

2015년 7월 28일 — 0

목포의 지명은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길목, 또는 서해 바다에서 육지로 들어가는 길목이라는 지형적 특성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강과 바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이곳은 한반도 남서쪽 끝에 위치한 외진 곳이지만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산이 있어 물산이 풍부하다. 앞바다에 1000개가 넘는 다도해 섬이 있어 이곳으로 가는 배편이 출항하는 요충지인 ‘목포는 항구다’.

text 김옥철 / photograph 현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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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관욱

대한민국 도로 1번지

섬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목포로 가는 것이 가장 좋다. 흑산도, 홍도, 제주도, 그리고 국토 최남단 가거도 등 가장 많은 섬여행을 목포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1004개의 섬이 있다는 신안군의 여러 섬으로 가는 배편은 물론이고, <삼시세끼>로 유명해진 만재도 역시 목포에서 배로 6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더불어 섬에서 필요한 물자가 거쳐 가는 곳이며, 거꾸로 수많은 섬에서 육지로 오는 길 역시 목포를 거쳐야 하는 까닭에 남서부 해안의 여러 섬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목포에는 크게 두 카테고리의 음식이 공존하는데 낙지, 홍어, 민어, 꽃게, 갈치 등 각종 해산물이 풍부한 반면 뭍으로 찾아오는 섬 주민을 위한 음식점(고깃집, 순댓국집, 생닭 육횟집 등) 또한 많은 곳이다.

우리나라의 길이 시작되는 곳은 목포다. 대한민국 1번 국도는 목포—서울—신의주로 이어지고 2번 국도는 목포에서 부산까지다. 이렇듯 목포에서 대한민국의 국도가 시작되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목포를 국도 기점 1번지로 정해놓고 호남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수탈해가는 조선 수탈 1번지가 된 연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소재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의 추측으로는 목포의 지정학적 중요성 외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호남인들의 활약으로 이 지역을 털끝 만큼도 넘보지 못했던 일본인들의 트라우마 때문이 아닐까 싶단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서·남해안의 중요 거점 도시였던 목포가 한동안은 잊혀 있었는데 KTX가 목포까지 운행을 시작하면서 용산에서 목포까지 2시간 24분이면 갈 수 있게 되면서 수도권과 목포가 일일생활권 으로 바뀌었다.

한국인의 맛과 멋

한국인의 미감은 정제된 것보다는 거칠고 토속적인 것을 좋아하는데 기계로 뽑은 칼국수보다는 손으로 뜯어 넣은 수제비, 찢어 먹는 김치, 음료수도 건더기가 남아 있는 식혜 등 정제되지 않은 거칠고 역동적인 것에서 음식의 맛과 멋을 찾는다. 소재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은 이러한 문화의 시작점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에서 온 것으로 본다. 쌀과 문명 작물 밀은 차이점이 있다. 쌀은 씨를 뿌려 키워서 추수한 후 방아를 찧고 물을 부어 밥을 하면 된다. 하지만 밀은 세심한 공정이 필요하다. 추수해서 밀가루로 만들어 효모를 넣고 온도를 맞추어 발효시킨 후 굽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쌀 문화는 매뉴얼이 필요치 않으며 속도에서 앞선 반면, 밀 문화는 공정에 대한 계획과 매뉴얼이 필요하다. 빵을 만드는 제빵사 자격증은 있어도 밥하는 자격증이 없는 이유이다.

198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입사 후 각 지방 박물관을 거치면서 30년 넘게 석조 유물을 연구해온 소재구 소장은 박물관 인생이 절반이며, 나머지는 전국 각처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돌 다루는 솜씨의 차이를 묻자 “양식은 다르지만 수준은 비슷하다. 경상도는 원칙적이며 정직한 반면, 호남 쪽은 장식적인 미감과 재치가 돋보이며 음식에도 그런 특징이 보인다”라고 했다. 경상도 음식이 멋을 내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재료에 충실하며 소담한 하게 만드는 반면, 전라도 지방은 음식에 대한 정성이 타 지역보다 특별하고 푸짐하다. 특히 음식의 가짓수가 많은 남도 한정식의 풍부한 상차림은 외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오랜 세월 함께하며 영란횟집을 이끌어온 장인과 명인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 처럼 이들에겐 최고의 민어회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어울림이 있다. 왼쪽부터 이양숙님, 박영란 대표, 최이진 주방장, 조형숙 사장
오랜 세월 함께하며 영란횟집을 이끌어온 장인과 명인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 처럼 이들에겐 최고의 민어회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어울림이 있다. 왼쪽부터 이양숙님, 박영란 대표, 최이진 주방장, 조형숙 사장 © 현관욱

목포의 5미

1. 세발낙지: ‘발이 가늘다’는 뜻의 세細발낙지는 목포와 인근 무안에서 많이 잡힌다. ‘갯벌에서 나는 인삼’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원기에 좋은 건강식. 연포탕, 회무침, 낙지비빔밥, 갈낙탕 등 10여 가지 조리 방법이 있다
2. 홍어: 삭힌 홍어 냄새와 톡 쏘는 맛은 홍어의 진미를 아는 사람만의 특권이다. 삼합(홍어, 돼지고기, 묵은 김치), 홍탁(홍어, 막걸리)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음식이다.
3. 꽃게무침: 소스에 버무린 봄철 꽃게 살을 참기름과 김 가루를 얹은 밥에 비벼 먹는다. 꽃게장과 함께 밥도둑 소리를 듣는다.
4. 민어회: 민어는 조기와 같은 종이지만 크기가 대형인 고급 생선. 목포에서 여름철에 민어 선어회를 먹어본 사람만이 민어를 제대로 맛본 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목포를 대표하는 어종이다.
5. 갈치조림: 육질이 부드러워 맛이 일품인 목포의 먹갈치. 회, 조림, 구이,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생선. 갈치 요리로 명인명가라고 이름 난 집이 여러 곳 있다.

여름철 보양식 민어

목포 하면 홍어를 많이 떠올리지만 사실 목포를 대표하는 생선은 민어다. 목포에는 ‘민어의 거리’가 있고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영란횟집의 민어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민어를 제대로 맛보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예부터 ‘여름철 보양식으로 일품 민어탕, 이품 도미찜, 삼품 보신탕’이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민어는 여름철 최고의 음식이었다. 7~8월에 막 알이 들기 시작한 기름진 암컷 민어는 민어회, 민어전, 민어탕 모두 최고의 맛을 내는데 몸무게가 보통 4~5kg에서 20kg, 길이는 40~50cm에서 1m가 넘는 큰 물고기다. 살이 두껍고 기름지며 비늘만 긁어내면 버릴 것이 없고 비린내가 없어 담백하다.

영란횟집 선어(鮮魚) 회

영란횟집은 1969년 박영란 대표의 친정어머니 김은초 여사가 목포 제1호 횟집으로 공식 등록한 역사와 전통이 서린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생선을 살아 있는 상태에서 잡아 곧바로 먹는 활어회를 좋아하는데 단단하고 쫄깃한 맛으로 먹는다. 이에 비해 민어는 저온에서 하루 정도 숙성시킨 후 선어회로 먹는 맛이 일품이다. 따라서 민어는 쫄깃함과 감칠맛이 균형을 이루는 최적의 상태를 찾아내는 전문성이 있어야 선어회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민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산지 목포에서 46년 전통의 민어 전문집에서 숙성시킨 민어를 먹어본 사람에겐 서울이나 수도권 식당의 민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영란횟집은 민어 선어회의 원조이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지 오래다.

사람에 대한 매력이 있는 집

영란횟집의 분위기는 무엇보다도 따뜻하다. 일반 손님으로 식당을 찾아 2층의 홀로 안내받았는데 이곳에서 손님을 맞는 이양숙(58세) 씨에게서 여유와 배려가 느껴진다. 몇 가지 질문을 하니 “30대 초반부터 25년 넘게 이 집에서 일했다”고 한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하는 힘든 일을 한 곳에서 어떻게 그리 오래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주방장 최이진(65세) 씨는 나보다 더 오래, 30년 넘게 일했다”고 한다. 창업자 김은초 여사의 딸이자 동업자였던 박영란 대표(63세) 역시 일한 지 40년 넘었고, 현재 음식점 사장을 맡고 있는 박 대표 남동생의 아내 조형숙(54) 씨 역시 오랫동안 함께 일하면서 모두가 한가족 같은 분위기를 일구어냈다.

누구라도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면 달인이 되고, 20년 넘게 하면 장인, 30년 넘게 하면 명인이 된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10년 넘게 일한 달인도 명함 내밀기가 쉽지 않다. 장인과 명인이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는 자연스레 손님들에게 전달되는 법. 손님들 또한 목포와 전국에서 찾아오는 오랜 단골이 많다. 좋은 식당이란 음식을 잘 만들어 음식에 끌려야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식당은 사람에 대한 매력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곳이다. 영란횟집은 목포의 ‘민어 사랑방’ 같은 곳이다.

46년의 세월이 흘러 영란횟집의 대표가 어머니에서 박영란 대표로 바뀌었지만 운영 방식과 독특한 맛은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저 역시 어머님이 하시던 것을 대를 이어 하고 있지만 손님 중에도 아버지나 어머니 손을 잡고 왔던 어린 손님들이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 다시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는다”며 “그럴 때가 제일 뿌듯하다”고 말하고는 그들이 어릴 때 먹었던 추억의 맛을 유지하는 데 가장 신경 쓰고 있다고 한다.

최고 맛의 민어 선어회 비법 3가지

첫째, 최고의 재료를 좋은 값의 현금으로 구입한다. 따라서 목포 어시장에서 경매되는 최고급 민어는 영란횟집으로 먼저 들어온다. 둘째, 막걸리를 발효시켜 만든식초에양념을넣어만든 초장으로회맛을더욱좋게한다. 셋째,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인근에서 직접 재배한 100% 국내산만을 사용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믿고 안심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지역을 대표하는 횟집이 되었다. 여름철 민어를 맛보기 위해 목포에 가야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소재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
소재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 © 현관욱

올리브 100인 클럽/ 소재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은…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인근의 미륵사지와 왕궁리사지를 매일 집처럼 드나들었다. 이때 본 탑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이 평생 그를 석조 문화재 전문가의 길을 걷게 했다. 국립고궁박물관장,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을 거쳐 2013년부터 목포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요즈음은 쌀을 먹는 문화, ‘사람들의 동질성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갖고 음식 문화사 연구를 하고 있다. 공저로 <돌의 미美를 찾아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