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메 2015를 찾은 미슐랭 스타 셰프 3명을 만났다.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그들의 요리 철학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dit 문은정, 권민지 photograph 서울고메조직위원회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 – ‘Ooops I Dropped The Lemon Tart’
마시모 보투라는 이탈리아 모데나에 위치한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의 셰프다. 이번 2015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2위를 차지했다. 마시모 보투라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예술을 접했기에 미술과 음악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이 때문에 그의 요리 중에는 아이웨이웨이, 데미안 허스트, 요셉 보이스 등 당대 유명 예술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 그가 서울 고메 마스터클래스에서 선보인 요리 중 하나도 데미안 허스트의 스핀 페인팅에서 영감받은 것이었다.
음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창조하는 그의 조리 기법은 마치 셰프가 아닌 예술가의 느낌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요리에 감성을 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릴 적 할머니가 큰 팬에 라자냐를 가져오면, 아이들이 즐겨 먹는 부분은 코너의 바삭한 크런치죠. 오늘 낼 요리는 이 크런치를 재해석한 것이에요.” 그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감성을 재해석하는 것을 즐긴다. 그가 새로운 레시피를 창조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의식(Consciousness), 비전(Vision), 그리고 직관(Intuition)이다. 그의 시그너처 디저트 중 가장 유명한 ‘Ooops I Dropped The Lemon Tart’ 역시 이러한 감성을 녹여 만들어낸 음식이다. “레스토랑 스태프 중 다카라고 하는 일본 친구가 있어요. 레몬타르트를 손님에게 내려고 가져가다가 2개 중 하나를 떨어트리고 말았죠.” 하지만 마시모 보투라는 그가 떨어트린 방식으로 레몬타르트를 재창조하자고 제안했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큰 인기를 얻는 디저트가 되었다. “삶은 참 힘들어요. 수많은 의무로 둘러싸여 있죠. 제 행복의 비밀은 작은 공간에서 매일 다르게 사는 것이에요. ‘Ooops I Dropped The Lemon Tart’라는 방식으로요. 여러분도 이러한 방식으로 삶을 다르게 바라보셨으면 좋겠어요.”
조르디 로카(Jordi Roca) – ‘Innovation’
조르디 로카는 2015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서 1위를 한 레스토랑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의 셰프다. 로카 3형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각각 메인 셰프와 디저트 파티시에, 소믈리에의 역할을 맡는다. 창조력과 기술력의 콤비네이션을 선보이며 전 세계 미식가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영상으로 레스토랑 내부를 구경시키며 유년 시절의 기억을 어떻게 요리에 담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는 저와 형제들이 아이디어를 나누는 곳이에요. 이 장소에서 탄생한 아이디어는 엘 세예르 레스토랑의 작은 부엌으로 옮겨지죠.” 작은 바 테이블을 보여주며 그가 말했다. 영상 속의 엘 세예르 데 칸 로카는 마치 하나의 실험실 같았다. 오일을 만드는 여과기, 영하 -5℃까지 내려가는 슈퍼프리저, 증기로 음식을 만드는 기기, 동결건조기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신기한 것투성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쓰는 접시 역시 매 시즌 새로운 플레이트를 개발한다. 그는 사워도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마사마드레 플레이트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안에 모터가 있어서 반죽이 숨 쉬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움직이는 접시라니. 마치 접시가 생명을 갖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로카 3형제는 현대적인 테크닉을 한계 없이 도전하고 개발한다는 의미의 이노베이션(Innovation)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그런 그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유머다. “유머는 중요해요. 레스토랑에서 접목하기는 어렵겠지만 가끔 미친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거든요.” 이렇게 비현실적이면서도 유머적인 요소는 버리지 않고 먼 훗날을 위해 저장해둔다. 영상으로 제작해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영상 장면은 ‘치킨을 대기권에 올려 구우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아마 조만간 엘 세예르 데 칸 로카에서 ‘대기권에 다녀온 치킨’이라는 메뉴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분명 그들은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코리 리(Corey Lee) – ‘Creative And Artistic’
요즘 가장 핫한 셰프를 꼽으라면 단연 미국계 한국인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거머쥔 코리 리 아닐까? 지난 5월 그의 레스토랑 이름을 딴 요리책 <베누(Benu)>의 출간을 기념할 겸 서울을 방문한 그를 만났다. 선한 인상과 달리 레스토랑에서의 그는 철두철미하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고. 그는 “저를 포함해 레스토랑의 모든 직원이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 각자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거겠죠”라고 답했다. 누군가 미슐랭 3스타를 받은 것은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대단한 일이라 말하자 “엄연히 다르죠. 올림픽 선수들은 금메달을 목표로 달리지만 저는 미슐랭 3스타를 받기 위해 요리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단호히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며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요리사의 직업의식은 제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는 한식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단순히 한식 메뉴나 한국의 식재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인 음식을 먹는 방식과 구성 등에서 영감을 받아요. 특히 한 상 차림 안에 갖가지 음식이 균형 있게 어우러진 것이 매우 흥미롭게 느껴져요.” 레스토랑에 사용하는 모든 그릇은 광주요 제품으로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의 식문화를 균형 있게 접목시킨 그의 음식과 잘 어우러진다. 책 <베누>에서도 다양한 나라의 식문화를 통해 영감을 받아 탄생한 베누의 메뉴와 레스토랑의 전반적인 모습을 사진과 글을 통해 자세히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