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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곡물의 이면 읽기 @정재훈

2015년 7월 23일 — 0

슈퍼 곡물을 첨가한 즉석밥, 과연 ‘슈퍼’ 건강식품의 기능을 갖추고 있을까?

text 정재훈 edit 권민지 photograph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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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은 슈퍼푸드를 파는 곳인가? 즉석밥 진열대를 마주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TV에서 보던 슈퍼 곡물 2가지가 눈앞에 있다. 남아메리카 고산지대가 원산지로 기원전 5000년경부터 경작했다는 퀴노아, 그리고 콩과 식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 전부터 재배했다는 렌틸콩을 넣어 만든 즉석밥이다. 이미 멥쌀과 함께 조리하여 포장한 제품이니 어떻게 해서 먹을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만 돌리면 된다.

퀴노아는 유사 곡물로 시금치나 근대처럼 명아줏과에 속하는 채소의 씨앗(벼, 옥수수, 밀 같은 볏과 식물의 씨앗을 곡물, 다른 식물의 씨앗이지만 곡물처럼 취급하는 퀴노아, 메밀, 아마란스 같은 것을 유사 곡물이라고 한다)이다. 쌀이나 밀에 비해 지방이 두세 배 더 많이 들어 있어서 견과류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 낱알의 생김새는 동글동글해서 기장과 비슷하다. 용도 면에서는 곡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빵, 국수부터 수프, 술, 음료까지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맛이 견과류처럼 고소하다 보니 종종 퀴노아를 샐러드에 넣기도 한다. 그런데 퀴노아가 유사 곡물이란 점을 감안하면 밥 지을 때 넣어 먹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조, 기장, 수수, 보리 등의 잡곡처럼 퀴노아를 섞어 밥을 지어 먹으면 쌀에 부족한 영양을 보충할 수 있다.

시식 전에 제품 겉면의 설명을 읽어보자. 퀴노아는 ‘곡물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큼 단백질, 식이 섬유, 무기질 등 다양한 영양을 포함하고 있다. 읽고 나니 입맛이 끌린다. 새로운 것을 보면 맛보고 싶은 잡식동물 특유의 호기심, 이른바 네오필리아(neophilia)다. 꼭 필요한 호기심이기도 하다. 코알라는 유칼립투스 잎만으로 충분하지만 인간은 잡식동물이라 한 가지 음식만으로 모든 영양을 얻을 수 없다. 다양성의 선호는 잡식동물의 생존에 필수 요소다. 흰 쌀밥 대신 퀴노아밥이나 렌틸콩밥을 먹는 것은 그런 면에서 훌륭한 선택이다.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양과 종류에 비해 퀴노아와 렌틸콩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즉석밥 1회 제공량을 기준으로 흰 쌀밥 대신 퀴노아밥을 먹으면 단백질 1g을 더 얻는다. 렌틸콩밥은 그냥 흰 쌀밥과 차이가 없다. 대신 렌틸콩밥을 먹으면 섬유질을 3.4g 섭취하게 되는데 이는 쌀밥에 현미를 1/4 정도 섞었을 때와 비슷한 양이다. 흰 쌀밥은 제품 1개당 중량이 30g 더 들어 있어서 열량이 55kcal 더 많다. 어떤 밥을 선택하더라도 영양 성분의 차이는 크지 않다. 퀴노아에 칼슘, 칼륨, 철분이 더 많이 들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흰 쌀밥 대신 퀴노아 또는 렌틸콩을 섞어 지은 밥을 먹는다고 영양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퀴노아밥이든 렌틸콩밥이든 대부분 백미이고 퀴노아와 렌틸콩의 함량은 각각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퀴노아 함량이 겨우 3%인 제품도 있는데 단백질 함량이 흰 쌀밥보다 되레 1g 더 적다. 쌀알이 불어터진 걸 보면 밥 지을 때 물을 많이 넣은 모양이다. 물을 많이, 곡물은 적게 넣었으니 열량과 단백질이 다 낮아진다.

퀴노아를 밥에 얼마나 넣든 관계없다. 한국인의 쌀 소비량은 1970년대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즉석밥으로 치면 하루에 2개 조금 넘고, 공깃밥으로는 2공기에 못 미친다. 그럼에도 우리의 단백질 평균 섭취량은 평균 필요량을 훌쩍 넘는다. 밥 이외의 다양한 음식에서 충분한 양의 단백질을 얻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 저편 식량난을 겪는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난은 인간을 코알라로 만든다. 빈곤한 사람은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한두 가지에 편중된 식사를 할 때는 무엇을 주식으로 하느냐가 커다란 차이를 가져온다. 퀴노아는 식물성이지만 우유처럼 필수아미노산이 고루 들어 있다. 빈자의 식탁에 퀴노아는 좋은 선택이다. 아직도 세계인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으며 고질적 식량 불안이 사람들을 괴롭힌다. 퀴노아는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로 척박한 토질에 염분이 많은 땅이나 가뭄 지역에서도 잘 버틴다. 게다가 3000종 이상의 다양한 품종이 있어서 기후와 환경이 각기 다른 여러 지역에서 재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엔국제농업기구(FAO)가 2013년을 ‘세계 퀴노아의 해’로 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미국, 유럽 등의 부유한 국가에서 퀴노아 열풍이 부는 바람에 페루나 볼리비아처럼 가난한 나라의 농민들이 전처럼 퀴노아를 먹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어떤가?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퀴노아 열풍이 분 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최근 5년간 퀴노아 가격이 세 배 이상 올랐고 동시에 퀴노아의 주 생산국인 볼리비아 같은 나라에서 퀴노아 소비가 34% 이상 줄어들었다. 하지만 퀴노아값이 올라서 안데스 지역 농민들이 퀴노아를 덜 먹게 됐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단순화다. 안데스 지역 사람들도 인간이며 잡식동물이다. 삼시세끼 퀴노아만 먹는 게 좋을 수는 없다. 수입이 늘고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다양한 음식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퀴노아를 적게 먹는 대신 햄버거와 콜라만 먹는 건 아니다. 신선한 채소의 소비도 함께 늘어난다. 아직까지는 거대 곡물 기업들이 퀴노아 생산에 참여하지 않아 남미 고산지대에서 소규모 농업으로 대부분의 퀴노아를 생산한다. 퀴노아가 모두 공정 무역으로 판매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데스 농민의 수입이 전반적으로 늘어났고 그만큼 그들의 식탁이 다양해진 것도 사실이다.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은 ‘당신이 퀴노아를 좋아하는 건 안데스 농부들에게도 좋은 소식’이란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바다 건너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싣고 오는 퀴노아의 이면에 얽힌 이야기는 복잡하다.

고민을 뒤로하고 슈퍼 곡물 렌틸콩밥을 맛볼 차례다. 렌틸콩은 양면이 볼록한 렌즈 모양을 하고 있어 렌즈콩이라고도 부른다. 렌틸콩 농사를 처음 짓기 시작한 건 8500년 전인데 유럽의 렌즈 제조 기술은 그보다 한참 뒤인 17세기에 발달했다. 둥글고 한 면이 볼록한 유리알을 쌍으로 붙이면 렌즈콩처럼 생겼다고 하여 렌즈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니 기술과 문화의 뿌리에는 음식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렌틸콩은 다른 두류와 마찬가지로 단백질이 풍부하다. 제품 라벨에도 그 점이 강조되었다. 렌틸콩 즉석밥 1개에는 우유 1컵 분량의 단백질과 토마토 1개 분량의 식이 섬유가 들어 있다. 렌틸콩이 슈퍼 곡물이라 그런 건 아니다. 렌틸콩도 콩이니 두류의 영양학적 특성이 있을 뿐이다. 녹두와 완두콩, 강낭콩도 렌틸콩과 비슷하게 단백질과 식이 섬유가 풍부하다. 렌틸콩만의 장점이 있긴 하다. 보통 콩에는 항영양인자(antinutrient) 성분이 많아서 소화를 방해한다. 렌틸콩은 다른 콩에 비해 그런 성분이 적어서 소화가 잘되는 편이고, 요리하기도 쉽다. 렌틸콩은 강낭콩이나 대두에 비해 모양이 납작하고 껍질이 얇아서 다른 콩보다 물을 빨리 흡수하고 금방 부드러워진다. 수프를 끓이면 국물이 잘 배어 특히 맛있다. 요즘 마트에 가면 렌틸콩을 넣은 짜장이나 카레 같은 즉석식품도 눈에 띈다. 아직 맛을 보진 못했지만 적어도 소스가 잘 배는 렌틸콩의 조리 특성을 살렸다는 면에서는 좋은 선택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렌틸콩을 넣고 밥을 지을 때도 미리 불리거나 삶을 필요가 없다.

맛을 생각한다면 기름이 잘잘 흐르는 흰 쌀밥이 최고다. 사실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흰 쌀밥을 먹어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식탁에 올리는 음식의 가짓수가 늘어난 만큼 백미로 인한 영양 결핍을 걱정할 이유가 없다. 현미 대신 백미를 먹는다고 각기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먹던 걸 먹고 싶다. 퀴노아나 렌틸콩 같은 생소한 음식은 싫다. 잡식동물인 인간에게는 이같이 새로운 음식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 폴 로진은 여기에 네오포비아(neophobia)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유 있는 경계심이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요리 잡지에 “퀴노아 껍질에는 사포닌 성분이 들어 있어 항암과 항염에 좋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잘못된 설명이다. 사포닌이라고 모두 몸에 좋은 성분은 아니다. 퀴노아 껍질의 사포닌은 방어를 위한 독성 물질로 위장 점막을 자극하며 쓴맛이라 씻어서 제거해야 한다. 다행히 시판되는 퀴노아는 이미 사포닌을 제거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선호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는 역설적 상황은 결국 음식 때문이다. 단점 없이 장점뿐인 완전무결한 식재료는 없기에 네오필리아와 네오포비아 사이에서 느껴지는 긴장은 필연이다.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그런 불안감을 없애주는 건 음식 자체가 아니라 요리와 가공이다. 균형을 잡아주는 건 결국 요리사의 손에 달려 있다.

정재훈은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한 후 캐나다 토론토에서 다년간 약사로 일했다. 음식만큼이나 사람들과 요리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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